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23화
무림에는 수많은 기인이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기인이사들 중에 유독 알려진 네 명의 기인이사가 있는데 그들을 통틀어 무림사괴(武林四怪)라고 불렀다.
그 넷은 모두 다른 부분에서 괴이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비록 괴이하다 하나 무림에 있는 대부분의 무인들이 무림사괴를 건드리지 못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만큼 한 방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탓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무공 수준이 이미 구파일방의 장문인의 수준이거나 그걸 웃도니 그 누가 함부로 대하겠는가.
무림사괴는 애매한 존재다.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듯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움직이면 엄청난 파장이 인다.
그들 개개인이 지닌 힘 때문이다. 돈, 무력, 권력. 모든 것을 모을 수 있다.
무림사괴, 무림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초라한 행색으로 먹을 걸 보며 눈을 빛내는 노인 하나가 있다.
옷은 넝마요, 꾀죄죄한 몸을 보아하니 비렁뱅이가 틀림없다. 그의 눈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왕만두였다. 그렇지만 그것을 살 돈조차 없는지 비렁뱅이 노인은 눈치만 봤다.
당연히 왕만두를 파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저런 부류의 인물들이 어떠한지 잘 아는 탓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당장에 달려들어 입안에 만두를 쑤셔 박을 게다. 그때는 아무리 패고 협박을 해도 입에 문 것을 뱉어 내지 않는다.
지독한 놈들이다.
‘에잇, 젠장. 저런 놈이 꼬이다니…….’
더군다나 저런 자가 있으면 그 날 장사는 왠지 모르게 더 안 된다.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만 솔직히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참다 참다 못한 만두 가게의 주인이 고함을 질렀다.
“망할 놈아! 썩 꺼지지 못해! 어디다가 눈독을 들여!”
고함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찔끔 하는 듯했지만 다리는 여전히 그곳에 붙어 있다. 주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옆에 있는 몽둥이를 들고 노인에게 다가왔다.
붕!
몽둥이가 노인의 어깨를 쳤다. 노인은 고함을 내지르며 땅으로 쓰러졌다.
“어이쿠!”
“가라면 갈 것이지 왜 그리 서성거리고 난리야!”
그는 몽둥이로 노인을 연신 때렸다. 급소를 피해 때리고는 있지만 젊은 장정의 몽둥이질에 노인은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땅에 쓰러진 채로 두드려 맞던 노인의 눈이 갑자기 고정됐다. 두려워하던 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만두집 주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마도 한동안은 꿈적도 하지 못할 게다. 노인이라 다소 찜찜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였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멀쩡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만두집 주인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방금 전까지는 죽을 듯이 구르던 노인이다.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면 결코 그런 것 같지 않다.
‘뭐, 뭐야? 내가 허깨비를 보고 있는 건가?’
눈을 비벼봤지만 앞에 펼쳐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비렁뱅이 노인의 모습이 천천히 사라졌다.
진검백과 갈지혁은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사천에 들어온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 딱히 정한 것이 없다. 갈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진검백으로서는 그저 따라다니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입장이다.
“어이, 저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진검백의 눈에 객잔이 들어왔다.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쩍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이 뒤쪽을 훑었다. 이미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벽 쪽에 몸을 기댄 채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내들, 그리고 무엇인가를 사고 있는 사내. 나름대로 몸을 감춘 듯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군.’
독황독립문의 무인들이다. 그들은 갈지혁을 여전히 감시하고 있다. 사천에 도착한 후에도 그들은 갈지혁의 뒤를 쫓았다.
단화초가 지대익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만약 단화초를 원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렇게 수하를 붙여두지 않았을 게다.
‘단화초가 없었다면 날 죽이려 들었겠지.’
뻔한 일이다. 사독문을 벗어난 죄인을 놔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우습다. 알면서도 가만히 둔다는 것은 갈지혁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다.
갈지혁은 진검백이 가리킨 객잔으로 걸었다. 어차피 건드릴 필요는 없다. 정 필요하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자들이니까.
객잔 안으로 들어선 둘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천에서도 갈지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름대로 퍼졌지만 그의 외향에 대해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갈지혁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진검백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산파의 매화검수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객잔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지혁의 독특한 외향에도 불구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 끼익 하면서 문이 열렸다.
갈지혁은 혹시나 하고 문을 바라봤지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행색이 초라한 노인이다.
‘들어올 리가 없지.’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같은 행동을 할 리가 없다. 객잔 주변을 지키면 그만인 것을 굳이 들어오면서까지 시선을 끌어서 무엇하겠는가.
막 들어선 노인에게 점소이가 다가가면서 소리쳤다.
“거지에게 적선해 줄 건 없소! 어서…….”
짤랑.
동전 소리와 함께 그의 품 안에서 한 묶음의 돈이 모습을 드러냈다. 점소이는 입을 떡 벌렸다. 초라한 행색과 어울리지 않는 돈이 노인에게서 나온 것이다.
“됐나.”
“돼, 됐습니다. 앉으시죠.”
점소이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말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와 갈지혁과 진검백이 앉은 바로 옆에 털썩 하고 몸을 기댔다.
별반 신경을 쓰지 않던 갈지혁과 진검백 모두 바로 옆자리에 앉은 노인을 한 번 바라봤다. 그 둘 또한 점소이에게 한 노인의 행동을 본 탓이다.
겉보기엔 돈 한 푼 없어 보이는 노인이다. 하지만 그의 품 안에서 나온 돈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금이다. 저런 행색의 노인이 가지고 다닐 돈은 결코 아니다.
관심이 가긴 했지만 이내 갈지혁과 진검백은 신경을 끊었다. 어차피 잠시 눈 정도 간 것이 그만이다.
노인은 신경을 쓸 만한 자가 아니다.
“뭘 할 생각이야.”
“좀 쉬어야지.”
“그게 아니라 사천에서 말이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을 거 아냐.”
“그래.”
둘의 대화에 노인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사천당문?”
“……독의 길을 걸으면서 빼놓을 수는 없지.”
갈지혁은 애매하게 대답했지만 진검백은 대충 그의 마음을 파악했다. 애초에 사천에 올 때부터 가장 유력했던 것이 사천당문이다. 다른 무엇인가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천당문이 갈지혁의 마음에 있다는 거다.
독이라는 말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은 확신했다.
‘역시. 저놈이 갈지혁이군.’
노인은 만두 가게 앞에서 신나게 얻어터지던 자다.
그런데 그의 품에는 엄청난 양의 돈이 있다. 그 조그만 만두 가게 정도는 통째로 사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은.
그런데 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서도 만두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살 수 있으면서도 굳이 얻어터지면서 땅을 뒹군다.
황금괴(黃金鬼) 이풍(李豊).
그의 별호는 황금귀다. 별호에 황금이 들어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이풍을 안다면 아무도 웃지 않는다.
무림사괴의 하나, 그리고 무림 최고의 거부.
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황금으로 바뀐다. 그만큼 이풍의 능력은 탁월했다.
어릴 때부터 무공과 상계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삼십 년이라는 시간만에 무림 최고의 거부로 성장했다.
더군다나 알 수 없는 그의 기행 탓에 사람들은 그를 무림사괴의 하나로 꼽았다.
황금귀 이풍이 바로 이곳 사천에, 그것도 갈지혁 옆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풍이 눈을 빛내며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의 입장에서 갈지혁은 괴이했다.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무림에서 괴이하다고 소문난 무림사괴의 하나인 황금귀가 갈지혁을 그렇게 보고 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갈지혁의 독왕대로행이라고 써진 깃발을 든 비무행이 황금귀에게는 너무나 괴이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놈이 화산의 제일의 골칫거리 진검백……. 재미있군.’
무림을 시끄럽게 하는 괴이한 놈과, 화산의 골칫거리가 함께 다니고 있다.
이야기를 대충 들어 보니 갈지혁은 사천당문에 도전장을 내밀 것 같다. 궁금증이 인다. 과연 그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중요한 건 사천당문은 세가이고 갈지혁은 개인이라는 거다. 그러한 차를 극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황금귀는 눈을 빛내며 갈지혁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눈동자가 살아 있다.
‘흐흐, 어려도 네 제자라 이건가 일악천!’
놀랍게도 황금귀는 일악천에 대해 안다. 그것도 갈지혁이 일악천의 제자라는 것까지도 말이다.
일악천에 대해 떠올리자 황금귀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피식 웃던 황금귀 이풍은 이내 웃음을 거뒀다.
‘오냐, 내가 평가해 주마. 네 말대로 그만한 놈이라면…… 내가 돕지. 하지만 그만한 인물이 아니면 바로 죽여 버릴 것이다. 날 원망은 않겠지 일악천.’
황금귀 이풍의 눈은 음식을 다 먹고 쉬러 올라가는 갈지혁의 등으로 향했다.
졸고 있는 사내의 머리가 벽에 닿을 듯하다. 크게 고개를 기우뚱거리는 것이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할 정도다.
사내가 있는 곳은 꽤나 꾀죄죄하고 복잡했다. 안에는 이런저런 물건들이 집어던진 듯 놓여 있다. 장사를 하는 곳인 듯한데 문제는 손님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라 언제나 이곳은 손님이 뜸하다는 거다.
당연하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물건을 찾을 수도 없는 곳에 손님이 올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게는 십 년 이상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자는 몸이 비쩍 마른 사내였다. 얼굴은 몸이 아픈 자를 연상케 할 정도로 창백하고, 몸도 그렇다.
그때,
끼이익.
녹이 슨 문이 열리며 괴성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누군가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계속해서 꾸벅거리며 졸았다.
안으로 들어선 인물은 사내의 바로 앞에 와서야 멈추어 섰다. 그제야 알아차렸는지 사내는 눈을 떴다. 입가에 뭍은 침을 닦으며 사내는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뭐가 필요해서 오셨소 영감?”
목소리 가득 졸음이 묻어난다.
사내의 앞에 있는 것은 노인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행색이 초라한.
“너희의 검이 필요하다.”
“뭐요?”
“숨길 필요 없어. 이미 알고 왔으니. 이곳이 너희 흑적파(黑跡派)의 연락망이라는 것 정도는 말이야.”
“미친. 영감 낮술이라도 한 거요?”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