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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51화 (51/200)

# 51

독왕전설 3권

1화

먼저 손을 뻗은 건 황금귀 이풍이다.

그의 허름한 옷소매가 흔들림과 동시에 무서울 정도의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일장이 정확하게 갈지혁의 가슴을 내리쳤다.

쏟아져 내리는 경풍 속에서 갈지혁의 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몸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갈지혁 또한 손을 휘둘렀다.

녹색으로 물드는 손, 그와 동시에 벼락처럼 쏟아지는 장력.

일악천에게 배웠던 장법이다. 독장이지만 그 위력은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림에서 위력적이라고 알려진 장법보다 훨씬 강력한 장법.

사람에게서 결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다. 생명이 있다는 건 결이 움직인다는 소리다. 예전이라면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짧은 순간만으로도 결을 잡을 수 있다. 일악천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일악천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최대한 따라잡았다고 자부한다.

황금귀 이풍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일악천만큼은 아닐 게다.

갈지혁에게 일악천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인물이다.

결을 노린 부드러우면서도 위력적인 장법을 이풍은 슬쩍 피해 냈다.

콰앙!

부드러운 장법이기에 가벼이 마음먹고 피했거늘 슬쩍 뒤를 보니 등골이 오싹하다.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것 같지도 않거늘 땅이 터져 버렸다. 사람 두엇은 들어가기 충분할 정도다.

‘일악천 이 영감탱이! 도대체 뭘…….’

이풍은 일악천과 싸워 본 적이 있다.

독을 쓴다 해서 방심했지만 막상 손을 겨루어 보니 오히려 밀린 것은 이풍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도 이만큼 위력적인 장법을 날린 적은 없다. 갈지혁이 일악천의 제자인 것을 감안해 본다면 아마도 이 말도 안 되는 장법은 그의 작품일 게다.

사독문에 있으면서 죽은 듯이 지낸다고만 생각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던 모양이다.

갈지혁이 빠르게 이풍에게 달라붙었다.

이풍의 손이 뒤로 움직였다.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온 손이 사방을 뒤덮었다.

나래미륵(拿來彌勒)이라고 불리는 금나수다. 마치 부처의 손처럼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가며 그것을 피해나가기 어렵다.

갈지혁의 손도 덩달아 움직였다.

탁탁.

팔꿈치, 손목,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해 갈지혁은 손을 쳐냈다. 하지만 나래미륵의 수법에 갈지혁은 뒤로 연신 뒷걸음질 쳐야만 했다.

팍!

발이 땅에 틀어박혔다. 순간,

“낙파신장(落破神掌)!”

이풍의 몸이 땅과 하나가 되었다. 땅에서부터 위로 밀어올리는 힘이 폭발했다. 그의 손이 뻗어졌다.

퍼엉!

굉음과 함께 갈지혁 바로 앞의 공간이 폭발했다. 뒤로 물러서려던 갈지혁의 가슴 부근이 터져 나가며 그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입을 비집고 한 사발의 피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대로 갈지혁은 손가락을 세웠다. 지법을 날린 것이다.

막 갈지혁에게 다음 공격을 하려던 이풍은 오히려 그 간단한 공격에 화를 입고야 말았다. 앞으로 몸을 날리던 차에 날아든 지법에 이풍은 몸을 꺾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해 내지 못하고 지법은 옆구리를 스쳤다.

불에 지진 듯이 화끈한 고통이 일었지만 이풍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지금은 기회다.

내성이 없는 자라면 그대로 즉살할 만큼의 독이 온몸으로 퍼졌지만 이풍은 고수다. 그리고 독에 대한 내성 또한 빼어나다. 지독한 독은 그저 몸을 무겁게만 했을 뿐 이풍의 행동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못했다.

도약한 그가 양손으로 쓰러져 가는 갈지혁의 가슴을 내려쳤다.

땅에 등이 닿는 순간 갈지혁의 몸이 뒤로 굴렀다.

퍼엉!

땅이 터져 오르며 흙먼지가 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풍은 그대로 손을 움직였다. 강한 장력이 쏟아져 나왔다.

몸을 굴리면서 간신히 일어났던 갈지혁에게 다시금 매서운 장력이 퍼부어졌다.

“쳇!”

갈지혁은 빠르게 혀를 차며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했다. 우선은 장력의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예상대로 이풍 또한 몸을 날려 갈지혁에게 그대로 발을 내질렀다. 그의 발이 매서운 속도로 갈지혁에게 틀어박혔다.

퍼억!

갈지혁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하지만 큰 충격을 입지는 않았는지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옷이 흙투성이다.

갈지혁은 툭툭하고 옷을 털었다.

이풍 또한 공격을 퍼붓지 않고 갈지혁의 행동을 그대로 바라봤다. 정확하게 발이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용케 몸을 뒤로 빼면서 충격을 줄였다.

꽤 큰 충격을 먹었어야 정상이거늘 갈지혁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하다.

이풍은 갈지혁이 일악천의 제자답게 무공에도 부족함이 없음을 느꼈다. 상황마다 재빠르게 대처하는 것을 보면 대충 그가 어느 정도 무공을 익혔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풍 또한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다. 갈지혁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갈지혁은 태연히 손을 들어 올렸다. 계속하자는 태도다.

진검백은 애매한 표정으로 갈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일수만독 일악천의 제자라는 것을 안 탓이다.

일수만독 일악천은 정파 무림인들에게는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인물이다.

그의 일수에 수많은 무인들이 죽었다. 일악천 하나 때문에 정파 무인들이 흘린 피는 결코 적지 않다.

그걸 떠나 그렇게 무림을 흔들었던 일악천의 제자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무림에 나타난 것인가.

화산파의 매화검수인 진검백의 입장에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진검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지혁은 이풍을 응시했다.

계속해서 싸울 기세다. 진검백은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눈을 감았다. 일수만독의 제자라 해도 갈지혁이 무엇을 위해 무림에 나온 것인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기다려 보는 수밖에.’

갈지혁이 직접 말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파고들어야 할 것이다.

만약 갈지혁이 좋지 않은 의도로 무림에 나선 거라면…….

‘내가 벤다.’

답은 이미 내려진 것이 아닌가. 설령 갈지혁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진검백은 갈지혁을 벨 게다.

이풍은 갈지혁의 눈을 마주하다가 실실 미소를 흘렸다.

“역시 일악천은 미친 녀석이야.”

“……?”

“사독문에 있으면서도 할 건 다 한단 말이야? 넌 분명 강해. 하지만 날 못 이겨.”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알아. 하지만 이 정도면 이미 승패는 정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이풍의 말에 이번에 갈지혁이 피식 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더니 이내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입이 꿈틀거렸다.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착각? 건방진 놈 지금 뭐라고 중얼거렸느냐?”

웃으며 이야기하던 이풍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지금부터는 완벽한 살수를 펼칠 기세다. 갈지혁이 말했다.

“아직 난 검을 빼 들지 않았으니까.”

“검?”

“독을 말하는 겁니다. 난 무인이 아닌 독인입니다. 여태까지 당신과 싸운 것은 무인이지 독인 갈지혁이 아니니까.”

“그 말은…….”

그제야 이풍은 갈지혁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아직 독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제야 이풍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역시 일악천의 제자다.

“암, 일악천의 제자라면 독을 써야지. 무공이나 쓰는 일악천의 제자는 보고픈 마음도 없다. 오너라.”

일악천을 잘 아는 이풍이다.

무공도 그렇지만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독이다. 그리고 그런 일악천의 전진을 이은 자라면 무릇 독이어야 옳다.

무공을 펼치기에 잊고 있었다.

진정한 일악천의 제자라면 독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풍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은 갈지혁의 행동에서 예전 일악천의 모습을 본 탓이다. 일악천은 언제나 자신이 넘쳤다. 그리고 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분명 제자답게 일악천의 생각을 쏙 빼다 박은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 일악천이 될 수는 없지.’

강하다 해도 아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일악천에 비해 부족하다.

실전경험이나 독에 대한 지식도.

이풍은 수투를 낀 손을 뻗는 갈지혁을 보며 급히 몸을 뒤로 뺐다. 허공이 터져 나갔다. 일전에 장강수로채의 채주인 구백룡에게 썼던 폭발하는 독이다.

이풍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일전에 일악천이 직접 보여 준 적도 있는 탓이다.

이풍의 손에서 번개와도 같은 소리와 함께 장력이 쏟아졌다. 마치 성난 파도와도 같고, 미친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갈지혁의 몸이 녹색 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가 익힌 수라독공을 극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일악천이 평생을 바쳐 만들어 낸 수라독공이다. 사무친 원한이 얼마며, 그 안에 품은 세월의 깊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 갈지혁은 수라독공을 팔성까지 익힌 상태다. 그것만으로도 갈지혁 자체가 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의 몸에서 무서울 정도의 독무가 피어올랐다.

‘거리를 벌려야 돼!’

이풍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급히 뒤로 몸을 뺏다.

무공도 그렇지만 독은 더욱 방심할 수 없다. 예전 일악천과의 싸움에서도 독에 당해 그대로 허수아비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렸던 적이 있다.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다시금 보이고 싶지는 않다.

이풍의 발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연신 땅을 찼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풍은 뒤로 물러섰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갈지혁이 하늘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화아악!

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황금귀 이풍은 급히 숨을 멈췄다. 그리고 온몸의 구멍을 막았다. 갈지혁의 독이 몸에 침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때 갈지혁이 손을 들어 올려 입가를 스윽 하고 닦았다. 아까 전 이풍의 공격에 속에서 피가 솟아 오른 모양이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풍이 급히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피를 닦던 갈지혁이 그대로 손을 흔든 것이다. 손에 묻은 피가 그대로 이풍을 노렸고, 일악천과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것이 있는 그는 급히 몸을 날려서 피해 냈다.

누가 본다면 비웃으리라. 그깟 피를 날린다고 해서 땅을 구르는 이풍의 모습은 가히 우스웠다.

그렇지만……

치이익!

갈지혁의 피가 닿은 땅이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풍은 절로 오싹함을 느꼈다. 본 적이 있지만 언제 봐도 마찬가지다.

독인이라는 놈들은 괴물이다.

그들의 피는 웬만한 독보다도 위협적이다. 그리고 지금 갈지혁이 뿌린 피는 땅까지 녹였다. 실로 놀라운 경지다.

일악천이 이풍에게 말했다. 만약 갈지혁을 시험하기 위해 싸운다면 조심해야 할 거라고.

웃었다. 아무리 일악천의 제자라고 해도 아직 풋내기다. 그만한 놈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일악천이 우습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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