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뱀이 옆을 향해 스르륵 움직였다. 비록 극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움직임은 보일 게다. 잘 훈련이 된 것인지 뱀은 단숨에 갈지혁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이 장애물 사이로 몸을 감췄다. 아마 단숨에 튀어 올라 어딘가를 물어 버리려고 할 게 분명하다.
‘맹독을 지녔다 해도 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갈지혁이 내려트려 쥔 가지가 파르르 떨렸다. 독을 쓸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잘못하면 뱀을 죽일 수도 있고, 또 그런 극독을 지닌 뱀에게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독이 통할 거라는 보장이 없어서다.
일악천은 갈지혁이 질 거라고 판단했지만…….
‘온다!’
파앗!
생각과 동시에 무엇인가가 뛰어올랐다. 갈지혁의 손에 들린 가지가 무서울 정도로 뻗어져 나갔다.
탕!
‘쳇!’
가지에 닿는 소리가 결코 뱀이 닿는 소리가 아니다.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얕보지 않는다고 생각해 놓고도 방심을 해 버렸다. 뱀이 지형지물을 이용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갈지혁이 움직이려던 다리를 멈췄다.
어느새 다가온 뱀이 갈지혁의 발 바로 앞에 똬리를 트고 앉아 있다.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절정고수처럼 은밀하게 다가왔다.
만약 물었다면 승부는 이미 결정지어졌다. 갈지혁은 잘라 냈던 가지를 떨어트렸다.
겨우 뱀에게 져 버렸다. 그것도 아주 우습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갈지혁은 뱀의 행동에 놀라고 말았다.
녹색 뱀이 소매에서 빠져 나와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운기를 하는 사람을 지키는 호법과도 같이 말이다. 어떻게 저런 뱀이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가리켜 사람들이 영물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뱀이라면 영물이라고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잠시 운기를 하며 몸 상태를 확인한 갈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녹색 뱀이 다가와 소매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어깨 쪽을 향해 기어오르던 뱀은 팔뚝에 자신의 몸을 말았다. 갈지혁은 통을 들어 올린 채로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상당히 무겁다. 사람도 아닌 뱀에게 패한 탓이다. 일악천이 왜 이 뱀을 상대해 보라고 했는지 몸으로 느꼈다.
계속해서 걷던 갈지혁은 마침내 거처에 도착했다. 그는 통을 밖에 내려놓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일악천이 무심한 눈으로 이런저런 독초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소매 속에서 툭하고 뱀이 떨어졌다. 뱀은 빠르게 땅을 기어 일악천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갈지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녹색 뱀은 그를 강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르신.”
“왜? 할 말이라도 있느냐?”
일악천은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일악천은 언제나 그랬다. 크게 감정을 보이지도 않고 상대에게 마음도 열지 않는다. 그 탓에 일악천과 갈지혁은 무공을 익힐 때를 제하고는 거의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형편이다.
사독문에서 연을 맺게 된 지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둘의 사이는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졌습니다.”
“왜 졌는지 아느냐?”
“뱀이라 방심했습니다.”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
일악천은 독초들에서 손을 떼고는 갈지혁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흉한 얼굴을 이죽거리며 말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방심해서 졌다고? 맹수는 작은 동물을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
“……죄송합니다.”
“잘 들어. 네가 패한 건 방심해서가 아니야. 겁을 먹은 거지. 아마 상당히 꼴사납게 졌을걸? 어떠냐, 내 말이 틀리느냐?”
반박할 수가 없다.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일악천은 그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꼴사납게 패했다.
그게 겁을 먹어서 그랬던 것일까? 부정하고 싶지만 내심 겁을 먹었던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물리기만 하면 치료도 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소 움츠러든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돌멩이와 생명이 있는 뱀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도 그렇다. 너무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화가 되어 버렸다. 평소였다면 적어도 그 정도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았을 게다.
갈지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독의 길을 걸으면서 독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것은 수치다.
‘아직 멀었어. 겁을 먹어서 패했지만 결론은 내가 약해서야.’
독인의 경지에 올랐다면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패했다 해도 후회되는 싸움은 벌이지 않았을 거다.
갈지혁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렇게 해서는 독왕은커녕 독인이나 될지 의심이 든다.
적어도 독을 쓰는 자가 독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갈지혁은 참을 수 없었다.
“어르신, 제게 투입하는 독을 바꾸어 주십시오.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것들로.”
“지금 네게 주는 독은 네 내공에 맞는 수준의 것이다. 그보다 훨씬 지독한 거라면 넌 죽어.”
“예, 전 죽을 겁니다.”
갈지혁의 말이 의외였기에 일악천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갈지혁은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설명했다.
“독인이 되기 위하여 인간 갈지혁을 죽일 겁니다. 그리고 해독약만 있다면 어떠한 독이라도 복용해도 됩니다.”
“……고통스러울 거다.”
일악천은 갈지혁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 버렸다. 지금 갈지혁은 자신의 내공으로 간신히 몰아 낼 정도의 독을 복용 중이다. 당연히 그보다 훨씬 심한 독이라면 갈지혁은 버티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독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 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해독약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갈지혁은 극단의 조치를 취하려는 거다.
결코 해독할 수 없는 극독으로 내성을 기르며 반쯤 죽은 후에야 해독약을 복용해 달라는 이야기다. 분명 지금에 비해서는 내성이 빠르게 높아질 테고 극독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갈지혁에게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해독약이 있다 해도 본인이 버텨 내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다.
그런 길을 갈지혁은 걸으려고 하는 것이다.
“좋다. 네가 원한다면 못 해줄 것도 없지.”
독물을 한 번 한 번 복용할 때마다 지옥을 볼 게다. 하늘이 돌고 땅의 흔들림 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갈지혁을 바라보던 일악천은 흔쾌히 수락했다.
눈빛에서 단호한 의지가 보인다. 설령 죽는다 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어차피 독인의 길을 순탄하게 걷는다는 건 무리다. 목숨을 건다면…… 그만한 대가를 얻게 될 것이다.
“네가 패한 요인이 뭔지 말했지?”
“겁을 먹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너는 뱀과 어떻게 싸우려고 했느냐.”
“나뭇가지를 꺾어서 날아드는 것을 쳐내려고 했습니다.”
일악천은 혀를 쯧쯧 찼다. 그는 갈지혁에게 말했다.
“네놈이 되고자 하는 것은 천하제일의 무인이냐?”
“……?”
“독인이라면 독으로 싸워야지. 잔재주인 검을 들어 올리니 패하는 것도 당연하지.”
“하지만 죽여서는 안 될 것이고 또 저런 독사라면 제가 지니고 있던 독으로는…….”
“네 녀석이 무림에 나서 독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치게 될 놈들이 있다.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금강불괴들이지. 물론 그런 경지에 오른 자는 무림에 몇 없다. 그렇지만 독왕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런 자들에게 네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포기할 게냐? 아니면 그런 그들에게 검을 들이대기라도 할 생각이냐?”
일악천의 그 말은 갈지혁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애초부터 갈지혁은 녹색 뱀에게 독을 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안 통하겠거니 하고 처음부터 검을 대신한 나뭇가지를 꺼내지 않았던가. 그건 독인이 아니다. 검객의 겉모습만을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
“네놈의 패인은 거기에 있다. 독을 사용하지 않는 독인 따위는 삼류 무사조차에게도 당할 수 있지.”
갈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일악천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아 버렸다. 여태까지 일악천을 그저 대단한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다. 독인의 길을 걷고 아직도 중원 무림에서 회자될 정도의 고수.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종류의 가르침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갈지혁은 무공이 아닌 독에 대한 색다른 깨달음을 배운 것이다.
“독인은 독인답게 싸워. 검객이 검을 들듯이 도객은 도를 들어. 그럼 우린? 독을 써야지! 당연한 이야기야.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잔재주에 목숨 걸 생각을 하지 마라. 그러한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네놈의 손에 가장 익은 독이다.”
갈지혁은 고개조차 들 수가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왠지 독인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기분이다.
“내일부터다. 네놈에게 지옥을 보여 줄 거다.”
일악천은 계속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는 갈지혁을 바라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들었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갈지혁을 보다 높은 수준의 독인으로 성장시켜 줄 거라는 것도.
“난 네놈을 죽이기 위해 독을 줄 게다. 넌 살기 위해 버텨라.”
“예…….”
“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녀석과 함께 해라. 비록 뱀이라 하지만 너에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친하게 지내든, 원수처럼 지내든 그건 네 몫이다.
그저 강해져서 이놈에게 인정받아. 그럼 나도 널 인정해 주지.”
녹색 뱀은 다시금 일악천의 소매에서 빠져 나왔다. 뱀은 똬리를 트고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갈지혁이 말했다.
“이름을…… 붙여 줘도 되겠습니까?”
“이름?”
“예.”
일악천은 슬쩍 뱀을 바라봤다가 이내 말했다. 여태까지는 아무런 호칭도 없이 그저 뱀이라고만 불러왔다.
“사황(巳皇).”
“촌스럽긴.”
사황이라는 이름을 듣고 일악천은 바로 대꾸했다. 그렇지만 그 또한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혼자일 때는 필요 없지만 이제는 둘이 함께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지칭하는 호칭이 필요한 것이다.
일악천이 뱀이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앞으로 네놈 이름이 사황이란다. 촌스러워도 이해하거라.”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사황이라고 불릴 뱀이 눈을 빛냈다.
갈지혁의 얼굴빛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몸에는 잔 경련이 일었고 손톱 아래가 거뭇거뭇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독에 중독된 현상이다. 갈지혁은 목숨을 걸고 무공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갈지혁은 자신으로서 절대 버틸 수 없는 독을 몸에 담은 상태다. 당연히 내공으로 급히 독을 내리눌렀지만 그 정도로는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입가에서 당장에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이 변한 갈지혁을 보고 일악천은 그의 입에 해독약을 부었다. 물처럼 된 약을 삼킨 갈지혁의 얼굴이 서서히 살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는 헛구역질을 터트렸다.
“우웩! 웩!”
해독약을 먹어 독기는 제압했지만 그 후유증이 보통을 넘어선다. 갈지혁의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생사를 오갔으니 진이 완전히 쭉 빠져 버렸다. 일악천은 그런 갈지혁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냐고도 묻지 않는다. 갈지혁의 피를 토할 정도의 고통을 그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일악천은 나약한 말을 하지 않는 자다. 지금 이럴 때 누군가 기댈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받쳐준다면 오히려 혼자 일어설 수 없을 거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갈지혁에게 일악천이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이번엔 독장(毒掌)에 대해 이야기하지.”
대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갈지혁은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일악천은 매몰차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갈지혁은 계속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을 지탱하는 두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땅 속으로 파고들었던 갈지혁의 주먹에 한 움큼의 흙이 쥐어서 나왔다.
갈지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에 몸이 비틀거렸지만 똑바로 걸었다. 집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완전히 진이 빠진 탓에 그 짧은 길도 상당히 버거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갈지혁은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뺨을 때린 갈지혁은 자리에 앉았다.
이미 일악천이 먼저 자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입맛이 돌 리가 없다.
그토록 식은땀을 흘렸는데 입맛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갈지혁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갈지혁은 일악천의 뒤를 따랐다.
오늘 일악천은 갈지혁에게 독장에 대해 말해 주겠다고 했다. 애초부터 장법에 가장 익숙하면서도 관심이 있는 갈지혁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장법은 말이야, 파괴력이 있지.”
일악천은 커다란 바위 앞에서 말했다. 바위는 너무나 커 장정 스무 명가량이 달려들어도 꼼짝하기 힘들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일악천이 주먹을 쥔 채로 가볍게 그 바위를 툭툭 쳤다.
갈지혁은 침묵했다. 일악천의 행동에서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탓이다.
분명 일악천은 무공을 보이려는 것이다. 직접 일악천의 무공을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기에 갈지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검법도 그렇지만 같은 장법이라고 해도 쓰는 사람마다 그 위력이 다르지. 이해하는 게 다른 탓도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내공을 안배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갈지혁은 바위 앞에 서서 손을 뒤로 잡아당겼다. 그는 바위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흔히 독장이라고 하면 중독시키는 것만 생각하지. 독장의 파괴력, 하면 코웃음을 친단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독장은 그 어떠한 장법보다 파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