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8화
‘웬만한 독으론 안 돼.’
갈지혁은 제대로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절상은 구경꾼들을 살피다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잘들 보라고. 점창의 검을. 물론 당신들의 눈이 쫓아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건방진 말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뭐라고 입을 열지 않았다.
파락호처럼 보이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는 보통이 아니다. 웬만한 무인으로서는 입조차 열 수 없을 정도다.
“한번 잡아 봐.”
소절상의 몸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엇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명을 제하고 모두는 소절상을 놓쳤다. 하지만 마주하고 있던 갈지혁은 급히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갈지혁의 옆을 검이 긴 섬광을 그리며 스쳐 지나갔다.
갈지혁의 허리춤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막 검을 어깨에 걸친 소절상이 씨익 웃었다.
“피했네?”
‘빨라.’
갈지혁은 대답 대신 자세를 취했다.
그의 검은 빠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검을 더욱 빠르게 하는 신법을 가지고 있다.
유운신법(流雲身法), 비운축영(飛雲逐影), 창응칠식(蒼鷹七式), 분광착영(分光捉影), 천룡환허보(天龍幻虛步)를 비롯해 많은 신법이 점창파에 있다.
검의 빠르기도 중요했지만 그걸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신법을 지녀야 한다. 소절상은 그랬다.
그는 신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잡을 수 있겠어?”
싱글거리며 웃는 그의 낯짝을 당장에 무너뜨리고 싶다.
갈지혁은 자세를 잡았다. 그 또한 질 생각은 없다. 일악천에게서 그가 배운 건 한두 개가 아니다. 신법이라면 그 또한 일가견이 있다.
독을 쓰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거리와 자리다. 그걸 위해서는 신법이 따라줘야 한다.
독황군림계(毒皇君臨繼)라는 경공만 해도 무림에서 알아주는 경공들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갈지혁은 눈에 내공을 집중했다.
그의 움직임을 잡아야 한다. 그 전에는 싸움이 쉽지 않다.
소절상이 다시금 움직였다. 발이 땅에 닿는다고 느낀 순간 그의 몸은 이미 갈지혁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갈지혁 또한 뒤로 성큼 물러서면서 손바닥을 휘둘렀다.
소절상은 놀랐다. 갈지혁이 자신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잡아내며 반격을 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가볍게 휘두른 듯한 그 일장의 위력이 상당해 보인다. 검으로 받아 낸 소절상은 자신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걸 느꼈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선 소절상은 급히 자세를 잡았다.
단순한 독장인 줄 알았거늘 그 위력이 대단하다.
아직까지 검을 잡고 있던 손목이 시큰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소절상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걷혔다. 그만큼 이번 일격이 예상외였던 것이다. 급한 상황에서 휘두른 일장이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얼마만한 위력을 낼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거야 원…….”
중얼거리던 소절상이 바로 검을 내질렀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이다. 빠름보다는 힘에 그 중점을 둔 검술이다. 갈지혁이 손으로 검을 밀어내는 걸 보고 바로 검법을 바꾼 것이다.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갈지혁은 어렵지 않게 소절상의 검을 옆으로 흘렸다.
그때 소절상의 발이 바로 갈지혁의 배를 걷어찼다. 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확하게 발은 갈지혁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의 허리가 굽혀졌다.
쒜엑!
기회였다.
소절상의 손에 있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광검법(分光劍法)이다.
콰콰콰쾅!
갈지혁은 허리를 굽히고 있었지만 검이 다가오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수라독공을 운기했다. 바로 힘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끌어올려지자 분광검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이겼어!’
소절상은 승리를 확신했다.
갈지혁은 내공을 모을 시간이 없었다.
분명 승리다.
그런데 그건 수라독공을 몰라서다. 수라독공은 아주 조금의 호흡할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내공을 끌어 모을 수 있게 하는 무공이다.
소절상은 그걸 몰랐다.
검과 손이 마주 닿았다.
한쪽은 미리 준비된 일수요, 다른 하나는 급해서 마구 휘두른 것 같다. 당연히 승부는 점창파의 장문인인 소절상에게 점쳐졌다.
관객들도 점창파의 무인들도 모두 그리 생각했다.
진검백 하나만 제하고는.
그만큼 갈지혁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만큼 갈지혁의 옆에서 그의 무공을 살핀 자도 없다. 진검백이 보기에 갈지혁은 결코 점창파의 장문인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다.
폭풍이 휘몰아쳤다. 미칠 듯한 광풍이 두 사람 사이를 휩쓸고 지나갔다. 내공을 가득 담은 일검을 펼친 소절상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갈지혁은 반쯤 허리를 굽힌 채로 그의 검을 막아 냈다.
한눈에 봐도 갈지혁이 간신히 막은 듯하다.
그런데,
소절상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너무나 태연했기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그는 뒤로 물러서더니 소매로 슬쩍 입을 닦아 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단박에 밀어냈어야 했다. 그런데 피를 토해 버렸다. 적지 않은 내상을 그대로 입어 버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기회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력을 쏟아 부었다.
반탄공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순수한 내력 싸움에서 밀렸다.
믿어지지 않지만 분명 사실이다.
사공을 익힌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끌어올린 내공으로 자신을 누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더러운 무공을 익혔군…….”
그 말에 갈지혁의 표정이 싹 변했다.
예의 그 차가운 표정은 여전했지만 문제는 그 깊이가 변했다는 거다. 소절상이 지금 한 말은 그의 스승을 욕되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바쳤다. 수라독공이라는 무공에. 그것을 더러운 수법이라며 모욕했다.
자신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일악천이 평생을 걸쳐 만들어 낸 수라독공을 모독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한다.
갈지혁에게 있어서 그는 하늘이자 전부였다.
“더러워?”
갈지혁의 주먹이 빠르게 소절상을 노렸다.
단순한 주먹질이지만 내공이 실려 그 위력은 녹록지 않다. 소절상은 급히 몸을 뒤로 빼 주먹을 피했지만 이내 다른 쪽 손이 정확하게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퉤!”
순간 비틀했지만 소절상은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텨 냈다.
이빨이 나간 듯하다. 혀로 입 안을 살살 돌려 보니 빠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얼굴이 확 붉어졌다.
왠지 시정잡배에게 맞은 듯한 탓이다.
소절상은 재차 날아드는 발길질을 피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갈지혁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뚫렸다고 입이 아니고 나불거린다고 말이 아니다.”
“건방진!”
소절상은 갈지혁의 살기 어린 모습에도 물러섬이 없었다. 그것은 무의 귀재라고 불리는 그의 장점이기도 했다.
물러설 줄 모르는 패기가 바로 소절상의 장점이다. 문제는 그 탓에 상대를 너무 경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소절상은 검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점창의 최고 검법인 사일검법이다. 점창 문인 모두가 펼쳤지만 갈지혁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절상의 검은 다르다. 그의 사일검법은 여태까지의 사일검법과는 격을 달리한다.
갈지혁 또한 살기 어린 눈빛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서 무엇인가가 튀어 나왔다.
나무로 된 무엇이다. 그것을 쥔 갈지혁이 천천히 소절상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무기에 진검백 또한 눈을 크게 떴다. 여태까지 갈지혁이 저런 무기를 든 것을 본 적이 없는 탓이다.
갈지혁은 말없이 나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무엇인가가 강하게 앞으로 튀어 나왔다.
쇠 구슬 같은 것이 날아들자 소절상은 검으로 그것을 쳐냈다.
쇠 구슬은 정확하게 반으로 갈렸다. 그때 갈라진 쇠 구슬이 먼지를 토해 냈다.
직감적으로 소절상은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암기인 줄 알고 쳐냈는데 아닌 모양이다. 이건 독이다.
차라리 피했어야 했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급히 숨을 멈췄다. 내공이 몸으로 침입하려는 독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꽤나 지독한 독인 모양이다. 쉽사리 독기가 밀어내지지 않는다.
그 순간 갈지혁의 몸이 날아들었다. 그의 손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몰아쳤다. 일순 녹색으로 변한 손은 천하를 흔들었다.
땅에 발이 틀어박혔다. 주먹에서는 용권풍이 형성된다.
주먹은 정확하게 소절상의 가슴을 후려쳤다.
뻐걱!
소절상의 몸이 공중으로 뜬 채로 무려 오 장이나 날아가 버렸다.
볼품없이 땅을 나뒹군 그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상이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다.
‘못 봤어…… 왜?’
분명 대단한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완벽하게 당해 버렸다.
갈지혁이 이번에 사용한 독은 마비독이었다. 그의 신경이 일순 마비되었고, 그 찰나를 갈지혁은 놓치지 않았다.
잠시 감각이 죽는다는 건 무인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는 건 독을 만든 갈지혁뿐이다. 그 찰나의 순간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소절상은 어떻게든 검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손에 꽉 힘을 주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주변에 있는 구경꾼들의 시끄럽던 목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조용해진 것일까?
아니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점창이라는 이름이 한 사내에게 꺾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 버렸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된다.
여태까지 점창파라는 이름이 누군가에게 꺾인 적은 없다. 어떠한 압박에도 꿋꿋하게 버텨 온 점창이다. 그런데 그런 이름이 지금 꺾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어떠한 무력 단체도 아닌 고작 한 사내에게.
‘안 돼. 절대.’
소절상의 검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검강이다.
“오오오!”
그의 검에 맺힌 검강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검강은 당장에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했다.
모든 내공을 쏟아 부은 것이다. 소절상 본인 또한 살아오면서 이만한 검강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무조건 죽인다.’
살려서 어쩐다 저쩐다 하는 생각은 싸그리 버렸다.
죽인다. 갈지혁이라는 놈을 지금 이 자리에서.
갈지혁 또한 다리를 벌려 자세를 잡았다. 검강이라면 이쪽에서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다. 그의 몸 전체가 녹색 기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검강에 싸인 검을 가볍게 휘두르면서 소절상은 눈을 빛냈다.
내공의 소모가 심한 것이 검강이다.
그리고 이 검강을 모두 쏟아 넣은 검으로 펼칠 무공은 점창의 최고 무공인 사일검법이다.
그에 반해 갈지혁은 그저 두 손을 들어 올렸을 뿐이다. 그저 겉보기만으로 본다면 갈지혁의 패배가 확실하다.
한쪽은 검강에 사일검법, 갈지혁은 그저 두 손.
그렇지만 소절상은 얕보지 않았다. 아까도 그리 얕보다가 내상을 입지 않았던가.
“죽엇!”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소절상의 검이 미칠 듯한 폭풍우와 함께 갈지혁에게 쏟아졌다. 찰나의 순간에 검이 수십 개로 갈렸다.
갈지혁의 눈은 한 점을 쫓았다.
그 미칠 듯한 폭풍우로 오히려 몸을 던졌다.
갈지혁의 몸이 하나의 꽃잎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자들이 갑자기 우르르 쓰러졌다.
갈지혁의 몸에서 뻗치기 시작한 기류가 닿은 사람은 모두 버티지 못한 것이다.
독이다.
그 안에서 버텨 낸 것은 몇 되지 않았다. 점창파의 무인 몇과 진검백, 운하연, 그리고 구경꾼들 중에서 몇 명이 다였다.
그리고 그 구경꾼 사이에는 무림사괴의 하나인 운곽과 그의 젊은 제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둘은 표정도 변하지 않은 채로 싸움터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런 대결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인의 싸움도 보기 힘들지만 상대편 또한 만만치 않다.
검강을 날리며 펼치는 사일검법은 아마 평생 동안 다시는 보지 못할 광경일 게다.
우르르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버텨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갈지혁이 이 기류에 독을 실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두려운 일이다.
지금 갈지혁의 몸에서 쏟아진 내력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독기 탓이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지는 않다.
8화
‘웬만한 독으론 안 돼.’
갈지혁은 제대로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절상은 구경꾼들을 살피다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잘들 보라고. 점창의 검을. 물론 당신들의 눈이 쫓아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건방진 말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뭐라고 입을 열지 않았다.
파락호처럼 보이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는 보통이 아니다. 웬만한 무인으로서는 입조차 열 수 없을 정도다.
“한번 잡아 봐.”
소절상의 몸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엇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명을 제하고 모두는 소절상을 놓쳤다. 하지만 마주하고 있던 갈지혁은 급히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갈지혁의 옆을 검이 긴 섬광을 그리며 스쳐 지나갔다.
갈지혁의 허리춤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막 검을 어깨에 걸친 소절상이 씨익 웃었다.
“피했네?”
‘빨라.’
갈지혁은 대답 대신 자세를 취했다.
그의 검은 빠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검을 더욱 빠르게 하는 신법을 가지고 있다.
유운신법(流雲身法), 비운축영(飛雲逐影), 창응칠식(蒼鷹七式), 분광착영(分光捉影), 천룡환허보(天龍幻虛步)를 비롯해 많은 신법이 점창파에 있다.
검의 빠르기도 중요했지만 그걸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신법을 지녀야 한다. 소절상은 그랬다.
그는 신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잡을 수 있겠어?”
싱글거리며 웃는 그의 낯짝을 당장에 무너뜨리고 싶다.
갈지혁은 자세를 잡았다. 그 또한 질 생각은 없다. 일악천에게서 그가 배운 건 한두 개가 아니다. 신법이라면 그 또한 일가견이 있다.
독을 쓰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거리와 자리다. 그걸 위해서는 신법이 따라줘야 한다.
독황군림계(毒皇君臨繼)라는 경공만 해도 무림에서 알아주는 경공들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갈지혁은 눈에 내공을 집중했다.
그의 움직임을 잡아야 한다. 그 전에는 싸움이 쉽지 않다.
소절상이 다시금 움직였다. 발이 땅에 닿는다고 느낀 순간 그의 몸은 이미 갈지혁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갈지혁 또한 뒤로 성큼 물러서면서 손바닥을 휘둘렀다.
소절상은 놀랐다. 갈지혁이 자신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잡아내며 반격을 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가볍게 휘두른 듯한 그 일장의 위력이 상당해 보인다. 검으로 받아 낸 소절상은 자신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걸 느꼈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선 소절상은 급히 자세를 잡았다.
단순한 독장인 줄 알았거늘 그 위력이 대단하다.
아직까지 검을 잡고 있던 손목이 시큰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소절상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걷혔다. 그만큼 이번 일격이 예상외였던 것이다. 급한 상황에서 휘두른 일장이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얼마만한 위력을 낼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거야 원…….”
중얼거리던 소절상이 바로 검을 내질렀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이다. 빠름보다는 힘에 그 중점을 둔 검술이다. 갈지혁이 손으로 검을 밀어내는 걸 보고 바로 검법을 바꾼 것이다.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갈지혁은 어렵지 않게 소절상의 검을 옆으로 흘렸다.
그때 소절상의 발이 바로 갈지혁의 배를 걷어찼다. 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확하게 발은 갈지혁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의 허리가 굽혀졌다.
쒜엑!
기회였다.
소절상의 손에 있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광검법(分光劍法)이다.
콰콰콰쾅!
갈지혁은 허리를 굽히고 있었지만 검이 다가오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수라독공을 운기했다. 바로 힘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끌어올려지자 분광검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이겼어!’
소절상은 승리를 확신했다.
갈지혁은 내공을 모을 시간이 없었다.
분명 승리다.
그런데 그건 수라독공을 몰라서다. 수라독공은 아주 조금의 호흡할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내공을 끌어 모을 수 있게 하는 무공이다.
소절상은 그걸 몰랐다.
검과 손이 마주 닿았다.
한쪽은 미리 준비된 일수요, 다른 하나는 급해서 마구 휘두른 것 같다. 당연히 승부는 점창파의 장문인인 소절상에게 점쳐졌다.
관객들도 점창파의 무인들도 모두 그리 생각했다.
진검백 하나만 제하고는.
그만큼 갈지혁을 아는 사람도 없다. 그만큼 갈지혁의 옆에서 그의 무공을 살핀 자도 없다. 진검백이 보기에 갈지혁은 결코 점창파의 장문인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다.
폭풍이 휘몰아쳤다. 미칠 듯한 광풍이 두 사람 사이를 휩쓸고 지나갔다. 내공을 가득 담은 일검을 펼친 소절상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갈지혁은 반쯤 허리를 굽힌 채로 그의 검을 막아 냈다.
한눈에 봐도 갈지혁이 간신히 막은 듯하다.
그런데,
소절상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너무나 태연했기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그는 뒤로 물러서더니 소매로 슬쩍 입을 닦아 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단박에 밀어냈어야 했다. 그런데 피를 토해 버렸다. 적지 않은 내상을 그대로 입어 버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기회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력을 쏟아 부었다.
반탄공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순수한 내력 싸움에서 밀렸다.
믿어지지 않지만 분명 사실이다.
사공을 익힌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끌어올린 내공으로 자신을 누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더러운 무공을 익혔군…….”
그 말에 갈지혁의 표정이 싹 변했다.
예의 그 차가운 표정은 여전했지만 문제는 그 깊이가 변했다는 거다. 소절상이 지금 한 말은 그의 스승을 욕되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바쳤다. 수라독공이라는 무공에. 그것을 더러운 수법이라며 모욕했다.
자신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일악천이 평생을 걸쳐 만들어 낸 수라독공을 모독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한다.
갈지혁에게 있어서 그는 하늘이자 전부였다.
“더러워?”
갈지혁의 주먹이 빠르게 소절상을 노렸다.
단순한 주먹질이지만 내공이 실려 그 위력은 녹록지 않다. 소절상은 급히 몸을 뒤로 빼 주먹을 피했지만 이내 다른 쪽 손이 정확하게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퉤!”
순간 비틀했지만 소절상은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텨 냈다.
이빨이 나간 듯하다. 혀로 입 안을 살살 돌려 보니 빠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얼굴이 확 붉어졌다.
왠지 시정잡배에게 맞은 듯한 탓이다.
소절상은 재차 날아드는 발길질을 피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갈지혁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뚫렸다고 입이 아니고 나불거린다고 말이 아니다.”
“건방진!”
소절상은 갈지혁의 살기 어린 모습에도 물러섬이 없었다. 그것은 무의 귀재라고 불리는 그의 장점이기도 했다.
물러설 줄 모르는 패기가 바로 소절상의 장점이다. 문제는 그 탓에 상대를 너무 경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소절상은 검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점창의 최고 검법인 사일검법이다. 점창 문인 모두가 펼쳤지만 갈지혁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절상의 검은 다르다. 그의 사일검법은 여태까지의 사일검법과는 격을 달리한다.
갈지혁 또한 살기 어린 눈빛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서 무엇인가가 튀어 나왔다.
나무로 된 무엇이다. 그것을 쥔 갈지혁이 천천히 소절상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무기에 진검백 또한 눈을 크게 떴다. 여태까지 갈지혁이 저런 무기를 든 것을 본 적이 없는 탓이다.
갈지혁은 말없이 나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무엇인가가 강하게 앞으로 튀어 나왔다.
쇠 구슬 같은 것이 날아들자 소절상은 검으로 그것을 쳐냈다.
쇠 구슬은 정확하게 반으로 갈렸다. 그때 갈라진 쇠 구슬이 먼지를 토해 냈다.
직감적으로 소절상은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암기인 줄 알고 쳐냈는데 아닌 모양이다. 이건 독이다.
차라리 피했어야 했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급히 숨을 멈췄다. 내공이 몸으로 침입하려는 독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꽤나 지독한 독인 모양이다. 쉽사리 독기가 밀어내지지 않는다.
그 순간 갈지혁의 몸이 날아들었다. 그의 손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몰아쳤다. 일순 녹색으로 변한 손은 천하를 흔들었다.
땅에 발이 틀어박혔다. 주먹에서는 용권풍이 형성된다.
주먹은 정확하게 소절상의 가슴을 후려쳤다.
뻐걱!
소절상의 몸이 공중으로 뜬 채로 무려 오 장이나 날아가 버렸다.
볼품없이 땅을 나뒹군 그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상이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다.
‘못 봤어…… 왜?’
분명 대단한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완벽하게 당해 버렸다.
갈지혁이 이번에 사용한 독은 마비독이었다. 그의 신경이 일순 마비되었고, 그 찰나를 갈지혁은 놓치지 않았다.
잠시 감각이 죽는다는 건 무인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는 건 독을 만든 갈지혁뿐이다. 그 찰나의 순간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소절상은 어떻게든 검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손에 꽉 힘을 주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주변에 있는 구경꾼들의 시끄럽던 목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조용해진 것일까?
아니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점창이라는 이름이 한 사내에게 꺾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 버렸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된다.
여태까지 점창파라는 이름이 누군가에게 꺾인 적은 없다. 어떠한 압박에도 꿋꿋하게 버텨 온 점창이다. 그런데 그런 이름이 지금 꺾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어떠한 무력 단체도 아닌 고작 한 사내에게.
‘안 돼. 절대.’
소절상의 검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검강이다.
“오오오!”
그의 검에 맺힌 검강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검강은 당장에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했다.
모든 내공을 쏟아 부은 것이다. 소절상 본인 또한 살아오면서 이만한 검강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무조건 죽인다.’
살려서 어쩐다 저쩐다 하는 생각은 싸그리 버렸다.
죽인다. 갈지혁이라는 놈을 지금 이 자리에서.
갈지혁 또한 다리를 벌려 자세를 잡았다. 검강이라면 이쪽에서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다. 그의 몸 전체가 녹색 기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검강에 싸인 검을 가볍게 휘두르면서 소절상은 눈을 빛냈다.
내공의 소모가 심한 것이 검강이다.
그리고 이 검강을 모두 쏟아 넣은 검으로 펼칠 무공은 점창의 최고 무공인 사일검법이다.
그에 반해 갈지혁은 그저 두 손을 들어 올렸을 뿐이다. 그저 겉보기만으로 본다면 갈지혁의 패배가 확실하다.
한쪽은 검강에 사일검법, 갈지혁은 그저 두 손.
그렇지만 소절상은 얕보지 않았다. 아까도 그리 얕보다가 내상을 입지 않았던가.
“죽엇!”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소절상의 검이 미칠 듯한 폭풍우와 함께 갈지혁에게 쏟아졌다. 찰나의 순간에 검이 수십 개로 갈렸다.
갈지혁의 눈은 한 점을 쫓았다.
그 미칠 듯한 폭풍우로 오히려 몸을 던졌다.
갈지혁의 몸이 하나의 꽃잎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자들이 갑자기 우르르 쓰러졌다.
갈지혁의 몸에서 뻗치기 시작한 기류가 닿은 사람은 모두 버티지 못한 것이다.
독이다.
그 안에서 버텨 낸 것은 몇 되지 않았다. 점창파의 무인 몇과 진검백, 운하연, 그리고 구경꾼들 중에서 몇 명이 다였다.
그리고 그 구경꾼 사이에는 무림사괴의 하나인 운곽과 그의 젊은 제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둘은 표정도 변하지 않은 채로 싸움터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런 대결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인의 싸움도 보기 힘들지만 상대편 또한 만만치 않다.
검강을 날리며 펼치는 사일검법은 아마 평생 동안 다시는 보지 못할 광경일 게다.
우르르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버텨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갈지혁이 이 기류에 독을 실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두려운 일이다.
지금 갈지혁의 몸에서 쏟아진 내력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독기 탓이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