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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77화 (77/200)

# 77

2화

갈지혁은 당풍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당풍은 몸을 돌려 가는 갈지혁을 잡지 않았다. 애초부터 당환의 섣부른 움직임을 눈치채고 그에 대응한 것뿐이다.

‘가주는 저자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당려환은 갈지혁을 놔뒀다. 그거로도 모자라 오히려 힘까지 실어 주기로 했다.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을 게다. 무엇인가 갈지혁을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게다.

알 수가 없다.

당려환의 속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 * *

당려환의 거처에 네 명의 노인이 앉아 있다. 그 넷의 눈이 오직 한 사람 당려환에게로 쏠렸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태연하게 찻잔을 살피고 있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보던 삼노가 말문을 텄다.

“가주,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소. 갈지혁에게 힘을 실어 주다니…… 잘못하면…….”

삼노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멍하니 찻잔만 바라보던 당려환이 삼노의 말을 받았다.

“난 죽겠지.”

삼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일전에 이노와는 이야기한 적이 있지. 그때 난 놈을 만나보고 추후의 일을 정하고자 마음먹었었네. 그리고 지금 만난 후 내린 답이 그거야. 이대로 가다간 우리 독인들은 허리를 펴지 못해. 평생을 멸시 속에서 살았어.”

당려환은 말을 끊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천당문의 가주가 되었지만 다른 세가나 문파들에게서 받는 멸시는 보통을 넘어섰다. 당장에 내가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문의 가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다 이놈의 독을 악(惡)이라고 생각하는 정파인들의 생각 탓이다.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독에 대한 인식은 이미 정파 무림에게서 악 이하가 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사천당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고민하고 있을 때 눈앞에 갈지혁이 나타났다.

겨우 한 명의 인물일 뿐이다. 그가 큰일을 벌여 봤자 정파 무림에게 제압당할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커다란 물고기라도 연못을 모두 뿌옇게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지만 당려환은 갈지혁에게 힘을 주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놈이라면…… 실패한다고 해도 재미있는 짓을 벌일 녀석이거든. 그래서 걸었어.”

“아는 것도 없잖습니까. 괜히 잘못해서 당문이 모든 것을 뒤집어쓸지도…….”

“아니. 놈의 뒷배경 어느 정도 파악을 해냈어.”

사노의 말을 받으며 당려환이 말했다.

당려환의 말에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갈지혁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해 냈다는 말 탓이다. 당려환은 자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싸움을 하면서 몇 가지 알아 버린 게 있다.

“놈의 무공은 중원의 것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오 가주?”

“일노. 중원의 것이 아니라면 어디겠는가? 우리 사천당문이 아니고 독으로 유명한 곳이.”

“그런 곳이라면…… 독황독립문!”

일노는 놀라서 외쳤다.

독황독립문은 사천당문보다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사천에 있는 독들이 아무리 많고 강하다 한들 남만에 있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 곳에서 생긴 문파다.

독의 종류도 그렇지만 그 위력들이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일노의 입에서 독황독립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모두의 얼굴빛이 변했다.

독황독립문은 분명 독문으로서는 최고다. 그렇지만 실제로 모두의 기억에서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이다. 그것은 그만큼 독황독립문이라는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탓이다.

잊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아니 되오 가주!”

삼노가 놀라 소리쳤다. 갈지혁이라는 자를 돕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물며 그가 독황독립문의 인물이라면 더하다.

중원에서 독황독립문의 인물이라고 하면 이를 가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중원에서 그들은 이미 사파보다 더한 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그런 자를 품에 안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갈지혁이라는 놈 자체가 위험하오. 그런데 거기에 독황독립문까지 품속에 감추려 한다면 절대 안 되오.”

“그놈 분명 사연이 있어. 독황독립문에서는 중원인을 받지 않아. 그런데 놈은 중원인이야. 사연이 있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만 결국 놈이 무림을 시끄럽게 할 건 분명하단 말이야. 그렇게 재미있는 녀석을 놓치고 싶지 않아.”

말을 마친 당려환은 다시금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할 생각도 많고, 새로 생긴 갈지혁이라는 패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궁금하다.

침묵하던 당려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이야 아주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놈이 독왕이 된다면 재미있지 않겠어? 멋지잖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독인. 난 보고 싶단 말이야. 안 된다면 죽겠지. 물론 나도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만큼 보고 싶다. 독왕이 말이야.”

당려환의 말에 네 명의 노인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당려환의 결심이 느껴지는 탓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따르는 길뿐이다.

“우리야 언제나 가주를 따를 뿐이오.”

일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려환이 찻잔을 든 채로 일어섰다. 그는 몸을 돌려 창가에 가서 섰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손에 들린 찻잔을 기울였다.

그의 입술이 작게 들썩거렸다.

“독왕…… 독왕이라…….”

당려환 본인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버렸다.

* * *

진검백은 자리에 앉은 채로 눈을 굴렸다.

그의 앞에는 많은 수의 젊은 무인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사천당문의 무인들이다.

당문 무인들의 시선이 진검백에게 쏠렸다. 그에게 무엇인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공 훈련을 하는 것을 재미라도 있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다.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자이지만 왠지 모르게 몸에서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풍긴다. 더군다나 가주가 가장 중요한 손님들만 모신다는 곳에서 걸어 나온 자다.

무공 훈련을 방해하는 데 망설이고 있는 것은 그 탓이다.

진검백은 모두가 자신 탓에 멈추고 있다는 것을 안다.

정체를 알 수도 없는 자가 무공 훈련을 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계속할 리가 없다. 그의 눈이 이 무리 안에서 낯이 익은 몇 명에게로 향했다.

젊은 사내 둘과 여인 하나다. 세 명 모두 사천당문으로 오는 길에 동행을 했던 젊은 인재들이다. 진검백의 정체를 아는 셋이기에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당적성이 나섰다.

“왜 남의 문파의 무공 훈련을 엿보는 거요.”

“아아, 신경 쓰지 마. 사천당문의 무공이 보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이익……!”

당적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진검백은 고개를 돌렸다.

‘이놈은 아니야.’

갈지혁이 말했다. 당문에도 재미있는 녀석이 있다고. 동행했던 셋 중 하나라고는 들었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맨 처음엔 당적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단 한 번의 대화로 진검백은 갈지혁이 말했던 자가 당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적어도 저렇게 쉽사리 흥분하는 녀석이었다면 갈지혁이 그리 말했을 리가 없다. 진검백의 눈이 나머지 둘에게로 향했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당환과 당풍의 손녀인 당희경이다.

전에 본 당희경은 얼굴은 빼어나지만 그 외에는 크게 볼 것이 없어 보였다. 속이 약하고 다부지지 못하다.

그렇다면……

‘저놈?’

그렇게 된다면 당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 무엇인가 특출 나 보이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부족함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젊은 무인들은 정체불명의 인물 때문에 평소처럼 가볍게 펼치던 아침 훈련도 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당적성이 말했다.

“화산파의 무인이라고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오? 그리 생각하지 않소 진검백?”

“진검백?”

“낙화검 진검백 말이야?”

처음 화산파라는 말에 모두가 움찔했지만 이내 나온 진검백이라는 이름에 당문 젊은 무인들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산파라고는 해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겨우 낙화검이라고 불리는 자의 눈치를 여태까지 봤다는 것이 그들에겐 수치스러운 일이다.

화산파라면 분명 당문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다. 하지만 낙화검이라면 이미 그건 조롱의 대상이다.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스스로가 그곳에서 자신을 내쫓게 만든 무인이 아니던가.

무인? 아니다. 이제는 무인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우습다.

진검백은 모두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어 버렸다. 지금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안다.

아마도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게다.

진검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그 상태로 당문 무인들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길은 비켜줬지만 그것이 경외감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진검백의 다리가 향하는 곳은 당환이 있는 곳이다.

당환의 앞에 이른 진검백이 멈추어 서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녀석이 말한 놈이 너냐?”

“무슨 말입니까?”

“재미있는 놈을 봤다고 해서 궁금해 찾아왔지. 어차피 아침에 할 일도 없고 말이야.”

진검백은 능글맞게 말했다.

화산파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사천당문을 멸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화산파라는 이름을 가지길 원했다면 지금처럼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이다. 그리고 심심함에서 나오는 쓸데없는 궁금증이기도 하다.

당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진검백을 쳐다봤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당환을 바라보던 진검백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호오, 해 보자는 건가.’

진검백은 서서히 동공에 힘을 주며 당환을 바라봤다. 당환의 얼굴색이 변했다.

같이 동행하기는 했지만 갈지혁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갈지혁은 강하다. 그에 비해 진검백은 무림에서 멸시받는 그런 존재이기에 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눈을 마주하고 있던 당환으로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그제야 진검백은 눈에서 힘을 풀고 다시금 웃었다.

“알아차린 것을 보니 바보는 아닌가봐.”

알 수 없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게다. 그렇지만 진검백과 마주했던 당환은 잘 안다.

진검백의 눈에서 당환은 자신과 그의 비무를 보았다.

결과는 참패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진검백의 눈을 바라보던 당환만은 확신했다.

싸운다면 반드시 진다.

낙화검 진검백이라는 이름은 잊어야 한다. 그는 고수다.

“무슨 짓이오!”

당적성은 당환이 물러서자 무슨 술수를 썼다고 생각했는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진검백은 고개를 돌려 당적성을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표정에 당적성은 일순 당황했지만 이내 혀를 찼다. 주변에 있던 젊은 무인 중 하나가 말했다.

“칫, 화산파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단단히도 설치는군.”

작은 목소리였지만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진검백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에서 한두 마디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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