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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50화 (50/200)

# 50

25화

사방으로 터져 나간 침이 방 안에 가득하다. 무인이 아니라면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침이 뾰족하게 사방에 터져 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정체불명의 사내가.

“밤손님이군.”

중얼거리는 듯한 독백.

살수들의 우두머리 격인 사내는 단숨에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자신들이 죽이러 온 갈지혁이다. 그가 살아 있다.

그의 옆에는 침상이 눕혀져 있다. 그리고 빼곡하게 박혀져 있는 침. 단숨에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런 젠장…….’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용케 알아차린 모양이다.

실패한 이상 그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는 급히 자신의 병기인 검을 꺼내 들었다. 그제야 당황하고 있던 다른 살수들도 각자의 병기를 꺼냈다.

빨리 승부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듣기로는 옆방에 화산파의 매화검수도 있다고 했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 끝내야 한다.

화산파의 매화검수까지 개입하면 싸움이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한 탓이다.

그런데 각자의 암기를 들어올리기가 무섭게 맨 앞에 있던 자가 픽 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있는 자가 그 뒤를 이었다.

‘위험해! 독이다!’

사내는 단숨에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한 명이라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런데 공중으로 날아오르기가 무섭게 등에 강한 충격이 일었다.

“억!”

사내는 착지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을 뒹굴었다.

데굴데굴 구르던 사내는 벽에 부닥쳤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몸에 뼈가 나간 듯하다. 사내는 천천히 정신을 잃어 갔다. 아까 방 안에서 그 또한 독분을 들이킨 탓이다.

사내의 눈이 마침내 감겼다.

갈지혁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왔다. 이미 먼저 일어난 진검백이그곳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여어.”

“…….”

갈지혁은 말없이 진검백 건너편에 털썩 앉았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주문한 갈지혁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그다지 눈에 띄는 자는 보이지 않는다. 몇 명의 장사꾼들과 행색이 초라한 노인이 전부다.

그때 진검백이 말했다.

“어제 시끄럽던데. 너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도와주러 오지도 않았으면서 시끄러워.”

“하하, 그 정도에 당할 거라고 생각 안 했으니까. 설마 고전이라도 한 거야?”

“겨우 몇 놈에게 고전은.”

갈지혁은 가볍게 대꾸했다.

예상대로였다. 진검백은 알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록 싸움이 금방, 조용히 끝나긴 했지만 진검백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알면서도 애초에 승패를 알고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둘의 대화를 먼 곳에서 듣고 있던 황금귀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싸움이 시작할 때 그는 밖에서 대충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살수 하나가 뛰어 나왔고, 공중에서 그대로 장법에 등을 맞고 땅을 뒹굴었다. 그게 황금귀 이풍이 본 모든 것이다.

‘끙, 뭘 봤어야 이야기를 해도 할 것을…….’

뭔가 보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나 버렸다.

물론 그만큼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낸 것을 보면 일악천이 자랑할 만도 하다.

밤새 감시하고 있었지만 황금귀 이풍은 안으로 들어갔던 살수들이 밖으로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아직 방 안에 있을 확률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용한 것을 보면 혈도를 점혈당했거나, 마비 독에 당했을 게다. 물론 일악천의 제자이니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거금을 주면서까지 살수들을 고용했는데 뭔가 알아낸 것은 몇 가지 없다. 절로 욕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멍청한 놈들. 머리 값도 못 하고 쯧쯧.’

또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건 석연치 않다.

이풍은 결정을 내렸다. 자신이 직접 부딪혀 보기로.

저런 어린놈을 상대로 직접 손을 쓴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기대감도 일기 시작했다. 적어도 일악천의 제자니까.

이풍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일수만독 일악천의 제자라는 것 하나만 으로도 싸울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게 황금귀 이풍은 갈지혁의 이곳저곳을 뜯어봤다.

식사를 마친 둘은 위층으로 올라가 갈지혁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독에 중독당해 그대로 쓰러져 있는 일곱 명의 살수들이 있다.

진검백이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히유, 엉망이야.”

“이상한 침을 쓰더군.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침상으로 막은 모양이군.”

침상에 빼곡하게 박힌 침을 보면서 진검백은 단숨에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들이 암기를 터트렸을 것이고 갈지혁은 침상을 세우며 그 뒤로 몸을 감췄을 게다. 침은 사방으로 비산했지만 침상에 막혀 갈지혁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진검백은 쓰러져 있는 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폈다.

이내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본 적 없는 놈들인데…….”

“마찬가지야.”

“너 누구한테 죽을 만한 짓 한 적 있냐? 아아, 한둘이 아니지 참.”

말하다가 진검백은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갈지혁에게 원한이 있는 자가 한둘일 턱이 없다. 그만큼 많은 비무행을 펼쳤고, 또 독이라는 무림에서 금기시 되다시피 한 것을 사용한다.

갈지혁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을 꼽는다면 한 둘이 아닐 게다.

“원한 있는 자로 찾는 건 무리고 그럼…… 네 스스로 뭔가 집히는 거 없냐?”

“없어.”

“딱 보니 살수들인데 말이야. 청부한 놈이 누구냐고 족쳐서라도 알아볼까?”

진검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문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럴 필요 없다.”

말이 끝나자마자 창문을 통해 꾀죄죄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진검백은 노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노인은 바로 황금귀 이풍이었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선 후 갈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바로 널 죽이라고 청부한 자니까.”

“…….”

갈지혁은 노인을 봤다. 낯이 익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 객잔에서 본 탓이다. 그 전에는 결코 이 노인을 본 적이 없다. 남루한 행색과는 달리 거금을 지니고 있어 슬쩍 본 게 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를 할 때도…….

“날 보고 있었군.”

갈지혁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상하게도 객잔에서 움직일 때마다 항상 노인은 옆에 있었다.

“그래.”

“난 노인장이 초면 같은데…… 날 아십니까?”

“알지. 갈지혁이라는 것, 그리고 일악천의 제자라는 것도.”

그 말에 갈지혁은 놀라고 말았다.

그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섬서에서의 일들 때문에 나름대로 무림에 이름이 퍼진 그다. 갈지혁이라는 이름을 아는 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온 말이다.

일악천의 제자. 그건 결코 밖으로 나돌 리가 없다.

갈지혁은 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이자가 독황독립문에서 보낸 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갈지혁의 태도에 이풍은 오해 말라는 듯이 말했다.

“난 일악천의 지기다. 그에게 연락을 받았지.”

“사부님이?”

“그래. 널 보살펴 달라더군.”

“그래서…… 살수를 보냈습니까?”

“하핫! 놈 사내가 그런 걸로 꽁하니 있는 것이냐.”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보살펴 주라는 자에게 살수를 보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될 리가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풍은 능글능글 웃기만 했다.

이내 그가 말했다.

“난 능력 없는 놈 뒤치다꺼리나 하고 싶진 않거든.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직 네 실력을 잘 모르겠거든.”

“그 말은…….”

“시험을 해 봐야겠다. 네가 정말 일악천의 말대로 내가 도와줄 정도의 그릇인지 아닌지를 말이야.”

“……노인장의 존함은 뭡니까.”

“나?”

이풍은 자신을 가리켰다. 갈지혁의 태도에서 웃음이 흘러나온다. 시험을 한다는 말에 불쾌해하는 듯하다.

“황금귀. 이름은 이풍이다.”

“황금귀?”

“황금귀!”

이풍의 말에 두 가지 반응이 엇갈렸다.

갈지혁은 행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반면 진검백은 놀란 듯이 그의 별호를 외쳤다.

무림사괴의 하나인 황금귀를 진검백은 알고 있다.

무림사괴, 괴이한 넷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본다는 것은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을 보는 것보다도 몇 갑절은 어렵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은 많은 시간을 각자의 문파에서 보내고, 손님들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무림사괴는 아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너무나 괴이한 자들이라 대화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개중 하나인 황금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풍이 진검백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에 대해서도 알지. 낙화검 진검백. 그래, 장문인은 잘 계시느냐. 너에 대한 이야기도 장문인에게 조금 들었다.”

“잘 계십니다.”

진검백의 태도가 공손해졌다.

황금귀 이풍은 화산파 장문인의 지기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본 것은 처음 이지만 몇 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갈지혁은 진검백의 변한 태도를 보고 상대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자인지 알아차렸다. 확실히 일악천이 도와달라고 한 것만 봐도 황금귀 이풍 이라는 자가 만만한 인물이 아닌 건 분명하다.

별호를 보아하니 돈과 관련이 많은 듯한데 행색은 오히려 반대다.

잠시 진검백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이풍이 고개를 돌렸다.

“손속에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싸워서 나에게 가능성을 보인다면 널 도울 것이고, 아니면 널 죽일 것이다. 그래도 좋다면 덤벼라. 죽는 게 무섭다면 지금 말하고.”

“……후후.”

갈지혁은 가볍게 웃었다.

그의 말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떠나 버린 사부거늘 아직까지 갈지혁의 뒤에 있다.

사독문 안에 있으면서도 밖으로 나온 자신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독왕이라는 꿈을 꾸는 자신에게 그토록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듯하다.

고마운 마음만 든다.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거늘 받은 것만 많다.

이것이 사부의 안배라면……. 사부의 뜻이라면 설령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게다.

“좋습니다.”

“좋다. 그럼 나와서 날 따라오너라.”

말을 마친 황금귀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빠르게 갈지혁과 진검백이 쫓았다.

갈지혁과 진검백이 내려서자 힐끔 그들을 본 이풍은 막 달리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신호다.

갈지혁은 그의 뒤를 쫓으면서 진검백에게 물었다.

“강한가?”

“물론이지. 강하기도 하지만 그의 재력은 무림제일이야. 황금귀의 손에 들어가면 돌멩이도 금이 되지.”

“대단하군그래.”

갈지혁은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황금귀의 뒤를 쫓았다.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멈춰 섰다.

황금귀 이풍이 몸을 빙글 돌렸다. 갈지혁은 주변을 살폈다. 나무를 제하고는 거의 장애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장소다.

“이 정도면 부족함이 없겠지?”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지도 모른다. 방심하지 마라.”

말을 마친 이풍은 기수식을 취했다. 이에 갈지혁은 조용히 손에 수투를 꼈다.

묵빛으로 빛나는 수투를 꽉 뀐 갈지혁이 주먹을 쥐었다.

둘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검백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악천? 어디서 들어 봤는데. 일악천…….’

아까 들은 후부터 계속해서 생각했다. 일악천이라는 이름을 분명 들어 본 적이 있다. 갈지혁의 사부라고 했으니 그의 정체만 안다면 어느 정도 그에 대해 파악이 가능할 게다.

그런데 생각이 날 듯하면서도 애매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진검백은 독이라는 것과 일악천이라는 이름을 동시에 떠올렸다. 갈지혁의 사부라면 분명 독인일 테고 그것과 일악천이라면…….

“……일수만독 일악천!”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갈지혁과 황금귀 이풍이 부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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