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91화 (91/200)

# 91

16화

당려환은 혀를 쯧 찼다. 물러날 것 같지 않다. 물론 갈지혁이 살의를 띄고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당려환은 신경을 떼고 갈지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몸 주변에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었다. 무엇인지 모르겠다. 독공인 것은 분명한데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대단하군. 대단해.’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독공은 가히 천하제일의 독공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게다. 갈지혁의 손이 천천히 걸왕의 등에 닿았다.

그러자 걸왕의 몸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려환은 손에 힘을 꽉 줬다.

걸왕이 이상한 행동을 하자 주변에 있던 개방도들은 급히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자 그 앞을 당문의 무인들이 막아섰다.

“비켜랏!”

“멈추게 젊은이. 여기서 괜히 끼어들었다간 방주가 죽네.”

나이가 지긋한 일노의 말에 후개는 멈칫했다.

치료를 하고 있을 거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불안한 것이다. 생각도 알 수 없는 자에게 방주의 생명을 맡긴다는 것이.

“좀 참는 법도 배워야 할 것 같아. 후개라면 말일세.”

“어르신은……?”

“그저 이름 없는 노부일 뿐이야.”

후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걸왕의 몸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던 당려환이 일어나면서 땀을 닦았다. 놀라운 것을 본 탓에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당려환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가주, 다 됐소?”

“……그래. 치료는 잘됐군.”

“그럼 걸왕을 어디로 모실 생각이오?”

“당문에 바로 모시는 건 그렇고. 어차피 근처에 우리 당문의 무인들이 약초를 캐러 갈 때 잠시 사용하는 처소가 몇 개 있지 않나. 하나 빌려 쓰지.”

당려환이 후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오게. 남은 치료는 그곳에 가서 하지.”

말을 마친 당려환은 수하들에게 걸왕을 부축하라고 말하곤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바로 뒤에 갈지혁과 진검백이 와서 섰다.

갈지혁은 사황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했지만 당려환은 그렇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탓이다.

갈지혁의 손에서 이루어진 말도 안 되는 것을.

* * *

독황독립문에서 가장 은밀하고, 큰 죄를 지닌 자들만 가둔다는 사독문.

사독문에 들어간 자는 죽는다. 그 독기를 견디지 못해 죽고, 독을 지닌 동물과 벌레에 물려 죽는다. 그곳에 갇힐 때 모든 내공을 묶어 버리기 때문에 반항할 수도 없다.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사독문이다.

사독문에 있는 작은 집에서 연기가 흘러 나왔다.

한 노인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밥을 짓는 듯도 하지만 냄새를 보아하니 그렇지 않다. 그가 만드는 것은 독이다.

노인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빠르게 옆에 놓여 있는 풀들을 으깼고, 또 다듬었다.

제대로 양을 재지도 않으면서 이것저것을 마구 섞어 넣는다. 그렇지만 그건 결코 아무렇게나 넣는 것이 아니다.

재지 않아도 그 양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바로 일악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방으로 독기가 퍼진다. 왜 이 초라한 거처 주변에 아무런 식물도 자라지 않는지 알 만도 하다. 이 정도의 독기가 언제나 주변을 감싸는데 그 안에서 버틸 생물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갈지혁이 떠난 후 일악천은 왠지 모르게 십 년 이상은 늙은 듯이 힘이 빠져 버렸다.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소 뭔가 허전하긴 하겠지만 곧 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꽤 후유증이 컸다.

자신도 모르게 잠에서 깨며 갈지혁의 이름을 부는 걸 보면.

일악천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무엇인가 자잘한 가루가 떨어진다. 아마도 무엇인가 약재를 갈아 놓은 듯하다.

“후우.”

일악천은 소매로 땀을 닦아 냈다.

왠지 모르게 지루하게 변해 버린 일상을 보내기 위해 요즘 그는 독을 만드는 데 심취하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려던 일악천이 뒤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 흐르던 자연의 기운이 변했다.

누가 또다시 사독문 안에 들어오기 위해 결계를 깬 것이다.

평생 열리지 않던 생문이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일악천은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번엔 누구지?’

독황독립문이거나 약선문일 게다. 그렇지만 약선문 또한 쉽사리 독황독립문에게 사독문의 생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독황독립문의 누구일 확률이 큰데…….

‘독황독립문에서 생로를 열 수 있는 자라면…… 지대익이겠군.’

확실하지는 않지만 열에 아홉은 맞을 것이다. 일악천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더러워진 옷을 벗고 새로운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단정하게 옷을 입은 일악천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기품이 흘러나왔다. 완전히 흉측하게 변해 버린 얼굴만 아니라면 신선이 내려왔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초연한 기세다.

일악천은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누군지 확신할 순 없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게 누구든 간에 일악천에게 용무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굳이 일악천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일다경이 조금 더 지나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일악천이 눈을 떴다. 앞에 있는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눈을 뜬 일악천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생소한 인물이 눈앞에 있는 탓이다.

“넌…… 누구냐?”

“섭섭하군요. 절 모르십니까? 일전에 지대익을 따라 온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음?”

그제야 일악천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단 한 번 봤던 적이 있지만 왠지 모르게 눈에 틀어박혔던 자다. 꽤나 오래전 일이라 잠시 잊고 있었거늘 그 한 마디에 모두 기억이 나 버렸다.

“아아, 기억나는군. 그런데 뭐냐 네놈은?”

“단리문. 제 이름입니다.”

“네 이름 따위가 궁금하지는 않아. 내가 묻는 건 왜 네가 이곳에 와서 내 앞에 있냐는 거다.”

말을 내뱉는 일악천의 눈에는 살기가 일렁인다.

단리문은 어깨를 으쓱했다.

중원인이고, 지대익을 옆에서 돕고 있지만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내. 사람들을 가지고 생체실험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잔혹한 자다.

그런 그가 일악천을 찾아온 것이다.

“안타까워. 당신 같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죽어 간다는 게.”

“…….”

“제 손을 잡아요. 그럼 당신을 이곳에서 빼줄 테니.”

단리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혼을 쏙 뺏어 갈 듯한 깨끗한 미소다. 환하고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때 일악천이 말했다.

“더러운 면상 치워라. 꼬맹이.”

“멍청한 사람이군요 당신은.”

“시끄러워. 네놈 몸에선 피 냄새가 나. 그것도 지독하게 비릿한. 네놈은…… 악인이다.”

“하핫! 악인이라. 듣기 싫은 말은 아닙니다.”

단리문은 웃었다.

웃고는 있지만 속내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단리문은 결코 자비라는 걸 아는 자가 아니다. 지대익이 두려워서 일악천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일악천이기 때문이다.

그와 싸운다는 건 무엇인가를 걸어야 한다는 소리다.

지대익조차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노는 듯이 행동하는 단리문이지만 그런 그도 일악천에게만은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일악천은 바로 살아 있는 독의 전설이니까.

“이곳에서 죽을 생각입니까? 독왕이 되셔야죠.”

“큭큭. 그런 것까지 네가 걱정해 줄 필요는 없다. 난 독왕이 될 재목이 아니거든. 독왕이 될 놈은 따로 있어.”

“설마 갈지혁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죠?”

“맞아. 그놈이지. 그놈이 독왕이 못 되면…… 세상 그 누구도 못 돼. 앞으로도 영원히 말이야.”

일악천의 확신 어린 말에 단리문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핫! 갈지혁이 말입니까? 일수만독, 너무 제자에 대한 믿음이 과하신 듯합니다만?”

“맘대로 생각해. 그렇지만 사실이니까.”

단리문은 일악천을 지그시 바라봤다.

분명 갈지혁은 천재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분명 손에 꼽히는 독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독왕? 그건 아니다.

독왕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갈지혁과 싸워 본 적이 있는 단리문으로서는 그런 일악천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분명 강했지만 자신보다 약했다. 그리고 일악천보다도 약할 것이다.

그때 복면을 쓰고 갈지혁 앞에 섰을 때 마음만 먹었으면 죽였을 수도 있다. 단지 단화초 때문에 참고 넘어갔던 것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놈이 독왕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좋아요. 마지막 기회였는데 당신은 버렸군요. 일수만독, 당신은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아쉽지만 상대방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다.

일악천은 결코 자신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단리문은 그 사실을 느낀 순간 미련 없이 마음을 접었다.

그가 손을 잡는다면 강한 동료를 얻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단화초를 손에 넣을 수 있기에 이렇게 직접 왔던 것이다.

지금 갈지혁의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딘가 목표 없이 마구 움직이는 듯하다. 그런 그의 뒤를 쫓는 데 단리문은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일악천을 찾았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실패다.

‘계속해서 기다리는 수밖에.’

갈지혁의 발이 언제 단화초에 닿을지 모르지만 그 날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어쩔 수 없군요. 싫다는 사람과 억지로 일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럼 전 이만.”

단리문은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 하더니 일악천에게 말했다.

“아, 그런데 당신의 그 귀여운 제자, 위험합니다.”

“뭐?”

일악천의 표정이 변했다. 갈지혁이 위험하다는 말에 여태까지 시종일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던 일악천이 변한 것이다.

그런 그가 재밌기라도 한 듯이 단리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 눈 밖에 났거든요. 한 번 싸워 봤는데…… 어려운 상대는 아니더군요.”

“이노옴!”

자리에 앉아 있던 일악천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일악천이 푸들푸들 떨면서 말했다.

“내 경고하지. 네가 만약…… 그 녀석을 건드린다면 내가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당신은 사독문에 있을 것이고 전 밖에 있을 겁니다. 우리 둘은 만날 수 없죠.”

“그때…… 그때 가서 보면 알 게다. 내가 왜 일수만독인지.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줄까? 꼬맹아?”

“어이쿠, 됐습니다. 싸워 봤자 저한테 좋을 것 하나 없는데요. 당신의 목숨 값은 어차피 동전 한 닢입니다. 동전 한 닢의 값어치밖에 안 되는 자와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죠. 그럼 전 가보지요.”

말을 마친 단리문은 문을 닫고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일악천은 자리에 일어선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 놈은 위험하다. 눈빛 깊은 곳에 칠흑 같은 어둠이 잠자고 있다. 몸에서 풍기는 피 냄새는 원한이 담긴 듯 비릿하다. 잘못하면 단리문이라는 저 사내가 갈지혁의 앞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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