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7화
“앞으로 이런 일 하지 말라고 전해라.”
“전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무인이 사라졌다. 갈지혁이 문을 닫고 몸을 돌리자 진검백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런 미녀가 너에게 매달리는 거냐. 것도 넌 돈 한 푼 없는 비렁뱅이잖아.”
“매달리는 게 아니다. 다만…… 조금 일이 있을 뿐이지.”
진검백은 갈지혁의 손에 들린 종이를 낚아채고는 침상에 누워 내용을 살폈다. 그는 문우령에 대한 정보를 살피다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약선문의 정보력은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우습게 볼 건 아니겠어.”
다른 거야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에게 알아본다고 하지만 몰래 숨겨 놓은 첩실에 관한 거나 숨겨진 자식에 관한 것은 쉽사리 돌 정보가 아니다. 자체적으로 문우령에 대해 파고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그러한 것을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해낸 것이다.
“약선문의 정보력?”
“모르나? 약선문은 의술과 정보력으로 유명해. 전국 방방곳곳을 헤집고 다닌 탓인지 그들의 발이 상당히 넓지. 그들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 중 일부는 자진해서 정보를 가져다준다더군.”
약선문이 전국 곳곳에서 받는 정보는 각양각색이다. 이상하게 생긴 풀을 보았다는 둥, 어떠한 것을 먹었는데 바로 복통이 인다는 둥에서부터 각 마을의 사소한 일까지도 알려지기 일쑤다. 그랬기에 약선문은 앉은 자리에서 수많은 정보를 규합할 수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보다 큰 정보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저 여인이 약선문 문주의 손녀가 아니었다면 이런 정보를 끌어오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어쨌든 고마운 정보군. 적어도 상대에 대해 안다면 그만큼 부담감은 덜하니까.”
“쓸데없이…….”
“지금은 필요해. 너에게 없는 정보력을 저 여인은 가지고 있거든.”
진검백의 말에 일리는 있었지만 갈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게 싫다는 둥의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운하연이 원하는 것을 절대 해 줄 수 없기에 피하는 것뿐이다.
“후, 어쨌든 슬슬 나가볼까? 이왕 하려고 한 거 빨리 가지.”
“그러지.”
갈지혁은 사황을 품속에 집어넣고는 객잔을 걸어 나왔다.
마을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이것저것 물건을 사고파는 자들의 목소리가 연신 귓전을 흔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갈지혁에겐 전혀 필요 없는 인물들이었다. 갈지혁과 진검백은 문우령의 거처로 향했다.
문우령의 거처의 크기가 상당한 탓인지 다시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상대로 꽤나 큰 보수에 이미 그의 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마을에서 힘 꽤나 쓴다는 자들이 나섰고, 근방에서 나름대로 무공을 익혔다는 자들도 하나둘 보였다.
문우령의 거처 문이 열려 있었기에 그 둘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안에서 보는 이곳은 신풍 제일의 거부라는 말을 무색치 않게 했다.
갈지혁과 진검백은 얼핏 이곳에 온 자들의 수를 셌다. 백여 명 정도? 벌써 며칠이나 이렇게 인원을 뽑는 모양인데 이만큼 왔다는 건 그만큼 보수가 짭짤하다는 증거다.
주변을 둘러보던 진검백이 숨을 내쉬었다.
“휘유! 저 친구 살벌한데?”
갈지혁은 진검백이 가리키는 사람을 바라봤다.
얼굴에 검상이 있고, 덩치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근방에서는 이름 꽤나 있는 자인지 섣불리 그 사내의 주변에 다가서는 자도 없다. 갈지혁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에 이질적인 느낌이 와 닿았다.
갈지혁의 얼굴에도 검상이 있다. 저 사내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갈지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 예로 저 사내는 자신의 검상을 오히려 돋보이려는 듯 얼굴을 우쭐거리고 있었다. 반면 갈지혁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애송이군.”
갈지혁이 씹어뱉듯 한마디 했다. 진검백이 피식 웃었다. 이런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 중에서 제대로 된 무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끽해야 파락호나, 삼류에 불과한 무인들이 대부분일 게다.
그런 곳에서 갈지혁의 눈에 찰 만한 자가 있을 턱이 없다.
“제길! 언제 시작하는 거야!”
얼굴이 험악한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자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에 있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단정하고 눈에는 총기가 있다. 무(武)가 아닌 문(文)에 인생을 건 자다. 나이는 대충 봐서 추측컨대 사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어서들 오시게. 내가 이곳의 총관을 맡고 있는 문진학(雯眞學)이라 하네.”
갈지혁과 진검백은 사내의 성씨가 문우령과 같다는 것을 듣고 단박에 그와 가까운 혈연지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상대로 옆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그가 바로 문우령의 동생이라는 듯했다.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수다! 어서 시험인지 나발인지 시작하자고!”
“하핫! 자네가 호랑이도 울고 간다는 장백(將佰)인가?”
“흐흐! 세간에서는 그리들 말하더이다. 어쨌든 한번 그 시험이 뭔지 들어봅시다.”
문진학은 장백이라는 덩치 큰 사내에게서 눈을 때고 천천히 사람들을 훑어봤다. 쓸 만한 재목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근방에서 힘 꽤나 쓴다는 자들의 대부분은 문우령의 거처를 찾았다. 이만한 돈을 벌기 위해선 일 년이 넘게 고생해도 힘들다는 걸 잘 아는 탓이다. 그런데 그만한 돈을 단기간에 벌 수 있다니 눈이 홱 하니 돌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인물들을 살피던 문진학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가 비록 무인이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학식을 쌓았다. 파고들은 것이 문이든 무든 결국은 하나다. 그가 보기에 이곳에 모인 자들의 대부분은 그저 동네의 파락호들에 불과하다. 무인들도 몇 보이긴 하나 그들의 실력도 제대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살피던 문진학의 눈에 진검백이 잡혔다.
유들거리며 웃는 모습이 단연 무리 속에서도 눈에 띈다. 더군다나 수려한 외모에 깔끔한 모습은 무인이라기보다는 문인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예기를 보면 분명 무인이다.
‘호오! 쓸 만한 자가 왔군!’
잘은 모르겠지만 문진학의 눈은 틀리지 않았을 게다. 그의 시선이 저절로 진검백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갈지혁에게로 향했다. 이번에는 문진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지? 알 수가 없군.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문진학은 알아주는 문인이다. 그는 과거에도 응시해 어렵지 않게 합격했지만 이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문진학은 학문을 파고들었다. 그 때문에 이 근방에서 문진학과 겨룰 만한 문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이거늘 갈지혁을 보면서 아무런 것도 파악해 내지 못했다.
‘결과는 보면 알 일.’
문진학은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연 눈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갈지혁을 바라보며 문진학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네. 첫 번째는…… 흡!”
말을 하던 문진학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계속해서 바라보자 갈지혁도 고개를 들어 문진학을 응시한 탓이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모습에 문진학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야 말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상대의 기도에 압도되어 버린 듯하다.
“흠흠. 첫 번째는 기본적인 체력을 보려고 하네.”
문진학은 고개를 돌려 하인을 바라봤다. 슬쩍 고갯짓을 하자 하인이 창고로 달려갔고 이내 꽤 많은 장정들이 수레에 무엇인가를 싣고 나타났다.
“저것은 기장이네. 포대(包袋)에 담은 만큼 들어 보게.”
장정 셋이 기장이 담긴 포대를 하나씩 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시험거리가 나오자 일부는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고 대부분의 얼굴이 핏기가 가셨다. 보통 크기의 포대가 아니다. 저 정도라면 힘이 좋다고 자랑하는 장정의 대부분이 나가떨어질 정도다.
문진학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많은 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시험이니 섭섭케 생각지들 말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그럼 시작하지. 통과한 자들은 저 문으로 들어오게.”
그 말에 문우령의 거처에 모인 자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포대를 바라보았다. 그때 장백이라는 사내가 그 포대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으라차찻!”
거대한 고함과 함께 포대를 들어 올렸던 그는 여유 있게 땅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를 시작으로 한 둘씩 포대를 들기 시작했다. 문진학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진검백과 갈지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상대로 둘은 어렵지 않게 포대를 들어 올렸다 내리고는 문진학이 말했던 문으로 들어갔다. 그 둘을 바라보며 문진학은 외쳤다.
“끝! 지금까지 들지 못한 자들은 미안하지만 돌아가게!”
통과하지 못한 자들이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부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터트렸지만 문진학의 귀에 그런 것이 들어올 리가 없다.
‘뭐 하는 자들이지?’
적어도 그 둘은 이런 곳에 나타날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진검백은 귀찮다는 듯이 갈지혁을 노려봤다. 그가 투정을 부리듯이 말했다.
“아, 왜 나도 이런 일을 해야 하냐고.”
“그럼 뭐 다른 거라도 하려고 했나? 어차피 머물 곳도 없는데 같이 하는 게 낫지.”
“흠. 그래도 적성에 안 맞아서…….”
신풍에 온 김에 노름이나 해 보려던 계획이 갈지혁으로 인해 완전히 무산되어 버렸다. 이곳까지 함께 온 후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빠지려고 했는데 그만 갈지혁에게 덜미가 잡혀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 진검백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상태였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지만 딱히 할 말도 없다. 그는 툴툴거리면서도 계속 갈지혁의 옆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는 도박을 포기하는 대신 주변의 있는 자들을 살폈다. 처음엔 그토록 많았거늘 지금은 그 반의반도 되지 못한다. 스무 명 정도에 불과한 인원이 지금 이곳에서 다음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장을 들어 올리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이 모두 돌아간 탓인지 이제 이곳에 남은 자들은 그나마 일정 수준 이상의 자들이다.
갈지혁과 진검백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지만 장백이란 사내는 아니었다. 그는 이곳이 마치 자신의 집인 냥 크게 소리치고 웃었다.
“이 쥐새끼! 아직도 이 근방에서 살고 있었던 모양이지?”
“아직도 쥐새끼입니까? 저도 이제 부하가 있고 나름대로 이름도 있는데 그에 맞는…….”
“그래서? 네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감히 나에게 대우를 해달라고?”
장백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는 그와 반대로 체구가 왜소했다. 하지만 독기 어린 눈빛과 단련된 손을 보니 무인인 듯하다.
장백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는 한때 그의 아래에 있던 좌청이라는 자였다. 그는 장백이 쥐새끼라고 부르자 기분이 나빠 한 소리했다가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흐흐. 오냐, 대우? 좋지.”
장백이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좌청은 뒤로 물러서며 침을 꿀꺽 삼켰다. 비록 지금 좌청은 다른 무리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기는 하지만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장백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아직도 장백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다.
그런 그가 지금 손을 봐주겠다는 듯이 다가오고 있으니 좌청으로서는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때 진검백이 중얼거렸다.
“꼴사납군.”
“뭣! 어떤 놈이야?”
주먹을 두둑거리며 좌청에게 다가가던 장백이 고개를 돌리며 호통을 쳤다. 비록 작게 말했다 하지만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검백 또한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지만 진검백은 일부러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얼래?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