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화
일악천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천하를 죽이는 독. 그 어떠한 독도 상대가 될 수 없고, 해독할 방법도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일수에 무림에 있는 구파 일방 중 하나도 멸망시킬 수 있는 독이다.”
일수에 구파 일방 중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독이라는 말에 갈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구파 일방이라면 중원을 지키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을 단 일수에 무너트린다면 중원은 무너진다.
그렇다면 약선은 왜 그런 독초를 원하는 것일까?
그는 독의 길과는 정반대되는 의(醫)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던가. 갈지혁이 물었다.
“약선이라는 사람은 왜 그런 독초를 원하는 겁니까.”
“그는 다른 이유에서야. 단화초는 또한 병을 치료하는 약초가 되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약선이라는 사람에게 확실히 주는 것이…….”
“안 돼. 단화초는 그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돼. 약선이 만약 그 단화초를 얻는다 해도 싸움이 벌어질 게야. 약선이 비록 강하다 하지만 무림에 있는 수많은 독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들겠지. 단화초는 그만한 매력이 있으니까. 그리고 위치를 알아도 약선은 단화초를 구할 수 없어. 그곳은 독인이라도 가지 못하니까.”
알 수 없는 고독함이 일악천의 몸에서 풍겨 나왔다.
여러 가지 상념이 흐르는 모양이다. 지기였다는 독황독립문의 문주인 지대익의 모습을 보면 일악천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알 수 있다. 일악천은 가장 믿었던 지기에게 지금은 멸시를 받고 있다.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등이 오늘은 왠지 모르게 작고 슬퍼 보인다.
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지에 올랐지만 그는 혼자다. 일악천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어르신…….”
“동정 따위 필요 없다. 나가거라. 나가서 무공을 익혀. 한시도 쓸데없이 보낼 시간은 없다.”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일악천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호기롭게 독을 펼치려고 했지만 과연 방금 전 지대익과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자신할 수 없다.
지금은 마시지 않지만 옛날에는 힘들기만 하면 친우들과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그렇지만 사독문에 들어온 지금은 완전히 술을 끊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진짜 술이 아니다.
밖에 선 갈지혁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일악천이 중얼거렸다.
“넌 나처럼 되지 말거라…….”
우습게도 지금 유일하게 일악천의 옆에서 있는 것은 말조차 제대로 나누지 않는 갈지혁 하나뿐이다.
* * *
아침부터 갈지혁은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었다. 옆에는 사황이 긴 혀를 내민 채로 그런 갈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동도 않던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후우.”
막 운기조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갈지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등에 알 수 없는 찌릿한 감각이 인다.
‘제길.’
파문이라는 낙인이 찍힌 바로 그곳에서부터 고통이 치고 올라왔다. 속으로 저절로 욕설이 터져 나온다. 갈지혁은 최고가 되고 싶었다. 외롭고 멸시받으며 살아온 어머니를 위하여. 그렇지만 지금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고통에 울고 있을 게다.
‘어머니…….’
만약 사독문을 나간다 해도 만나서는 안 된다. 갈지혁이 어머니 앞에 나설 수 있을 때는 그가 독왕이 된 후에서다. 그 전에 만났다가는 어머니가 위험에 빠진다. 갈지혁은 애써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독인이란 외로운 길이다. 혼자 싸워야 하고 누구도 도움이 될 수는 없다.
약한 마음은 오히려 갈 길을 막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갈지혁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일악천의 가르침은 독에 대한 정수를 모아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하나가 갈지혁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일악천은 과거를 알 수 없는 노인이다. 현 독황독립문의 문주인 지대익조차 그의 앞에서는 함부로 손을 휘두르지 못했다. 패왕(覇王)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혈질로 알려졌던 지대익이 손을 멈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왠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 보이는 모습에 연정도 느끼지만…….
마음은 주지 않으려 한다. 독인의 마음은 차가워야 한다. 누군가에게 정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손속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갈지혁은 일악천에게 정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았다.
무려 일 년 가까이 함께 지냈지만 변한 건 없다.
일악천은 가르쳤고, 갈지혁은 배웠다. 그렇지만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로 그 둘은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건기가 가고 우기고 오고 또다시 건기가 오기를 번갈아 하기를 몇 차례……. 변한 게 없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하는 일악천과 갈지혁이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갈지혁은 상념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시간 해왔지만 이 훈련을 하기 전엔 항상 가슴 한편이 떨려온다.
이길 수 없을 정도의 극독을 몸으로 이겨 내는 훈련이다. 아침에 행하는 이 훈련 탓에 독에 대한 내성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그랬기에 예전 처음 주입하던 독보다 훨씬 지독한 것을 먹는 입장이다. 비록 매일 해 오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생과 사의 싸움이기에 긴장되기 마련이다.
언제나와 같은 곳으로 간 갈지혁은 일악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일악천은 갈지혁보다 먼저 이곳에 있다. 도대체 잠을 자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어제나 그제와 변한 게 없다. 갈지혁은 앞에 놓여 있는 그릇 안에 든 독물을 바라봤다.
동물성 독으로 사람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이다. 먹으면 일류 고수라고해 도 반각을 버티지 못한다. 독인의 길을 걸으려는 갈지혁조차도 일각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다.
그릇을 들어 올려 마시려던 갈지혁의 손이 이상하게 움찔했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다. 옆에서 갈지혁을 바라보던 일악천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닙니다.”
느낌이 좋지 않지만 갈지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독물을 들이켰다. 마시면서 배 아래가 저려오면서 그대로 복통이 인다. 동시에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 온다. 목구멍을 타고 당장이라도 피가 터져 나올 것 같다.
갈지혁은 급히 자세를 잡고 독기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이 독기는 정해진 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혈도를 막고, 독을 제압해야 한다.
독기를 제압하고 있다고 해서 고통이 덜한 것은 아니다.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은 계속된다. 하지만 정신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오기로 버티는 것이다. 터져 나오는 피를 억누르며 갈지혁의 내공이 독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만 간다면 이 정도의 독도 버텨낼 수 있으리라.
이상하게도 감이 좋지 않았지만 갈지혁은 오히려 뚫려 버린 길로 흐르는 독을 느끼며 연신 기분이 고조됐다.
‘좋아.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하면…….’
그때였다.
갈지혁은 자신의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바로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이내 혀끝을 따갑게 하는 피 맛을 느꼈다. 동시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중독…….’
생각을 잇지 못한 채로 갈지혁은 터져 나오는 피를 막아 내지 못했다.
“쿨럭!”
피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독기가 열려 버린 혈도를 타고 몸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갈지혁의 몸이 뒤로 쓰러지려는 순간 일악천의 몸이 바람처럼 날아왔다. 일악천의 손이 갈지혁의 어깨를 잡음과 동시에 왼손으로 급히 혈도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해독약을 갈지혁의 입안에 털어 넣은 일악천은 급히 맥을 짚었다. 너무나 빠르게 독기가 치고 나갔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바로 숨이 끊어졌을 게다.
일악천은 갈지혁의 등에 손을 대고 독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해독약에 모든 것을 의존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일악천은 그제야 알아 버렸다.
‘이 멍청한 녀석!’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어제까지 잘 버텨 왔고, 얼마만 더 버틴다면 이 정도의 독에 대한 완벽한 내성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오늘도 그냥 평소처럼 마음을 놓고 보고만 있었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갈지혁의 몸이 움찔거리면서부터였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급기야는 피를 토해 냈다.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몸의 상태를 살펴보니 알겠다.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일정을 아무런 말도 없이 버티는 갈지혁의 몸에도 놀랐다. 하늘이 내린 신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완전히 망가졌어. 피로가 겹쳤고, 독기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어.’
오히려 지금 쓰러진 것이 다행이다. 이런 상태로 몇 달 정도 더 지냈다면 목숨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열흘 정도 요양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며칠만 쉬면 될 거라는 것을 알지만 일악천의 얼굴은 어두웠다.
많은 말을 하면서 지낸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도 모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유일하게 사독문에서 함께하는 아이가 아닌가. 이렇게 몸이 망가졌는지도 모른 채로 일악천은 갈지혁의 재능 덕분이라고만 생각했다.
너무 무신경했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우습게도 일악천의 유일한 희망이 아니던가. 지대익의 앞에서 언젠가 이아이가 네놈의 목을 물어뜯을 독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본인도 화들짝 놀랐다. 그만큼 일악천은 갈지혁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갈지혁을 바라보던 일악천은 혀를 찼다. 이 정도가 되면서까지 버틴 갈지혁의 정신에 놀라서다. 이 정도로 몸이 망가졌다면 웬만한 사람은 걸어 다니기조차 고역이다. 그런데 갈지혁은 이런 몸을 이끌고 구파 일방 같은 쟁쟁한 무림문파 후기지수들의 두 배 이상 혹독한 훈련을 해 왔다.
몸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 죽지 않고 산 것이 다행이다.
일악천은 갈지혁을 업었다. 예전과는 달리 살도 빠진 듯하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버텨 왔을 게다.
이 정도로 독에 대한 외고집에 일악천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버렸다. 이만한 멍청이는 사천당문이나 독황독립문 어디에도 없을 게다.
‘고집스러운 놈. 몸이 아프면 말을 해야 할 것을…….’
일악천은 갈지혁을 업은 채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갈지혁을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혔다. 며칠은 푹 쉬게 할 생각이다. 고집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겠지만 어림없다. 지금 이 상태로는 진전하기보다는 오히려 퇴보할 지도 모른다.
일악천은 옆에 가서 풀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망가져 버린 갈지혁의 몸을 치료할 약이 될 것이다.
정적이 감도는 방 안에서 일악천의 손만이 바쁘게 움직였다. 독초들을 배합하는 일이라 조금만 틀리면 그것이 오히려 사람의 몸에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된다.
그때 누워 있는 갈지혁의 입에서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어머니…….”
분명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보기에 오늘 안에는 일어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혼절 중에 내뱉은 말이라는 것인데…….
사람이란 게 신비한 동물이다. 약한 모습을 보게 되고,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만큼 상대가 남 같지 않게 된다. 동물과는 정반대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잡아먹으려 들고,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강해 보이려는 동물과는 말이다. 물론 인간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적지 않긴 하지만 일악천은 권력 같은 세상의 물욕(物慾)에 관심이 없다.
‘네놈도 순탄치 않았을 인생이겠지. 안다, 알아. 그렇지만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강해져야지. 독왕은 몰라도 독인은 만들어주마.’
비록 언제나 꿈을 꾸지만 불가능하다. 독왕이 된다는 것은.
“……저는 반드시 독왕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일악천은 굳어 버렸다.
이렇게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까지 갈지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독왕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꿈을 잃은 것은 일악천 본인뿐만 인지도 모르겠다.
굳은 얼굴로 갈지혁을 바라보며 일악천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네놈은…….”
포기한 일악천과는 다르게 갈지혁은 아무런 것도 놓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일악천의 몸이 짜릿한 전율에 휩싸였다.
문득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이놈이라면 독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다듬는 손이 빨라졌다.
‘오냐, 좋다. 독왕? 하하!’
절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갈지혁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순간 판단이 내려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 이상하게 다리가 무겁다.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누워 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평소대로 독을 먹고 내공을 움직였고 그 후에…….
‘중독되었지.’
깨질 듯한 머리의 고통과 함께 기억도 돌아왔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것은 독에 중독되었던 탓이리라. 그렇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거의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참아내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다. 아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전부 일악천 덕분이리라.
갈지혁의 생각이 더 이어지기 전에 일악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어났느냐?”
“어떻게…… 된 겁니까?”
“독을 먹고 혼절했다.”
그 정도는 갈지혁도 알고 있다. 무슨 말을 하려던 그를 향해 일악천이 손을 내밀었다. 손은 갈지혁의 머리 위에 있는 수건을 가지고 사라졌다. 그제야 갈지혁은 자신의 머리 위에 일악천이 손수 적신 수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감이 죽은 모양이다.
갈지혁의 코끝이 찡해져 버렸다. 예전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난 탓이다. 그때 어머니와 일악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였던 갈지혁에게 이렇게 대해 준 것은 그의 어머니 이후에 거의 일악천이 처음이다.
“몸을 억지로 굴렸어. 그래서 몸이 상한 모양이다. 결국은 독기가 발작을 일으켰지.”
“그랬군요.”
왜 버티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는지 그제야 알았다. 왠지 요즘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상한 상념에나 젖어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거웠다. 왜 그럴까 했는데 독이 몸속 구석구석에 조금씩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