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14화
당려환(唐勵奐), 현 사천당문의 가주로 현재 나이는 사십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무림에서 크게 활동을 하지 않아 딱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암기술과 용독술이 가히 일절이라고 알려진 자다. 성품은 인자하지만 무엇인가 어긋나면 불과 같이 화를 낸다.
어린 나이에 가주라는 높은 위치에 올라 처음엔 많은 걱정이 일었지만 그는 대단한 자였다. 시끄러워질 만한 사천당문을 단숨에 정리하면서 아무런 소란도 없이 가주라는 위치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인물이다.
당려환은 가주가 되어서도 무공 훈련과 독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당문이 죽은 듯이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높은 곳을 향해 치고 올라갈 날이 있을 거라고.
물론 그러한 날을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당려환은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독…….
사람들은 무시한다. 그리고 멸시한다. 독에 당해 죽으면 그 상대를 찾아서 삼족을 멸한다. 검으로 싸워서 진다면 정당한 비무요, 독을 쓰면 비겁한 악행(惡行)이다.
우습지 않은가?
도대체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당려환은 어릴 때부터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겉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 무림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무림 공적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하는 건 자살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자살 행위라고 생각했던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가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 무림에 괴이한 행동을 하는 자야 부지기수다. 그런 자들 하나하나에 모두 신경을 쓸 정도로 당려환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다.
헌데, 그렇게 잊고 지냈던 존재에 대한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단신으로 구양세가를 무너트렸다.
“독왕대로행…….”
독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당려환이 모를 리가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바 또한 같은 독의 길을 걷는 입장에서 당연히 알고 있다.
당려환은 찻잔에 입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어리석어. 너무 드러나면 오히려 당해. 재능은 있는 것 같은데 아쉽군.”
“가주, 소림에서 물어오고 있소이다. 그가 우리가 키운 자가 아니냐고.”
“소림이?”
다른 곳도 그렇지만 특히 소림은 독에 대해 엄격하게 감시를 한다. 검은 사람을 가리지만 독은 아니다. 잘못하면 무차별적인 살인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소림은 사천당문을 언제나 주시하곤 한다.
“우습군. 어차피 필요하면 바로 나서서 죽일 거면서 우리의 제자냐 아니냐를 묻는 저의는 뭔지.”
“꼬투리를 잡고 싶은 것 아니겠소이까.”
당려환의 앞에 있는 노인은 무려 오십 년 이상을 당문을 위해 살아 온 자다.
당문에는 사노(四老)라는 것이 있다. 네 명의 노인이라는 뜻으로 그들은 당문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다. 지금 당려환의 앞에 있는 노인이 그중 이노(二老)라고 불리는 자였다.
“소림에서 왜 아직도 무림을 설치고 다니는 놈을 죽이지 않는 건지 모르겠군. 자네는 아는가?”
“조금 알아봤소만 아마도 그놈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일 듯하오.”
“사람을 죽이지 않아? 독을 쓰면서?”
“놀랍지만 그렇소이다. 놈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비무행을 펼치고 있어 오히려 무림에서 그의 행보를 주의 깊게 보는 자도 있소. 사람을 죽이지 않으니…… 소림 또한 벨 수가 없지.”
갈지혁을 독에 대해 제대로 배웠지만 머리가 모자라는 놈일 거라고 생각했던 당려환은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그 정도라면 여간 영특한 놈이 아닐 수 없다.
독을 쓰면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건 압도적인 실력 차가 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도 되지만 머리가 있기에 그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만약 갈지혁이 쉽게 독을 쓰면서 사람들을 죽였다면 지금쯤 그는 무림공적으로 몰려 수많은 검을 받아야만 했을 게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무림이라는 이름 앞에서 눈 밖에 나게 된다면 그자는 이미 죽었다고 봐야 한다.
“소림도 답답하겠군. 정체도 알지 못하는 독인의 등장. 그런데 또 처리할 명분도 없으니.”
“하지만 날뛰는 것도 잠시요. 계속해서 그 갈지혁인가 하는 놈이 날뛴다면 소림은 어떻게 해서든 명분을 만들 거요. 누구 하나를 죽이기라도 해서.”
“큭큭, 땡중 놈들.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것 정도는 밟을 수 있는 놈들이지. 그런 놈들이 소림이라는 이름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당려환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의 입가에는 경멸의 미소가 달렸다. 소림이라는 이름은 무림의 거석(巨石)과도 같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아는 당려환에게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진짜 고귀한 성품을 지닌 중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소림에서 그런 자 보다는 오히려 허울에 매달리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냥 둔다면 필히 죽을 거요.”
“그래서?”
“가주의 뜻대로요. 놈을 살릴 수 있는 것도 가주뿐일 거요. 너무 날뛰는 것은 좋지 않소. 적어도 그만한 인물을 키워낼 만한 자가 누군지 아는 것만 해도 성과라고 생각하외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만한 자라면…… 죽게 놔두기 너무 아까우니까.”
“이노의 뜻은 그렇군.”
갈지혁이라는 존재는 쉽사리 건드릴 수가 없다. 강해서가 아니다. 만약 사천당문이 갈지혁을 살리기 위해 손을 쓴다면 무림에 있는 다른 문파들과 적지 않은 마찰이 일 게다. 그만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갈지혁을 구해야 하는가.
적어도 지금의 그들이 판단하는 안에서는 갈지혁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걷는 것으로 보였다.
“아직은…… 두고 보는 게 낫겠지. 섣불리 움직여서 우리를 어떻게든 약하게 하려는 소림과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
“가주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리하겠소. 하지만 결정은 빨라야 하오. 시간을 끌었다가는 가주 또한 여태까지와 마찬가지의 길을 걸어야 할 테니까.”
“이노는 걱정이 너무 많아. 내가 못 한다면 내 자식이 하게 하지. 아니면 자식의 자식이라도 하게 할 게야.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걸. 몇백 년간 쌓여 있는 우리 당문의 힘을 말이야.”
이노는 슬쩍 미소 지었다.
젊은 나이. 단순한 패기만 넘치는 자는 아니다. 경험, 그리고 신중한 성격.
모든 것이 받쳐주는 자다. 그의 말대로 이번 세대에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문이 다른 오대세가와 전혀 밀리지 않는 위치에 선다는 것이. 하지만…… 평생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려환의 말대로 자식이, 또 그 자식의 자식이 뒤를 잇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리될 게다.
“갈지혁이라……. 재미있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서 키운 놈일까.”
당려환은 중얼거렸다.
흥미가 인다. 갈지혁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지금 무림에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다. 그 이름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소란이 인다. 다소 멍청한 짓 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왠지 모르게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려환 또한 독인이기 때문이리라.
독의 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갈지혁의 모습은 흥분을 일게 만들었다.
진검백은 동굴 밖에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 하늘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제길…….”
입이 열리며 바로 나오는 것이 욕설인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지금 갈지혁 때문에 골머리를 싸고 있는 형편이다. 문우령에게 보수를 받은 후 사들인 수많은 약재와 독초들이 끓으면서 나는 지독한 악취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동굴 밖으로 나와 잠도 자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악취 때문이다.
이런 늦은 밤에 쫓겨나듯 동굴 밖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 한심할 수가 없다.
“잠 좀 자자!”
진검백이 외쳤지만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만드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렇게 지독한 악취를 만들어 낼 정도의 것이라면 무엇일지…….
물론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감이 온다. 갈지혁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독인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악취가 동굴을 가득 채운 상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
진검백은 발로 괜히 땅을 쑤셨다. 그다지 날씨가 춥지 않아 잠이나 좀 자볼까 눈을 감으려던 진검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에서 갈지혁이 걸어 나온 탓이다. 며칠 동안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그가 이 늦은 밤에 모습을 드러냈다. 갈지혁이 나오자 진검백은 그의 옆에 다가갔다.
갈지혁은 말없이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딜 가?”
“좀 씻으러.”
옆에서 바짝 붙어 있던 진검백이 묻자 갈지혁이 가볍게 답했다. 갈지혁도 며칠 동안 동굴에 처박혀 있어 더러워진 몸을 씻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가에 이르자 갈지혁은 멈춰 서서 소매를 걷었다. 진검백이 옆에서 물었다.
“도대체 뭘 그리 오랫동안 만들던 거야.”
“이제 끝났으니 안에서 자도 돼. 내일부터 날 따라다니려면 상당히 피곤할 테니까.”
“왜? 무슨 일인데?”
“좀 씻고 말해 주지.”
갈지혁은 앞에 내려져 있는 머리를 슬쩍 쓸어 올리고는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씻고 말해 준다는 말에 갈지혁을 응시하던 진검백은 드러난 얼굴에 완전히 놀라 버렸다.
슬쩍 드러난 얼굴을 봤지만 확연하게 드러난 것을 본 건 지금이 처음이다.
얼굴 가운데를 가르는 긴 검상이 인상 깊다. 징그러워야 정상이어야 할 상처가 오히려 얼굴에 묘하게 잘 어울린다.
더군다나 왠지 모르게 그 상처가 갈지혁이라는 사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진검백에게 갈지혁은 가볍게 한 마디 했다.
“내일 이곳을 떠날 거다.”
“아아, 그래. 응? 뭐라고?”
갈지혁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진검백은 가볍게 대꾸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며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섬서를 떠날 생각이다.”
“섬서성을? 그럼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사천으로 가야지.”
“사천에?”
진검백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섬서에서는 화산의 감시를 받는 것으로 그쳤지만 사천으로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또 사천의 세력들이 갈지혁을 경계할 것이다.
“갑작스럽군.”
“더 이상 섬서에서 볼일은 없어. 화산파와 소림과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적이 없다는 소리로군.”
“그래.”
갈지혁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갈지혁이기는 했지만 진검백은 왠지 모르게 그를 말리고 싶었다. 지금만 해도 너무 드러난 갈지혁이다. 더 이상 튀어 오르면 반드시 죽이려고 들 게다.
“사천에 가도 지금 같은 일을 벌이겠지?”
“물론.”
“화산은 널 벨 생각이 없었어. 그랬기에 대충 나를 붙이면서 널 풀어줬지. 하지만 사천에 가면 이야기는 달라.”
갈지혁 또한 진검백이 말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섬서에 있어서는 안 된다.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천을 넘어서야 한다.
진검백은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사내다. 갈지혁의 옆에 있는 것도 장문인의 명도 있지만 그가 마음에 들어서다.
그의 옆에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갈지혁의 옆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죽을 게 뻔한 길을 걷는 것을 보고만 있을 맘은 없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무림을 적으로는 그 누구라 해도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