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8화
순간 일악천의 소매가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주먹에서 손바닥으로 변한 일악천의 손이 녹색으로 변하면서 집채만 한 바위를 내려쳤다.
소리는 없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 것처럼 주변은 고요했다.
쩌적!
일악천이 손을 거두고 몸을 돌리자 집채만 한 바위가 깨지기 시작했다. 손을 대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모든 것에는 결이라는 게 있다. 생명이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 바위 같은 무생물도 마찬가지다. 독장의 위력은 중독에도 있지만 이 결을 파괴하는 것에도 있다. 이것이 진정한 독장이다.”
독황독립문에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결코 들어 보지 못했던 이야기다. 독장은 단순히 그 위력으로 상처를 주거나 독에 중독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장법보다 그 파괴력이 약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악천이 보여 준 장법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결은 어떻게 아는 겁니까?”
“간단해. 네놈은 사람을 중독시킬 때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 고민하겠지?
그것과 마찬가지다. 이 바위를 중독시켜. 처음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돌과 싸워 봐라. 결이라는 건 다 같지 않다.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다르고 사람이라고 해도 각기 달라. 결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독을 하독하다 보면 사람에게처럼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에, 라는 너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을 게다.”
결론은 많은 경험이 있어야 스스로 결을 잡아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힘들 거라는 걸 알지만 새로운 사실에 갈지혁의 눈이 빛났다.
그도 당연한 것이, 독장은 파괴력이 약하다는 여태까지의 상식을 뒤엎는 일악천의 무공을 본 탓이다.
“결을 찾아라. 그게 네 과제다. 결을 찾으면 그 후의 것을 가르쳐 주지.”
일악천은 말을 마치고 거처로 돌아갔다. 그는 언제나 할 말만 하고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갈지혁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곤 한다.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갈지혁은 알게 되었다.
결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에 대해 깨우친다면 갈지혁은 분명 지금보다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든다. 왜 일악천 같은 인재가 이곳 사독문에 갇힌 것일까? 묻지 않았지만 나날이 그 궁금증은 더해간다.
갈지혁이 본 일악천은 분명 대인 관계가 좋을 만한 자는 아니다. 말수도 많지 않고 누군가에게 아첨을 떨었을 리도 없다. 위쪽에서 좋게 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후후, 나도 마찬가지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갈지혁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갈지혁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갈지혁이 독황독립문에서 버텼던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다. 갈지혁은 중원인이다. 독황독립문의 무인들은 중원인을 좋게 보지 않는다. 예전에 벌어진 중원과의 싸움에서 그들은 형제를 잃었다. 중원인과 같은 피부색을 지닌 갈지혁을 그들과 같은 자들로 보는 것이다.
당연스럽게 멸시를 받았고 어렸을 적에는 뭇매를 맞아 며칠 동안 자리에 누운 적도 있다.
이를 악물었다. 너희들이 그리 대한다면 언젠가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라며 독에 대해 파고들었다. 예상외로 갈지혁은 재능이 있었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독황독립문의 인재로 알려지더니 급기야는 최고의 기재라는 자리를 꿰찼다.
그렇게 되면 주변의 시선이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오히려 갈지혁은 어렸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멸시를 받았다. 그리고 급기야는 금지된 독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이곳 사독문에 가뒀다.
문득 친구의 얼굴이 생각났다. 아니,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이 든다.
‘왜…… 날 베었느냐.’
유일하게 독황독립문에서 갈지혁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하나 있다. 현 독황독립문 문주의 아들이 바로 그다. 그렇지만 갈지혁이 파문을 당한 바로 그 날, 갈지혁의 얼굴에 검상을 남긴 사내.
나이도 엇비슷했고 어렸을 때부터 멸시를 받는 그에게 유일하게 눈을 주었던 사내다. 그랬기에 쉽게 마음을 주었고 그 녀석을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곳을 나가서 반드시 만나고 싶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다.
만나면 물으리라. 왜 자신을 베었냐고.
갈지혁은 일악천이 날린 바위 바로 옆에 있는 돌 앞에 섰다. 그 크기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주먹을 꽉 쥔 갈지혁이 뒤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녹색 빛이 감도는 순간 재빠르게 손을 휘둘렀지만 바위는 멀쩡했다.
“후우.”
한숨을 내쉰 갈지혁은 옆을 바라봤다. 그 커다랗던 바위가 이제는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그에 반해 자신은…….
독황독립문에서 일악천과도 같은 인재를 버릴 이유는 하나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독황독립문의 수뇌부 중 누군가가 일악천을 두려워했어.’
갈지혁의 손바닥이 재차 바위를 때렸다.
* * *
일악천이 쳐낸 일장.
독장은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그만한 위력이라면 중원의 구파 일방의 절기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없다.
그랬기에 갈지혁은 결이라는 것을 잡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독장의 위력에 반해서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 독장을 익힌 수많은 독인들이 그러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는지 알아 버렸다.
결을 잡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무턱대고 손을 휘두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보름을 훌쩍 넘기니 손이 터져 버렸다. 맨손으로 하루에 수천 번가량 바위를 두드리니 당연한 결과다.
완전히 터져 버린 손을 쥔 채로 갈지혁은 이마에 가득 맺힌 땀을 닦아 냈다. 피와 땀이 뒤범벅으로 흘러내렸다.
손이 얼얼해서 이제는 들어 올리는 것조차 고역이다.
갈지혁은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어느 정도 하면 감이 오겠지, 했지만 아직까지 진전이 없다. 자연의 기운을 느끼라는데 도대체 일악천이 말한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 어렴풋이나마 돌을 치면서 왠지 모르게 약한 부분을 찾은 게 지금까지 얻은 전부다. 이것이 일악천이 말한 결과 관계가 있을 듯한데 그것만으로는 아직 멀었다.
파악!
재차 손이 바위를 침과 동시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갈지혁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아무리 독종이라고 해도 버틸 만한 과정이 아니다.
아침에는 생과 사의 경지를 오간다. 독물을 통해 완전히 진이 빠진 상태에서 그 후로는 이 바위와 싸운다. 저녁에는 무공 훈련을 하면서 사황과 종종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직도 사황은 갈지혁을 우습게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갈지혁은 사황과 싸우지 않았다. 독에 대한 완전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전에는 다시금 사황과 싸울 생각은 없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사황과 친하게 지내는 중이다. 그 탓인지 이제 사황은 갈지혁이 다가와도 이빨을 들이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정한 것은 아니다.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갈지혁은 사황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쉬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이렇게 움직이니 몸이 비명을 지를 만도 하다. 그 상태로 갈지혁은 혼절했고 이내 그곳에 일악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악천은 갈지혁을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도 갈지혁은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갈지혁을 보면 항상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마치 예전의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 때문이다.
독은 사람을 죽이지만 쓰는 본인의 마음은 죽어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순간이다. 언제나 등 뒤에 죽음을 달고 사는 건 좋지 않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하기 마련이다.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느껴야 한다. 지금 갈지혁에게 뭐라고 말을 해 봤자 듣지 않을 거라는 건 일악천이 가장 잘 안다. 그 또한 그러했고,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어쭙지않은 충고 따위 먹혀들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 깨달아야지.’
일악천은 독의 길이 죽음의 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독은 사람을 죽이고,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러면 어떠냐고 생각했다. 독은 사람을 죽이면서 그 독을 쓰는 본인도 죽여 버리는 것이다.
마음은 점점 차가워지고 손속은 잔인해진다. 그러다가 결국은 원한이 있는 자들에게 비참하게 죽는다.
‘같은 길을 걷는다면 넌 독왕이 될 수 없다.’
너무나 성스러운 별호이기에 일악천 또한 쉽사리 입에 담지 않는 독왕. 함부로 담았다면 그만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피범벅이 되어 버린 손을 바라보던 일악천은 갈지혁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각 정도 등에 손을 대고 있던 일악천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금 일악천은 갈지혁의 피로를 풀어 준 것이다. 깨어난다면 평소보다 한층 몸이 가벼울 게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돕지 않는다.
그게 일악천만의 가르침이다.
두둑, 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만에는 딱히 계절이 없다. 날씨는 언제나 모든 것을 태울 듯이 뜨거웠다.
지독한 건기 후에는 우기가 온다.
건기에는 미칠 듯한 더위가 괴롭혔다면 우기에는 쉬지 않고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진법 안이라고는 해도 남만에 있는 사독문 또한 마찬가지다.
자리에 쓰러져 있던 갈지혁은 얼굴을 두드리는 비의 감촉에 천천히 눈을 떴다. 바짝 말랐던 땅이 비로 젖어 들면서 천천히 진흙탕으로 변해 버렸다.
반쯤 열린 입 속으로 연신 흙탕물이 들어온다.
“쿨럭!”
입안으로 들어온 흙탕물을 기침과 함께 토해 버리고는 갈지혁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반쯤 몸을 세운 그는 옆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댔다. 옷은 이미 완전히 엉망이지만 그러한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얼굴과 머리카락도 흙이 덕지덕지 붙어 엉망이다.
“하, 하하하!”
미친 듯이 웃었다. 꼴사납게 변해 버린 모습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팔을 벌린 채로 쏟아지는 비를 그냥 맞아 버렸다. 그때 빗줄기 사이로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악천이 언제나 하곤 하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양손을 벌리고 있던 갈지혁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주먹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쏟아지던 비 때문인지 주먹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그 상태로 바위 앞에 섰다.
쏴아아!
미칠 듯이 쏟아지는 폭우가 갈지혁의 온몸을 훑으면서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전부 얼굴에 달라붙었다. 마치 광인과도 같은 모습, 그렇지만 갈지혁의 모습은 진지했다.
‘기본은 독.’
일악천이 자주 내뱉곤 하던 말이다.
독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파괴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몸 내부에 있는 장기들을 뒤틀리게끔 한다. 피가 굳고, 심장이 멈춘다. 절정고수라고 해도 몸속에 있는 장기들의 기능이 바뀌면 살 수가 없다.
마찬가지다. 독으로 바위를 날리는 결을 잡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의미가 아니다. 결이라는 곳에 독기를 집어넣는 것이다.
바위 같은 무생물에는 장기들이 없다. 그렇지만…….
‘결은 돌이나 나무, 쇠 같은 것들의 장기를 대신하는 말이다.’
깨달음을 얻으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뒤로 움직인 손에서 새하얀 연기가 연신 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랐다.
바위에서 이상한 부분을 잡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일악천의 일장처럼 부서지지 않았다. 왜인가 했지만 기본적인 것을 몰랐던 탓이다. 결이 아닌가도 생각했지만 아마도 맞을 게다.
갈지혁은 그 파괴력에만 눈이 혹했다.
손바닥이 펼쳐지면서 앞을 향해 뻗어져 나갔다.
퍽.
크지 않은 소리다. 여태까지 휘두른 장법들은 커다란 소리를 토해 냈지만 이번에는 미약하다. 갈지혁은 천천히 손을 뗐다. 그 상태로 그는 앞에 있는 바위를 바라봤다. 눈 몇 번 깜짝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바위가 균열이 생기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비가 미칠 듯이 쏟아지는 곳에 서서 갈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귓가에 심장의 고동소리만이 가득하다. 커다란 바위가 마침내 갈지혁의 손에 의해 산산이 박살이 나 버린 것이다.
비록 일악천에 비하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이 일보는 엄청난 진전이다.
갈지혁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집을 향해 휘적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안에는 저녁을 대신해 자신이 만든 벽곡단을 먹고 있는 일악천이 있었다. 일악천은 힐끔 갈지혁을 바라본 후 퉁명스레 말했다.
“늦었군.”
“어르신. 바위를 부셨습니다.”
“뭐?”
그 말에 일악천은 먹고 있던 벽곡단을 뱉어 낼 뻔했다. 아까까지는 결도 찾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지 않았던가. 일악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가 쏟아지는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는 비에 젖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갈지혁의 일장에 부서진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일악천은 거의 가루가 되다시피 한 바위를 바라봤다.
‘깨달았어…….’
갈지혁에게 일악천이 명했던 것은 결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재능이 있는 자라고 해도 족히 두어 달은 걸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갈지혁은 결을 찾아낸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 독을 이용한다는 것도 알아차린 게다.
걷는 법을 가르쳐 줬는데…… 달려 버린 것이다.
일악천은 순간 멍해진 정신을 추슬렀다. 적어도 갈지혁에게 자신의 놀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나태해질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재능이 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오히려 그 재능만 믿고 상대를 경시하다가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인물이 있는 무림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재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일악천이 지금 갈지혁이 이룩한 경지까지 오는데 자그마치 오 년이 걸렸다. 결에 대해 안 후 독을 이용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그만큼이다.
물론 처음 시도한 일악천과 갈지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놀라운 것이 변하는 건 아니다.
‘독황독립문은 실수를 했어. 저런 놈을 버리다니.’
만약 일악천이 문주였다면 결코 이런 곳에 가두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그는 문주가 아닌 갈지혁과 마찬가지로 사독문의 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