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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67화 (67/200)

# 67

17화

당풍이 갈지혁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옆에 있던 당희경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그녀가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당풍을 바라봤다.

당풍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거라. 이 할애비가 졌다. 다시 싸움을 걸 생각은 없단다.”

“하지만…….”

그녀는 갈지혁을 힐끔 봤다.

저 사내까지 그리 생각하는지 모르는 탓이다. 갈지혁의 몸에서 풍기는 위험한 냄새가 그녀를 두렵게 했다.

“알지 않느냐. 저 사내는 무림에 나와서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어.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애초부터 날 죽이려 했다면 아까 저 이상한 줄에 가뒀을 때가 적기였단다. 날 죽일 생각이 없다는 소리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물러서 있거라.”

당풍은 손으로 당희경을 슬쩍 뒤로 밀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갈지혁은 삐딱하게 선 채로 다가오는 당풍을 바라봤다.

축 늘어트린 손, 그리고 긴 머리카락. 바람에 흩날리는 갈지혁의 머리카락이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

“궁금하군. 이렇게 어린 사내가…… 어떻게 이리 강한지.”

바람 탓에 슬쩍 슬쩍 비치는 갈지혁은 분명히 젊다. 그리고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 적어도 당풍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무엇인가를 짊어지고 있는 게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눈빛을 지닐 수 없다.

그리고 이만큼 강할 수도 없다.

“어딜 가던 길이었는가?”

“사천당문.”

“역시.”

예상했던 일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천당문이 있다.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만 가면 되는 거리에 말이다.

갈지혁은 독인이다. 그런 그가 이 근방에 있다면 답은 뻔하다. 사천당문에 일이 있어서다. 그리고 그가 섬서에서 했던 비무행도 그런 예측을 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곳에…… 무슨 이유로 가려고 했는가.”

“당문의 독이 보고 싶어서입니다.”

“독이 보고 싶어서라…….”

비무를 하겠다는 말이다. 사천당문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아까였다면 막연히 웃었을 게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갈지혁이라는 자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알아 버린 탓이다. 갈지혁을 안 지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당문의 독이 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당문의 독이 무림제일이라고 해서입니다.”

“그게 다인가?”

“물론입니다.”

갈지혁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당문에 그 이상의 용무는 없다는 듯한 태도다.

실제로 갈지혁이 당문에게서 원하는 것은 없다.

당풍은 말없이 갈지혁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지 않는다.

이 자를 사천당문으로 오게 하는 게 옳은가 아니면 막는 것이 옳은가.

문제는 지금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답은 내려진 것이 아닌가.

갈지혁은 사천당문으로 올 것이고, 그것을 지금 막을 수는 없다. 그가 와서 당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리와 함께 가지. 어차피 돌아가고 있던 길이니.”

“할아버지!”

“어르신!”

모두가 당황스럽게 소리쳤지만 당풍은 못 들은 척 갈지혁을 바라봤다.

갈지혁은 뒤에 서 있는 진검백을 확인한 후 대답했다.

“어차피 갈 길, 길을 아는 분의 도움을 받는다면 편하겠지요. 동행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당풍의 말을 들은 당문의 무인들은 전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갈지혁과 동행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유독 당환만은 반대였다.

갈지혁에 대해 알고 싶다. 어떻게 무공을 익혔고, 사부가 누구인지도.

당환의 눈이 빛났다.

* * *

밤이 지나갈 때까지 두 무리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유독 당풍만이 갈지혁과 진검백에게 말을 걸었을 뿐, 나머지는 입조차 열지 않는다.

갈지혁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탓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당환은 참아야만 했다.

갈지혁에 대해서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무엇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 강함이 궁금하다.

강해지고 싶다. 갈지혁처럼 강해져 모두의 앞에서도 당당하고 싶다.

그 또한 독왕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물론 독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지만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는 그 꿈을 그 또한 아직도 미약하게나마 꾸고 있었던 것이다.

당환은 계속해서 갈지혁을 바라봤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다.

갈지혁은 자리에 누웠고, 진검백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마음만 독하게 먹는다면 암습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둘은 너무나 태연했다.

여유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지……

갈지혁과 진검백은 편하게 잠에 빠졌지만 당문의 무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다들 다른 이유에서겠지만 갈지혁이 당문에 오면서 일게 될 파문 탓이 가장 컸다.

분명 이자라면 당문에 와서 사고를 칠 게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되든 당문 입장에서 좋을 게 없다.

솔직히 말해 당무는 갈지혁에게 동행하자고 한 당풍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끄럽지만 합공을 한다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이긴 하다. 그렇지만…… 당문을 욕되게 한 자와 같이 있는 것이 그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속내가 그렇다 해서 당무가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풍이 당무보다 훨씬 윗사람인 탓이다. 스승이라고 봐도 되는 당풍에게 당무가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다. 비록 갈지혁이 잠들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정도를 놓칠 리가 없다.

그랬기에 당무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갈지혁을 바라보던 당풍이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도 눈 좀 붙이지. 또 걸어야 할 테니.”

“어르신…….”

“아네. 당무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하지만 이게 최선의 방도라고

생각했기에 나도 이리 한 걸세. 자네가 이해 좀 해 주게.”

당풍이 그리 나오니 더 이상 당무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불편하게 자리를 잡고 눈을 붙였지만 당풍만은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갈지혁에게 패한 것이 어찌 쉽게 넘어갈 일이겠는가.

무인의 길을 걸으며 처음 패배하는 건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때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사천당문에서 손꼽히는 그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패배한 것은 분명 이야깃거리가 될 정도로 우스운 일이다.

너무나 나태했던 것이다. 제대로 무공 훈련을 했던 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긴장을 풀고 살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적어도 이 같이 패배하지는 않았으리라.

상념에 잠겨 있던 당풍은 서서히 해가 떠오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 한숨 자지 않았거늘 피곤한지를 모르겠다.

생각할 것이 많다. 당문에 돌아가면 자숙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약을 위해 독에 대해 파고 들 것이다.

해가 떠오르자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갈지혁이다. 그는 해가 뜨기가 무섭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갈지혁은 옆에 있는 진검백을 발로 툭툭 쳤다.

“어이, 일어나.”

“조금만 더…….”

중얼거리는 진검백을 바라보던 갈지혁이 조금 더 세게 발로 차며 말했다.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같이 동행할 사람들도 있어. 일어나.”

“아아, 그랬지 참.”

진검백은 귀찮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그 꼴이 영락없는 철부지 아이 같다. 진검백의 행동 하나하나에서는 왠지 모를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것이 거짓이든, 아니든 말이다.

둘이 일어나자 당풍은 당문의 무인들도 깨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반쯤 선잠을 자고 있던 탓에 당풍이 말을 걸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났다.

“준비해. 바로 떠날 테니.”

크게 준비할 것도 없는지라 그들은 짐 몇 개만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과 진검백 또한 더하면 더한 상황이다. 그들은 거의 빈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짐이 없다.

“길은 내가 안내하지. 자네들은 따라오게.”

“그리 하지요.”

진검백은 당풍이 앞장서겠다는 말에 쉽게 수긍했다.

어차피 이 부근의 길은 당풍이 잘 안다. 가장 편하고 빠른 길로 당문에 갈 수 있을 게다.

당풍이 가장 선두에 섰고, 바로 그 뒤를 당문의 무인들이 바짝 뒤쫓았다.

갈지혁과 진검백은 그런 그들의 후미에 선 채로 당풍의 뒤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 * *

정확하게 하루하고 반나절이다.

그 시간이 지나자 갈지혁의 눈앞에 커다란 문파 하나가 서 있다.

사천당문이다. 당풍의 뒤를 따르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천당문까지 올 수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사천당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꽤나 복잡했을 게다. 신분도 모르는 갈지혁을 그들이 들여보냈을 리가 없다.

분명 싸워야 했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고, 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문의 무인들에 끼어서 오니 문을 지키던 무인들은 갈지혁을 막지 않았다. 당풍이라는 존재가 당문에서 가지는 의미가 크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풍은 앞서 걸어가면서도 갈지혁의 행동을 유의 깊게 살폈다.

조금이라도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당풍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갈지혁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조용히 당풍의 뒤를 따라 걷기만 했다.

앞장서 걸으면서도 내내 불편했다.

갈지혁을 누구와 만나게 해 주며,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우선은 데리고 온 것도 자신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풍은 당무에게 말했다.

“둘을 데리고 내 거처로 가 있게. 내가 다시 연락 주지.”

“그리하지요.”

당무에게 말을 하고 당풍은 방향을 바꿨다.

이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발이 가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주인 당려환이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당풍의 걸음걸이는 더디기만 하다.

당려환의 거처를 지키던 무인이 당풍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안에 계시는가?”

“물론입니다. 드시지요.”

“그래.”

내심 없기를 바랐건만 있는 모양이다. 당풍은 쓴 미소를 짓고 이내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선 방은 화려하지 않다. 의자 몇 개와 커다란 책상 하나가 거의 전부라고 봐도 될 정도다. 그런 방 정 중앙에 한 사내가 있다.

당문의 가주인 당려환이다.

“문주, 제가 왔소이다.”

“오, 그래 일은 잘되었소?”

“물론입니다.”

“역시 당풍이요.”

“과찬이십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당풍은 말을 마치고 당려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던 당려환은 당풍의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소? 할 말이 있는 듯한데.”

“그게…… 손님을 한 명 데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손님?”

당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 하나를 데리고 온 것이 무엇이 그리 눈치를 볼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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