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3화
당적성이 진검백의 앞에 서서 말했다.
“물러서시오. 아무리 화산파의 무인이라고 해도 그것만 믿고 까부는 것이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지. 무인도 아닌 주제에 말이야.”
엄청난 모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검백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이게 뭘로 보이나?”
“……?”
“뭘로 보이냐고.”
“손 아니오 손. 도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진검백이 고개를 저었다.
“이게 손이라고? 틀렸어.”
쒜엑!
손날이 빠르게 당적성의 얼굴 앞을 스쳤다. 당적성은 지나간 후에야 자신의 눈앞으로 진검백의 손이 스치고 갔음을 알았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과 동시에 볼에 얇은 상처가 생기며 피가 주르륵 하고 흘러 내렸다.
“이건 검이야. 네 눈에는 손이지만…… 내 눈에는 검이라고. 이게 너와 나의 차이야. 알겠나 애송아?”
“……낙화검 주제에!”
진검백은 자신을 깔보는 듯한 말에도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부터 이 정도로 흔들릴 거였다면 지금까지 무시를 당하고 지냈을 수도 없다.
“맞아. 나 낙화검이야. 네가 그토록 우습게 보는 낙화검이 바로 나란 말이야. 그래도……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뭐얏!”
당적성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검을 놓아도 너 정도는 이길 거라는 듯한 진검백의 말을 듣고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당적성은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손을 뻗어 진검백을 혼쭐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리 할 수는 없다. 진검백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록 삼류 무인이 된 그지만 그래도 화산파다.
사천당문이 오대세가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실태다. 그런데 구파일방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화산파의, 그것도 매화검수를 건드린다면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
당적성은 머리가 없는 인물이 아니다. 괜히 싸워서 좋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네놈이 화산파의 무인만 아니었다면…… 지금 넌 목음 움켜쥐고 땅을 구르고 있을 테니까.”
여태까지 태연했던 진검백의 얼굴이 슬쩍 변했다.
또다. 그토록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화산파라는 이름이 또 나와 버린 것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화산파라는 이름이 언제나 진검백의 뒤를 쫓는다. 그것을 버리려 했다. 화산파의 진검백이 아닌 그냥 진검백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무리인 듯하다.
무슨 일만 있으면 화산파라는 이름이 앞에 붙는 걸 보면.
화산파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이 상태로는 강해져 봤자 나올 말은 뻔하다.
역시 화산파다.
이 말이 듣고 싶지 않다. 화산파라서 강해진 게 아니다. 진검백이기에 강해진 것이다.
진검백이 몸을 돌리는 당적성에게 말했다.
“덤벼라.”
“뭐?”
“넌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했거든.”
“미친…….”
“제안을 하지.”
제안을 한다는 진검백의 말에 당적성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듯하다.
진검백이 말을 이었다.
“나와 싸워서 너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건 나도 안다. 굳이 싸울 것도 없지. 하독해 봐라.”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진검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버린 것이다.
자신은 하독을 하고 그걸 진검백이 버텨보겠다는 게 분명하다. 버틴다면 진검백의 승리, 버티지 못하면 자신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 자신이 없나?”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피하지 않는다.”
“바라던 바야.”
진검백이 싱긋 웃었다.
자신 있다는 듯한 모습이다.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당문 무인들의 얼굴에 멸시와 조롱 섞인 표정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진검백 또한 독을 얕보는 무인의 하나라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당환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갈지혁과 함께 다니던 자다. 적어도 독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는 옆에서 자세히 보았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당적성에게 저리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이 있어서일 게다.
“독을 얕보지 마라…….”
“미안하지만 독을 얕보지 않아. 얼마 전까지는 분명 독을 우습게 보긴 했지. 하지만 말이야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이상한 놈을 만나 버렸거든.”
그 이상한 놈이 갈지혁이라는 것은 당적성 또한 안다. 당적성 또한 갈지혁을 봤고,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도 안다.
싸워 봤자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알지만 당적성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당문 무인들의 눈 탓이다.
차기 가주 후보 중 하나인 그다. 많은 젊은 무인들이 당적성을 따른다.
젊은 무인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그런 그들의 앞에서 볼품없는 꼴을 보였다가는 인심이 떠나 버린다. 지금 물러선다면…… 자신을 비웃거나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냐. 네놈이 명을 재촉했으니 나도 손을 쓰는 수밖에.”
독에 중독될 것은 당연하다. 저 같이 독을 얕보는 자라면 반드시 독에 당하고 만다.
독에 중독시키되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화산파를 적으로 만드는 짓이다.
독인들은 자신이 들고 다니는 독의 해독약을 항시 지니고 있다. 만약에 하독하다 자신이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 어차피 저놈이 자처한 것…….’
당적성은 뒤를 힐끔 보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당적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무인들의 눈을 느꼈다.
이거다. 이것을 원했다. 당적성은 자신이 영웅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그런 자다.
그는 자신의 양손에 나무로 만든 이상한 것을 찼다. 모르는 사람은 무슨 짓인가 하겠지만 독의 길을 걷는 자들이라면 지금 당적성이 무엇을 차는 것인지 안다.
하독하는 기구다.
하독의 방법은 많다. 직접 뿌리고, 바람에 싣기도 하고 물에 타기도 한다. 그리고 개중에 기구를 이용하는 것도 있다.
당적성이 바로 그러했다.
그의 독은 나무로 만든 기구를 이용해서 하독된다.
“보여 주마. 당문의 힘을.”
당문의 힘을 보여 주겠다는 말에 진검백은 다시금 피식 웃어 버렸다.
“기대하지.”
진검백이 말을 마치자 당적성은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무 기구에서 갑작스럽게 무엇인가가 펑 하고 터지면서 진검백에게 쏘아졌다.
피할 수 있지만 진검백은 가만히 서서 그 독을 몸으로 받았다.
코를 통해 이질적인 기운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바짝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진검백은 당황하지 않았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손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더 강한 독이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진검백을 보며 당적성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말했다.
“어떠냐 이놈!”
진검백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 냈다.
당적성은 그런 진검백은 이겼다는 듯이 바라만 봤다.
‘곧 쓰러질 것이다. 맨몸으로 독을 받아? 미친놈!’
갈지혁이라면 모르겠다. 그는 독인의 경지에 오른 자이니 독에 당하지 않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진검백은 아니다. 절정의 고수라면 모를까 낙화검이 이 정도의 극독을 버텨낼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웃음 띤 얼굴로 진검백을 바라보던 당적성의 얼굴색이 점점 변했다.
기침을 하던 진검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색이 거멓다. 독에 중독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점점 그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얼굴에 붉은 홍조도 일기 시작한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퉤!
진검백이 침을 뱉었다.
침인데 온통 거멓다. 아니, 그건 침이 아니다. 몸에 들어간 독을 침으로 내뱉어 버린 것이다. 당적성의 얼굴이 변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감상 잘 했다.”
말을 마친 진검백이 몸을 돌렸다.
그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다는 듯이 당환을 한 번 슬쩍 보고는 걷기 시작했다.
당적성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멍하니 멀어져 가는 진검백을 볼 수밖에 없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는 연신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고.
당환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바라본 진검백의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누구냐, 저 사내를 낙화검이라고 부른 자는…….’
평소와 달리 진검백은 당환에게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환은 진검백의 본래 모습의 일부를 봐 버렸다.
어떻게 저런 사내를 낙화검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모르겠다. 도통 모르겠다.
세상에 비슷한 나이 대의 무인 중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확신이 하루에 두 번이나 무너져 버렸다.
갈지혁이 그랬다. 그리고 그토록 무림에서 멸시를 받는 진검백에게서도 그랬다. 알 수가 없다. 저 둘은 도대체 어떠한 자들이기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저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것인가.
‘무림은…… 역시 넓군.’
만약에 진검백 같은 자가 몇 명 더 있다면…… 당환은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릴 것만 같다.
* * *
단리문은 품에 든 것을 만지작거렸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지금 역병처럼 중원을 떠도는 독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병이 아닌 독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독황독립문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단리문의 다리는 자신의 실험실로 향했다.
이 독을 빨리 실험해 보고 싶다.
여태까지 몇 차례 사용한 적이 있지만 완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리문이 나타나자 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무슨 꼬투리를 잡히지나 않을까 고개를 숙인 채로 덜덜 떨었다. 그렇지만 이미 독에 모든 관심이 모인 단리문이 그런 자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문을 막고 있는 그를 밀친 단리문은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냄새가 기분을 역겹게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무인은 당장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문 안쪽으로 몸을 돌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리문이 밀치는 바람에 쓰러진 그는 안을 보고야 말았다.
냄새도 냄새지만 눈에 드러나는 광경이 그를 참지 못하게 했다.
‘더, 더러운 새끼!’
눈앞에 있는 단리문이라는 사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더럽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이다. 인간이 이리도 악할 수 있단 말인가. 무인 또한 남만에서 못 할 짓이라는 것은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단리문의 앞에서는 그저 어린아이 같다. 그렇게 단리문의 행동은 사내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헛구역질에 단리문은 고개를 돌려 무인을 쏘아봤다.
그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젠장 잘못하면…….’
단리문이 사내에게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
말을 마친 단리문은 문을 닫았다. 무인은 운이 좋았다. 만약 오늘 단리문이 그토록 지니고 싶었던 독을 손에 쥐지 못했다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게다.
안으로 들어간 단리문은 흥분된 표정으로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작은 병을 꺼냈다. 혹시라도 깨질까 봐 애지중지하게 가지고 온 물건이다.
병 안에는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겨져 있다.
“흐, 흐하핫!”
단리문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기쁠쏘냐. 그토록 꿈꾸어 오던 염원이 바로 코앞까지 닥쳤거늘.
단리문의 눈이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이 빛났다. 무엇인가를 찾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