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99화 (99/200)

# 99

24화

“황금귀의 연락은 언제 오는 거야?”

“곧 오겠지. 오늘까지 연락을 준다 했으니.”

황금귀 이풍과 헤어진 이후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몇 차례 서신을 통해 상황의 진척을 묻곤 했다.

진검백은 모른다. 갈지혁이 이풍에게 무엇을 부탁했는지. 하지만 그는 애써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게다.

가만히 있어도 그건 당연한 수순일 게다.

그가 그때까지 갈지혁과 함께한다면.

진검백이 벽에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는 한 사람을 가리켰다.

“난 왜 저 아저씨가 저렇게 정감 있는지 모르겠어.”

몸을 감춘다고 감추고 있지만 그의 모습은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운하연을 호위하고 있는 무사인 풍객이다. 진검백은 그런 풍객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저 아저씨 우리가 아는 걸 알면서도 저러고 있단 말이야. 무슨 생각이지.”

“멍청한 거지.”

“그렇다고만 보기도 뭐한데 말이야…….”

갈지혁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변을 살폈다.

풍객은 그렇다 쳐도 거지들이 너무 많다. 걸왕이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지대평이 보냈을 확률이 크다. 그는 처음부터 갈지혁을 좋게 보지 않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고만 했다.

“옆에 있어 봤자 아무것도 줄 건 없는데 말이야.”

“알아도 물러나지 않을걸. 그것보다 운하연이 문제인 것 같은데.”

갈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검백의 말대로다. 걸왕에게나 다른 사람은 안 되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운하연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단화초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곧 퍼질 역병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어떠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약선문에서 이렇게 눈에 불을 킬 정도라면 잘못한다면 그녀의 말대로 중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건 갈지혁도 막아야 할 일이다. 중원이 없는 독왕? 그건 불가능하다.

우습게도 독왕이 되는 걸 막으려는 건 중원이지만 또 중원이 없다면 독왕은 탄생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걸 떠나 그만큼 많은 인명피해가 있다면 막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럴 힘이 있으니까.

그때 진검백이 갈지혁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갈지혁이 고개를 돌리자 진검백이 고갯짓을 하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봇짐을 메고 누군가가 갈지혁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고, 눈에 확 튀는 갈지혁을 바라본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저렇게 똑바로 보고 걸어온 사람은 없다.

진검백은 그러한 행동에서 그가 갈지혁을 만나러 온 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갈지혁과 진검백 앞으로 다가온 봇짐을 든 사내는 고개를 꾸벅했다.

“갈지혁입니까?”

“이풍이 보냈습니까.”

“예.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하더니 과연이군요.”

이풍에게 대충 갈지혁의 외향에 대해서 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갈지혁의 겉모습은 특이했다.

“이걸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내는 등에 지고 있던 짐을 갈지혁에게 넘겼다.

갈지혁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짐을 펼치지도 않고 갈지혁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는 천천히 손을 빼냈다.

그러곤 말했다.

“잘 받았다고 전해 주시죠.”

“확인 안 해 보셔도 되겠습니까?”

“이미 했습니다.”

“……대단하군요.”

손으로 확인한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갈지혁이 부탁했던 것을 이풍이 보내 줬다. 그것도 손가락의 감촉으로 느끼건대 최상품이다.

짐을 들고 왔던 사내가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품속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잘 접힌 서찰 하나를 꺼낸 그는 갈지혁에게 그것을 넘겼다.

“이것을 전해드리랍니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은혜는 갚는다고.”

“그리하지요. 필요하시면 또 연락 달랍니다. 중원 어디든 도와줄 힘이 있다고.”

말을 마친 사내는 몸을 돌렸다.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지만 몸이 가벼워 보인다. 무인인 게 분명하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 이상의 무인.

갈지혁은 서찰을 품속에 넣고 몸을 돌렸다.

“가지.”

“이왕 나온 거 구경이나 좀 하는 게 어때?”

“구경은 별로고 먹을 거나 먹지.”

“내가 하고자 하던 구경이 그거라고 친구.”

진검백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막 몸을 돌려 걷던 갈지혁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듯 슬쩍 시선을 돌렸다.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온다.

“…….”

“왜 그래?”

“아니.”

진검백이 물었지만 갈지혁은 대충 대답했다.

갈지혁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슬쩍 어떤 사내가 눈에 들어왔는데 낯이 익다.

문제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다시금 살폈을 때 이미 그 자는 자리에 없었다.

‘고수.’

누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누구지? 분명…… 안면이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내였는데…….

건물 기둥에 몸을 기댄 사내가 피식 웃었다.

‘많이 컸군. 왜 실패했는지 알만 해.’

갈지혁이 설마 자신의 눈길을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슬쩍 시선을 돌려 자신을 확인하는 갈지혁을 보며 단리문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곤 몸을 감췄다.

그가 보냈던 자들이 갈지혁에게 모두 당했다. 물론 갈지혁의 옆에 있는 진검백에게도 당했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진검백의 실력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갈지혁에 대해 파악했던 것이 틀렸던 모양이다.

예상보다 갈지혁은 훨씬 강했다.

‘슬슬 움직여야지? 단화초가 있는 곳으로 말이야.’

단리문은 손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피 냄새가 나는 듯하다.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알 수 없는 욕구가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부탁이야. 빨리 찾아줘.’

말을 마친 단리문은 옆에 있는 벽에 손가락을 틀어박았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벽에 틀어박혔다. 누군가가 봤다면 기절을 하고도 남을 일이다.

단리문은 웃었다.

‘못 참고 널 죽일지도 몰라.’

* * *

“으라차차!”

풍객은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걸인 하나를 내쳤다. 땅에 걸인을 내리 꽂은 그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돌 위에 올려 있는 술병을 들으며 풍객이 말했다.

“이겼으니 이 술은 내 거요!”

“쳇! 알겠다. 이 거지보다 더한 놈…….”

쓰러졌던 걸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거지를 벗겨 먹는 놈은 생전 처음이다. 술을 구해서 오는 길에 걸인은 풍객을 만났다. 가려는 그를 붙잡고 풍객이 계속해서 내기를 하자고 했다.

딴에 호승심이 일어 내기를 했지만 져 버렸다.

풍객은 술병을 열어 안에 든 술을 마셨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나타나 풍객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힘이 좋으신데요.”

“음?”

풍객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진검백이 있었다.

진검백이 미소를 띤 채로 풍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풍객은 술병을 닫고는 진검백에게 말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가?”

“처음부터요.”

“음…….”

풍객은 진검백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아가씨께는 말하지 말게. 분명 내 마누라 귀에도 들어갈 거란 말이지. 술 안 마시기로 약속을 했거든. 근데 마신 걸 알면 난 맞아 죽어.”

풍객의 말에 진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운하연과 이야기를 나눌 이유도 없다. 갈지혁이 피하는 이상 진검백 또한 운하연과는 그런 관계일 뿐이다.

그렇지만 진검백은 풍객에게 관심이 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풍객은 진검백이 신경을 쓸 정도로 강하지 않다. 아마 싸운다면 십 초를 버텨 내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눈이 간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자유롭다. 풍객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안다. 실제 그의 이름일 리는 없다. 바람과 같은 나그네라고 해서 그리 불리는 것이다.

“한 잔 하겠나?”

“됐습니다. 사양하죠.”

“쩝. 뭔가 먹여두지를 않으면 불안한데 말이야…….”

풍객은 술병을 다시금 열어 안에 있는 술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진검백이 말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이라도 한 모양이다.

술을 마시던 풍객이 물었다.

“여기서 얼마나 있을 겐가?”

“저도 잘 모르죠. 그 친구가 할 일이니까요. 개방의 입장도 있고요.”

“쳇. 이런 곳에 묶여 있는 거 딱 질색인데.”

“마찬가지입니다.”

풍객은 돌에 걸터앉았다.

먼 하늘을 바라보던 그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낙화검이라는 별호 자네와 어울리지 않아.”

진검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풍객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기습 때 보였던 진검백의 무위 탓에 그러는 것이리라.

“그런가요? 전 모르겠군요.”

“솔직히 모르겠어. 왜 자네가 낙화검이라고 불리게 됐는지. 자네 정도 되는 자들이 널렸을 정도로 화산파가 강한 건 아니란 말이야. 내가 듣기로 진검백이라는 자는 검을 놓았다고 들었어.”

“예, 맞습니다. 검을 놓았지요. 사실입니다.”

“웃기지 마. 비록 내가 엄청난 고수는 아니라 하지만 그 정도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냐. 그토록 오래 검을 놓은 자가 그런 검법을 펼칠 수는 없어.”

진검백이 풍객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풍객 또한 그에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보여야만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검을 들어야 드는 건 아니죠. 중요한 건 검을 놓았지만 한시도 검을 놓았던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젠장, 이래서 명문정파 놈들과 대화하기가 싫어. 괜히 어려운 말을 쓴단 말이야.”

풍객은 투덜거렸지만 더 이상 진검백에게 그러한 것을 묻지 않았다.

말은 그리 했지만 진검백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대충 안다.

풍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풍객이 진검백에게 말했다.

“가지.”

“그러죠.”

풍객과 진검백은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던 중 풍객이 물었다.

“그나저나 요즘 갈지혁 그놈 안 보이던데…….”

“콕 처박혀서 뭔가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뭐 하는지는 모르고?”

“말해 줄 친구가 아니죠. 문제는 눈빛이 진지하다는 겁니다. 다른 것 하나 보지 않고…… 그저 알 수 없는 것 하나만 파고 있어요.”

갈지혁은 이풍에게 연락을 받고 나서 갑작스럽게 처박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원래부터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그였지만 요즘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진검백이나 갈지혁을 몇 번 본 게 다다. 아무도 갈지혁에게 무엇을 하냐고 묻지 않는다.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을 잘 아는 탓이다.

진검백 또한 묻지 않았다.

때가 된다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궁금하군그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걱정 돼.”

“분명한 건…… 더 강해질 거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야?”

“신기한 놈이거든요, 그놈. 무엇인가 수상한 짓을 한다 싶으면 더 강해지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검백이 터벅터벅 걸었다.

몇 걸음 더 나아간 진검백이 작게 말했다.

“그만 좀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강해지면…… 이제 저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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