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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71화 (71/200)

# 71

21화

막 쓰러지려던 당려환은 옆에 있는 벽을 손으로 짚었다. 땅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당려환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지향석……?”

땅에 스며들고서야 위력을 내는 독이다. 문제는 그다지 강한 독도 아니고 독성도 강하지 않다는 거다.

도대체 무엇을 재료로 만든 지향석이기에 이 같은 위력을 낸다는 말인가.

당려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갈지혁이 말했다.

“백황사의 독으로 만든 지향석입니다.”

“백황사!”

백황사라는 말에 당려환은 놀라 버렸다.

백황사의 독은 당문십독 중 하나다. 그런 독을 갈지혁이 어떻게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걸 어떻게 지향석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런 제조 방법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벽에 손을 짚은 채로 당려환은 갈지혁을 노려봤다. 백황사의 독은 당문십독의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지향석으로 가공되면서 그 위력이 많이 줄었다 해도 극독임은 분명하다.

눈이 점점 뿌옇게 변한다.

시간이 없다.

‘내가 지면…… 당문이 지는 것이다.’

소문이 나게 할 수 없다.

당려환이 진 것이 무림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당문은 당장에 놀림거리가 되고 만다.

갈지혁에게 무너진 구양세가가 그랬다. 다행히 구양세가는 정파 무림과 많은 연을 맺고 있다. 더군다나 구양세가는 화산파와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사이다.

화산파와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이상 구양세가를 욕되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당문은 아니다.

당문은 정파이긴 해도 모두가 멸시한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기회라고 여겨 당문의 위세를 더욱 떨어트리려고 들 게다.

당려환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지막 한 수를 쓰는 수밖에 없다.

당문십독(唐門十毒) 중 제일독(第一毒) 무형지독(無形之毒)!

당려환은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떼고 아래로 축 내려트렸다. 소매를 타고 둥그런 작은 공 같은 무엇인가가 손에 떨어졌다.

무형지독이 당문의 제일독이라면 지금 손에 쥔 이 작은 공 같은 것이 천뢰구(天雷球)라고 불리는 당문 제일의 암기다.

“미안하지만 질 수는 없어서 말이다. 살려서 거두려고 했지만…… 죽어 줘야겠다.”

당풍은 당려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결국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듯하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갈지혁은 당려환의 표정에서 무엇인가를 벌이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수라독공의 모든 힘을 끌어 모았다. 몸 주변에 일던 넘실거리던 녹색의 기운이 몸 안으로 사그라졌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잠시 둘 사이를 갈랐다.

당려환은 이미 반쯤 몸이 망가진 상태다. 장력의 힘을 그대로 받은 것도 그렇지만 백황사의 독에 중독되어 버렸다.

이대로 가면 반드시 죽는다.

‘한 번뿐이다.’

그 기회를 놓치면 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반드시 이긴다. 아니, 반드시 죽여 버린다.

당려환의 손에 쥐어져 있던 천뢰구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천뢰구는 갈지혁을 노렸다.

딱.

땅과 닿는 순간 천뢰구가 터져 버렸다. 천뢰구가 폭발하면서 강한 열기와 함께 파공강침이 터져 나왔다.

수천 개에 달하는 파공강침이 갈지혁을 노렸다. 고수들의 호신강기까지 뚫어 버리는 이 천뢰구는 무림에서 금기시 되는 물건이자, 당문 최고의 암기다.

천뢰구에서 터져 나오는 파공강침을 마주하게 되면 사람이건 무엇이건 고슴도치가 되어 버린다.

파파팍!

셀 수도 없이 많은 파공강침이 갈지혁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갈지혁은 망설일 것도 없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사방으로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갈지혁의 품안에서 빠져 나와 허공을 채우기 시작한 것은 가루였다.

가루는 파공강침을 녹였다.

남만에 있는 나방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사연아(死烟蛾)라는 나방이 있다.

독황독립문에서조차 건드리기를 꺼려하는 놈이다. 남만에서도 희귀종인 나방으로 산란기가 되면 지독한 독기를 지닌다.

하늘을 날면서 날개에서 떨어지는 가루는 자연을 죽인다. 나무가 녹아내리고, 바위조차도 흙으로 변한다.

지독한 독이다.

그런 사연아의 가루를 갈지혁은 파공강침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

갈지혁의 몸으로 날아들던 파공강침이 녹아내린 것은 사연아의 가루 때문이다. 한 번의 제조 과정을 거쳐 더욱 강해진 사연아의 독은 못 녹이는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공강침이 갈지혁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하고 녹아내린 탓에 당려환은 놀랐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싸움의 끝을 내는 건 애초부터 천뢰구가 아닌 무형지독이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망설일 것도 없다.

잠시 틈이 생긴 사이 이미 무형지독의 하독 준비가 끝났다.

하독하는 방법도 모른다. 냄새도, 색깔도 없다.

형체조차 없어 그것이 액체인지, 가루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당문의 제일독인 무형지독이다.

모든 것을 녹이고, 모든 것을 죽게 만든다.

무형지독이란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게 만드는 그러한 독이다.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기에 해독 방법 또한 모른다.

심지어 당문조차도 그 해독법을 모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

당려환은 자신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억지로 천뢰구를 터트렸다. 그 탓에 파공강침 중 일부가 복부에 틀어박혀 버렸다.

몸이 완전히 엉망이다. 파공강침에 발라져 있는 독기가 몸을 침투했다.

당려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받아 보거라. 네놈이 만약 이것을 받고도 살아 있는다면…… 네놈의 승리다.”

당려환의 말에는 강한 신념이 담겨져 있다. 갈지혁은 직감적으로 당려환이 최고의 암기나 독을 사용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무형지독……?’

당문 독 중 제일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당하는 즉시 즉사되기 일쑤며 그것은 가히 전설에 가까운 독이다.

이번만큼은 그냥 몸으로 받을 생각을 버렸다.

다른 독이라면 몰라도 무형지독이다. 일악천 또한 당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무형지독 만은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갈지혁의 몸이라면 버텨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갈지혁 또한 서서히 당려환을 향해 다가갔다.

이에는 이요, 눈에는 눈이다.

당려환이 무형지독을 쓰려고 한다면 갈지혁 또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최고의 독을 보이려고 한다.

당려환의 손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닫혀 있던 연무장의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것은 노인들이다.

네 명의 노인들. 바로 당문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인 사노(四老)들이다.

“가주 멈추십시오.”

“막아도 소용없네 일노.”

사노 중 제일 위인 일노에게 당려환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지금 싸워 봤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소. 그리고 지금 가주의 행색을 보아하니 그것을 쓸 모양인가 본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소?”

“칫…….”

당려환은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사노라는 존재들은 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거늘 용케 알아냈던 모양이다.

아마 갈지혁, 진검백과 함께 당문으로 돌아온 자 중에서 하나가 말했으리라.

일노는 고개를 돌려 갈지혁을 바라봤다. 갈지혁 또한 그를 바라봤다. 흥이 막 이는데 나타나 싸움을 막은 자들의 등장이 반가울 리가 없다.

일노는 백 세가 넘은 노인이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건재하고, 강하다.

흰머리의 노인이 갈지혁에게 인자한 듯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도…… 그만하게.”

“당신은?”

“당문을 지키는 네 명의 수호신 중 하나인 일노라고 하지.”

“일노……?”

갈지혁 또한 당려환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싸움은 사노의 등장으로 그렇게 끝나 버렸다.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내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 * *

방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

당려환이 웃통을 벗고 치료를 받고 있는 탓이다. 그가 부상을 입은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했기에 이토록 방에서 따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사노 중 삼노가 바로 의술에 능통했기에 당려환은 그에게서 치료를 받았다.

고통스러운지 그는 눈을 찌푸렸다.

당려환의 앞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

갈지혁과 진검백, 당풍과 사노였다.

삼노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치료가 끝난 듯하다.

“몸 좀 함부로 굴리지 마셨으면 합니다, 가주.”

“이런…… 자넨 언제나 잔소리만 한단 말이야. 뭐 삼노한테는 언제나 신세만 지니 할 말도 없지만.”

어렸을 적부터 자주 다쳐오던 당려환을 치료해 주던 삼노다. 당연히 잔소리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사노는 당려환에게 아비요, 스승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말은 그리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 바로 이 넷이다.

당려환은 옷을 추슬러 입었다.

그는 단정하게 옷을 입고는 침상에서 일어났다. 당려환의 눈이 자연스럽게 갈지혁에게로 향했다. 자잘한 부상은 입었지만 큰 것은 없다. 어떻게 본다면 지금 당려환은 완벽하게 져 버린 것이다.

나이도 많지 않다. 아마도 서른도 되지 못했을 게다. 그런데 이렇게 궁지에 몰려 버렸다. 우스운 꼴을 당했지만 지나고 나니 뭔가 기분이 좋다.

“참 재미있단 말이야. 너란 놈.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지? 안 그런가 일노?”

당려환은 일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노는 그저 인자하게 웃었다.

당려환이 그리 말하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당풍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당문십독의 하나인 풍환단을 몸으로 막은 것도 말이다.

자신이 있었을 게다. 버텨 낼 확신이 없으면서 그리 했을 리가 없다.

솔직히 말해 괴물이다. 괴물이 아니고서야 역대 당문의 문주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기까지 하는 당려환을 이리 만들 수 없다.

당려환은 무형지독을 쓰려고 했다. 그런 몸 상태에서 무형지독을 쓰려 했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였다는 소리다.

만약 무형지독을 썼다면 양패구상이었을 게다. 그랬기에 말렸다. 이런 아무런 이득도 없는 싸움에서 가주를 잃을 수는 없다.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은데…… 내가 이기지 못했으니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 아쉽군.”

궁금한 게 많다.

연화칠갑과 같은 수투를 만들어 낸 자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갈지혁의 사문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진짜 그의 목적이 독왕이 되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갈지혁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아무런 확신도 들지 않는다.

당려환은 의자를 끌어 당겨 앉았다. 상처가 심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잠에 취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앞에 있는 이 갈지혁이라는 사내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많다.

“사문이 어디고를 비롯한 너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묻지 않지. 단,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말하시죠.”

“너…… 정말 독왕이 되고 싶은 것이 전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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