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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56화 (56/200)

# 56

6화

이풍의 반응에 신이 났는지 좌대운이라는 사내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그는 연신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강조했다.

“나와 그는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야. 그다지 친한 건 아니지만 종종 만나서 술을 기울일 정도는 되지.”

“그것만 해도 어디입니까. 황금귀라면 엄청난 거부인데…… 그런 지기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요.”

“너 같은 놈에게 그런 일이 있겠느냐. 아, 난 이만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서.”

좌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에 있던 두 사내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거구의 두 사내까지 사라지자 이풍은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핫!”

옆에서 보고 있던 진검백 또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풍이 웃는 이유를 잘 아는 탓이다. 허풍을 떠는 좌대운이라는 사내의 행동이 웃겼다.

진짜 이풍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좌대운이라고 했겠다? 재미있는 놈이야. 나랑 지기라고? 크크. 지기도 못 알아보는 건 아닐 테고 말이야.”

이풍은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듯 계속 미소를 흘렸다. 재미난 장난이 생각나 버렸다.

황금산장은 겉모습부터 웅장했다.

그 크기도 그렇지만 외관을 장식하는 수많은 것들이 사람의 눈을 현혹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대부분이 장사와 관련된 자들이고 종종 무인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은 황금산장에서 무엇인가를 얻어가려고 한다.

황금산장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오가니 그만큼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오게 된다. 그들 중 안 좋은 뜻을 지니고 오는 자도 적지 않다.

그러니 황금산장의 입구의 감시가 철통같은 것은 당연하다.

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이 이들을 막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얼굴을 가린 무인 하나, 꾀죄죄한 노인, 그나마 양호해 보이는 젊은 사내 하나가 바로 문제의 인물들이다. 그 셋이 나타나자 무인은 길을 막아섰다.

“신분과 용건을 말하시오.”

차갑고 사무적인 말투가 사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갈지혁과 진검백이 이풍을 바라봤다. 그가 알아서 하라는 의미다. 이풍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비록 이풍의 황금산장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이 문지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풍이 황금산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 년 정도 전이 마지막이다.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을 터이고, 또 이풍의 얼굴을 모르는 자도 부지기수다. 문지기가 이풍을 막아선 건 예상했던 바다.

“음…… 우승상(禹昇祥) 있는가.”

“우 총관님을 찾아오신 겁니까?”

사내의 말투가 다소 공손해졌다.

우승상이라면 현재 황금산장을 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자리를 비운 황금귀를 대신해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황금귀가 모든 전권을 위임한 탓에 그는 황금산장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 우승상을 찾아왔다는데 무인인 그로서는 공손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런 자가 어째서 우 총관님을 만나러 온 거지?’

행색을 보아하면 우승상과는 전혀 연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한낱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거지같아만 보인다.

무림에는 개방도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허리춤에 표식을 하고 다닌다. 이 노인은 그런 것도 없다. 그리고 고수의 풍모라고는 전혀 느껴지지도 않는다.

“죄송하지만 신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냥 가서 이풍이 왔다고 하게. 그럼 알 테니까.”

이풍이라는 말에 문지기의 표정이 변했다.

그 이름은 황금산장의 주인인 황금귀의 이름이다. 하지만 황금귀라는 말에 문지기는 오히려 냉철하게 노인을 살폈다.

이런 남루한 행색과 황금귀라는 별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나 했지만 만약 맞는다면 큰일이다. 문지기는 위에 있는 무인에게 외쳤다.

“우 총관님께 이풍이라는 분이 찾아오셨다고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위에서 가벼이 대답한 무인은 모습을 감췄다. 아마도 우승상에게 연락을 하기 위함이리라.

그가 사라지자 문을 지키던 무인은 계속해서 이풍을 살폈다. 나이 대를 보면 언뜻 맞는 것도 같은데 몰골이 너무나 초라하다.

의심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다.

대신 그는 옆에 있는 갈지혁에게 물었다.

“소협은 누구십니까?”

“갈지혁이라고 합니다.”

“갈지혁?”

들어 본 적 없다는 듯 사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갈지혁이라는 이름을 사내는 들어 보지 못했다. 물론 사내가 황금산장에서만 있으며 무림의 정세에 다소 지식이 얕은 건 사실이다. 들어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이내 그는 진검백에게 말했다.

“명문정파의 인물 같은데…….”

“화산파의 진검백입니다.”

“화산파 진검백…….”

진검백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다.

만인의 웃음거리인 무인이 아닌가. 알고는 있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소문으로 유명한 자다. 만약 거짓말이 아니라면 신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만한 인물과 황금귀가 같이 다닌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내는 다른 자들의 입장을 옆에 있는 무인에게 맡기고 혼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정문을 통해 허겁지겁 한 중년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승상이다. 현재 황금산장의 모든 것을 맡고 있는 우 총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이풍을 바라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풍이 보기 힘든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지냈는가?”

“어, 어르신!”

우승상은 무릎을 꿇으려다 이내 주변에 눈이 많음을 의식했다. 그는 급히 이풍의 옷소매를 잡고 당겼다.

“안으로 들어서 이야기를 하지요. 옆에 계신 두 분은…….”

“내 손님일세.”

“그렇습니까? 그럼 같이 드시지요.”

우승상은 급히 일행을 데리고 안으로 사라졌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내는 그제야 확신을 가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 초라한 행색의 노인이 바로 이 황금산장의 주인인 황금귀 이풍이었던 것이다.

시비가 따끈한 차를 놓고 사라졌다. 우승상은 이풍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것이 쑥스러웠는지 이풍은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 사람아, 얼굴 닳겠네. 그만 좀 보게.”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소식도 없으시고 걱정했습니다.”

“걱정할 게 무언가. 어차피 황금산장엔 자네 같은 인재도 있고.”

“그래도 장주님만 한 인물이 있겠습니까? 이곳에 계셔서 황금산장을 더욱 키우셨으면 하지만…… 어르신의 성격을 아니 그리 말할 수도 없군요.”

우승상의 말에 이풍이 씨익 웃었다.

우승상과 이풍이 안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린 우승상의 재능을 안 이풍은 그를 데려와 손수 가르쳤다.

대단한 수재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 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상계에 관해서는 문일지십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우승상은 직감적으로 이풍이 황금산장에 돌아온 것이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랬기에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장주님이 나타난 것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었다면 이리 연락도 없이 오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자네는 여전히 눈치가 빨라. 굳이 뜸을 들이지 않아도 돼서 편하단 말이야 클클.”

이풍은 웃으면서 갈지혁을 가리켰다.

당연히 우승상의 눈이 갈지혁에게로 향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 외모를 판별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그다지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저놈에게 내 모든 걸 줄 생각이야.”

“후, 후계자를 정하신 겁니까? 그런 경축할 일이…….”

“무슨 개소리! 저런 놈에게 황금산장을 맡기면 일 년도 못 버틸걸.”

“그렇다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약속한 것이 있네. 내 오랜 전우와.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내 모든 힘을 저 녀석에게 주기로 했지. 필요하다면 황금산장 자체를 줘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풍의 말에 우승상은 갈지혁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전혀 알 수가 없는 자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름이…….”

“갈지혁이라고 합니다.”

“갈지혁이라면 설마…… 독?”

“맞습니다.”

우승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돈을 움직이는 우승상은 무림의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중에 갈지혁의 이름은 당연히 있다. 덕분에 지금 갈지혁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안다.

갈지혁의 정체를 알고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이내 그는 평정을 되찾았다.

우승상은 황금귀 이풍조차 인정한 인물이다. 장사를 하는 자가 쉽사리 마음을 내보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게다.

그건 곧 불리함으로 작용되니까.

“어르신이 데리고 왔으니 할 말은 없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아네. 저놈이 무림에서 어떠한 놈인지.”

“조그마한 도움을 주는 거라면 몰라도 황금산장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선뜻 내키지가 않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럴 테지. 나도 알고 있어. 이게 미친 짓이라는 것 정도는.”

황금산장의 재력은 막강하다. 그만한 재력이라면 힘을 키우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아마 몇 년 정도면 무림에서 알아주는 무력 단체를 만들 수도 있을 게다.

문제는 그러한 힘이 갈지혁에게 실린다는 것이다.

정파 무림이 가만있지 않을 게다.

“하지만 말이야, 내가 걸어온 길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난 미쳤어. 미친 짓에 내 모든 것을 걸곤 했지.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섰어. 후회는 없네.

이번에 난 또다시 내 운을 실험해 보려는 게야. 이번에도 또 성공할지 아니면 내가 이룬 이 모든 것을 잃을지…… 재미있지 않겠는가?”

이풍의 말에 우승상은 피식 웃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랬다.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는 듯하지만 진정 무엇인가를 보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갈지혁에게서 무엇인가를 봤다고 우승상은 판단했다.

이풍은 장사치다. 이익이 없다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의 황금귀를 있게 만들었다.

“장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제 몫 아니겠습니까. 일이 어떻게 되든 원망은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장주님이 해결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좀 쉬고 싶은데…….”

“벌써 몇 년이나 쉬시지 않았습니까. 어르신을 보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린 사람도 있습니다. 예의지요.”

우승상은 이풍을 잘 안다. 귀찮은 걸 꽤나 싫어하고 얽매이는 건 죽기보다도 싫어한다.

그렇지만 또 이풍에 대해 아는 게 있다.

황금산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려고 한다는 거다.

황금산장을 들먹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풍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알겠으니 또 그 지긋지긋한 장주의 위치란 어떤 것인지 하며 그만 떠들게.”

“허,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 아셨습니까?”

“자네를 하루 이틀 겪어 보나. 뻔하지. 그럼 자네의 판단 아래 만나야 될 사람이나 좀 모아주게.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고.”

“미리 조사는 끝내놨습니다. 그럼 내일 그들을 모아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아! 오늘 온 놈 중에서 좌대운이라는 놈이 있을 게야. 그자는 회견이 끝난 후 따로 불러 주게.”

“좌대운? 누굽니까 그게?”

“있어. 철모르는 꼬마. 거짓말을 참 잘하더군.”

말을 하면서 이풍이 웃었다. 그의 말에 진검백도 픽 하고 웃어 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우승상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셋을 번갈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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