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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83화 (83/200)

# 83

8화

“항복하십시오.”

“…….”

“대결이었을 뿐입니다. 죽어 봤자 이득 될 건 없습니다.”

당철민은 온몸이 비틀리는 걸 느꼈다. 더 이상 버티는 건 자신 없다.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온몸이 터져 버린다.

당철민은 죽기보다 싫은 말을 꺼내야만 했다. 갈지혁의 말대로 이곳은 죽을 자리가 아니라는 판단 탓이다.

“……졌어.”

갈지혁은 바로 자신의 손바닥에 묻어 있는 피를 다시금 당철민에게 뿌렸다. 고통에 완전히 진이 빠져 버린 그는 피하지 못하고 피에 온몸을 적셔야 했다.

녹의의 노인이 놀란 듯 외쳤다.

“엇!”

당철민 또한 당황했고, 예상대로 지옥 같은 고통이 몸을 엄습했다.

“크악!”

“버티십시오. 제 피를 해독할 수 있는 약은 제 피뿐입니다.”

갈지혁의 행동에 놀랐던 녹의의 노인은 그제야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너무나 강한 독이기에 해독약이 없다. 그렇다면 독끼리 상충시키려는 속셈인 것이다.

말은 쉽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같은 독이라고 해도 공기에 노출된 시간, 하독할 때의 방법 등에 따라 조금씩 변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미세한 차이를 잡아 내 독끼리 서로를 죽이게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자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방도가 없다. 그저 바라보는 것이 노인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이제 남은 것은 당철민의 생명력뿐이다.

갈지혁은 당철민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이 녹색으로 물듦과 동시에 당철민의 옷이 녹아내렸다.

치이익.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에 손바닥 모양의 검은 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 정신을 놓칠 뻔했던 당철민은 그 고통에 눈을 부릅떴다. 엄청난 힘이 몸 안에서 충돌을 하기 시작했다.

몸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피가 온몸의 구멍으로 쏟아지면서 그대로 내장들이 터져 버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정신을 놓칠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갈지혁의 힘이 정신을 잃으려는 당철민을 깨웠다. 몸 안에서 수십 차래 폭발이 일었다. 그때마다 당철민의 입가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갈지혁 또한 독을 제압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듯했다.

그의 얼굴은 땀범벅으로 변해 버렸다. 눈을 가린 머리카락이 모두 흠뻑 젖어 버렸다. 마구 손을 움직이며 등에 있는 혈도를 두드리던 갈지혁의 손에 녹색의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 뒤로 무너져 내리려는 당철민의 등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당철민의 몸이 앞으로 풀썩 하고 쓰러졌다.

입에서는 연신 기침과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엄청나게 많은 피를 흘렸다.

그렇지만 방금 전보다 안색은 보다 나아졌다.

독이 해독된 탓이다. 그렇지만 당철민은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손가락조차 꼼짝하지 못한 채 그는 엎어진 채로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갈지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땀으로 젖어 버린 얼굴을 옷으로 가볍게 닦아 냈다. 자연스럽게 갈지혁의 눈이 녹의의 노인에게로 향했다. 마치 당신도 덤빌 거냐고 묻는 듯하다.

노인은 피식 웃었다.

애초부터 싸울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당려환이 데리고 온 그때부터 그의 생각대로 해 줄 생각이었다.

노인은 당려환을 잘 안다. 그는 허튼 짓을 하는 바보가 아니다. 그가 갈지혁에게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것이 과연 희망일지, 아니면 당문의 미래를 어둡게 할 먹구름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서 말이야…… 싸우는 걸 피하게 되더군.”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갈지혁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싸우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노인이 말했다.

“저기 앉게. 얘기 좀 하지.”

녹의의 노인은 땅에 쓰러져 있는 당철민을 한 번 바라봤다. 아마 몸에 모든 힘이 빠져서 그렇지 정신은 멀쩡한 것이다.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쉰다면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을 게다.

“재미있는 젊은이로군. 당철민을 저렇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저토록 일방적으로 패해 버린 당철민을 보는 건 처음이다. 언제나 독기로 뭉쳐 상대가 되지 않는 자에게도 바락 바락 덤벼들어 결국은 이기던 그다.

그런 그가 이토록 어린 사내에게 패해 저렇게 쓰러져 있다.

“재미있는 신체야. 독인의 경지에 올랐다면 이해는 가지만 너의 피는 상상 이상이군. 도대체 어떻게 된 몸이냐?”

“수만 가지 독을 직접 먹었습니다.”

“미쳤군.”

노인은 단박에 말했다.

수만 가지 독을 직접 먹으면서 내성을 키웠다는 말에 미쳤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것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이 용하다. 죽어서 나뒹굴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짓을 갈지혁은 해왔던 것이다.

갈지혁은 그런 녹의 노인의 말에 담담하게 대꾸했다.

“저 혼자였다면 못 했습니다. 스승님이 없었다면…… 살아 있을 수도 없었겠지요.”

“자네의 스승을 한 번 보고 싶군.”

녹의 노인의 말은 단순히 한 가지 의미만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갈지혁의 사문을 비롯한 것을 알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독황독립문의 문도일 거라는 건 짐작했다. 그렇지만 뭔가 독황독립문이 걸어가려는 길과 갈지혁의 움직임이 너무나 다르다. 그랬기에 사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만한 인물을 만들어 낸 자라면 그 실력 또한 대단할 게 분명하다.

물론 노인 또한 알고 있다. 갈지혁이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녹의의 노인은 당철민을 바라보다 말했다.

“언제쯤 일어날 수 있지?”

“이틀 정도 후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말을 하려면 두 시진 정도는 지나야 할 겁니다.”

“그런가. 아, 내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당환풍이야.”

갈지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지만 듣고 있던 진검백은 깜짝 놀라 버렸다.

당환풍이 누구인지 아는 탓이다. 당문의 전전대 가주의 형으로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가주가 아닌 그림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동생에게 가주 자리를 주고 그는 그림자가 되었다.

가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생각 탓에 가 같은 행동을 했다.

독왕이 되기 위해서다. 당환풍 또한 독왕이라는 것은 자유가 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또한 독왕을 꿈꾸던 독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비록 현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독객(毒客)이라고 불렸던 사내. 그가 바로 당환풍이다.

그림자였지만, 실제로 그 당시 무림 최고의 독인은 바로 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모든 것을 그 당시 가주였던 자신의 동생에게로 넘긴 귀재.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왜 그가 그런 외로운 길을 택했는지. 양지가 아닌 음지로 들어섰는지는.

본인뿐이다. 독왕이 되기 위해 그런 길을 택했었다는 것을 아는 건 당환풍뿐인 것이다.

죽었다고 알려진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진검백은 현 무림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 같아 눈을 빛냈다.

“어쩌다 보니 이곳이 이런 장소가 되어 버렸군. 화산파의 무인이 들어오고, 또 알 수 없는 독인이 나타나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당환풍의 말에 당려환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굳이 타박하려고 했던 게 아닌 터라 당환풍은 가볍게 손사래를 칠뿐이다. 그는 갈지혁을 떠나 진검백에게 시선을 돌렸다.

젊다. 갈지혁과 비슷해 보이는 연배다. 정체를 모르기에 당환풍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화산파의 무인이라는 건 확신하겠는데…… 설마 매화검수인가?”

“그렇습니다.”

“허!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이곳에 오다니…….”

매화검수라면 차기 화산파의 문주 후보로도 거론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 자 중 하나가 지금 당문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온 것이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은 계속해서 마시게 되는 독의 기운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버티고 있다. 두 다리를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검백이 일류 이상의 무인이라는 소리다.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화산파라면 같은 정파이긴 하지만 당문의 입장에서는 꺼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화산파 또한 독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 탓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화산파에서도 내놓은 놈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도 없고요.”

“화산파에서 내놨다?”

“예.”

진검백의 말에 당환풍은 마음을 풀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런 자라면 쉽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환풍이 웃으며 말했다.

“이름이 무엇인가?”

“진검백입니다.”

“후후, 천재에서 바보가 되었다고 소문이 난 낙화검이 자네인가?”

“천재라니 과찬이십니다.”

“지금은 바보라고 했으니 그리 좋아하지 말게.”

“하핫!”

진검백은 웃음을 터트렸다. 당환풍 또한 농담을 한 것이기에 마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말은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한없이 모멸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검백은 그저 웃었다.

마주 웃고 있는 당환풍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심기가 깊군.’

소인배는 아니다.

소인배는 이 같은 굴욕에 오히려 화만 낸다. 진짜 실력이 있는 자는 그리 쉽게 자신의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

‘당려환이 재미있는 놈들을 데리고 왔군.’

갈지혁과 진검백, 둘 다 재미있다.

한 놈은 독의 길을 걷지만 다른 하나는 화산파의 무인답게 검에 모든 것을 걸었을 게다. 물론 들리는 소문대로라면 낙화검은 검을 놓았다. 그렇지만 모른다. 그것은 소문일 뿐 아닌가. 실제로 본 진검백은 그리 둔재로 보이지 않았다.

당환풍은 가운데 있는 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앉지.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다렸다는 듯이 진검백이 자리에 앉았다. 갈지혁 또한 아무런 말도 없이 진검백의 옆에 자리했다.

당환풍은 옆에 있는 주전자에서 찻잔에 차를 담았다. 아니, 그런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차라고 생각했던 액체는 너무나 검었다. 그리고 단 한 잔 만 따른 것으로 보아 접대를 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잔을 갈지혁 앞에 내려놨다.

“한 번 먹어 보게. 대단한 독은 아니야. 그게 뭔지 알아맞혀 보게.”

물론 그것이 갈지혁에게나 대단한 독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이 독은 황소조차도 바로 쓰러지게 만들 정도의 맹독이다.

갈지혁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독인지도 묻지 않고 그대로 들이켰다. 씁쓸한 맛이 입술을 타고 목구멍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역겨운 맛이 치켜 올라온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독액을 삼킨 갈지혁은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섬소, 파두, 비상…….”

“좋아.”

당환풍은 갈지혁의 말을 잘랐다.

그 세 가지를 말한 이상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자네는 당문을 아는가.”

“잘 모릅니다.”

“잘 들어. …… 당려환이 바로 당문이야. 지금 가주인 당려환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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