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18화
당려환은 눈치가 빠르다. 그리고 머리도 비상한 인물이다.
“그 손님이 어떤 자기에 당풍이 눈치를 보는가.”
“아실지 모르겠지만 갈지혁이라고…….”
“갈지혁? 섬서의 갈지혁?”
“예.”
당풍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서 만났으며, 왜 데리고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되면 우습게 패한 것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행히 당려환은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당려환의 반응을 살피던 당풍이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것이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모습이다.
“갈지혁이라…… 만나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군.”
“가주…….”
거짓은 아닌 듯싶다.
당려환은 갈지혁을 만나 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래, 그자가 어디에 있는가?”
“우선은 제 거처에 있습니다. 화산파의 진검백과 함께 그곳에서 기다리게 했소이다.”
“큭큭, 아무래도 우리 둘은 인연이 있는 모양이야. 그놈…… 꼭 만나보고 싶을 때 나타나는 걸 보니 말이야. 그 자를 불러 주게.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그리하지요.”
당풍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사라지자 당려환이 미소를 지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딱히 부를 만한 이유도 없었고, 또 시간에 쫓겨 무엇인가 연락을 취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왔다. 갈지혁이라는 그놈이 제 발로 걸어서 들어왔다.
‘큭큭, 재밌게 됐어.’
당려환이 계속해서 큭큭 웃었다.
사라졌던 당풍이 이내 두 사내를 데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완전히 그 겉모습이 달랐다. 당려환은 단박에 누가 갈지혁이고, 다른 하나가 진검백인지 알아차렸다.
“어서들 오게. 앉지.”
당려환은 앉은 채로 그들을 맞이했다. 손으로 가리킨 반대편으로 갈지혁과 진검백이 앉았다. 당풍은 뒤에 선 채로 어찌해야 할지 기다리는 듯했다.
“당풍, 앉지 않고 뭐하시오.”
“알겠습니다.”
당풍은 당려환의 말이 떨어지고서야 의자에 앉았다.
당려환은 갈지혁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갈지혁?”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저 친구가 화산의 진검백이겠군. 만나서 반갑네.”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한 당 문주님을 만나 영광입니다.”
진검백이 대답했다.
당려환은 인상 좋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당려환은 독기로 똘똘 뭉친 사내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결국은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야 만다.
당려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갈지혁의 눈빛을 마주하며 말했다.
“한 번쯤 보고 싶었어. 그리고 언제인가 볼 거라고는 생각했지. 물론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후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제가 찾아온 이유를 아십니까?”
“자네가 날 찾아온 이유? 이제야 마주했거늘 그걸 알 턱이 없지.”
당려환이 대답했다.
대충 눈치를 채고는 있지만 갈지혁이 직접 말하는 것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갈지혁이 말했다.
“가주와 싸우러 왔습니다.”
“나와?”
“정확하게 말해서는 당문의 독과 싸우러 온 것입니다. 그 독을 가장 잘 쓰는 것 또한 가주일 확률이 크니까.”
“후, 후후! 이야기는 들었지만…… 당돌하군.”
당려환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이야기를 들어서 알았다. 그리고 대충 어떠한 성격의 인물인지도 파악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최근의 일 또한 당려환은 들어서 알고 있다.
“얼마 전…… 적검과 풍도를 꺾었다지? 나이에 맞지 않는 압도적인 무위를 보였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갈지혁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며칠 되지도 않은 일이거늘 벌써 당려환의 귀까지 들어갔다. 그만큼 당문의 소식통이 무림에 널리 퍼져 있다는 소리다.
당려환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를 홀짝이던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독왕대로행이라는 깃발을 들고 다닌다고 알고 있네. 무슨 짓을 하는 건가?”
“깃발에 적힌 대로입니다. 독왕이 되려는 것뿐입니다.”
“어리석어. 만약 그렇다고 해도 감췄어야지 되는 게 무림이야. 넌 너무 튀었어. 결국은 무림에서 널 제거하려고 들걸.”
“어차피 싸워야 합니다. 그 정도에 죽으면 제가 그만한 그릇이었을 뿐이겠지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너무나 당당하게 대답하는 갈지혁을 보며 당려환은 웃음을 터트려야 할지 눈물을 흘려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아직 어리다. 아직도 꿈만을 쫓아서 달리고 있다. 아무런 것도 없으면서 그저 꿈 하나만 보고 살아간다.
“미안하지만 너에겐 아무것도 없어. 네가 죽어도…… 무덤 하나 만들어줄 사람 없을 걸.”
“죽은 후의 일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를 위해 울어 줄 사람 하나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지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비록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갈지혁이 허튼소리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당려환이 진지하게 말했다.
“현 무림에서 독왕은 불가능해.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너처럼은 아니야.”
“누구나 다 같은 소리를 하는군. 다들 독왕이 불가능하다고만 말하지요. 해 보려고 들지는 않고 불가능, 불가능. 그런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너무 깊게 박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나름대로 재미있는 대답이긴 하네만…… 그게 사실이니까.”
당려환은 갈지혁에게 쐐기를 박듯 말했다.
갈지혁 또한 더 이야기를 하고자 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문에 온 것이 당려환을 설득시키기 위함이 아닌 탓이다.
싸우러 왔다.
당문의 독을 보려고 왔다.
그것만 보면 된다. 그것으로 이곳에 온 목적은 끝인 것이다.
갈지혁이 말했다.
“어차피 말은 통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독으로 이야기하지요.”
“내가 왜 너와 싸워야겠는가. 어차피 싸워서 이기든 지든 나는 아무런 것도 얻을 것이 없는데.”
당려환의 말대로다.
둘이 싸운다 치자. 누가 이기던 당려환에게 이득 될 것은 없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패하기라도 한다면 그 꼴이 더 우습게 된다.
괜히 그런 짐을 짊어지고 당려환이 싸울 이유가 없다.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 여태까지 무패라는 것도 그렇지만, 싸워 오던 과정에 대해서도 다 들었어. 같은 독의 길을 걷는 입장에서 난 너에게 충고를 해 준 것뿐이야. 너무 튀어 나왔어. 죽고 싶지 않으면…… 숨길 줄도 알아봐.”
일전에 당려환은 이노와 갈지혁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노가 말했다. 갈지혁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당려환뿐이라고. 그를 거두라는 식으로 이노가 말했고, 당려환 또한 갈지혁에게 관심이 있다.
그가 쓴 독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그 독들에 대해서 알고 싶다.
적어도 당문에는 없는 독이다. 당문엔 무림에 있는 모든 독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늘 갈지혁이 쓰는 것들은 모두 다르다.
“당가의 독을 보고 싶다 했지? 그럼 내가 자네 나이에 맞는 자로 소개시켜 주지. 그자와 겨루어 보면…….”
“가주인 당신이 덤벼도 날 못 이겨.”
그때 말머리를 자르면서 갈지혁이 말했다.
아까까지 온순하게 대답하던 말투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해 봤자 말만 길어질 거라고 판단한 탓이다. 갈지혁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뭐?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믿기 어려운가 본데, 애초부터 난 당신이 내 상대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그냥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라고만 생각하지. 내 목표는 당신이 아니거든.”
“허허, 나한테 도전하겠다는 거냐? 네놈이 강하다 해도 난 바로 사천당문의 주인인 당려환이야. 네놈이 기어오르기에는 아직 멀었다.”
당려환은 갈지혁이 자신을 도발하고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이토록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고도 웃으면서 넘길 성격은 아니다.
한 번쯤 그 독이 어떠한 건지 몸으로 느끼고 싶기도 했다.
다만 당문의 가주라는 자가 이런 자리에서 손을 겨루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사천당문이라는 이름, 내가 꺾어 주지.”
그 말에 당려환은 참고 있던 화를 터트렸다.
“오냐. 나 또한 좋게 좋게 해결하려고 했거늘…… 네놈이 결국은 날 건드리는구나.”
당려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끼어들지 않고 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당풍이 이마를 찌푸렸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애초부터 싸우려 온 자에게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보여 주마. 네놈이 그토록 쉽게 꺾겠다고 말하는 당문의 독이 어떠한 것인지.”
당려환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했다.
갈지혁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는 당려환이 화를 내면서 자신의 도발에 넘어오기를 바랐다. 성공했지만 갈지혁은 오히려 긴장해야만 했다.
당려환의 눈빛 탓이다.
알면서도 넘어 온 게다. 지금 그는 갈지혁의 도발에 넘어가는 척하면서 사천당문의 가주라는 위치를 슬쩍 넘겼다. 만약 그냥 갈지혁이 싸우자고 했을 때 받아들였다면 나중에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명분이 있다.
사천당문이 모욕을 당했다는 명분이 말이다.
그는 애초부터 갈지혁에게 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게다. 그렇지 않으면 명분이 생긴 지금 바로 싸우려 들지 않았을 테니까.
‘침착하군. 쉽지 않겠어.’
이렇게 싸움에 임하면서 침착하다는 건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고 냉철하다는 소리다. 적어도 지금 앞에 있는 당려환이 그렇다.
“따라오거라.”
자리에서 일어난 당려환이 걷기 시작했다. 문을 박차고 나서는 그의 뒤를 세 명이 뒤쫓았다.
갈지혁의 옆에 붙은 진검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생각이냐?”
“싸워야지.”
“그래서?”
“내가 보려고 했던 독은…… 겨우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것이 전부다. 갈지혁이 보려고 했던 사천당문의 독은 당풍이 보였던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삼류였다. 단순히 위험해서 되는 대로 뿌린 독일뿐이다.
갈지혁이 원하는 것은 몇백 년을 무림에서 버티게 했던 사천당문의 진짜 독이다.
말을 마친 갈지혁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진검백 또한 애초부터 말리려고 했던 게 아니다. 갈지혁의 고집을 잘 안다. 이미 이곳에 올 때부터 싸우려고 왔거늘 말려 무엇 하겠는가.
‘이번엔 쉽지 않을 거야.’
상대가 당려환이라면 아무리 갈지혁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상대다. 그는 강하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치밀한 자이기도 하다.
손해 보는 짓은 결코 하지 않고, 무림에서 딱히 튀지도 않고 있다. 문제는 당려환이라는 사내가 능력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무섭다. 능력이 있는 자가 튀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걸 몇십 년을 계속해 온 당려환은 독한 자다.
지금 당려환이 가고 있는 곳은 사천당문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아니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연무장이다.
겉보기에는 그다지 빼어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무튀튀한 벽이 불쾌감을 일게 한다. 하지만 그 돌은 독에 내성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상당히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만든 연무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