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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85화 (85/200)

# 85

10화

걸왕은 화산파의 장문인을 존경했다. 그는 무인이다. 적어도 다른 구파의 장문인들과는 다르다. 적어도 그는 무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허튼 싸움보다는 무림의 안전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다.

개방의 총타의 방주의 거처에 앉아 있는 걸왕의 표정이 좋지 않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급보들을 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수상한 일들투성이다. 중원의 주변에서 이상한 움직임들이 너무 많다.

오랫동안 조사해 오던 인물들 중 일부가 모습을 감췄고, 그런 경우 뒤쫓던 무인들은 전원 사망이다.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한데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다.

답답할 뿐이다. 이렇게 개방의 귀가 아무런 것도 알아내지 못한 적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질 법도 한데…….”

“방주. 이대로 있다가 세외 세력 중 어딘가가 움직인다면 그 피해는 적지 않을 게요.”

“클클.”

알고 있다. 그것을 모를 걸왕이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 해 봤자다. 지금 무림이 안심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걸 뒷받침 할 근거를 가져오라는 이야기뿐이다.

‘그게 그리 쉽다면 지금 내가 이토록 고민할 리가 없잖은가!’

모두 멍청이뿐인가. 만약 근거가 있었다면 이토록 약하게 나갈 리도 없다. 모두 평화로운 무림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평화가 계속되어질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무림의 역사상 이토록 평화로웠던 시기는 없다. 다시금 시끄러워질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너무 평화로웠어. 그 평화로움은…… 오히려 독이었어.’

정파무림은 너무나 나약해져 버렸다. 예전의 그 굳건했던 단합과, 용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정보를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거늘 그런 걸왕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때 걸왕의 앞에 부복하고 있던 인물 중 하나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귀찮다는 듯이 걸왕이 내뱉었다. 지금 머리가 복잡해서 터질 지경이거늘 분명 또 짜증 나게 만드는 말일 게다.

그가 말했다.

“전에 알아보시라고 했던 갈지혁이라는 놈의 뒤를 캐봤는데 놀라운 것을 알아냈습니다.”

“아아, 그런 일을 시켰던 적이 있었지.”

잊고 있었던 걸왕은 그제야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일전에 수뇌부들의 모임에서 갈지혁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봐 달라는 명을 받았다. 그랬기에 수하를 풀어놨고, 그것에 대한 뭔가를 알아낸 모양이다.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잠시 잊고 있었다.

“말해 봐.”

“그놈의 뒤를 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캐도 나오는 것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문은커녕 어디서 태어났는지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사문은 꽁꽁 감춘다면 다소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지나온 모든 곳을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그게 누구라 해도 반드시 뿌리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갈지혁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알아낸 것이 있는 모양이다.

걸왕은 사내를 바라봤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무슨 중요한 말이 있는 모양이다. 걸왕은 알아서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옆에 부복하고 있던 걸인들 모두가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놈 남만에서 왔습니다.”

“남만?”

여태까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비록 무림에서 금기시되는 독을 사용하고 있지만 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어차피 조용한 무림에 이 정도는 오히려 활력소일 거라고 생각하며 가벼이 넘겼다.

그런데 아니다. 그가 남만에서 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정말이냐?”

“그가 처음 나타난 곳부터 해서 거슬러 올라가니 남만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확신은?”

“제 목숨을 걸죠.”

걸인 사내가 바로 대답했다.

그만큼 자신의 조사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다는 말이다. 걸왕은 침묵했다. 남만에서 왔고, 독을 쓴다면 이야기가 단순해진다.

독황독립문이다.

무림을 호시탐탐 노리는 그곳에서 중원으로 한 놈을 보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 사실을 아는 건?”

“저와 방주님뿐입니다.”

“그래? 다행이군. 넌 이 일에 대해 절대 함구하여라. 만약 소문이 난다면 네놈 입에서 났다고 생각하고 널 엄히 처벌할 것이다.”

“그리하지요. 그런데 방주님, 이 일에 대해 함구하는 걸 보니 무엇인가 하시려는 듯한데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놈을 만나야지. 알아볼 게 있으니.”

걸왕은 갈지혁은 독황독립문이 중원에 미리 보낸 첩자 정도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만나 어떻게든 독황독립문의 속셈을 파헤칠 생각을 가진 게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짐을 싸야겠군. 먼 여정이 되겠어.”

갈지혁은 사천에 있다.

개방의 방주가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큰 일이 아니고서는 필요 없는 일이다.

솔직히 갈지혁을 만난다는 것 자체도 개방 방주인 걸왕이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수하를 시켜 이곳으로 오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보내도 될 일이다.

지금 같이 무림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걸왕이라는 존재가 움직인 것은 그만큼 이 일을 비밀리에 해야 되는 탓이다.

걸왕은 휘하에 있는 네 명의 거지만을 데리고 여정에 올랐다.

겉보기에는 모두 볼품없는 자들이다. 솔직히 걸인들 중 아무리 빼어나다고 해도 걸인 아닌가. 하지만 이들 넷은 개방에서 알아주는 고수들이다. 그리고 유독 어려 보이는 자가 바로 다음 대 개방을 이끌 후개다.

육결제자 둘, 그리고 한 명은 칠결제자. 그리고 후개와 방주.

개방의 실질적인 힘들이 나왔다고 봐야 옳다.

방주와 후개가 여정에 나섰지만 한동안 개방은 무리 없이 돌아갈 것이다.

많은 문도 수만큼 능력이 빼어난 자들이 많다.

장로들에게 일을 위임시켜 놨다.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걸왕이 없어도 개방을 잘 돌릴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보다 걱정은 갈지혁이라는 놈에게서 어떻게 비밀을 밝혀내느냐다.

다섯 명의 거지가 대낮에 대로를 걷고 있으니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가 신분을 숨기기 위해 개방의 표식인 매듭 또한 모두 풀었으니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어디 얻어먹을 것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거지 패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태연했다.

비록 걸인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못하는 위치에 올라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걸인이라는 것 자체가 구걸하고 멸시받는 존재 아니던가. 그리고 그 안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개방이다. 그랬기에 이들은 이러한 시선을 너무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르신, 슬슬 배가 고픕니다요.”

옆에 있던 칠결제자인 구명이 말했다. 그는 언제나 손에 먹을 것을 쥐고 사는 인물이다. 그랬기에 덩치는 다소 비대했고, 몸은 무거워 보인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는 신법의 달인이다. 그의 몸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재빠르고, 또한 머리도 비상하다.

“이놈아. 식사를 한 게 얼마나 됐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걸왕 또한 평소 그를 잘 알기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통은 아니다. 그저 갈 길이 바쁜데 자꾸만 먹을 것 타령을 하는 구명의 행동에 뭐라고 한 마디 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호통에 물러설 정도라면 거지도 아니다.

구명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어이쿠야, 전 힘이 없어서 못 걷겠습니다.”

그런 구명의 능청에 후개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말수가 적다. 개방의 걸인들의 대부분이 개성이 강한데 비해 후개만큼은 너무나 조용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명문정파의 후기지수처럼 무게가 있고, 능력이 빼어나다.

전혀 튀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그런 후개를 단연 돋보이게 했다.

걸왕은 혀를 차며 양옆에 있는 육결제자 둘에게 가벼이 고갯짓을 했다. 둘은 익숙하다는 듯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먹을 것을 구해 오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탓에 걸왕은 건물과 건물 사이 조그마한 틈에 들어가 앉았다. 그 앞에 후개와 구명이 자리했다.

“사천이 코앞이군.”

“어린놈 하나를 보러 온 것치고는 너무 긴 거리인 것 같습니다. 방주.”

“쯧. 밖에서는 방주라고 하지 말라고 했거늘.”

“누가 여기서 우리말을 엿듣는단 말입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 하나 없어.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 자넨 언제나 그러한 태평한 마음이 문제란 말이야.”

구명은 그저 웃음을 흘릴 뿐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오래된 성격이 그리 쉽게 고쳐질 리가 없음을 걸왕이 모를 리가 없다.

그 또한 그저 당부의 말을 한 것뿐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걸왕을 제하고는 그 누구도 갈지혁을 만나러 이렇게 넷이 움직이는 이유를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걸왕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를 믿는 탓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같은 행동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이곳은 뭔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바로 코앞이 대로거늘 이 조그마한 골목은 뭔가 모르게 적막하다.

품안에 넣어 두었던 연초를 꺼내 피는 걸왕에게 후개가 물었다.

“어르신.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갈지혁이라는 자가 그토록 대단합니까?”

후개의 질문에 걸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갈지혁에 대해 궁금증이 이는 모양이다. 걸왕이 답했다.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약한 놈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무패라는 전적으로 무림을 걸어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왜?”

“독이라는 거…… 예전부터 한번 붙어 보고 싶었습니다.”

“얕보지 마. 예전 중원과 남만에 있는 독황독립문이라는 독문과의 싸움에서 우리 개방은 몇천에 달하는 자들이 한순간에 죽었어. 그게 독이야. 수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바로 그것이.”

“전 저의 배움이 독이라는 것에 못지않다 생각합니다.”

“물론이지. 개방의 무공은 천하제일이야.”

걸왕은 자신 있게 말했다.

분명 지금 천하제일인은 걸왕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개방의 무공은 당대 최고다. 다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는 탓이다.

그때 먹을 것을 찾으러 갔던 육결제자 둘이 돌아왔다. 그 둘은 손에 들고 온 것을 구명에게 넘겼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먹을 것을 양손에 들고 골목길을 벗어나 성큼 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런 구명을 보며 걸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막 골목길을 벗어나 몇 걸음 걷던 걸왕의 얼굴 표정이 일순 악귀처럼 변했다가 사라졌다.

앞서 걷던 구명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쥐새끼다.]

여전히 먹을 것을 입에 쑤셔 박으며 구명은 웃었다. 그렇지만 걸왕의 귓가에 그의 전음이 들려왔다.

[세 놈입니다.]

[언제 붙었지? 방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야.]

[아마도 먹을 것을 찾으러 간 사이에 붙은 것 같습니다.]

걸왕 또한 그리 생각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추적자의 기척은 느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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