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독왕전설 4권
1화
독이라는 게 항상 같지가 않다.
같은 독을 사용한다 해도 그 하독 방법과 사용하는 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하수들끼리의 싸움에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얼마나 강한 독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고수와 고수의 싸움으로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수들과는 달리 고수들의 싸움은 아주 미세한 것에서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 날의 날씨, 습도, 온도……
누가 본다면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분명 사실이다. 더군다나 검이 아닌 독을 쓰는 독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바람의 방향을 등지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한 쪽은 너무 큰 부담을 안는 것이 독인이다.
그랬기에 독인들의 싸움은 자리를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된다. 당환은 손을 움직이는 갈지혁의 모습에 움찔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을 가졌다.
지금은 바람이 강하게 분다.
한눈에 봐도 가루로 된 독인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위력은 극히 줄어든다. 피할 기회도 생긴다.
하지만 갈지혁이다.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갈지혁인 것이다. 그가 바람의 움직임을 모르면서도 이 같은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어떠한 독을 하독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선은 피하고 봐야 한다. 당환은 발을 놀리려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코끝을 살짝 스친 무엇인가에 느낀 것이 있는 것이다.
‘마비독!’
독 중에서 사람의 신체의 일부를 마비시키는 독이다. 물론 독마다 그 마비시키는 신경이 다른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직감적으로 느꼈다.
위험하다. 이 독에 그대로 당했다가는 그대로 패할지도 모른다.
마비독은 웬만한 내성이 있는 자들이라면 견뎌낼 수 있다. 마비독은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은 독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독을 쓰는 자에 있다.
갈지혁이다. 그가 하독했다면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 버린다.
당환은 급히 뒤로 움직이면서 품속에 있는 비수 하나를 그대로 갈지혁의 미간을 노리고 날렸다.
빠른 공격이지만 그 정도에 갈지혁이 당할 턱이 없다. 그는 가볍게 손으로 비수를 쳐냈고, 재차 다음 공격을 하려던 당환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리가 뻣뻣해…….’
그는 자신의 다리를 슬쩍 옆으로 움직여 봤다. 분명 말은 듣는데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든다. 마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마비가 된 증상인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독에 당했다는 소린데…….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어차피 이길 거라 생각하고 건 싸움은 아니지만 갈지혁의 실력을 되는 대로 이끌어 봐야 그나마 덜 후회스럽지 않겠는가. 이대로 멈추기에는 아직 보여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몸 상태가 이상해짐을 느끼면서 당환은 그대로 온몸에 있는 암기를 쏟아 냈다.
갈지혁의 사방으로 비수가 날아들었다. 분명 피할 곳이 없는 암기술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갈지혁은 피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손을 움직였을 뿐이다.
타타탕!
갈지혁은 맨 처음 다가온 비수를 쳐냈다. 그것은 날아오던 다른 비수를 쳤고, 그런 상황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몇 번의 손짓이었지만 비수들끼리 충돌하면서 모두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실로 경탄할 만한 수법이다.
당환 또한 마찬가지다. 놀랐지만 그런 것에 넋을 잃고 있을 수는 없다.
당환은 지니고 있던 중 최고의 독을 그대로 갈지혁을 향해 뿌렸다. 갈지혁의 손이 움직여 빈틈이 생긴 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병에 들어가 있는 액체다. 하독 방법도 간단하게 뿌리는 것이 전부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위력적이다.
날아든 액체가 갈지혁의 몸을 적셨다. 피부가 아닌 주변에 묻었어도 효과가 있는 독이거늘 갈지혁이 피하지 않아 그대로 몸에 묻은 것이다.
‘기회닷!’
몸을 타게 만드는 독이 아니다. 액체가 만약 땅에 묻었다고 해도 가까이만 있으면 그 독기 때문에 중독되었을 게다.
독기를 맡게 되면 머리가 흔들리고 토악질이 치민다. 물론 그것은 독에 내성이 있는 자에 한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에 내성이 없는 자라면 그대로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극독이다.
그것은 사람의 코로 스며들어가 머릿속을 헤집어 버린다.
갈지혁이라면 금방 회복할 게 분명하다. 그랬기에 지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당환은 그대로 갈지혁에게 날 듯이 다가왔다.
삼양수(三陽手)를 펼치기 위해 막 손을 움직였거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턱.
“헉!”
휘두르는 자신의 손을 갈지혁이 그대로 잡아 버린 것이다. 분명 머릿속을 헤집는 고통에 잠시 정신을 잃을 거라고 판단했는데 너무나 멀쩡해 보인다.
“이게 다냐?”
갈지혁은 팔목을 잡은 채로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당환은 그대로 갈지혁의 얼굴을 마주한 채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자신이 지닌 독 중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나름대로 자신을 지니고 뿌린 것이다. 그런데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만독불침지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 전의 싸움에서 당무가 그리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타격은 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정말로 만독불침지체의 신체는 아무런 독도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인가.
당환과 얼굴을 마주했던 갈지혁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고는,
후우.
“크악!”
가볍게 입으로 바람을 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환은 남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마구 몸을 비틀었다.
갈지혁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놨다.
뒤로 물러서면서 당환은 자신의 눈을 감쌌다. 엄청난 고통이 눈에 가해졌다. 가볍게 입으로 바람을 불었을 뿐인데 무엇인가에 당한 듯하다.
“바람이야 만들면 그만.”
‘틀려. 나와는 상대가 안 돼.’
갈지혁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당환은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뗐다. 시야가 붉게 보인다. 피가 들어간 건지 아니면 무엇인가에 중독된 탓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바람을 등진 것만으로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다. 갈지혁은 가벼운 입 바람만으로도 독을 하독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독의 길을 걷는 자들의 상식을 깬 것은 분명하다.
아무도 입으로 부는 바람을 이용해 하독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바람을 등질 생각만 하는 자신과, 그런 자그마한 바람을 만들어 내는 갈지혁. 상대가 될 턱이 없다.
눈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당환은 비틀거리는 몸을 추슬렀다.
손으로 눈을 비볐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는다. 점점 사물이 고정되지 않고 환영처럼 여러 개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갈지혁의 모습이 한 개에서 두 개,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열 개 이상으로 보인다.
“내성이…… 대단하군요.”
“당문십독도 버텼어. 네 독에 당할 리가 없지.”
“다, 당문십독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당문십독을 마음대로 쓰는 자라면 당문 내에서 당려환밖에 없다. 그 둘이 대결을 벌였다는 소리가 된다.
누가 이겼을지는 모른다. 가주가 다쳤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다. 승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그것을 물을 상황도 아니다.
“용기는 가상했다.”
갈지혁이 당환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당환은 고개를 들어 갈지혁의 모습을 쫓았다. 제대로 초점도 잡히지 않지만 그 모습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문득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갈지혁과 자신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 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강한 겁니까. 불공평합니다. 저 또한 미친 듯이 강함을 추구하고 그 길을 좇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달라.”
“뭐가 다르다는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갈지혁의 말에 당환이 되물었다.
“네가 아무리 강함을 쫓았다 한들 이곳에서였다면 그것이 한계다. 나 또한 처음엔 그랬지. 사부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분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난 살아남아야 했다. 수만 가지 독을 먹었다. 중독되어 죽을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당환은 잘 안다. 직접 독을 먹었다는 부분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고통이 뒤따랐을 게다.
만약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하라고 했다면…… 자신이 없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서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르잖아.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도 말이야.”
당환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 싸워 봤자 결과는 뻔하다. 자신이 지닌 독 중 제일 강하다고 생각해 하독했던 독도 갈지혁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당환으로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다.
당환이 채 무슨 말도 하기 전에 갈지혁이 먼저 몸을 돌렸다.
“가라. 승부는 났다.”
상대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다. 그리고 갈지혁이 등을 돌린 것은 그런 상태로 당환이 기습을 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지금 당환이 어떠한 수를 쓴다 해도 갈지혁을 이길 수는 없다. 그만큼 둘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갈지혁의 등을 바라보던 당환은 몸을 돌렸다.
목표가 생겨 버렸다. 너무나 높아 따라 잡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반드시 좇아야만 하는 목표가.
언제가 될지 모른다. 평생을 좇아도 그 반도 못 좇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보고자 한다. 얼마만큼 자신이 기어오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당환이 몸을 돌려 사라지자 갈지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나오시죠.”
“역시 들켰나?”
나무 위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풍이다. 그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옷매무새를 바르게 했다.
갈지혁에게 패해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장본인인 그는 당환이 사라진 쪽을 슬쩍 바라봤다. 이내 고개를 돌린 당풍이 말했다.
“고맙네.”
“뭐가 말입니까?”
“손에 자비를 둬서 말이야. 저 녀석은 재능이 있어. 앞으로 당문을 이끌어갈 녀석 중 하나지. 이곳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놈이거든.”
“당문을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굳이 죽여서 득이 될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가? 무슨 상관인가. 저 녀석이 멀쩡하다는 것이 중요하지.”
말을 마친 당풍은 당환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문에는 저런 인재가 필요하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당환 같은 자가 말이다.
“당환은 말이야 기재야. 그렇지만 역시 자네의 상대는 안 되는군. 자네 말대로 걸어온 길이 달라서인가? 자네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군그래.”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나무 위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갈지혁이 어떠한 길을 걸었을지 예측이 간다.
그보다 더할 게다. 적어도 지금 당풍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길을 걸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다한들 지금 저처럼 강해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