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8화
“네놈이냐? 감히 이 어르신의 행동을 비웃은 놈이?”
장백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검백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갈지혁에게 말했다.
“걸렸나 보네. 어떻게 하지?”
“네 일이니 알아서 해.”
갈지혁이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진검백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와 달라고, 친구. 혼자 상대하기엔…… 근수가 너무 많아.”
진검백의 말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근수라는 말은 장백의 커다란 몸을 비꼬는 말이었다. 비록 장백이 머리가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 정도도 못 알아먹을 리는 없었다. 그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네, 네놈이 돌아도 아주 단단히 돌았구나. 내가 누군지 아느냐? 장백이야, 장백!”
“난 진검백이야.”
“네놈의 이름을 물은 게 아냐!”
진검백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주변에 있는 자들은 연신 웃음만 흘렸다. 그의 재치 있는 태도도 그렇지만, 변하는 장백의 표정도 우스웠던 모양이다. 마침내 장백이 진검백을 향해 다가왔다.
“그래. 네놈이 이 근방에 살지 않아 나를 모르는 모양인데…… 혼쭐을 내주지.”
진검백은 갈지혁을 슬쩍 쳐다봤다. 갈지혁이 슬쩍 웃었다. 장백이라는 사내가 만약 진검백이 화산파의 매화검수라는 사실을 알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다가오는 장백을 바라보며 진검백이 말했다.
“이봐, 내가 저런 놈 때문에 굳이 몸을 움직여야겠어?”
“귀찮게 하긴.”
말을 하면서 갈지혁이 소매를 휘휘 저었다. 그러자 자신 있게 다가오던 장백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우욱! 제길! 기, 기다려라. 곧 돌아올 테니.”
장백이 일그러진 얼굴로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진검백은 갈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복통을 일으키게끔 했지. 아마 지금쯤 피똥을 싸대고 있을걸.”
“큭큭, 너도 어떻게 보면 짓궂은 녀석이라니까.”
갈지혁이 쓴 독은 사람의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은 독이다. 만약 진검백 정도 되는 무인이었다면 결코 당하지 않았을 하급 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장백은 뒤꽁무니가 빠질세라 변소로 달려간 것이다.
그로부터 일각 정도가 지난 후에 장백은 다소 창백해진 얼굴로 들어왔다. 아까의 패기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상당히 지친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니 진검백은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백의 뒤를 따라 문진학이 따라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흠흠, 다소 사정이 있어 늦게 들어왔네. 괜찮은가?”
문진학이 장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자들이 다시금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백은 진검백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진검백이 장백 정도의 자가 노려본다 해서 겁을 먹거나 할 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가볍게 어깨만 으쓱하며 장백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장백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괜찮소. 그러니 어서 다음 이야기나 해 봅시다.”
“괜찮다면 시작하겠네. 나를 따라오게.”
문진학이 먼저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를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따라 걸었다. 진검백은 걸으면서 연신 자신을 노려보는 장백의 시선을 느꼈다. 그가 앞에서 걷는 갈지혁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저 녀석 화가 났나 본데.”
장백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알아보기 쉬웠다. 거의 씩씩거리다시피 숨을 몰아쉬면서 진검백을 죽일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갈지혁이 독을 써서 자신이 그런 복통을 일으켰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밖으로 걸어 나오자 이번에는 커다란 장소가 나타났다. 문진학이 멈춰 섰다.
“이번엔 얼마나 빠른지 좀 보려고 하네.”
빠르다는 건 두 가지가 있다.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것과 움직이면서 빠르게 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
“보면 알겠지만 중간중간에 장애물이 있네. 최대한 빠르게 접근해 피해 보게. 이번엔 내가 무공을 익히지 않아 그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없어 다른 분을 불렀네.”
문진학은 옆에 서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말했다.
“수고들 하게.”
모두가 일렬로 서서 하나씩 넓은 장소를 달리기 시작했다. 진검백의 뒤에 바짝 붙은 장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떨어져도 기다려라. 네놈 목을 꺾고야 말 테니.”
그 말에 진검백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장백은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으깨려다가 숨을 몰아쉬며 참았다. 이렇게 조용히 끝내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모두의 눈이 있는 곳에서 완전히 개박살을 내줘야 방금까지 당했던 수모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순서가 돌다가 갈지혁의 차례가 왔다.
갈지혁이 가볍게 다리를 굴렸다. 그의 몸이 새처럼 쏘아졌다. 무인들을 보고 있던 노인의 눈에도 이채가 띠어졌다.
갈지혁의 몸이 장애물의 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듯싶더니 이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곧 출발했던 곳에 도착했다. 노인은 꾹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말했다.
“……훌륭하군.”
갈지혁은 노인을 힐끔 바라보고는 이내 자리에 돌아갔다. 지금 갈지혁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노인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던 모양이다. 모두가 노인처럼 갈지혁의 실력을 감탄하고 있었지만 진검백만은 피식 웃었다. 갈지혁이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진검백 또한 가볍게 발을 놀렸다. 화산의 무인이라는 티가 나지 않도록 절묘하게 움직였고 마침내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진검백이 화산파의 무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은 화려하고 웅장한 진검백의 발놀림에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다.
진검백이 들어오자 장백이 스쳐 지나가면서 말했다.
“꼴에 실력은 좀 있나 보군. 하지만 그깟 발놀림이 아무리 빨라 봤자 내 주먹에 걸리면 우습지.”
장백은 말을 마치고 고함을 내질렀다.
“흐합!”
고함과 함께 그의 몸이 튀어 나갔다. 커다란 덩치였지만 그래도 싸움으로 다져진 탓인지 그의 몸은 꽤나 날렵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무공에 경공도 껴 있었는지 그는 장애물을 어렵지 않게 피하면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봤자 갈지혁과 진검백의 눈에는 우스울 뿐이었다. 저 정도라면 무림에서는 삼류의 위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계속해서 무인들이 하나씩 달리기 시작했지만 갈지혁과 진검백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의 실력이 둘의 눈을 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소 날렵해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경공을 펼치자 둘은 시선을 돌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움직임도 빠르지만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은밀하다.
진검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 만한 놈도 있는데?”
“나름대로.”
나이는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다리를 멈추고 노인과 문진학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내가 끝난 후로는 또한 아무도 눈에 띄는 자가 없었다. 모두 한 번씩 차례가 돈 후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짚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갈지혁, 진검백은 물론이거니와 장백과 이름 모를 사내도 있었다.
“이 여섯을 제하고는 모두 가게.”
“아,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요! 겨우 이걸로 가라 말라니! 난 이 일에 대해 듣고 삼 일을 달렸소!”
“누군! 나 또한 다른 일 젖혀두고 이곳에 온 것인데 이렇게 한다면…….”
나름대로 한가락하는 자들이라고 모였는데 이 같이 냉혹한 대답에 그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노인이 재차 무서운 안광을 터트리며 재차 말했다.
“실력이 없어 떨어진 것은 자신들의 책임! 어디서 함부로 그 혀를 놀리느냐!”
살기 어린 노인의 모습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자라고 하지만 노인은 무림에서 온 인물이었다. 문우령에게 많은 돈을 받고 이곳에 있는 인물로 나름대로 무공으로 무림에도 알려진 자다.
시정잡배 따위가 어떻게 해 볼 상대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만 했고 통과한 여섯만이 이곳에 남게 됐다.
문진학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축하하네. 자네들은 통과했네. 하지만 알아야 하네. 보수가 큰 만큼 위험 부담도 큰일이야. 죽을지도 모르니 무섭다면 포기하게. 이야기를 듣기 전 이라면 가능하니까 눈치 볼 필요는 없네.”
문진학은 말을 하고 여섯을 차례차례 훑었다. 아무도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포기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진학이 말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는가?”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한 일 아니겠소? 우리가 할 일이나 말해 주시오.”
“알겠지만 자네들 말고도 미리 뽑은 무인들도 몇 있네. 자네들까지 하면 열다섯 정도 되겠군. 그 외에도 무인 몇 명도 동원되었지.”
그만한 인원이 동원되었다는 소리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마을에서 무인까지 동원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중요한 물건이 있네. 며칠 후에 이것을 가지러 올 때까지 그 물건을 지키는 게 일이네.”
“뭐야? 겨우 그게 다야?”
장백이 말하자 문진학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그게 다네. 하지만……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문이 새어 버렸네. 그리고 이 물건을 노리는 도둑이 있어서 말이야.”
딱히 누구라고 언급은 하지 않지만 갈지혁은 그 도둑 때문에 지금 이 같이 많은 무인을 고용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진학이 계속해서 말했다.
“방은 많으니 내가 정해 준 곳에서 지내면 되네. 먹을 거나 잠자리는 괜찮을 걸세. 하지만 밤에는 잘 시간이 없을 거야.”
“좋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구먼. 그럼 물건을 훔치려는 도둑놈들이나 때려잡으면 그만 이라는 소리 아니요?”
“그렇지. 어쨌든 자네들을 고용한 만큼 그만한 일을 해 주게. 잘한다면 내 원래 주기로 한 돈의 갑절도 줄 수 있네.”
장백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구미가 당기는군. 도둑놈들을 모두 때려잡아 주지.”
“좋아. 따라오게.”
문진학이 걷자 모두가 그 뒤를 다시금 쫓았다. 진검백이 갈지혁을 쿡쿡 쑤시며 말했다.
“도둑놈이 나타나도 잠이나 퍼 잘 것 같은 곰이 말도 많군.”
그 말에 장백의 얼굴이 다시 꿈틀했다. 진검백은 재미가 있는지 계속해서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장백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조금 있다 보자. 네놈…… 오늘이 제삿날인 줄 알아라.”
진검백이 피식 웃으면서 그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했다.
* * *
문진학이 안내한 곳은 문우령의 거처에서 외곽에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을 묵게 할 방이 없어서임이 아님을 잘 알기에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 거처는 불만이 쏙 들어가게 할 정도로 빼어났다.
“방은 여러 개 있으니 쓰고 싶은 대로 써도 좋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네. 이 집 안에서 행패를 부려서는 절대 안 되네. 그건 어르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게 되니까. 하인들과 싸워서도 안 되고 시비들에게 추파를 던져도 안 되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곳을 맡고 있는 하인에게 말하면 언제든지 지급해 줄 거네.”
문진학은 말하며 여섯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이 갈지혁에게 잠시 고정됐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수고하게. 오늘부터 일을 시작해 줘야 할 걸세. 이따 저녁때 사람을 보내지. 그 이전까지는 푹 쉬고 있게.”
말을 마친 문진학이 나서자 모두가 방을 잡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장백이 고함을 내질렀다.
“거기 서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