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11화
장강수로채의 수적들과의 싸움에서 갈지혁이 없었다면 모두 죽었을 거라 했다.
그 말은 곧 갈지혁은 아미파의 은인이라는 소리다.
청우는 이 시끄러운 소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숨에 자신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 듯한 기분 탓이다.
‘쳇! 그까짓 거!’
무패(無敗)라는 것도, 단신으로 구양세가를 무너트렸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한 사내일 뿐이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그런 자에게 자신이 패할 리가 없다.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리를 벌리면서 천천히 끝내려고 했는데 갈지혁의 정체를 알자 그럴 수가 없게 됐다. 상대는 독을 쓴다. 독을 쓰는 자에게 거리를 줘서 좋을 것은 없다.
물론 독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독에 관련된 문파 중 제일이라는 사천당문이라고 해도 무당파 앞에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다만 독이라는 게 귀찮을 뿐이다.
“가만히 있을 모양인데 내가 가지.”
말을 마친 갈지혁이 수투를 끼면서 손을 흔들었다.
공격을 해 올 거라는 생각에 바짝 정신을 집중했던 청우는 갈지혁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갈지혁은 그 상태로 그저 청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야? 도대체 지금 뭘…….’
청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갈지혁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인가 하려고 하다가 멈춘 것일까?
독의 흔적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청우는 독에 대한 경계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온다더니 겁이라도 먹은 거냐?”
청우의 말에 갈지혁이 작게 비웃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이 붉다 못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청우는 그대로 갈지혁에게 검을 날리기 위해 내공을 움직였다.
그런데…….
“어? 뭐야?”
손을 뻗으려 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다리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떨리던 다리가 멈추는 듯싶더니 손이 갑작스럽게 청우 자신의 목을 졸랐다.
그 광경에 구경을 하고 있던 무인들도, 심지어 진검백조차도 놀라 버렸다. 청우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갈지혁이 차갑게 말했다.
“꼭두각시의 독. 넌…… 이제 내 꼭두각시다.”
“컥컥!”
청우는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독이라는 것에 문외한이다. 방심한 탓도 있지만, 정작 지금도 어떻게 독을 해독해야 할지 제대로 감이 오지 않는다.
무림은 독을 멸시했다. 독을 쓰는 자들은 이유를 붙여 쫓아내거나 죽였다.
그 탓에 무림은 오히려 독에 대해 약해져 버렸다. 독에 대한 방비도 형편없고, 독의 위험성을 모르는 자들도 허다하다.
청우 또한 그랬다.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숨도 점점 쉬기가 힘들어진다.
막 숨이 넘어가기 직전 갈지혁이 허공을 향해 반대편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스스로의 목을 조르던 청우의 손이 뚝하고 떨어졌다.
“흐으, 흐으!”
청우가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럽게 숨을 쉬면서 오히려 눈앞이 노랗다.
“일어나 봐.”
청우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갈지혁을 바라봤다. 온몸에 힘이 쫙 빠져 버렸다. 채 무공도 펼치지 못하고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이것이 바로 진짜 독이다.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는.
청우는 그걸 몰랐다. 그랬기에 실력의 십 분지 일도 보이지 못하고 이렇게 꼴사납게 쓰러져 버린 것이다.
진검백은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갈지혁의 진짜 실력은 어디란 말인가. 지금 갈지혁이 쓴 독은 실로 그 위력이 놀라웠다. 스스로의 손이 목을 옥죄어 온다. 주변에 동료가 있다 한들 손을 잘라 버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는가.
물론 독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 막을 방도는 분명 있을 게다. 다만 청우가 너무 방심했고, 독에 대해 무지해서다. 진검백 또한 갈지혁을 만나기 전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청우는 숨을 쉬기에 바빴다. 갈지혁이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또 한 번 오줌을 싸 버렸을 게다. 일반적으로 목이 졸려 죽게 되면 몸에 있는 모든 구멍이 열린다. 눈물, 침, 배설물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다.
다행히 갈지혁이 바로 직전에 손을 거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황천 구경과 더불어 오줌을 싸 버릴 뻔했다.
“뭐, 뭐야 이게. 이런 건…… 말도 안 돼.”
어릴 적 기억이 있을 때부터 그는 검을 들고 있다. 검과 함께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군가에게 패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따끔한 패배를 당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것도 겨우 독에 당했다. 그토록 무시하는 독의 제일인 사천당문도 아닌 출신조차 모르는 자에게.
자존심이 강한 청우가 인정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갈지혁이 손을 뻗자 청우가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땅에 댄 채로 뒤로 마구 물러났다. 그러나 곧 그는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그런데 추한 모습을 보였다.
차라리 죽었다면 이같이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귀를 따갑게 한다. 하지만 아까처럼 좋지 않다. 아까의 웅성거림이 청우에 대한 감탄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이니까.
청우와 같이 있던 이남 이녀 또한 놀란 듯한 얼굴이다. 그나마 여인 중 아미파의 무인은 갈지혁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었던 탓에 크게 놀라지 않은 듯했다.
단신으로 장강수로채의 공격을 막아 냈다는 말에 반쯤 허풍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신비한 인물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상황을 보고만 있던 진검백이 나섰다.
“그만 해.”
“어차피 이미 질렸어.”
“하여간.”
갈지혁을 보며 혀를 찬 진검백은 고개를 돌렸다. 진검백의 눈이 두 명의 사내 중 하나에게로 향했다.
“용 형 오랜만입니다.”
“그래. 잘 지냈는가?”
“저야 뭐 언제나처럼 그리 지내지요.”
“여전히 검 대신 술병을 차고 지낸다는 말은 들었다만…….”
청성파의 후기지수 용혁진(龍革珍). 진검백보다 두 살이 많고, 칠천룡 중의 하나다. 검을 쓰지만 청우에 비해서도 한 수 아래인 인물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이런 곳에 칠천룡 중 다섯 명이 있는 겁니까? 아, 나까지 하면 여섯인가?”
굴욕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받아넘기는 진검백을 보며 용혁진은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예전의 진검백은 자존심이 강했다. 비록 변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사람이 변할 줄은 몰랐다.
잠시 진검백을 바라보던 용혁진이 대답했다.
“자네 모르고 이 마을에 온 건가?”
“지나가던 길에 무슨 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잠시 들렸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만난 건 기막힌 우연이로군.”
“그런 셈이죠.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진검백의 말대로다. 지금 이 만남으로 인해 청우가 완전하게 뭉개져 버렸다. 이 일을 쉬쉬한다고 해도 본 무림인들의 숫자가 얼마인가. 청우와 칠천룡이라는 이름이 동시에 웃음거리가 될 거다.
이 일로 인해 청우는 무당파 장문인의 눈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를 정도의 큰 사건이다. 그렇지만 용혁진은 침착하려고 했다. 어차피 같은 칠천룡이라고 하지만 청우가 무너진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그만큼 자신이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탓이다.
“적검(赤劍)과 풍도(風刀)가 붙는다네. 조금 있다가 이 마을에서 말이야.”
“적검과 풍도가?”
진검백은 반문했다.
적검과 풍도 모두 무림에서 잘 알려진 무인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두 절정 고수가 싸운다 하여 이렇게 모인 게 아니다. 적검과 풍도의 싸움이라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지 이해도 간다.
“어쨌든 청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자네가 저자를 데리고 가게.”
용혁진은 턱으로 슬쩍 갈지혁은 가리켰다.
진검백도 이곳에서 더 있을 생각이 없었는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갈지혁의 옆에 가 섰다.
“가지.”
“적검과 풍도가 누구냐?”
“가면서 이야기 해 줄게.”
진검백은 더 이상 이들의 앞에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막 몸을 돌리려던 진검백이 슬쩍 뒤를 바라봤다.
발랄해 보이는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진검백은 슬쩍 웃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갈지혁과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용혁진이 청우를 부축하는 동안 진검백의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치잇!”
아미파의 여인이 정숙한 느낌을 풍긴다면 종남파 장문인의 딸인 이 여인은 상큼하고 발랄하다.
어렸을 적 그녀는 진검백을 졸졸 따라다녔다. 나중에 나이가 먹으면 꼭 시집가겠다면서 떼를 쓰던 적도 있다.
하지만 모두 옛날이야기다. 아니, 진검백이 저렇게 변하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마음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진검백은 예전 그녀가 좋아하던 그 사람이 아니다.
약하다. 진검백은 이제 칠천룡 중 그 누구와도 손을 겨룰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그의 강함을 좋아했다. 앞에 서 있기만 해도 태산이 있는 듯했던 그 넓은 등이 좋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태산은커녕, 녹슨 검이 되어 버렸다.
‘오빠는 강하고 재능이 있지만…… 약해.’
그녀는 멀어지는 진검백의 등을 쫓았다.
그토록 따라 잡고 싶고 사랑했던 사내거늘 왜 저리 된 것인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갈지혁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재차 물었다.
“적검과 풍도? 그 둘의 대결에 사람들이 이리 몰리는 이유가 뭐지?”
“둘 모두 강하지. 하지만 무엇보다 둘이 싸우는 게 지금이 처음이 아니거든. 벌써 아홉 번을 싸웠어. 그런데 승패가 아직도 안 난 거야. 벌써 이십 년가량을 싸우고 있는데도 언제나 동수란 말이야.”
신기한 일이다. 물론 비슷한 실력자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 힘은 한쪽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십 년 동안 아홉 번을 싸웠다. 그런데 그 아홉 번 모두 둘은 동수를 이룬 것이다.
둘은 오 년 전 약속을 했다. 이 열 번째 싸움을 마지막으로 끝내자고. 반드시 승패를 내자고.
그리고 꺾이는 쪽은 다시금 병기를 들지 않기로 했다.
둘 모두 무림에서 유명한 인사이다 보니 사람들이 소문에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모양이다.
“청우와 왜 싸웠지? 애초에 네 상대가 아니잖아.”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내 이름을 알릴 상황인데 굳이 피할 필요는 없지. 놈이 너무 하늘을 모르고 덤비기도 했지만.”
“너무 큰 사고는 일으키지 마라. 그랬다가는 나는커녕 화산파 전체가 와도 널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잔소리는…….”
갈지혁은 말꼬리를 흐렸다.
적검과 풍도라는 둘의 대결이 오늘 있다고 들었다. 흥미가 돈다. 그리고 무엇인가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봐, 우리도 가자.”
“안 돼.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이 저쪽이로군. 저쪽으로 가야 되는 모양이야.”
진검백의 말은 듣지도 않으며 갈지혁이 말했다.
갈지혁이 성큼 성큼 걸어가자 진검백은 고개를 저었다. 막무가내다. 어떻게 자신이 막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