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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5화 (5/200)

# 5

5화

‘웬만한 사람이면 필사(必死), 무인이라고 해도 버틸 확률은 반반.’

그 정도로 지독한 독기다. 만약 갈지혁이 단순한 무인이었다면 지금쯤 현기증을 일으키며 그대로 구토를 했을 게다. 다행히 독에 대한 내성이 상당한 그이기에 그나마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말없이 걷던 일악천이 조용히 멈춘 곳은 커다란 구덩이 앞에서였다. 그의 옆에 성큼 다가가 아래를 살핀 갈지혁의 눈이 부릅떠졌다.

치이익!

혀를 날름거리는 뱀이 보인다. 색깔이 상당히 화려하다. 작은 몸집에 금색 테두리……. 금선사(金線蛇)다. 일류고수라고 해도 금선사의 이빨에 물리면 일각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독사들이 이곳에 있다.

그때 일악천은 통을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새카맣고 동그란 것이 직접 만든 벽곡단인 듯했다.

“지독한 놈들이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놈들은 우습게 보지 못하지.”

금선사뿐만이 아니다.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뱀들도 수두룩하다. 알 수 없다는 것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만약 물린다 해도 그 독을 해독할 방법을 바로 알지 못한다면…….

‘지금의 나는 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면 죽어.’

최소한 사독문을 나가기 위해 갈지혁이 걸어야 할 길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게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뱀들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독기가 흘러 나왔다.

“저놈. 붉은 놈은 홍사(紅巳)라 부른다.”

“홍사…….”

“내가 붙인 이름이다. 나도 저놈을 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니까. 금선사는 유명하니 잘 알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런 금선사도 저놈은 피해. 홍사가 독기를 뿜어내면 사방에 있는 뱀들이 피하지. 물리면…… 열 걸음을 걷기 전에 죽어.”

“저놈도 사로에 있습니까?”

“저놈보다 지독한 놈도 있지.”

갈지혁은 홍사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저것보다 지독한 놈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열 걸음도 띠기 전에 그 독기가 심장까지 일어 죽는다면 그건 대단한 독을 지녔다는 말이다. 그런 뱀보다 더한 독이 있는 놈이 있다니.

궁금증이 치밀었기에 갈지혁은 일악천에게 물었다.

“홍사보다 지독한 놈이 이곳엔 없습니까?”

“있었지. 놈이 있을 때 이곳의 왕은 그 녀석이었어.”

“지금은 없다는 말이군요.”

“왜? 보고 싶나?”

갈지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독의 길을 걷는 자로서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반드시 걸어야 할 사로까지 생각한다면 홍사보다 지독하다는 그 뱀의 독성이 얼마인지는 눈으로 보고 싶다.

일악천이 갑작스럽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손목을 잡아채 봐.”

“예? 갑자기…….”

“보고 싶다며? 보여 주지. 잡아채 봐.”

갈지혁은 일악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손을 움직였다. 가볍게 숨을 고르는 척하던 갈지혁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금나수 또한 갈지혁의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였다.

그런데!

팔을 낚아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매가 흔들렸다. 무엇인가가 튀어 나왔고 갈지혁의 고개가 절로 뒤로 굽혀졌다. 암기가 터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튀어나온 것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제길!’

급히 몸을 틀었지만 그 알 수 없는 것이 갈지혁의 목젖 앞에서 턱 하고 멈췄다.

소름이 오싹 돋는다.

암기 끝이 슬쩍 길어졌다. 아니, 그건 암기가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녹색 뱀이다. 길이도 얇아 암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뱀의 내뻗어진 혓바닥이 슬쩍 목을 핥고 지나갔다.

“이, 이건…….”

“네놈이 보고 싶다고 하던 놈. 네놈도 독의 길을 걷는 녀석이라면 느낄 수 있겠지.”

일악천이 말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말 평범해 보이는 뱀이다. 일반 뱀보다 얇고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빛난다. 그런데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 같은 기분이다. 마주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 몸이 굳어 버렸다.

겨우 뱀에 불과한데 절정고수와 검을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처음 보고 놀랐지. 뱀인데도 영리해. 미물이 아니야. 뱀이면서도 사람과도 같았지.”

처음 이 녹색 뱀을 발견한 일악천은 놀라고 말았다. 마치 황제와도 같은 모습에 단숨에 시선이 끌려 버린 것이다. 심하게 싸우던 뱀들도 이 조그만 녹색 뱀이 모습을 드러내 이빨을 들이밀면 그대로 도망쳤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황제와도 같았다. 모두의 위에 군림하고 녹색 뱀이 지나가는 길은 모두가 비켜선다. 신기한 놈이라는 생각에 직접 다가가 봤다. 이 정도 독이라면 분명 꿈에 그리던 절대극독(絶對劇毒)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슬쩍 손을 내밀려던 일악천의 손이 멈춘 건 그때였다. 뱀이 자신을 쳐다본 채로 혀를 날름거렸다. 그 모습에 일악천은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야 말았다.

몸을 돌려 걷던 일악천은 고개를 돌렸다. 뱀이 그를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떨어지겠지 하고 계속해서 걸었지만 녹색 뱀은 끝까지 그를 쫓았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일악천과 녹색 뱀은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그마치 오 년 전이다.

“뱀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알지. 지금도 널 공격하려다가 내가 옷소매를 조금 당기자 바로 멈춘 걸 보면 알 게다.”

“……대단하군요.”

갈지혁의 눈은 그 녹색 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뱀은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일악천의 손에 매달린 채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팔을 휙휙 감은 뱀은 마치 녹색 장신구 같아 보였다. 아마 모른 채로 봤다면 장신구라고 생각했을 게다.

“뱀 중의 황제. 그래서 난 사중지황(巳中之皇)이라고 부른다.”

팔 위에서 마구 휘돌던 뱀이 일악천이 슬쩍 손을 움직이자 소매 안으로 빨리듯이 들어갔다.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분명 그 뱀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왜 너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 아느냐?”

“대충.”

“네놈 생각이 맞을 게다. 너에게 이 뱀들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놈들은 내가 키우는 놈들이다. 난 이놈들에게 먹이거리를 제공하고 대신 실험을 해 볼 때 이곳에서 있는 뱀들의 독을 이용하지. 넌 이러한 놈들이 우글거리는 길을 걸어야 한다.”

각오를 다지게 하려는 거다. 지금의 갈지혁이 이 정도 독사들이 있는 곳에 들어선다면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더군다나 사로에는 뱀뿐만이 아니라 전갈을 비롯한 수많은 독충들도 있다.

“적어도 이 구덩이 안에 들어가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는 수준에 이뤄야 사로를 걸을 자격이 생긴다. 물론 그걸로 그 사로를 끝까지 걸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대답 없이 구덩이 안을 바라보는 갈지혁에게 일악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이놈들에게 먹이를 주는 건 네가 해라.”

“제가 말입니까?”

“뱀에게 물린 것도 아니고 그저 풍기는 독기만으로도 허덕이는 놈이 사로를 걷겠다고? 우습지도 않다. 이곳에 오는 건 단순히 독기에 익숙해지라는 게 아니다. 그 이상은 네놈이 답을 찾아라.”

한 번 한 말은 결코 되돌리지 않는 그다. 그것을 알기에 갈지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이곳에 오는 것이 결코 자신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서다.

일악천은 통을 들어 올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갈지혁은 말없이 그 뒤를 쫓았다. 그때 소매 속으로 들어갔던 뱀이 윗옷 쪽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녹색 뱀은 고개를 돌려 갈지혁을 바라보며 그 긴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지독한 독을 지닌 독사다. 입을 벌렸을 때는 온몸이 굳어 버릴 정도의 박력도 가지고 있다. 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지만 이렇게 보니 그저 귀여울 뿐이다.

하지만 사중지황이라고 불린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저 녹색 뱀에게 물린다면 즉사다.

일악천은 갈지혁에게 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다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의 고개가 창밖으로 향했다. 일악천의 얼굴에 떨떠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갈지혁이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생문이 열렸다.”

“사독문의 생문이 말입니까?”

일악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사독문의 생문이 열렸다는 것은 지독한 죄인이 들어왔다는 말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전혀 열리지 않았던 생문이 열리며 갈지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누군가가 이곳에 온 것이다.

또 누군가가 사독문에 갇힐 정도로 중죄를 지은 것인가 아니면…….

“잠시 다녀오마.”

말을 마친 일악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 탓이다. 갈지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악천이 밖으로 나간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책을 보고 있던 갈지혁은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처음엔 벌써 일악천이 돌아온 건가 했지만 이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냐. 생문까지의 거리를 왕복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아.’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생문까지 가는 거면 몰라도 그 이상은 무리다. 더군다나 밖에서 다가오는 자들은 둘이다. 물론 일악천이 갈지혁을 데리고 온 것처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 둘 모두 일악천이 아니라는 거다.

적어도 몇 달을 함께 보낸 일악천의 기도도 모를 정도로 갈지혁은 둔하지 않다. 그는 옆에 놓아두었던 검을 집어 들었다. 비록 검보다는 손을 쓰는 게 편하다 하지만 만약의 일을 위해서다. 갈지혁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암습에 대비했다.

문을 등 진 갈지혁은 조금씩 호흡을 골랐다.

‘앞으로 스무 발자국.’

정확하게 갈지혁은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숫자를 끝마쳤을 때 그 두 명의 인물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갈지혁은 손에 쥐고 있는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길!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군. 이게 무슨 냄새야! 퉤!”

들었지만 갈지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록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으며 삼류 잡배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볼 때 그 남자는 분명 고수다. 그에 반해 옆에 있는 자는 뭔가 조금 다르다. 아무런 말도 없고, 발소리도 왠지 모르게 가볍다.

‘다른 한 명을 모르니 검으로 싸우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어. 하지만 독이라면 확실히 이겨.’

상대가 둘이라 하지만 독을 쓴다면 이길 자신이 있다. 더군다나 지금 그의 소매 속에는 일악천이 손수 제작한 독분이 있다. 이 가루를 뿌리기만 한다면…….

“어이, 이봐. 네놈, 일어나 봐. 일악천은 어디 있냐?”

그 말에도 갈지혁은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기회를 엿봤다. 움직이는 것은 그 사내가 조금 다가온 후다.

“이봐! 귀가 먹었냐!”

다혈질의 성격일 거라는 예상대로 사내는 버럭 화를 내며 갈지혁에게 다가왔다. 그걸 느끼는 순간 갈지혁의 온 신경이 쭈뼛 일어났다.

‘좋아! 지금…….’

“멈춰요.”

예상외의 목소리에 갈지혁은 출수하려던 손을 그대로 굳혔다. 예상외로 들려온 목소리는 여인의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어려 보이는 여인 말이다.

“아가씨, 저런 놈은 좀 두들겨 패야지 말을…….”

“풍 아저씨. 전 아저씨한테 한 말이 아니에요.”

“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갔으면 지금쯤 아저씨는 피를 토하고 있을 걸요? 저 사람이 독을 사용했을 테니까.”

반박을 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 사내는 단숨에 입을 다물었다. 그건 여인이 지고한 위치에 있는 신분이거나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실력자라는 소리다. 갈지혁은 후자를 꼽았다.

‘난 움직이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독을 사용하려는 걸 알아차렸지. 여자지만 우습게 봐서는 안 돼.’

무공 실력은 모르겠지만 그 정도 눈썰미를 가졌다는 건 독에 대한 지식이 기본 이상은 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이라는 소리다.

갈지혁은 우선은 움직이려는 손을 멈췄다.

“물어볼 게 있어요.”

“뭐지?”

“상당히 쌀쌀맞네요.”

“갑작스럽게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온 자들에게까지 예의를 차리라는 건가?”

그 말에 여인은 살짝 미소 지었다. 하얀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슬쩍 보이는 이목구비를 보아하니 상당한 미인이다. 드러난 입술은 상당히 붉고 피부도 희다. 그녀는 갈지혁의 태도에서 흥미가 인 모양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갈지혁의 목소리에서 예상보다 어린 나이의 사내라는 걸 직감했다. 잘해 봐야 자신과 비슷한 나이 정도?

“그건 제가 사과할게요. 그럼 손님으로 왔으니 물어도 되겠죠? 일수만독께서는 어디 계시죠?”

“나도 모르니 이따가 오도록 해. 지금은 이곳에 안 계시니.”

태연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여러 가지 결론들을 내면서 한 대답이다. 이들은 일악천을 찾고 있다. 더군다나 그의 정체가 일수만독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호의로 찾아왔다기보다는 악의를 품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럼 밖에서 기다리다가 오시면 같이 들어오죠.”

“아가씨!”

“풍 아저씨, 지금 이 앞에 있는 사내가 비록 어려 보이긴 하지만 실력은 무시 못 해요. 싸운다 해도 양패구상(兩敗俱傷). 굳이 그럴 필요는 없죠.”

예상외로 여인이 쉽게 물러나는 듯하자 갈지혁은 슬그머니 검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등을 돌린 상태다. 이렇게 등을 보인다는 게 어찌 보면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자신이 독을 펼치는 걸 상대가 모르게 할 수도 있다.

여인이 갈지혁의 뒤에 서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예요?”

“알 거 없어. 어차피 알아봤자 쓸모없는 이름일 테니.”

갈지혁은 단호했다. 적이 될지도 모르는 자들과 굳이 이름을 나눌 생각까지 없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여인이 알아차린 것처럼 갈지혁도 알아차렸다. 밖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벽을 바라보고 있던 갈지혁이 몸을 돌렸다. 면사를 쓴 여인과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둘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상태라 서로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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