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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53화 (53/200)

# 53

3화

이풍은 상처를 힐끔 봤다. 다행히도 다리가 썩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이 정도면 움직일 수 있다.

‘일악천, 너로 모자라 네놈의 제자에게까지 지라고? 흥! 웃기지 마라. 내가 누구냐.

난……!’

이풍이 앞에 있는 갈지혁을 쏘아보며 말했다.

“난…… 황금귀 이풍이다.”

“……?”

“우습게 보지 말거라. 비록 이렇게 당했지만 아직 진 건 아니지.”

갈지혁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흐르는 피가 손목을 타고 천천히 흘러 내렸다.

붉다, 너무나 붉어 요사스럽기까지 하다. 독을 익히다 보면 피가 녹색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갈지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여태까지 이풍이 보았던 그 누구보다도 붉은 피다.

그 붉은 피는 왠지 모르게 위협적이다.

다른 건 모르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일악천은 괴물을 만들어 냈다.

저 정도 나이에 이 같은 경지라니 믿기 어렵다. 이풍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비록 버티고는 있지만 독에 중독된 상태다. 일각 안에 끝내고 운기조식을 취하지 못한다면 졌다 해도 무방하다.

이풍은 전력을 쏟아붓기로 작정했다.

나이가 어린 상대이지만 우습게 볼 수 없다.

적어도 갈지혁은 일악천의 제자다. 쉽게 마음먹었다가 지금처럼 된통 당하지 않았는가. 더 이상의 방심은 패배를 불러일으키리라.

이풍이 전력을 다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갈지혁 또한 수라독공을 운기했다.

그런데 그의 몸 주변에 퍼져 있던 녹색의 기운들이 오히려 사라기지 시작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갈지혁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할지도 모르지만 이풍은 아니다.

갈지혁의 양손이 변해 가는 것을 이풍은 똑똑히 보고 있다.

‘수라독공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말인가!’

갈지혁은 수라독공의 힘을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덩달아 주변에 난 풀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갈지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독기를 견디지 못하고 주변의 생명체들은 그 생명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이풍과 갈지혁 둘 다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이번 격돌로 승패가 좌지우지될 것을.

그렇지만 여러모로 불리한 것은 이풍이다.

몸의 상태도 최악을 달리고, 갈지혁도 문제지만 그의 등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황도 조심해야 한다. 뱀이라고 우습게 여길 수가 없다. 놈은 그냥 뱀이 아닌 영물이다.

‘필살초. 더 말할 것도 없다.’

설마 갈지혁에게 필살초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적당한 선에서 시험을 하다가 그를 도울지 말지를 정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풍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죽느냐, 죽이느냐.

죽을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봐줄 수도 없다.

갈지혁의 수라독공이 양손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며 이풍 또한 온 내공을 양손에 집중했다.

‘몇 성의 성취냐?’

수라독공의 경지가 얼마에 올랐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게다.

이풍의 양손 또한 붉게 물들었다. 승부는 이번 한 번으로 결정된다. 밀리는 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풍의 몸이 도약했다.

추진력을 이용해 더 강한 위력을 내기 위해서다.

붉게 물든 두 손이 갈지혁을 향해 쏟아졌다.

맞서는 갈지혁의 손은 진한 녹색이다. 녹색의 손바닥으로 흘러내린 붉은 피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촤악!

마치 검날처럼 날아드는 피, 그리고 그것을 향해 이풍은 일장을 휘둘렀다.

피가 반으로 갈라지며 갈지혁의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독은 불에 약하다.

그렇다. 지금 이풍은 양의 힘이 가득한 장력을 쏟아 내려는 것이다.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그의 손이 붉게 물든 건 바로 그 양강의 힘을 실은 탓이다. 갈지혁 또한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지혁은 전혀 변함없이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계획에 변화는 없다.

믿지 못한다면 아무리 위력적인 무공이라도 패하기 마련이다. 갈지혁은 수라독공을 믿는다. 일악천의 인생이 담긴 이 장법으로 이길 수 없다면……

그 어떠한 것으로도 불가능하다.

갈지혁이 아는 한 수라독공은 최고의 무공이다.

변하는 건 없다. 수라독공을 믿고, 그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갈지혁의 녹색으로 물든 손과 이풍의 붉은 손이 충돌했다. 거대한 두 개의 힘이 충돌했지만 오히려 너무나 고요했다.

그리고,

퍼엉!

잠시간의 조용함이 거짓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갈지혁의 다리가 땅으로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이풍의 얼굴도 덩달아 일그러졌다.

사방으로 흙먼지가 터져 나갔다. 주변에 있는 가벼운 것들은 사방으로 날아가 박혔다. 그만큼 둘의 격돌은 위력적이었다.

진검백은 흙먼지가 날리는 와중에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전방을 응시했다.

이 싸움은 이번 한 수로 결정 난다. 내공, 무공의 위력 그 어떠한 것 하나에서라도 밀리는 순간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변해 버릴 게다.

무림의 문제아로 떠오른 갈지혁, 그리고 무림사괴라고 불리며 무림의 골칫덩이이면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황금귀 이풍. 둘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비슷했다.

‘하지만 승자는 하나지. 갈지혁? 아니면 이풍?”

이풍은 손을 연신 저릿저릿하게 하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하다. 당장이라도 머리에 몰린 피가 터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만 이풍은 뻗었던 손을 되돌리지 않았다.

손을 뒤로하는 순간 그 엄청난 후폭풍이 이풍의 몸을 걸레로 만들어 버릴 게다.

싸움을 하고 있는 그들도 그렇지만 보고 있는 진검백조차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이러한 싸움은 본 적이 없다.

단 한 수의 격돌이지만 이미 주변은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단 한 번 손을 부닥쳤을 뿐인데 풍경이 변했다. 그만큼 위력적인 장법인 탓이다.

둘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고통스러운 것은 이풍뿐만이 아니라 갈지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손이 타 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만 이를 악물었다. 이유는 이풍과 마찬가지다. 먼저 마음을 약하게 먹는 쪽이 진다.

이풍은 엄청난 고통에 몸을 떨면서도 머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이겨. 아무리 놈이 강하다 해도 내공은 내가 위야.’

이렇게 손을 맞댄 채로 버틴다면 결국은 내공의 싸움이 될 것이다. 갈지혁이 일악천의 제자라고 해도 내공은 분명 자신이 앞설 게다. 갈지혁과 이풍이 살아온 인생은 두 배 이상이다.

갈지혁의 내공이 부족해지는 순간 남은 모든 내공을 쏟아 부을 것이다. 버텨 내지 못할 게다. 승자는 정해졌다.

이풍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풍은 천천히 입을 열 수가 있었다.

“넌…… 졌어.”

그때였다.

“……웃기지 마시죠.”

갈지혁의 짧은 대답과 동시에 무엇인가가 튀어 올랐다. 두 개의 힘이 격돌하는 공간에는 아무도 쉽사리 껴들 수 없다. 그곳에 함부로 몸을 담았다가는 오히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버린다.

그런데……

사황이었다. 사황은 그 공간을 슬쩍 비켜서면서 이풍의 목을 노렸다.

갈지혁의 상황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던 사황이 움직인 것이다.

“헛!”

이풍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작지만 사황의 독성은 천하에 있는 그 어떠한 독보다 무섭다.

뒤로 물러선 덕분에 사황의 이빨을 피해 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뒤로 물러선 이풍에게 후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풍의 마음이 급해졌다.

‘제길, 그대로 받으면 죽어! 내가 저 어린놈에게…….’

이제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흘려야 한다.

이풍은 손을 뻗었다. 손끝을 통해 엄청난 충격이 몰아닥쳤다. 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떠 버렸다. 입으로는 피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아직 정신은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 모든 힘을 받아 내려면 멀었다. 지금 혼절하면 남는 건 영원한 안식뿐이다.

이풍의 몸이 연신 미칠 듯이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을 꼿꼿하게 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마구 온몸에서 폭발을 일으키던 이풍이 잠잠해졌다. 그의 눈은 이미 피가 터져 나와 붉게 물들어 버렸고, 몸 또한 성한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흐, 흐으…….”

뱀 하나 때문에 졌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애초부터 그 뱀 또한 갈지혁의 무기 중 하나였다. 그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이풍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물론 힘을 흘려 피해를 줄이기도 했지만 갈지혁이 힘을 거둔 탓이다.

만약 그가 그대로 쏟아붓던 모든 것을 터트렸다면 이풍은 결코 살아 있지 못한다.

그 증거로 갈지혁 또한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검은색의 탁한 피가 갈지혁의 입에서 연신 쏟아졌다. 그 또한 내공을 돌리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갈지혁은 몸을 세웠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태연해 보였다.

이풍이라는 고수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다.

그 모습을 보니 일악천이 떠올라 버렸다.

“역시…… 일악천의 제자로군.”

이풍은 연신 기침을 토해 냈다. 몸에 있던 독기가 고개를 치민 것이다. 아까 전 당했던 독을 제어할 힘이 더 이상은 없다.

이풍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땅에 쓰러진 채로 중얼거렸다.

“알아서 독을 해결해라. 날 죽이면 네놈이 후회할 테니까.”

말을 마친 이풍은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 * *

정파 무림은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진다. 물론 그 많은 무인들이 모두 모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당연스럽게 장문인들의 모임이고, 그 장소는 매번 바뀌며 또한 비밀이 유지된다.

혹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암습에 대비해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모임은 바로 소림에서 주최가 되곤 한다. 안다고 해도 아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그곳이 바로 태산북두 소림이다.

소림에서 함부로 움직일 만한 실력자가 무림에 얼마나 되겠는가. 설령 언제 소림의 어디에서 장문인들의 모임이 개최되는지 안다 해도 살수를 펼칠 수가 없다.

그만큼 소림의 힘은 강력했다.

오늘 모인 것은 구파일방 중 아홉 개, 그리고 오대세가 중 세 개의 가문이었다.

가장 왼편에 앉는 것은 언제나 소림의 방장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무당파의 장문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청허검(靑許劍) 무진악(撫眞渥)!

그가 오늘은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소림의 방장을 대신한 것이다.

헛기침을 하던 그가 말했다.

“흠흠, 오늘 이 무진악이 소림의 방장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섰소.”

“정말로 면벽수행(面壁修行)에 들어가셨습니까?”

“그렇소. 아마 한동안 나오시지 않을 듯하오.”

면벽수행이란 벽을 보고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소림의 많은 중들이 면벽수행을 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곤 한다.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고통스러운 게 분명하거늘 그들은 미동도 않는다. 대단한 오기다.

“어차피 지금 무림은 조용하니 한동안 머리에 쌓이신 고민들을 툭 털어놓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이번에는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되었소. 할 말 있는 사람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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