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독왕전설 5권
1화
단리문의 발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놀랍게도 그곳은 무당파였다.
무당파에 그가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를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당파를 당당하게 걷는 그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무당파는 소림과 더불어 정파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다.
그런 곳에 지금 무림을 발칵 뒤집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단리문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단리문은 익숙하다는 듯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의 발이 멈췄다.
문을 지키고 있던 자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단리문을 잘 아는 듯하다. 단리문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에 계신가?”
“예. 기다리고 계시니 오시면 안으로 안내하라고 하셨습니다.”
단리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수가 무당파까지 뻗친 것인가, 아니면…… 문을 막고 있던 자가 비키자 단리문은 안으로 들어섰다. 워낙 집이 큰 탓에 안으로 들어선 단리문은 꽤나 오랫동안 어딘가를 향해 걸어야 했다.
익숙한 듯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한 곳만 바라보며 걷는다.
그렇게 걷던 단리문이 발을 멈췄다. 그의 앞에 문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단리문이 만나러 온 자가 있을 것이다.
단리문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툭툭.
“누구냐?”
“접니다.”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단리문이 답했다. 여태까지의 단리문과는 다르게 공손한 모습이다. 안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으면서도 뭔가 묵직한 목소리다.
“기다렸다. 어서 들어와라.”
단리문은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단정한 외모에 무엇인가를 살피고 있는 듯한 그는 단리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입니다.”
단리문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상대는 이자가 유일하다.
“계획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큭큭.”
사내는 그냥 웃었다.
그는 단리문을 바라봤다. 놀랍게도 사내는 무당파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다. 그런 그가 단리문과 연이 있는 듯하다.
“애초의 계획대로 일을 풀어 보라고. 시간은 많지만…… 빠를수록 좋지.”
“걱정 마시지요.”
중년의 사내가 종이 한 장을 단리문에게 던졌다.
“다음 지령이야. 너라면 가능할 거야.”
“…….”
단리문은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을 확인도 하지 않고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곧 좋은 소식 전해드리지요.”
“자네만 믿지. 그럼 이만 가게.”
말을 마친 중년의 사내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자신이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단리문은 그런 중년의 사내를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거처를 나온 단리문이 피식 웃었다.
‘스승님, 당신은 절 가르쳤지만 아직 절 모릅니다.’
단리문이 걷기 시작했다. 무당파를 걷고 있지만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는 당당하게 무당파를 드나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년 사내는 여러 가지 힘을 지니고 있다.
단리문을 키운 것이 바로 그 사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리문은 다소 다른 생각을 지닌 듯했다.
“날씨가 좋군.”
말을 마친 단리문은 하늘을 바라봤다.
무당파에서 보는 하늘은 뭔가 다르다.
걸왕은 갈지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묻지 않는 선에서 알아야 할 것을 캐물었다.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걸왕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후개는 식사 중에 침묵한 채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걸왕을 보며 말을 걸었다.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아니, 아니야.”
곧이곧대로 들은 말을 믿을 정도로 후개는 바보가 아니다.
그와 걸왕이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그거 하나 모른단 말인가.
“갈지혁 때문입니까?”
“……비단 그것뿐이겠느냐.”
현재 무림은 조용하다. 문제는 이후에 몰아닥칠 폭풍우다. 그걸 무림은 모른다. 그것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는 건 개방과 약선문이 유일하다. 아무리 평화가 좋다지만 그것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힘이 없이 평화만 바라는 것은 결국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될 게다.
무림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단지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증거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독황독립문이 수상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딱히 그게 나쁜 음모나 계획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퍼지는 역병에 대한 조치는 나라에 맡기라고만 한다.
“거참, 놈은 아무것도 몰라.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갈지혁은 독황독립문의 속셈을 모르는 것 같더군.”
“파문당한 자라고 해도 그 정도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텐데…….”
“중원인.”
“……?”
“중원인이라고 멸시받았다 하더군. 어렸을 때부터. 사실이라면 죽기보다 괴로웠겠지.”
후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재능이 있었기에 꽤나 좋은 대우를 받으며 컸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원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받으며 자랐다면 어린 시절이 불우했을 게 틀림없다.
이해는 간다. 만약 자신의 옆에 남만인이 있다면 그리 좋게 보지는 않을 게다. 하물며 남만에서 중원인이라면 괴물 보듯 하는 거야 누구나 아는 일 아니겠는가.
“어쩌다 남만에 간 걸까요?”
“모르지.”
말을 마친 걸왕은 앞에 놓여 있는 먹을 것을 집어 씹기 시작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식욕이 있을 리가 없다.
“계속 잡아 두실 생각입니까?”
“그러고 싶지만…… 그럴 놈이 아니지.”
안 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걸왕은 갈지혁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다.
누군가가 묶어둔다고 그리할 자가 아니다. 돈을 준다고 해서 마음을 바꿀 자도 아니다. 이대로 놔준다는 게 석연치 않기는 해도 갈지혁이 간다고 하면 놓아줘야만 한다.
자신의 발로 이곳까지 온 자다. 오지 않아도 될 길을 굳이 따라와 줬다. 그것만으로도 걸왕은 더 이상 갈지혁에게 무엇을 바랄 수도 없는 입장이다.
“어려운 일이야. 독황독립문이 움직인다면 다시금 무림에 풍파가 일 텐데…….”
“돕겠다는 문파가 어디 어딥니까?”
“약선문이야 우리 편일 테고, 화산파와 아미파는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공동파도 상황을 보다가 필요하면 지원하겠다더군.”
“그럼 소림과 무당은…….”
“알지 않느냐. 정작 무림의 두 기둥이라고 불리는 그들이 어떠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소림은 그나마 낫다.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움직이기는 할 게다. 무당파도 물론 모른 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현 무당파의 장문인이다. 그는 자신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에 급급한 인물이다. 무당파가 나선다 해도 그가 장문인인 이상 그 도움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게다.
“뭔가 큰 움직임을 보이거나 단서만 준다면…….”
그런 것을 찾기만 하면 적어도 다른 구파일방 또한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보일 게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나가다 독황독립문이 전력을 쏟아 내기라도 한다면 섬서부터 사천까지는 한 달 이내에 쑥대밭이 된다.
“지대익 그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이제는 개방의 귀를 믿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 듯합니다.”
“그렇지. 가장 믿을 것은 바로 그거니까.”
갈지혁이 필요하다. 그가 있다면 독에 대한 것을 알 수도 있고, 무엇인가 더 알아낼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내 줄 생각이다. 만약 갈지혁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든다면 그는 어떻게든 사고를 낼 놈이다.
“휴, 내 오판이라면 좋으련만.”
사방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마치 하나의 무엇인가를 위해 만들어지는 상황 같다. 그러한 자신의 판단이 틀리기를 걸왕은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막 방에 들어선 진검백은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갈지혁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을 평소와 다르게 단정하게 뒤로 넘긴 갈지혁을 보며 진검백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이야, 그렇게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면 인상이 참 좋은데 말이야.”
“시끄러워. 아직은 그럴 생각 없어.”
갈지혁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서찰을 쓸 것이 있는데 머리카락이 방해를 해 잠시 묶은 것뿐이다. 그것도 반쯤 묶어 시야를 가리는 것만 막았지 여전히 앞머리가 얼굴의 대부분을 덮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갈지혁의 인상은 확 달라 보였다.
얼굴 가운데를 잇는 긴 검상 하나가 있지만 갈지혁의 얼굴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면 사람도 밝아 보이고 좋으련만 갈지혁은 굳이 얼굴을 가린다.
“그럼 언제쯤 그럴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말을 마친 진검백이 갈지혁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그가 쓰는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진검백은 그것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갈지혁은 붓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내가 독왕이 되는 날.”
“또 그 말이냐?”
독왕이 되기 전까지는 하늘을 향해 제대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바보 같은 아들.
어머니 하나 지키지 못한 놈.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남만으로 가고 싶다. 그렇지만 그건 안 된다. 독왕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머니를 똑바로 볼 수도 없다.
일악천이 호통을 쳐도 고개만 숙일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무림에 나섰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소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독왕이 된다는 건 어떠한 경지에 오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인정을 받아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는 거야 노력으로 된다 하지만 인정을 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자신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파 무림에선 더 더욱 힘든 일이다.
갈지혁은 서찰을 접어서 품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묶었던 끈을 풀어 손목에 걸었다.
“떠날 모양이군.”
“너무 오래 있었어.”
“너답지 않게 오래 머문다 했다. 황금귀와도 연락이 됐으니 조만간 떠날 거라고 생각했지.”
“너무 날 잘 아는 거 아냐?”
“당연하지. 감시하는 입장에서 그 정도 파악하는 건 기본 아냐?”
진검백의 말에 갈지혁이 피식 웃었다.
문득 진검백은 얼굴을 드러낸 갈지혁의 미소가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진짜 갈지혁의 미소를 보려면 그가 독왕이 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약선문 소문주는?”
“데리고 갈 생각 없어.”
“따라올걸.”
“알아. 같이 행동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래도 떨궈낼 거다.”
“한동안은 같이 지낼 생각인가 보군.”
“그래. 나한테 원하는 게 있는데 그걸 포기시켜 줄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렇게 급작스럽게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뭔지 궁금하군.”
약선문의 소문주가 원하는 것이 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걸 갈지혁에게 매달리며 찾으려고 하는 것도 궁금하다. 어떻게 약선문의 소문주가 그렇게 원하는 것을 갈지혁이 알고 있다는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언제나처럼 진검백은 묻지 않았다.
“알아봤자야. 너한텐 필요 없는 거니까. 그리고 분명한 건 나보다 그녀에게 그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럼 주는 게 낫지 않아?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래서 확인하려는 거다. 충분하다면…… 조금 나눠 줄 수도 있지. 나도 그게 있어야 하거든.”
갈지혁에게 단화초는 꼭 필요하다.
물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려는 운하연에게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 단화초를 만져 보지도 못했다. 그것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랬기에 지금 갈지혁은 가려고 하는 것이다.
단화초가 있는 곳으로.
너무 쉬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고 떠나는 것은 그 탓이다.
개방의 걸왕은 갈지혁이 떠나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으려 하지도 않았고, 다시 찾아오라는 말도 남기지 않았다.
걸왕은 말없이 창가에 서서 흐르는 구름을 바라봤다.
세상이란 게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면 오죽이나 좋으랴. 문제는 사람이라는 것이 모두가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자들은 위로 올라가기를 원하고, 위에 있는 자들도 더 나은 위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싸움이 없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싸움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부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걸왕은 거지였다.
지금도 물론 거지지만 예전 후개가 되기 전까지는 정말 거지 중의 상거지였다.
어렸을 때 그의 인생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농부였다. 잘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식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되었다.
작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런 집안이 박살 난 것은 힘이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