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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65화 (65/200)

# 65

15화

“사천당문도 하지 못했어. 그런데 자네가 하겠다는 겐가?”

당풍의 말에 갈지혁이 이마를 꿈틀했다. 사천당문보다 자신이 아래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물론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천당문이라 불가능했던 겁니다. 바로 나니까 가능하다는 것이고.”

“뭐라고?”

당풍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갈지혁이 한 말은 사천당문을 모욕하는 말이다. 긴 세월 동안 무림과 함께 독이라는 명맥을 지켜오던 사천당문에게 할 말이 아니다.

당풍은 갈지혁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당당해 보인다. 당돌한 놈일 거라고 생각했거늘 상상 이상이다. 그나마 당풍은 화를 억누르고 있었지 나머지 네 명은 단숨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들은 언제라도 암기를 터트려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당풍이 말했다.

“젊군. 패기가 넘치는 건 좋지만 너무 앞을 보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네.”

“그게 당신들과 저의 차이라는 겁니다. 애초부터 하려고 하지도 않으니까요.”

“클클!”

당풍은 갈지혁을 노려봤다.

참으려고 했거늘 슬슬 그 또한 화가 나는 모양이다. 갈지혁이 섬서에서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는 그 또한 잘 알고 있다.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독을 쓰는 능력을 지녔을 게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래 봤자 자신의 상대가 될 턱이 없다.

걸어온 시간이 다르다. 갈지혁과 자신은.

“하늘 높은 걸 모르는군. 자네의 스승이 누군가? 궁금하군그래.”

“누군지는 말해 드리지 못하겠군요. 유일하게 제가 이길 수 없는 분이기도 하지요.”

“유일하게라…… 그 말은 나 또한 이길 수 있는 말로 들리네만?”

“물론이죠. 당풍이라는 무인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절 이길 수는 없습니다.”

당풍은 할 말을 잃었다.

적어도 그가 걸어온 길은 우습지 않다. 비록 사천당문이 무림에서 무시를 당한다고는 하지만 당풍은 그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노고수다. 독에 대해서 지독하게 연구했고, 또 그에 맞게 수많은 하독법을 익혔다.

그는 손가락을 꿈틀했다.

왼쪽 손가락 끝에 낀 반지가 묘하게 비틀린다. 이 반지는 독성을 머금는 옥으로 만든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에 독기가 갈지혁을 향해 쏟아지리라.

“자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한번 보여 주지. 사천당문의 독이 어떤 건지 말이야.”

“잘됐군요. 어차피 당문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미리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좋다. 물러서라.”

당풍은 뒤에 있는 네 명의 무인에게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

“희경아, 물러서래도. 금방 끝내마.”

유일한 여인이자 당풍의 외손녀인 당희경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갈지혁은 왠지 모르게 위험한 냄새를 풍긴다. 다가서기만 하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살기가 느껴진다.

사신(死神)의 기운이다.

다가서면 반드시 죽을 것만 같다. 실제로 무림에서 그에게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풍기는 기세만큼은…… 사신의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실제로 갈지혁의 주변에선 죽음의 향기가 흐른다. 왠지 모르게 그의 모습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당희경은 당풍이 그리 말하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당풍이 왼손에 낀 반지를 비틀었다. 흰색 가루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지독한 독은 아니다. 하지만 미묘하게 신경이 마비되고 그것이 결국 싸움에서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갈지혁은 피하지 않았다. 수상한 가루가 날아드는 것을 봤지만 그는 단숨에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차렸다.

코끝을 슬쩍 스치는 독의 냄새와 느낌만 보고도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독을 몸으로 체험한 갈지혁이기에 가능하다.

이것은 나방의 독이다. 중원에도 나방은 있지만 그 숫자는 남만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라다. 남만에서 수많은 나방의 독들을 몸으로 느낀 갈지혁에게 이 정도 독은 우습기만 하다.

갈지혁은 태연하게 서서 당풍을 바라봤다.

당풍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바로 즉사를 하거나 하는 독은 아니지만 치명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피하려고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는 것도 이상하다. 이 독에 중독되면 우선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또 손도 조금씩 떨려야만 옳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떨려야 할 손이 너무나 멀쩡하다.

이건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듯하다.

‘역풍도 아니야. 독은 제대로 흘렀어. 호흡을 멈췄던 것도 아니고…… 멈췄다고 해도 수화아(收華蛾)의 독은 피부로도 들어가.’

너무나 태연해 보였기에 당풍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는 이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해 버렸다.

‘설마…… 독인?’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저만한 나이에 독인이라는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가. 사천당문 최대의 기재라고 불렸던 현 가주도 지금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독인의 경지에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기재라 불리거늘 지금 이 앞에 있는 갈지혁이 그 정도 수준에 올랐을 리가 없다.

“이게 다입니까? 수화아의 독 정도로 절 어떻게 해 보려고 했다니 우습군요.”

갈지혁의 한 마디에 당풍은 움찔 해 버렸다.

‘수화아의 독이라는 걸 알아? 냄새를 맡고 알았다는 건가? 그럴 리가…….’

나방의 독이라는 것을 말한 적도 없고, 더불어 수화아의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직접 몸으로 느끼고 안다는 말인데 그것이 의미하는 게 뭔지 당풍이 모를 리가 없다.

‘독인……이라는 건가.’

독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아니, 설령 독인이라고 해도 이처럼 냄새나 몸으로 느끼고 독의 정체를 파악한다는 건 어렵다. 실제로 몸으로 수백 가지 독을 접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

갈지혁은 수투를 꼈다. 그는 수투 안에 숨겨져 있는 칠갑지주의 거미줄을 슬쩍 잡아 뽑았다. 그의 손가락 끝에 거미줄이 걸렸다.

당풍은 재빨리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딱딱한 병 몇 개가 만져진다.

지금 그가 지닌 독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이 병 몇 개뿐이다. 평소에 독을 지니고 다니지 않다 보니 당문에서 자랑하는 열 가지 독이라는 당문십독(唐門十毒) 중 아무것도 없다.

‘너무 나태해졌어.’

당풍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독을 쓰는 자가 검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중요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당문십독 중 하나만이라도 지니고 있었다면 싸움을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이미 늦었다.

그에 반해 갈지혁은 모든 것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의 몸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백 가지에 달하는 독이 숨겨져 있다. 더군다나 갈지혁의 피 자체가 독이니 공격의 형태도 당풍에 비해 몇십 배 많은 건 당연하다.

‘저건 뭐지?’

갈지혁의 손가락 끝에 걸린 것이 거미줄이라는 것을 당풍은 모른다. 단순히 얇은 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지독하게 날카롭거나, 아니면 질길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당풍이 독에 대해 능통하다고 하지만 칠갑지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칠갑지주는 사독문에만 사는 거미다. 그것에 대해 아는 자는 독황독립문 내에서도 몇 없다.

이미 싸움이 시작될 때부터 승패가 정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이 중에서 진검백뿐이다.

‘끝났어. 당풍은 갈지혁을 못 이겨.’

최상의 상태라고 해도 당풍은 갈지혁의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당풍이 지닌 독은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은 것 몇 개가 전부다. 그나마 챙겨놨던 독도 일이 있어서 모두 다 사용한 후다.

당풍이 괜히 사천당문을 나와 이런 곳에 있겠는가. 그는 네 명의 당문 무인들과 함께 어떠한 일을 해결하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남아 있는 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풍은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에 병을 하나씩 꼈다. 그는 다소 불리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패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갈지혁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칠갑지주의 거미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당풍은 병 하나를 던졌다.

병은 갈지혁 바로 앞에서 터졌다.

액체가 터져 나오며 갈지혁에게로 튀어 올랐다. 갈지혁은 칠갑지주의 거미줄을 움직이면서 다른 손으로 액체를 막아 냈다. 피부에 직접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액체는 아무런 위력도 내지 못했다.

그제야 당풍은 확신했다. 갈지혁이 독인이라는 것을.

‘젠장! 독인이라면 이 걸로는 무리야!’

하지만 채 무슨 행동을 하기도 전에 칠갑지주의 거미줄이 당풍을 둘러쌌다. 당풍은 피해 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갈지혁의 손가락 끝이 슬쩍 움직였다.

“흠!”

거미줄이 몸을 감싸자 당풍은 급히 내공을 집중시켰다. 그렇지만 그건 거미줄이라는 걸 몰랐기에 한 행동이다.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이 같은 행동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게다.

거미줄은 흐늘거린다. 그러면서도 질기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끈적인다는 것이다.

그저 날카로운 실 같았다면 모를까 그런 특징을 가진 거미줄이 원상태로 돌아오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건…….”

손가락끼리 묶였고, 온몸에 거미줄이 칭칭 감겼다.

마치 거미의 먹이가 될 곤충 같은 모습이다. 갈지혁의 수투 속에서 계속해서 거미줄이 흘러 나왔다.

팔이 제압당했고, 발 또한 마찬가지다.

뒤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네 명의 당문 무인들은 입을 쩍 벌렸다.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이 상황을 보고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마구 손을 움직이던 갈지혁이 천천히 멈췄다. 그는 들었던 손을 내리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끝났군.”

당풍은 자신의 꼴을 느끼며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완전히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당희경이다.

그녀는 멈춰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당풍을 감싸 안았고, 나머지 네 명의 무인은 급히 그 앞을 막아섰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면서 체격이 있는 당삼경이 나섰다.

“네 놈 지금 무슨 행동을 한지 알고 있느냐? 비록 우리가 무시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오대세가의 하나다.”

당삼경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의 옆에 선 당무 또한 손가락 사이마다 비수를 꼈다. 그는 비수를 낀 채로 옆에 있는 두 명의 젊은 무인인 당적성과 당환에게 말했다.

“너희는 물러서라.”

“하지만…….”

“알겠습니다.”

당환과 당적성은 크게 다르다.

외모부터 해서 성격까지 같은 나이대의 무인이고, 같이 자라온 지기 같은 존재지만 완전히 반대라고 해야 옳다.

당적성은 미남이다.

그에 반해 당환은 너무나 평범하다.

당적성이 상황을 판단하고 빠르게 대처하는데 비해 당환은 안 될 걸 알면서도 달라붙는 기질을 지녔다.

당무는 당환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잔 미소가 걸렸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사천당문의 당무 아니더냐.”

당무는 말을 마치고 바로 갈지혁에게 몸을 돌렸다. 상대하기 껄끄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암기를 쓰는 듯하다.

당삼경과 당무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둘은 이십 년 이상을 함께 손을 맞춰왔다. 전음을 주고받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 정도는 알 수 있다.

당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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