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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75화 (75/200)

# 75

25화

문제는 독황독립문이다. 그들이 지독하게 뒤를 쫓고 있다. 여태까지는 방치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생각을 버렸다.

더 이상 그들에게 자신의 행보를 들키고 싶지 않다.

거의 대놓다 시피 자신의 뒤를 쫓는 그들이 지금도 당문 주변에서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을 게다.

상대가 되지 않는 자들이긴 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일 다경도 되지 않아 모두 죽일 수 있다.

혼쭐을 내 줄 생각이다. 다시는 뒤를 쫓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당문의 도움 또한 갈지혁에게는 은근히 힘이 된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던 갈지혁이 중얼거렸다.

“나와.”

대답은 미풍이 했다.

살랑거리는 미풍만이 갈지혁의 말에 대답했을 뿐 아무런 것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무엇을 나오라고 하는 것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늘 갈지혁은 재차 말했다.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알아? 나와. 안 그럼 그 자리에서 죽게 해 주지.”

“……들켰군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지혁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다.

사내고, 외모는 평범하다.

“당환이라고 했나?”

“이름을 기억하시는 모양입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아니고를 떠나 이 늦은 밤에 그것도 이렇게 나타난 이유가 뭐냐.”

몰래 숨어서 갈지혁을 살피던 것은 당환이었던 모양이다.

갈지혁과 당풍의 싸움에서 그의 압도적인 무위에 빠져 버린 당환이다. 갈지혁의 신들린 무위는 무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당환을 빠져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당문으로 오는 길 내내 어떻게든 갈지혁과 이야기를 해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모두의 눈이 갈지혁에게 향하는 탓이다.

당풍을 무너트린 그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당문의 무인들 대부분 갈지혁을 경계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갈지혁에게 쉽사리 말을 걸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헤어졌지만 그 아쉬움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이 많다. 어떻게 하면 그토록 강해질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 모든 것을 떠나 갈지혁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당풍이 말했다.

“저와…… 싸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웬 헛소리냐는 듯이 갈지혁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싸워 주겠냐는 것이니 아니 그렇겠는가.

“당신이 너무 강해서 싸워 보고 싶습니다.”

“돌아가.”

“이미 와 버렸습니다. 저 또한 이곳은 허락 받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죠.

그런데 들어왔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그럼 편하겠군. 다른 사람을 부르기 전에 냉큼 나가. 괜한 싸움은 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지.”

갈지혁은 단호했다.

굳이 당환과 싸울 생각은 없다. 그가 강하던 아니던 그게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싸워 봤자 갈지혁에게 나올 것이 아무런 것도 없는 싸움이다.

더군다나 갈지혁이 보기에 당환은 당풍보다도 약하다. 당풍조차 갈지혁에게는 우스운 상대였다. 당환이 덤빈다 해도 이길 확률 따위는 전혀 없다.

그걸 알 텐데도 그는 지금 우기고 있는 것이다.

“못 갑니다.”

당환의 말에 갈지혁은 짜증이 일었다.

철없이 자꾸 졸라대는 아이와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때 당환이 말했다.

“나는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래. 강해지면 되겠군.”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의 상태로는 더 이상 강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 겁니다.”

갈지혁은 말없이 당환을 바라봤다.

그는 조용히 당환을 바라보다 말했다.

“넌 내 상대가 못 돼.”

“압니다. 그래도 싸워 보고 싶습니다.”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지.”

“압니다. 결코 우스운 마음으로 온 게 아닙니다.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그 말에 갈지혁의 얼굴에서 드러난 입이 비틀렸다. 아마도 비웃는 듯했다.

알면서도 당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넌 지금 죽었어.”

“……?”

“다리 밑을 봐.”

당환은 다리 아래를 봤다가 얼굴 표정이 싹 변해 버렸다.

언제 왔는가. 녹색 뱀 하나가 어느새 당환의 발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다.

움직일 수가 없다.

움직이면 죽는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었다 했지? 그럼 죽어도 괜찮다는 건가?”

“…….”

목숨을 건 건 사실이지만 이건 아니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싸우다 죽는다면, 그것도 그럴 가치가 있는 자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죽는 건 원하지 않는다. 아무런 것도 하지 못했다.

손을 움직여 본 것도 아니요, 갈지혁의 손을 단 한 번이라도 받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죽는다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뱀일 뿐이다. 기회를 노려서 벤다면 벨 수 있다.

당환은 침착하게 마음먹었다. 뱀이라면 분명 사람과는 달리 빈틈이 있다.

‘침착해. 설령 물린다 해도 해독하면 그만이야.’

갈지혁과의 싸움을 대비해 많은 독과 해독약을 품에 지녔다. 비록 맹독성의 뱀이라고 해도 재빠르게 치료만 하면 살 수 있다.

그리고 한눈에 보기에도 그다지 독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뱀,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죽을지도 모른다고? 사황이? 아니, 네놈이겠지.”

딴에는 진지하게 말했거늘 갈지혁은 미친 듯이 마구 웃었다.

배가 아프다. 사황이 비록 뱀이라 하지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당환이 우습다.

뱀인 탓이다. 사람과 다르고, 미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갈지혁도 그랬다. 사황과 싸워서 이겨 보라는 일악천의 말을 우습게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갈지혁은 사황에게 졌다. 당환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 사황이 바로 발아래 있어 위험하기는 하지만 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넌 못 이겨.”

“큭.”

갈지혁의 확실 어린 말에 당환은 기분이 상했다.

비록 갈지혁이 자신보다 훨씬 고수라고 해도 뱀과 비교해서 그 아래라고 말하는 것은 기분이 상하기 충분하다.

미물이다.

베면 그만이다. 공중으로 도약을 하면 뱀의 이빨을 피해 낼 수 있다. 공중에서 암기를 던져 머리만 단박에 꿰뚫는다면 뱀은 그대로 죽어 버린다.

무인에게 그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과연 갈지혁이 그것을 모를까?

아니다. 갈지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갈지혁이 당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싸워서 이겨봐. 한 마디 하자면 나도 그놈한테 졌어.”

“졌…… 단 말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다.

갈지혁은 강하다. 그런 그가 이런 뱀에게 졌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물론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넌 사황을 못 이겨. 저놈 저렇게 보여도 영특하거든.”

당환은 다시금 사황을 바라봤다.

녹색의 작은 뱀이다. 사천당문에서 많은 독을 접한 당환이다. 수많은 독사들을 봐왔고, 그것들은 대부분 너무나 화려했다.

칠점사라는 뱀이 있다.

지독한 맹독을 지닌 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놈에게 물리게 되면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죽는다.

대부분의 맹독을 지닌 뱀들은 화려하다. 그랬기에 사황을 다소 얕보기도 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갈지혁이 패했다는 말을 들으니 다소 생각이 변했다.

무엇인가 있다는 소리다.

“한 가지 충고 해 준다면 물리지 마라. 물리면 나도 저놈의 독은 치료 못 해 주거든. 그래도 용기가 있으면 싸워도 좋아.”

당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땀이 흘러 내렸다.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사황도 마찬가지다. 그는 큰 눈으로 당환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문득 귀엽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뱀이 귀엽다. 하지만 갈지혁의 말대로라면 지독한 독사다.

‘어떻게…….’

방도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갈지혁과 싸우기 위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다. 우습게도 갈지혁과 싸우기는커녕 뱀에게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 각이 지나 무려 반 시진이 지났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당환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바라만 보던 갈지혁도 시간이 이토록 흐르자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 봤자 일 텐데?”

“압니다. 하지만…… 물러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과 싸우러 왔습니다. 죽어도 당신에게 죽고 싶습니다.”

“넌 크게 틀렸어. 왜 다르다고 생각하지?”

“그게 무슨…….”

“사황이 바로 나야. 네가 휘두르는 검은 네가 아니기라도 하다는 건가?”

그 말에 당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갈지혁의 말대로다. 비록 검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갈지혁의 무기인 셈이다.

독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당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부터인지 자신 또한 생각이 굳어져 버린 모양이다.

당환이 얼마나 쌔게 깨물었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 나왔다.

그가 말했다.

“당신처럼…… 저도 독왕이 되고 싶습니다.”

“독왕?”

갈지혁은 당환의 말에 의외라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모두가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다. 당문에 와서 벌써 두 번째다. 아직도 독왕을 꿈꾸는 자가 있다.

당려환이 그랬다. 그는 내색하지 않지만 내심 독왕을 꿈꾼다. 자신이 독왕이 되고자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당려환은 독왕을 보고 싶어 한다. 독왕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사천당문을 이끌어 가는 그의 꿈이다.

당환도 그렇다. 그 또한 독왕을 꿈꾼다. 물론 당려환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그는 자신이 독왕이 되고 싶은 것이다.

다르지만 같다.

그 둘 모두 독인의 절대 경지를 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도 덤벼서는 안 된다. 그 누구라 해도 싸울 생각조차 들지 못할 정도의 공포를 줄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그게 바로 독왕이다.

갈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이 바뀌었다. 당문에 오기 전까지 독왕이라는 꿈을 좇는 자는 자신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썩어 버렸다고 생각한 당문에도 아직은 희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그 같은 멸시 속에서 여태까지 버텨 온 거겠지.’

독을 버렸어도 된다.

물론 당문의 위세가 많이 약해졌겠지만 암기만으로도 무림에 이름을 떨치기 충분하다. 오히려 지금처럼 정파면서도 이 같이 홀대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게다.

그렇지만 그들은 끝끝내 독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이다.

갈지혁이 손짓하자 사황이 스르륵 하고 소매 속으로 돌아왔다. 당환은 땀에 젖은 얼굴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아직 잘 모르겠다.

“덤벼.”

“……?”

“독왕이 되고 싶다며? 그럼 날 이겨봐. 나도 독왕이 되야 하거든.”

그 말에 당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갈지혁과 싸울 수 있다.

패해도 상관없고, 죽어도 상관없다. 그건 두 번째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당장은 갈지혁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갈지혁이 손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꼭두각시의 독…….”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하얀 가루가 미풍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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