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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81화 (81/200)

# 81

6화

‘이겼어. 애송이!’

손바닥이 몽둥이에 닿았고, 순간 묵직한 충격이 당철민의 몸을 짜르르 떨리게 했다. 그의 얼굴색이 확 변해 버렸다.

“큭!”

손이 얼얼하다. 기세 좋게 휘두르던 몽둥이가 반쪽이 나면서 뒤로 튕겨 나가버렸다. 겨우 손에 부닥쳤을 뿐인데 그 묵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갈지혁은 기회가 생기자 놓치지 않았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이 갈지혁의 손끝에서 얇게 쏟아져 나왔다.

검은색 수투에서 거미줄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당철민은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시간을 끌어서는 안 돼.’

그의 다리가 움직였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듯싶더니 이내 그의 몸은 꽃잎이 되어 흔들렸다.

미칠 듯한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꽃잎처럼 당철민의 몸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이 이미 사방에 깔렸다. 갈지혁이 손만 움직이면 사방에서 거미줄이 솟구쳐 올라 당철민의 몸을 옥죄려고 들 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미친 듯이 움직이고만 있으니……

춤을 추듯 사방을 향해 손을 휘두르던 당철민의 손에서 갑작스럽게 흰색 가루가 쏘아졌다.

갈지혁에게로 갑자기 날아든 단환이 속도에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린 것이다. 안에 있던 흰색 가루가 그대로 터지며 갈지혁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갈지혁이 당문십독을 버텼다고 들었다. 그것이 우연이었던 어땠든 간에 어쭙지않은 독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건 분명했다.

그랬기에 당철민은 특이한 독을 준비한 것이다.

이 독은 아직 이름도 짓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독이라고 말하기에도 다소 민망하다고 할 정도다.

발정하게 만드는 독이다. 독성이 너무 적기에 오히려 독인들에게 먹혀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발정하게 만든다는 자체는 독이 가져다주는 효과가 아니다.

당철민은 미칠 듯이 움직이던 다리를 멈추고 갈지혁에게로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칠갑지주의 거미줄을 쓸 듯했던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

당철민은 씨익 웃었다.

싸움은 끝났다. 갈지혁은 지금 억지로 끓어오르는 피를 내리누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상대를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막 다가가고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갈지혁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걸렸어.”

쉬리릭!

거미줄이 사방에서 당철민을 향해 움직였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감아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당철민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방심했다. 그것도 독인을 상대로 승부가 끝났다고만 생각하고 허점투성이로 다가가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방심했다고 해도 고수는 고수.

당철민은 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손에서는 날카로운 예기가 쏟아지며 사방을 덮는 거미줄을 잘라 내려고 했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은 보통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당철민은 백수를 넘긴 고수다. 사천당문의 최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소리다.

끊겨지지 않을 듯이 팽창했던 거미줄이 부욱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당황스러워 급히 손을 휘둘렀던 당철민은 놀라 버렸다.

급해서 마구잡이로 손을 쓴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힘 조절을 하지 못하고 전신에 있는 내력을 모두 쏟아 부어 버렸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대비하고 방비한 것이라면 적절하게 힘을 조절한다 해서 지금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공력을 실었을 게다.

그랬다면 베지 못했다. 물론 당철민이 칠갑지주의 거미줄이 어떠한 것인지 알 리는 무방하다. 그렇지만 방금 전 공력이 실린 예기가 간신히 찢어 내는 걸 보면 보통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을 잘려지는 순간 갈지혁이 움직였다.

어느새 당철민의 코앞까지 다가선 그의 손이 벼락처럼 쏟아졌다.

일순 녹색으로 물든 손을 보며 당철민은 갈지혁이 독장을 휘두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무 빠르다. 그렇지만 당하고 있을 그도 아니다.

당철민은 갈지혁의 무릎을 밟고 뒤로 도약했다. 손이 아슬아슬하게 당철민의 옷깃을 스쳤다.

‘위험해. 잘못하면…….’

싸우던 중에 공중으로 몸을 띄우는 것은 그만큼 위험했을 때나 행하는 행동이다.

특히 공격할 때가 아닌 방어할 때라면 그건 최악의 방책이다. 공중으로 뜬다는 것은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소리다.

한 마디로 이어지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하수라면 모를까 고수들의 싸움에서 그 자그마한 틈을 놓칠 자는 없다. 그건 갈지혁도 마찬가지다.

갈지혁이 손을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당철민 또한 품속으로 급히 손을 넣었다가 뺐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암기를 쓰는 것이다.

암기는 달려드는 갈지혁이 아닌 그가 밟을 길에 박혔다. 그것으로 앞으로 달려들던 갈지혁의 몸이 순간 움찔하는 틈을 만들어 냈다.

그거면 충분하다.

당철민의 몸이 땅에 내려앉았다. 그 짧은 행동 하나로 위험한 상황을 피해 낸 것이다. 당철민은 손가락 사이사이에 비수를 꺼내 들었다.

순간의 방심으로 승부가 완전히 기울어 버릴 뻔했다. 비수를 든 채로 갈지혁을 바라보던 당철민은 아랫배가 화끈거리자 고개를 숙였다.

옷깃과 함께 아랫배가 썩은 듯이 검게 변색되어 버렸다.

‘겨우 스쳤을 뿐인데…….’

독장에 스침으로 인해 이렇게 변했다.

만약 이런 독장을 제대로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상한 놈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위험하다. 아까 던졌던 거미줄도 그랬고, 그저 가볍게 휘두른 듯한 독장도 그렇다.

사문을 파악할 수가 없다. 이런 무공을 쓰는 문파는 아무 곳도 없었다.

당려환은 갈지혁이 독황독립문의 인물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직 당철민은 갈지혁의 사문을 파악해 내지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당철민은 그런 것보다는 싸움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반면 녹의를 걸친 노인은 아니다. 그는 갈지혁의 움직임과 무공들을 보며 사문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은 모르겠다. 갈지혁이 사용하는 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하고 처음 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갈지혁은 일인전승으로 일악천의 모든 것을 이어 받은 탓이다. 그 둘 모두 사독문에 갇혀 무공에만 전념한 일악천의 절학들을 알 리가 없다.

아직 독을 사용하지 않아서다. 만약 갈지혁이 독을 사용한다면 녹의의 노인 또한 그가 남만의 무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게다.

남만과 중원에서 쓰는 독은 기본부터 다르다.

제조 과정도 그렇지만 기본이 되는 독들 자체가 다르다.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독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당철민은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화끈거리는 것이 화기를 담은 독인 모양이다. 그 또한 독인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다. 웬만한 독에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손에 실린 독장 하나에 이렇게 몸이 이상하게 달아오른다.

‘당려환이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닌 모양이군.’

나이가 어리다고 얕봤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만큼 경험도 없고, 무공을 익힐 시간도 적었을 게다. 강하다고 해도 그 비슷한 연배에서나 그렇지 그 위로 올라간다면 고수들은 셀 수도 없다. 종종 젊은 기재가 나타나 무림을 시끄럽게 하기도 하지만 갈지혁이 그런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을 끌면 불리해. 믿기 어렵지만…… 강한 놈이야.’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니 한층 마음이 진정된다.

무작정 쓰러트려야지 하고 달려들던 아까와는 다르다.

‘만천화우?’

당문 최고의 암기수법을 생각했던 당철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대를 죽이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만천화우는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죽어야 할 상황에서 최후의 초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 이 초소에서 만천화우를 펼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넓은 연무장 같은 곳이긴 하지만 만천화우를 펼치기에는 턱없이 좁다. 더군다나 당려환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데려온 자다.

죽일 수는 없다.

갈지혁이 슬쩍 움직이려는 듯하자 당철민은 손가락 하나를 튕겼다. 쏘아져 나간 비수가 갈지혁을 스치며 벽에 틀어박혔다.

갈지혁은 태연한 눈으로 당철민을 바라봤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눈동자가 빛난다. 전혀 굴할 것 같지 않다. 이대로 싸워 봤자다.

그때 갈지혁이 말했다.

“독인의 싸움…… 독으로 끝내죠.”

“뭐라고?”

기가 차다는 듯이 당철민이 반문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팔씨름을 하자고 달려드는 듯하다. 허탈한 웃음을 흘린 그가 말했다.

“독이라고?”

“예. 독인의 싸움에서 그만큼 확실한 것도 없죠.”

“……좋다. 네놈이 원한다면 보여 주지.”

당철민은 갈지혁의 얼굴을 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자신이 있다는 거다. 당문십독의 하나를 버텨 냈다는 것만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같은 당문십독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모두 천지차이다. 당려환이 쓴 풍환단은 당문십독 중에서도 최하위의 것 중 하나다.

풍환단을 버텼다 해도 다른 당문십독 모두 버텨 내는 건 아니다.

당철민은 어깨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슬쩍 아래로 내려트리는 손가락 끝에 무엇인가가 달려 있다.

그것이 당문십독의 하나인 연명분(聯命粉)이다.

가루로 된 독으로 당문십독에서도 중간을 차지하는 독이다.

중독 당하는 순간 온몸의 피가 말라 버리기 시작한다. 채 무슨 행동을 하기도 전에 몸 안에 있는 모든 피가 말라 버릴 수도 있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덤볏!”

갈지혁은 고함을 내지르며 하독하려는 당철민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특별한 독도 아니다. 갈지혁의 벌어진 손바닥 상처 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독인의 피는 독이다.

그런 간단한 사실을 당철민 정도 되는 독인이 모를 리가 없다. 그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피를 독으로 쓰곤 했으니까.

분명 독인의 피는 독이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조되지 않은 것이다. 위협적인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일정 수준의 이상의 고수라면 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인의 피가 지니고 있는 독의 한계 탓이다. 아무리 독을 많이 접했다 한들 몇십 년을 제조한 독보다 강할 수는 없다.

당철민은 갈지혁이 다급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 자신의 피를 쓰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게다.

그것도 당문십독의 하나인 연명분 앞에서 말이다.

당철민은 피를 모두 증발시켜 버리는 독인 연명분을 뿌림과 동시에 다른 손에는 해독약을 움켜쥐었다. 이 독에 당한다면 버티지 못한다.

갈지혁이 이 연명분을 버티지 못하고 바로 쓰러질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려환의 손님으로 온 이상 목숨만은 거둘 생각이 없었던 게다.

연명분은 무취다. 향기가 없다는 소리다. 무취는 무취지만 형태는 있다. 그렇지만 그걸 보고 피하면 그만 아니냐는 건 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멍청한 소리다.

가루라는 건 바람을 탄다. 그리고 너무나 알갱이들이 작아 바람에 흩어지는 순간부터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갈지혁은 너무나 담담했다.

흘러나온 피가 손바닥 위에 고였다.

붉다. 오히려 일반 사람에 비해 너무나 붉다. 섬뜩하다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렌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갈지혁은 내공을 일으켰다. 당려환에게 당했던 당문십독이 기억난다.

그것은 결코 우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사독문에서의 시간만큼은 아니다.

수많은 독을 몸으로 섭렵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일악천이 먹으라고 했던 절대극독을 생각하면 당문십독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절대극독을 마심으로 인해 당문십독이 버틸 만한 것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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