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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46화 (46/200)

# 46

21화

괜히 그들까지 잃을 수는 없다. 지금 이곳에서 갈지혁을 죽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수로왕의 딸인 진려희를 잡아들이려는 계획은 실패다.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 괜히 수하들을 싸움에 끼게 하면 오히려 피해만 커져. 저놈 하나 때문에…… 장강수로채가 몇 년을 퇴보했어.’

죽었다는 가정 아래 이만한 인원을 다시 모으고, 지금의 수준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겨우 한 놈 때문에…….

구백룡의 안으로 굽어진 조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내공을 주입한 탓이다.

달빛을 머금은 듯 빛나는 조에서 하얀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갈지혁은 질세라 손을 휘둘렀다.

퍼펑!

두 개의 힘이 가운데에서 격돌하면서 배의 일부를 깨트렸다. 나무 조각이 시야를 잠시 가리는 그 찰나를 구백룡은 놓치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갈지혁의 코앞까지 다가선 구백룡의 조가 갈지혁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찰나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공격이었지만 갈지혁은 어렵지 않게 피했다. 그리고 애초에 공격을 가한 구백룡 또한 그 한 번으로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가지지 않았다.

이어지는 공격. 오른손은 상체를, 왼손은 하체를 노렸다.

몸이 저절로 굽혀지면서 휘둘러지는 두 개의 손을 갈지혁은 다시금 뒤로 물러서면서 피해 냈다. 동시에 그는 수투가 씌어져 있는 손을 휘둘렀다.

“독은 통하지 않…….”

쾅!

고함을 지르던 구백룡의 앞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

미처 생각도 못 하고 있던 구백룡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뱃전에 처박혔다.

구백룡은 쓰러진 채로 재빨리 조를 들어 올려 갈지혁의 이어지는 공격에 대비했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구백룡을 응시하기만 했다.

구백룡은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가슴 부분의 옷이 터져 나갔고, 살 부분이 거멓게 변했다. 설마 이러한 방법까지 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것도…… 독?”

“내 손을 떠나 얼마 후 폭발하지.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독분(毒粉)을 날리고.”

“큭, 별의별 게 다 있군그래.”

말을 마치면서 구백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에서 연신 찌릿찌릿한 고통이 치고 올라온다. 다행히 독에는 중독되지 않은 듯하다. 문제는 방심하고 있었던 탓에 전혀 방비를 하지 못했다. 망치로 세게 맞은 듯하다.

구백룡은 조심히 가슴을 자신의 손으로 쓸었다.

당장에 입으로 피가 쏟아질 것 같지만 애써 참고 있다. 갈지혁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갈지혁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구백룡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되 겁먹은 표정을 보여서는 안 된다. 최대한 시간을 번다. 지금 당한 부상은 가볍진 않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게다. 어떻게든 시간만 벌면…….

독인의 앞에서 오히려 거리를 벌리자 갈지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구백룡의 생각을 대충 알아 버린 탓이다.

그는 지금 갈지혁의 독을 얕보고 있다. 갈지혁의 장법이나 지법을 오히려 더 유의 깊게 보고 있다.

애초에 구백룡은 갈지혁이 백골환이라는 독을 뿌린 후부터 자신은 독에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갈지혁의 독이 수하들에게는 통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그랬기에 지금 구백룡은 독은 그다지 위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갈지혁을 잘 모르는 탓이다. 그가 터트린 백골환은 분명 구백룡 정도의 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많은 수의 장강수로채의 인물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그 독을 썼던 것이다.

백골환(白骨幻).

사람의 뼈로 만든 독이다. 백골환에 중독되면 환상을 보게 된다. 마치 그것은 아편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과도 같다. 지금 저들은 죽었다고 봐도 된다. 해독제가 없는 이상 죽을 때까지 이들은 심한 중독 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갈지혁이 수투를 낀 것도 백골환을 비롯한 몇 가지 독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사용하던 독들은 가벼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백골환을 비롯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던 독들은 그 위력만큼이나 조심해야 할 게 많다.

검도 그렇지만 독은 더욱더 제어가 필요하다. 검은 휘두르다 멈출 수 있지만 독을 그게 불가능하다. 한 번의 실수로 오히려 같은 편 모두를 죽일 수도 있는 게 독이다. 수투는 독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해 갈지혁이 낀 것이다.

특수 제작된 것으로 최고의 상태에서 싸울 때만 낀다.

여태까지 사용한 적이 없었던 것은 그만한 상대가 없었던 탓이다.

비록 지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구백룡은 강자다. 단신으로 장강을 단숨에 휘어잡은 괴물 같은 사내라는 소리다.

독을 우습게 보는 구백룡의 모습에 갈지혁은 수라독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변에 생겨난 녹색 기류가 서서히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던 구백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간을 끌려고 했는데 그게 여의치 않을 듯해서다. 더군다나 이 알 수 없는 기운은…….

구백룡은 조에 내공을 집중했다. 그러면서 한 손은 뒤로 슬쩍 잡아당겼다.

슉!

그의 뒤로 당겨진 손이 하늘로 솟구쳤다. 동시에 커다란 그물 하나가 갈지혁을 노리고 떨어졌다. 동시에 뒤로 빠졌던 손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 걸려 있던 조가 튀어 나왔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껴져 있던 조인지라, 그것은 다섯 개로 나누어지면서 갈지혁이 움직일 모든 방위를 미리 잡아 버렸다.

하늘 위로 날아오른 그물은 위험한 물건이다. 그물 끝에 마다 갈고리가 달려 있다. 물론 그 날카로운 고리에는 독이 묻어 있다. 그물에 걸리면 마치 물고기 마냥 바동거리다가 끌려 나오고 만다.

그물만이라면 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앞에서 날아드는 조가 문제다. 피할 만한 곳에는 조가 날아온다.

생각할 시간은 없다. 이미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순간 그물이 뒤덮는다. 갈지혁은 그대로 서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선 채로 갈지혁은 구백룡을 응시했다.

원래 같았다면 이겼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상대가 갈지혁인 탓이다.

‘실패? 그럴 리가…….’

설마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던 그물이 갈지혁과 일정 거리에 이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그물의 줄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움직이지 않으니 구백룡이 내던진 조 또한 애꿎은 땅만 때렸다.

구백룡은 손을 잡아당겨 날렸던 조를 급히 회수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준비한 일격이었거늘 너무 우습게 막혀 버렸다.

“컥!”

옆에서 계속해서 비명이 들렸지만 구백룡은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들려온 짧은 비명에 구백룡은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했거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싸움이 일방적으로 흐르자 망설이던 점창파도 끼어들었고, 승부는 급속도로 기울고 만 것이다.

쿠웅!

우석청의 철퇴가 땅에 떨어졌다. 그의 몸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그리고 그 자리에는 진검백이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구백룡에게로 향했다. 더불어 아직 쓰러지지 않은 아미파와 점창파의 무인들도 구백룡을 둥그렇게 에워쌌다.

구백룡은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 위험한 상황이다. 그리고 일이 실패했음을 구백룡 또한 직감적으로 느낀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이거야 원 예상도 못 했소.”

구백룡은 수로왕의 딸인 진려희를 바라보며 미소를 흘렸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구백룡을 쏘아봤다. 당돌한 여인이다.

구백룡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차군. 하지만…….”

구백룡은 갈지혁을 바라봤다. 애매한 표정이 눈에 가득하다. 분노와 즐겁다는 감정이 애매하게 섞였다.

“저자만 없었다면 지금 당신은 웃지 못 할 거요. 진려희, 운이 좋았소.”

“당신은 졌습니다, 구백룡.”

“하하! 졌다고? 지금 내 뒤에 있는 장강 무인의 수가 몇인 줄이나 알면서 그리 지껄이는 거요? 당신들 정도는 언제든 죽일 수 있어. 그러니 혜정 신니 당신이 나설 자리가 아냐. 내가 마음먹는 순간 죽일 수 있는 자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웃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마음속에선 분노가 치밀었던 게다.

갈지혁의 독이 문제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수하들을 희생시키면서 그의 목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장강을 이용하는 상선의 수가 줄면서 입은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러면서 이보다 더 많은 수하들이 죽게 된다면 그건 오히려 혹 때려다가 더 큰 혹을 붙이는 꼴밖에 안 된다.

차라리 다른 수를 강구하는 것이 낫다.

구백룡은 냉정한 자다. 아무리 화가 나도 몸보다는 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지금 싸워서 이쪽에서 이득 볼 것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물러서는 게 옳다.

“물러나야 할 것 같군.”

독백처럼 중얼거린 구백룡은 갈지혁을 바라봤다.

“막을 텐가?”

“아니.”

“그럴 줄 알았지.”

구백룡은 몸을 휙 하니 돌렸다. 이미 끝난 이상 미련 따위 가질 생각은 없다. 쓰러져 있는 수하들을 보며 구백룡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독에 대해 너무 방심한 탓에 이런 일이 벌어져 버렸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게다.

가까이 쓰러져 있는 수하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던 구백룡은 그들이 아직 숨을 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살아 있군. 살 방도가 있다는 건가?’

잘 모르겠다. 독에 대해 모르는 구백룡이 그것을 알 턱이 없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날 방법이 있다 해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는 단 하나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망설이기 마련인데 구백룡은 전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살 방도가 있나?”

“물론. 그냥 두면 죽지만 백골환은 당하자마자 죽는 독은 아니거든.”

“해독약은?”

“있지.”

“원하는 걸 말해. 해독약의 조건으로 들어주지.”

“해독약을 주면 뭔가 하나 주겠다 이거지?”

구백룡의 말을 듣고 있던 혜정 신니는 갈지혁이 해독약을 줄 것 같자 나섰다.

“저들은 사파의 무리입니다. 저들에게 해독약을 줘서는…….”

막 갈지혁에게 다가가려는 그녀의 앞을 진검백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는 뒤를 바라보며 혜정 신니에게 말했다.

“저 친구에게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혜정 신니께서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생각이라면 꺾지 않을 친구입니다.”

“하지만 사파의 무리들에게 해독약을 준다는 것은 아니 되는 말입니다. 저들은 분명 다시금 악행을 저지를 것 아닙니까.”

구백룡을 보고 있던 갈지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불도에 몸을 담고 있다는 분이 그리 말해도 되는 겁니까. 난 살인마가 아닙니다. 아무나 죽이지는 않습니다. 정파든 사파든 목숨의 값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물러선다는데 굳이 이 많은 사람을 다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갈지혁의 말에 혜정 신니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 대로다. 정파든 사파든 목숨이 귀한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더군다나 사파라 해도 저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독을 쓰는 자라기에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생각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오히려 불가에 귀의한 혜정 신니보다 어떠한 면에서는 더욱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 않는가.

‘독을 쓴다기에 생명의 귀함을 모를 줄 알았거늘……. 혜정아! 아직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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