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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60화 (60/200)

# 60

10화

누구라도 기분을 나빠할 만도 하련만 진검백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이봐 청우.”

“왜?”

“아직도 오줌 싸나?”

“뭐, 뭐야!”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던 무당파의 무인 청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진검백의 한마디에 뒤에 서 있던 네 명의 무인들도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청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 지금도 너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느냐!”

“예전부터 너와 내가 같았던 적은 없다. 언제나 내가 네 위였지.”

“어리석은 놈…… 아직도 네가 예전의 그 진검백인 줄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만 해요 청우.”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여인 중 하나가 나섰다. 두 명의 여인 중 더 나이가 들어 보이고 왠지 모르게 성숙미가 풍기는 인물이다.

여인이 나서자 청우는 진검백을 한 번 쏘아보며 말했다.

“예전의 넌 분명 강했지. 우리 칠천룡(七天龍) 중 수위를 다루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냐. 지금의 넌 내 검을 받지 못해.”

자신 있다는 듯한 청우의 말에 진검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칠천룡이라는 건 무림의 명문정파의 일곱 명의 후기지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청우는 그중 무당파의 후기지수로 어릴 때부터 기재로 소문이 난 자다.

하지만……

진검백은 고개를 돌려 갈지혁을 바라봤다. 지금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갈지혁의 생각만큼은 왠지 모르게 궁금하다.

갈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답을 들은 듯하다. 진검백은 갈지혁의 답을 봤다.

정파 무림에서는 칠천룡이라고 이들 일곱을 치켜세웠다. 물론 지금의 진검백은 그 이름에 오히려 먹칠을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한때 그는 칠천룡 중에서도 가장 미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무림에서는 칠천룡, 칠천룡 하면서 그들을 높게 산다. 하지만 우습다. 칠천룡? 그깟 허울에 가득 찬 이름에 무엇을 연연한단 말인가.

명문정파의 제자가 아니라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들어올 수 없다. 심지어 오대세가조차도 칠천룡 안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우스운 싸움이다. 굳이 그런 파벌을 나눌 필요도 없거늘 무림은 언제나 선을 그어 스스로 싸우곤 한다.

덕분에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무림에 알려지지 않고 시답지 않은 놈들이 되려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칠천룡이라는 이름은 허울이다. 비록 그들이 강하다 하지만 아직 실전 경험조차 제대로 없는 풋내기들이다.

실제로 눈앞에 있는 갈지혁 혼자서도 저 넷 정도는 가벼이 제압할 수 있을 게다.

진검백이 자신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갈지혁을 바라보며 웃자 청우는 시선을 돌렸다.

갈지혁을 본 청우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에게 갈지혁은 걸인 같아 보였다.

가려진 얼굴, 온통 검은 옷. 그리고 몸 전체에서 뭔가 음울한 기운을 풍긴다.

다가서고 싶지 않은 상대다.

“네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

“내가 너에게 그런 걸 사사건건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 친구 앞에서 말 함부로 안 하는 게 좋아. 까불다가 또 오줌 쌀 정도로 된통 당하면 어쩌려고.”

“이익! 한 번만 더 그 말을 입에 올리면 용서치 않겠다!”

청우가 고함을 지르면서 손을 등 뒤로 가져다 댔다. 더 이상 떠들면 당장이라도 검을 출수하겠다는 기세다.

그는 갈지혁을 바라봤다. 행색을 보아하면 뭔가 꺼려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다. 저런 시정잡배 따위에게 당한다니 말도 안 된다.

청우가 진검백을 노려봤다.

“네놈과 같이 있는 걸 보면 저자의 그릇도 알 만하지. 원한다면 둘 모두 상대해 주지.”

“그만 해!”

가만히 있던 다른 여인 하나가 나섰다.

아까 전의 여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쾌활해 보이고 목소리도 앙칼지다. 말투 또한 다소 거친 듯하다.

“한심하게 길거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사과하고 갈 길이나 가자고.”

“흥. 저따위 놈에게 사과는 무슨…….”

청우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청우는 무당파의 무인이다. 비록 많이 변색되었다고는 하지만 도가 계열의 문파다. 예의 정도는 지킨다는 소리다. 그런 인물이 처음 보는 갈지혁에게 말을 함부로 한 것은 이유가 있어서다.

은연중에 진검백에게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청우는 몰랐다.

갈지혁이라는 인물을.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갈지혁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덤벼 오줌싸개.”

“……죽여 버린다!”

스릉!

청우의 검이 뽑혔다.

검은 청명한 빛을 토해 냈다. 그렇지만 정작 검을 뽑은 청우의 얼굴은 일그러진 상태다.

너무 심한 모욕을 당했다. 진검백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도 화가 났지만 전혀 들어 본 적도 없어 보이는 시정잡배에게 들은 것과는 기분 자체가 다르다.

대로에서 검을 뽑으니 사람들의 눈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우는 검을 돌릴 생각이 없었다.

“검을 들었으니 묻지. 난 무당의 청우다. 네놈은 누구냐?”

“갈지혁이다.”

예상대로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동년배의 무인 중 갈지혁이라는 자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다.

시정잡배인 모양이다. 아니면 어느 은거기인에게 무공을 전수 받은 자이거나. 하지만 청우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대무당파 최고의 후기지수니까.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꺼내.”

“그럴 필요는 없어. 난 검객이 아니니까.”

“검객이 아니라고?”

청우는 다시금 허리에 찬 검을 확인했다. 확실히 검 손잡이부터 사람의 손길을 그다지 타지 않은 듯하다. 검을 뽑은 적이 거의 없다는 소리다.

‘장? 지? 그것도 아니면 조법?’

검을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아마 근접 박투를 전문으로 하는 자일 거라고 청우는 판단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상대하는 건 더 쉽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계속해서 궁지로 몰아붙이면 싸움은 쉽게 끝난다.

청우의 검에 검기가 맺혔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라 생각은 했지만 완벽한 싸움을 보여 주고 싶었다. 예상대로 주변에서는 감탄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십 대의 나이에 이 정도로 완벽하게 검기를 구연하는 자는 많지 않다.

청우가 우쭐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는 자신 있게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정도면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갈지혁을 모르기에 가능한 생각이다.

피식.

갈지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관객은 이 정도면 적당하다.

‘얼래?’

청우는 갈지혁이 물러나지 않고 되려 손을 들어 올리자 다소 당황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마을 한복판에서 검기를 일으키고 싸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태청검법(太淸劍法)을 펼쳐야겠군.’

검기가 사그라드는 것과 동시에 검이 움직였다. 무당파의 검법인 태청검법이 갈지혁을 노렸다.

“오!”

둘의 대결을 바라보던 무인 중 하나가 감탄을 터트렸다. 검기의 회수와 동시에 검을 움직이는 솜씨에 감탄한 것이다.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대부분의 무인들은 청우를 안다. 그랬기에 그들은 이미 싸움의 승패도 답을 내린 상태다.

청우의 앞에 있는 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다.

하지만 그런 구경꾼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갈지혁은 가볍게 검을 피해 냈다. 그와 동시에 갈지혁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쾅!

청우의 검 끝이 흔들렸다.

갈지혁의 장법을 검으로 막으려 들었다. 결을 이용한 갈지혁의 장법을 모르기에 한 행동이다. 갈지혁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우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목이 끊어질 것만 같다.

검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미친 듯이 요동친다.

‘손이 녹색으로 물들었어. 녹색이라면 독장…… 하지만 이만한 위력을 지닐 리가…….’

비록 갈지혁에 비해 한참 아래라 하지만 청우는 무당파의 기대주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장문인이 될지도 모르는 인재다. 그런 그가 손을 마주하고 독장을 알아보지 못할 턱이 없다.

독장이 확실하지만 뭔가 단언할 수가 없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 탓이다.

‘한가락 하는 놈이라 이건가? 젠장, 이런 곳에서 만약이라도 수치스러운 꼴을 보이게 된다면…….’

끝이다.

무당파라는 이름에 먹칠을 했다며 장문인이 엄히 벌을 내릴 게다. 현 장문인인 청허검(靑許劍) 무진악(撫眞渥)은 주관이 뚜렷한 자다. 그의 눈에 벗어나는 그 순간이 몰락을 의미한다.

청우는 머리를 저었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다. 단 한 번의 격돌로 그런 상상까지 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 진검백의 모습이 보인다. 더욱 오기가 치민다.

검의 떨림이 멈추자 청우는 검을 세웠다. 그의 모습이 은연중에 진지해졌다. 단 한 번의 격돌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갈지혁이 위협적인 상대라고 판단한 것이다.

처음 휘두른 검은 멋을 보이기 위해 다소 가벼웠다. 이번에 날리는 검은 그렇지 않을 게다.

쉭!

청우의 검이 다시금 움직였다. 하지만 채 다가가기도 전에 갈지혁의 손가락 끝에서 녹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장법이 아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지법에 청우는 급히 몸을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갈지혁의 손가락에서 쏘아져 나온 초록색 빛이 청우의 옷소매를 스치고 지나갔다.

청우의 눈이 스치고 지나간 옷소매로 향했다. 옷소매가 검게 변해 가며 타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독장에 독지! 독공을 익힌 놈이다!’

독공을 익힌 자가 많지 않아 혹시나 했다. 하지만 옷소매가 이 같이 변한 것은 독공을 익힌 자의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동시에 요즘 무림에서 독을 쓴다고 나타난 무인에 대한 이야기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관심이 없었기에 이름도 모른다. 그저 그런 자가 있다는 소리만 들은 게 전부다. 아는 것은 독을 쓴다는 것과 젊다는 것.

그 두 가지뿐이지만 앞에 있는 상대와 모든 게 일치한다.

섬서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거늘 그럼 진검백과 함께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섬서성에 바로 화산파가 있으니까.

“네놈이…… 독을 쓰면서 무림을 시끄럽게 하는 그놈이냐?”

“그래.”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무인들의 귓가에는 청우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그리고 그 파장은 작지 않았다.

“저놈이?”

“섬서에 있다고 들었는데 왜 이곳에…….”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갈지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현듯 나타나, 무림에서 금기시되는 독을 사용한다. 사람은 죽이지 않지만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 충분한 요소를 지녔다.

갈지혁이라는 말에 청우와 함께 왔던 여인 중 하나의 얼굴빛이 변했다. 갈지혁이 얼마 전 아미파의 무인들을 구해 주었던 걸 들었던 탓이다. 바로 그녀가 아미파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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