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16화
갈지혁은 가만히 선 채로 둘을 응시했다.
그 둘의 뒤에 있는 당희경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갈지혁을 노려봤다.
아마도 원망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칠갑지주의 거미줄에 잡힌 당풍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을 게다.
갈지혁은 자신을 노리는 두 명의 사내를 보며 말했다.
“당신들과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웃기는 소리. 네 맘대로 건드리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당문이 우습더냐?”
당무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정당한 대결이었다는 건 안다. 다른 누군가의 개입도 없었으며 정정당당하게 단 둘이 손을 겨루었다.
물론 채 뭔가 해 보기도 전에 이상한 것에 당풍이 당하긴 했지만.
문제는 갈지혁이 아까 전에 내뱉었던 말들에 있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당문은 모욕을 당하게 되는 꼴이요, 자신들은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건 싫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꼴을 보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어차피 지금 지니고 있는 독 모두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암기와 무공으로 싸워야 한다.
사천당문은 독만큼이나 암기로도 유명하다.
당풍과 갈지혁의 싸움을 보면서 두 명 모두 알아차렸다.
웬만한 독으로는 결코 어찌 할 수 없는 수준의 인물이다.
독에 대한 내성이 엄청날 게다. 지금 지니고 있는 독은 전혀 쓸모가 없다.
그들은 독을 포기했다. 차라리 암기나 무공이라면 어떻게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건 갈지혁을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당무의 손가락에 끼인 암기가 시퍼런 날을 빛냈다. 당삼경은 품안에 숨겨두었던 채찍을 꺼냈다. 그는 당문 내에서도 드물게 채찍을 병기로 이용하는 자다.
채찍은 끝 부분이 다섯 갈래로 나눠져 있고, 그곳에는 각기 다른 다섯 개의 독이 발라져 있다.
오룡편(五龍鞭)이라고 불리는 이 채찍은 당삼경의 보물이기도 했다.
그는 자세를 잡았다. 회타연편십삼식(廻打軟鞭十三式)이라고 불리는 당가의 무공이다.
당가는 채찍을 쓰는 무공도 많이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많지 않다. 개중에 당삼경은 회타연편십삼식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무인이다.
당무는 구천현녀(九天玄女)를 펼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암기수법으로, 하늘에서 아홉 개의 암기가 떨어진다. 그것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내려오는 듯해서 구천현녀라고 불리는 게다.
눈을 현혹시키는 수많은 환상과, 그 안에서 떨어지는 아홉 개의 암기.
먼저 움직인 것은 오룡편을 들고 있는 당삼경이다. 그의 손이 뒤로 빠지는 듯싶더니 등 뒤로부터 채찍이 날아들었다.
촤악!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오룡편을 갈지혁은 뒤로 물러서며 피해 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당무가 움직였다.
그의 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허공을 그었다.
타다닥!
암기들이 공중으로 솟구치면서 동시에 당무의 소매에서 독분이 흘러 나왔다. 이 연기가 바로 환상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갈지혁은 둘의 합공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로 솟구치는 비수와 터져 나온 하얀 독분을 보며 어느 정도 상황을 예측했다.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변의 광경이 일그러진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예상했던 바다.
갈지혁은 태연하게 안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당황해서 물러나게 되거늘 갈지혁은 오히려 반대다. 안개 안으로 들어간 갈지혁이 공중을 향해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
탱!
수투에 맞으면서 암기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하늘로 던졌던 암기 하나가 안개 속을 파고들었지만 갈지혁은 정확하게 예측했던 것이다.
당삼경이 오룡편을 휘둘렀다.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탓이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오룡편이 몸에 닿으면 그 순간 피가 터져 나왔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탓에 하나를 잡는다고 해도 나머지 네 갈래의 끝이 손을 감싼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것이 오룡편의 특징이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 오룡편이 갑자기 무엇인가에 걸린 듯했다.
당삼경이 소리쳤다.
“걸렸다!”
오룡편은 날카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다섯 갈래에 모두 발라진 독들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독이 몸 안에서 섞인다는 건 그만큼 해독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갈지혁은 분명 오룡편을 잡았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오룡편이 팽팽하게 늘어진 채로 공중에 들려져 있는 게 가능하다.
당삼경이 내뱉은 말의 의미를 당무가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그 결과도 안다.
다섯 개의 독에 동시에 중독이 된다. 합성독은 치료 자체가 어렵다.
당삼경은 오룡편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당장에 오룡편을 회수하고 아까 준비하던 회타연편십삼식을 펼칠 생각이다.
“놈!”
그런데 갈지혁이 도통 오룡편을 놓지 않는다. 그 탓에 당삼경은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힘을 써야만 했다.
있는 힘껏 오룡편을 잡아당기던 와중 갑자기 힘이 사라지자 당삼경은 뒤로 넘어질 뻔하고야 말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그는 앞을 노려봤다.
힘이 빠진 것이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
독분에 의해 생겼던 안개가 막 걷히면서 갈지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손을 들고 있었다. 옷소매가 찢겨져 나갔다. 아마도 오룡편 때문에 옷이 찢어진 듯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멀쩡하다.
찢겨진 옷 사이로 갈지혁의 맨살이 보인다. 오룡편의 채찍의 자국이 확실하게 보인다. 그런데……
갈지혁이 걸었다.
땅을 밟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오고 있다.
“뭐, 뭐야?”
다섯 개의 독이 온몸으로 침투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쓰러져야 당연하다. 아무리 독에 내성이 있다 해도 합성독이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독이 몸에 침투했다. 내성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피를 토하고 쓰러져야 한다.
그런데 멀쩡하다.
그건 각기 다른 다섯 개의 독에 대해 모두 내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몸에 어떻게 그런 내성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너무나 멀쩡한 갈지혁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당무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만독…… 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당삼경은 당무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획 돌려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독을 쓰는 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신체다. 그렇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그랬기에 모두가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만독불침지체라고 중얼거린 당무의 말에 뒤에 있던 세 명의 젊은 당문 무인들 또한 눈을 크게 떴다. 갈지혁에 대한 숱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처럼 놀랐던 적은 없다.
특히 당환은 갈지혁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는 당문 내에서도 지독하다고 불리는 자다.
외모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랬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문에서 당환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혀를 찬다. 그 지독한 승부 근성 탓이다. 지금 당환이 그랬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갈지혁이 만독불침지체일지도 모른다.
그 하나의 사실에 당환은 복잡한 심정으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싸워 보고 싶다. 만약 정말로 만독불침지체라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알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무인이라면 의당 그래야 한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피할 생각보다는 붙어 보려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여태까지와는 다른 감정도 동시에 치솟았다.
존경심이다. 웃길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그랬다.
당환은 갈지혁에게 알 수 없는 존경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이 당문의 무인들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저렇게 어린 나이에 이토록 당당하게 저들 앞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것도 압도적인 강함으로.
당문의 무인으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그런 갈지혁에게 완전히 반해 버렸다.
압도적인 강함을 보니 온몸이 절로 떨린다. 저런 사내가 되기를 꿈꿨다.
그 누구의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독인을 말이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갈지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독을 쓸 수도 있지만 굳이 해독을 해야 할 상대들에게 그럴 생각은 없다.
갈지혁이 몸을 날렸다.
그의 손이 움직였다.
멍하니 있던 당무는 급히 발을 움직였다. 당무에게 공격을 하는 갈지혁을 보며 넋을 잃고 있던 당삼경 또한 정신을 차렸다.
그는 갈지혁의 뒤를 잡았다.
당삼경은 급히 장을 휘둘렀다. 비서장((飛絮掌)이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당무에게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당삼경의 공격을 피해 냈다.
‘젠장, 뭐 이딴 놈이…….’
독에 대한 내성뿐만이 아니다. 요상한 암기를 쓰는 것도 같다. 그리고 박투에도 능한 것 같다. 도저히 어디서 갑자기 이런 놈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막 달려들던 당삼경은 가슴에 와 닿는 충격에 뒤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갈지혁의 발이 당삼경의 가슴을 찼다.
“우욱!”
입가로 피를 쏟으며 뒤로 밀려나는 당삼경을 보고 당무가 고함을 질렀다.
“이놈이! 죽여…….”
달려드는 순간 갈지혁의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피할 수 없어!’
화가 난다고 뒤도 생각하지 않고 달려든 것이 실수다.
당무는 눈을 찔끔 감고 말았다.
그 순간,
“멈추게!”
당무의 코앞까지 갔던 손이 멈췄다. 당삼경 또한 식은땀을 닦아야만 했다.
갈지혁의 품에서 나온 사황이 당삼경의 다리 바로 앞에 선 채로 혀를 날름거리고 있던 탓이다.
사황이 다가오는 걸 전혀 몰랐다. 만약 그대로 싸웠다가는 물렸을지도 모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칠갑지주의 거미줄에 갇혔던 당풍이다. 그가 거미줄을 끊으면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용케도 칠갑지주의 거미줄을 녹였다.
“화골산이 없었다면 꼼짝도 못할 뻔했군.”
뼈까지 녹인다는 화골산이 있었던 모양이다.
칠갑지주가 내뱉는 거미줄은 바로 화골산과 같은 독에 힘을 쓰지 못한다.
그걸 용케도 알아차린 듯하다.
“그만하게. 어차피 싸움은 끝났으니.”
“어르신!”
“당무, 당삼경…… 자네들은 분명 강해. 하지만 때로는 인정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일세. 우리가 비록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해도 패한 건 패한 것 아니겠는가. 적이 반드시 우리가 준비한 후에 오는 게 아닐 테니 말이야.”
당풍의 말에 당무는 고개를 숙였다.
당삼경은 애초부터 싸울 의욕을 잃어가던 중이라 그런 당풍의 말에 쉽게 수긍을 했다. 이대로 싸워 봤자 나올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군다나 당풍 또한 무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