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20화
만약 근방에 생명을 지닌 나무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당장에 시들었을 게다. 그만큼 갈지혁의 몸에서 풍기는 독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려환은 갈지혁이 자신의 예상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걸 알아차렸다.
갈지혁의 몸에서 풍기는 독기 탓이다.
이 정도라면 삼류 무인들은 다가오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야 만다.
갈지혁의 손이 움직였다.
장법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에 당려환 또한 손을 움직였다. 삼양신장(三陽神掌)이라는 당문의 장법이다.
두 개의 힘이 부닥치는 것과 동시에 당려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마구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지만 당려환은 발로 연신 땅을 찼다. 그랬기에 그는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땅에 설 수 있었다.
멈추어 선 당려환은 놀란 눈으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삼양신장은 독의 위력을 줄이고 파괴력을 늘린 장법이다. 갈지혁이 장법을 사용하기에 재빠르게 대처를 한 것이다. 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삼양신장의 파괴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런데 막상 두 개의 힘이 부닥치는 순간 당려환은 버텨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만약 그대로 욕심을 부리고 버티려 했다면 지금쯤 한 웅큼의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을 게다. 그만큼 위력적인 장법이라는 소리다.
‘독장이 이만한 파괴력이라고?’
사천당문의 가주인 그다. 독에 대해 능통하고 독장에 대해서도 잘 안다. 독장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그가 모를 리가 없다.
파괴력이 약한 독장의 단점을 잘 알기에 그에 맞게 대응했다. 그런데 오히려 밀려 버렸다. 상식을 뒤엎어 버린 것이다.
당황했지만 당려환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마도 운기하는 독공과 장법이 특이한 탓이리라.
모든 것이 궁금하지만 결과는 이겨야만 알 수 있다.
당려환이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쉑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비수가 날아들었다. 수십 개의 비수가 단 하나를 노렸다.
갈지혁이다.
갈지혁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손을 내뻗었다. 경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바람의 움직임이 사뭇 강하다.
갈지혁의 몸 주변에 회오리치듯 바람이 흔들렸다. 날아드는 비수들은 마치 낙엽처럼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당려환이 급히 손을 움직였다.
수투를 낀 손에 단환이 잡히는가 싶더니 그것이 갑작스럽게 모습이 사라졌다. 당려환이 내공을 운기하는 순간 공기 중으로 녹아 버린 것이다.
당문십독의 하나, 풍환단(風煥丹)!
평소에는 단환의 모습이지만 그것이 당문 고유의 내공과 만나게 되면 그 순간 녹아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당하는 자는 지옥을 보게 된다. 화산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온몸이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한다.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혀를 깨무는 자도 있을 정도다. 물론 버틴다 해도 결국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게 되지만.
해독약은 물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알아낼 것이 있는 갈지혁에게 이런 지독한 독을 쓸 리가 없다.
갈지혁은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단환을 봤다. 그 또한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름대로 파악을 했다.
‘당문십독이다!’
갈지혁은 당문십독 중 하나를 만드는 백황사를 본 적이 있다. 사독문에 있는 사로를 걸을 때 본 바로 그 뱀이다. 그때 느꼈던 위압감을 갈지혁은 잊지 않았다.
아무리 갈지혁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당하면 결코 좋을 것이 없다.
그런데 갈지혁은 그냥 선 채로 그 독에 몸을 맡겼다. 가만히 서 있던 갈지혁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쿨럭!”
입에서는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 나왔다.
“갈지혁!”
보고만 있던 진검백이 놀라 소리쳤다. 비록 당려환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토록 쉽게 갈지혁이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갈지혁이 당했다.
지금 갈지혁은 독에 중독됐다.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고 식은땀을 마구 흘리고 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상태가 확연하다는 소리는 그만큼 위중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당려환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싸움은 끝났다. 갈지혁은 졌고, 당려환은 이겼다.
“……넌 졌어. 인정해라.”
갈지혁은 가슴을 움켜쥔 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슬쩍 드러난 눈이 핏기가 가득 찼다. 그 모습이 사뭇 공포스러웠지만 당려환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난 싸움이다. 당문십독에 중독된 이상 버틸 수 없다. 당문십독의 대부분이 바로 즉사인 것에 반해 풍환단은 꽤나 오랜 시간 고통을 주면서 천천히 목숨을 갉아 가는 독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죽어.”
“…….”
갈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용케도 버티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고통에 못 이겨 악을 쓰면서 땅을 나뒹굴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자존심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끝끝내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다.
‘그래 봤자야. 어차피 자신만 고통스러울 뿐. 항복하지 않으면 죽어. 그걸 모를 놈이라면…… 죽어도 상관없지.’
그만한 그릇이라면 죽는다 해도 아까울 게 없다. 비록 연화칠갑의 수투를 만들어 내는 자를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일 게다.
그때 버티고 서 있던 갈지혁이 심하게 피를 뿜어냈다.
그대로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거늘 갈지혁은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다. 갈지혁이 천천히 손을 올렸다.
‘살아…… 있다?’
당려환은 내심 놀라 버렸다. 분명 방금 전 각혈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갈지혁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손을 움직였다.
움직인 손은 갈지혁의 입가로 향했다.
소매로 입을 훔친 갈지혁은 천천히 말했다.
“이게…… 당문십독이군.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야.”
말하는 것이 꽤나 고통스러운 듯했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갈지혁은 살아 있다. 그리고 당문십독을 쓴 걸 알면서도 당했다.
답은 하나다.
직접 몸으로 당문십독을 받아 보려고 했던 것이다. 당려환의 안색이 눈에 띌 정도로 파리하게 변했다.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당문십독을 몸으로 받아 볼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아무리 내성이 대단하다 해도 당문십독에 당하면 죽는다. 그렇지 않으면 당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갈지혁이 살아 있다는 거다.
당문십독을 몸으로 받아 내고 살아 있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너…… 뭐 하는 놈이냐?”
당려환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상식적으로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믿을 수 없지만 믿어야 한다.
그 미친 짓을 한 자가 지금 눈앞에 있으니까.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았으니까.
갈지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피가 가득 묻어 있는 그 손은 상당히 괴기스럽다.
“이번엔 제 차례군요.”
들어 올린 그의 손에서 갑작스럽게 무엇인가가 쏟아졌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이다. 그렇지만 당려환이 그런 공격에 당할 리가 없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는 거미줄을 피해 내면서 오히려 일장을 휘둘렀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에 당했던 당풍은 당려환의 직감에 내심 놀란 듯했다.
당풍 또한 피하지 않고 막아 내려고 하다가 큰 변을 당했다. 그런데 당려환은 거미줄을 보자마자 막아 내려고 하지 않고 피해 버렸다.
간단한 차이지만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다는 소리다.
오히려 거미줄로 당려환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묶어 보려던 갈지혁이 일장에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비록 싸움의 우위에 서 있지만 정작 당려환은 어떻게 갈지혁을 상대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당문십독의 하나인 풍환단을 몸으로 버텨 낸 놈이다. 물론 다른 당문십독들도 많이 남긴 했지만 섣불리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해 버린 놈이니까.
풍환단은 당문십독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는 독이다.
다른 독을 쓴다면 갈지혁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독에 중독되어 괴로워 할 때 잡아 버려도 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손을 들어 올려 다른 당문십독을 하독해도 되거늘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만약 이번에도 견뎌 낸다면……
당문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하루아침에 말이다.
당문십독이 바로 당문의 자존심이다. 그랬기에 함부로 사용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뒤로 물러서던 갈지혁의 손이 허공을 휘젓는 순간 당려환은 급히 몸을 젖혔다. 허공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불꽃이 인다.
‘젠장!’
어깨 부근이 터져 버리면서 고통이 온몸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어 버렸다.
재빠르게 손을 들어 올려 어깨 부근을 만져보니 끈적끈적한 무엇인가가 묻어난다.
피다. 살점이 터져 나가면서 피가 흘러나온다.
갈지혁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위력적인 장법이 당려환에게로 쏟아졌다.
당려환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손을 마주했다.
‘내공으로 승부해야 돼!’
장법의 위력이 다르다. 그렇다면 내공이다. 내공의 월등함으로 갈지혁을 내리눌러야 한다. 적어도 내공이라면 당려환이 앞설 게다.
손이 마주 닿았다.
콰앙!
“크윽!”
그대로 뒤로 날다시피 밀려난 당려환이 벽에 처박혔다. 갈지혁의 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당려환의 몸이 부닥친 벽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당려환은 박살이 난 돌 아래에 깔려 버린 것이다.
흑석은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하면서도 엄청나게 단단하다.
심지어 쇠보다도 단단하니 말해서 무엇하랴.
당려환이 그런 흑석에 몸이 처박히며 쓰러지자 당풍이 소리쳤다.
“가주!”
“오지 맛!”
자신에게 달려오는 당풍을 향해 당려환이 고함을 질렀다.
흑석을 밀면서 당려환이 천천히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의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도 없다.
그는 이를 부득 갈았다.
“내게 손 끝 하나 대지 말게. 싸움은 아직 안 끝났거든.”
갈지혁을 바라보는 당려환의 눈이 살기로 이글거렸다.
이런 수모는 처음이다.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공에서도 밀려 버렸다. 아니, 채 내공을 운기조차 하기도 전에 그 위력에 밀려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널 너무 얕봤군.”
“얕봤던 아니던 결과는 같을 겁니다. 당신은 절 이기지 못하니까.”
“우습군.”
“그게 진실이니까요.”
당려환은 침을 뱉었다. 입 안에서 피가 가득 배어 나왔다. 입 속도 터져 버렸지만 내상까지 입은 것이 문제다. 계속해서 속이 들끓는다. 당장이라도 온몸의 피가 역류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려환은 자세를 잡았다.
막 다시금 움직이려던 당려환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머리가 아파 온다.
‘뭐야…… 도대체 언제…….’
갑자기 몸이 왜 이러는지 당려환이 모를 리가 없다.
독에 당했다. 우습게도 독인이 독에 당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내상을 입어 비실거리는 틈을 이용해 독이 몸에 침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