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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09화 (109/200)

# 109

9화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상대를 쓰러뜨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제압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무공을 일정 수준 이상 익힌 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 살상력만 더할 수 있다면 아마 갈지혁은 무림에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될 것이다.

상상해 보라.

겨우 내력을 밖으로 쏟아 내는 것만으로 몇십 명이 죽어 버린다면 누가 섣불리 덤벼들 생각을 하겠는가.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막상 두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눈 한 번 깜박일 정도의 찰나였다.

검강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검에 닿는 모든 것이 잘려져 나갔다. 그런 검강의 위력을 알기에 갈지혁 또한 정면으로 검강과 마주하지 않았다.

굳이 위험한 짓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검강은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마주하는 모든 것이 잘라져 나갔고, 녹아내렸다.

갈지혁 또한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와 마주했지만 용케 그 간격 안에서 벗어났다. 옷의 일부가 찢겨져 나갔고 드문드문 잔 검상도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검상에 당했다기보다는 그저 칼에 슬쩍 긁힌 것 같아 보이는 정도였다.

눈이 검강을 쫓는다.

절대 질 수 없다.

꿈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일악천을 욕되게 한 자를 봐줄 마음은 없다.

갈지혁이 공격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자 소절상은 나름대로 그가 공격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이길 수 있다.

비록 검강이 내공의 소모가 극심해 얼마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이 상태라면 곧 벨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그는 공격조차 하지 못하고 피하기에 급급하고 있지 않은가.

사일검법의 초식을 순서대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일수초현, 후예만궁, 반마만궁, 사양무광, 사양요요, 역만거궁, 후예사일, 구곡전척…….

점점 거세지는 사일검법의 위력은 실로 매서웠다.

괜히 점창제일검법이 된 것이 아니다. 그 빠르기는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였고, 가히 빛의 속도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그런데 용케도 피하고 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갈지혁은 계속해서 피해 내고 있다. 그렇지만 몸을 돌리면서 피하고 있는 갈지혁의 모습은 위태해 보였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렇게 부리나케 달리던 갈지혁이 갑자기 멈췄다.

소절상은 순간 움찔했지만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갈지혁을 호흡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내공 소모가 극심한 자신이 불리해진다.

막 다리를 뗀 순간 소절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휘청이고야 말았다.

이상하다. 비록 내공 소모가 심하다 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몸이 이상하게 나른해지면서 눈앞이 뿌옇게 변한다.

설마 하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주변을 살폈다.

무엇인가 중독시킬 만한 것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갈지혁과 싸우면서 그가 독을 하독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마구 도는 머리를 움켜잡던 소절상의 눈에 땅이 들어왔다.

시선을 돌려 갈지혁을 보려던 소절상의 눈이 갑자기 아래로 향했다. 무엇인가 알아차린 모양이다.

멍한 눈으로 땅을 바라보던 그는 알아차렸다.

지금 자신이 독에 당했다는 걸.

‘땅에서 독기가 올라왔어. 그런데 왜…….’

독에 당했다는 걸 몰랐다. 독기가 몸에 침투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그는 모른다. 애초에 갈지혁이 땅에 뿌린 것은 독이라고 보기 뭐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흙의 성분과 만나면 독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그것은 형체가 없다. 마치 보이지 않는 연기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그 부근에 서 있던 소절상이 당하는 건 당연했다.

소절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져? 내가?’

믿을 수 없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문득 든 그 생각이 점점 현실로 변하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천천히 다가왔다. 소절상의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방비라도 했다면 이처럼 당하지는 않았을 게다.

갈지혁이 코앞까지 왔거늘 소절상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손이 소절상의 가슴에 와 닿았다.

천천히 가져다 댔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갈지혁이 소절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을 모욕한 이상…… 용서를 바라지 마라.”

뻐억!

그 순간 소절상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 * *

쏟아진 피는 성스러운 땅을 적셨다.

다른 사람의 피도 아닌 점창 장문인의 피가 다른 곳도 아닌 점창파의 땅을 적셨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 사내다. 그에게 점창이 무너졌다. 구파일방 중 하나인 점창이 그저 단신으로 들어온 한 사내를 막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버린 것이다.

여태까지 갈지혁이 행한 행동 중에서 대단하다고 봐도 될 것은 분명 많았다.

가장 큰 것으로 단신으로 장강수로채를 막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건 변수가 많았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라고 사람들은 떠들었다. 장강수로채와 은연중에 무슨 계약이 오갔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다르다.

점창파가 무너졌다.

그것이 소문일 리는 없다. 만약 소문이라면 점창이 들고일어난다. 그렇지만 정말로 당한 이상 점창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한동안 봉문하여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저 독인일 뿐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게 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갈지혁을 얕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갈지혁과의 싸움을 피하게 될 게 분명하다. 자신들 또한 점창과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르니까.

무림사괴의 운곽은 날아가는 소절상을 봤다.

한눈에 봐도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갈지혁의 장법은 일반적인 독장과는 다르다. 그 위력은 집채만 한 바위도 부순다. 소절상은 그 위력을 전부 몸으로 받아 냈다. 그리고 독에도 당했다.

일어날 수 없다. 죽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공중에서 떨어진 소절상은 땅에 그대로 처박혔다. 몇 차례 뒤로 밀려난 그의 몸이 꿈틀하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갈지혁이 조용히 손을 거뒀다.

순간적으로 수라독공의 힘을 손바닥 하나에 집중했다.

그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점창파의 무인 중 갈지혁의 내력에 버텨 낸 자들의 표정은 온통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로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노인 하나가 소리쳤다.

“장문인을 모시지 않고 뭣들 하느냐!”

그 말에 몇 명의 무인이 우르르 소절상에게 달려갔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그의 생명이 붙어 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절상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다가 노인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노인은 장문인이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어서 모셔라!”

노인의 고함에 무인들은 급히 소절상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소절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는 소리다.

비록 큰 인물은 되지 못하지만 무공 쪽으로만큼은 귀재요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토록 꼴사납게 쓰러져 버린 것이다.

노인은 부들부들 떨면서 갈지혁을 바라봤다.

쓰러진 장문인과 달리 그는 너무나 멀쩡해 보인다. 자잘한 상처 몇 개가 다다. 점창파의 모든 것을 부순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데 저 멀쩡한 상태를 보면 더욱 할 말이 없다.

사지가 모두 없다면 또 모른다. 그런데 너무나 멀쩡하다.

점창파가 입은 피해에 비해 갈지혁은 아무런 피해도 없다.

이가 갈린다. 어떻게든 저자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지만…….

그 누가 지금 갈지혁에게 덤빌 것인가. 이만한 무위를 지닌 자에게 함부로 덤빌 수는 없다. 그리고 이미 끝난 싸움이다. 구차하게 검을 날릴 수도 없는 것이다.

“……떠나시오.”

갈지혁은 부들거리며 말을 내뱉는 노인을 바라봤다. 그의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주먹을 꽉 쥔 탓에 손톱이 살을 파고든 탓이다.

노인이 다시금 말했다.

“우리가 졌소. 그러니 물러가시오.”

갈지혁은 조용히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 또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생각은 없다. 갈지혁은 옆에 서 있는 진검백을 향해 말했다.

“가자.”

갈지혁의 소매 속에서 갑작스럽게 사황이 튀어나오며 그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 혀를 날름거리며 사황은 연신 갈지혁의 어깨 위를 왔다 갔다 했다.

진검백은 옆에 있는 운하연을 보고 가자는 듯이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운하연은 난처한 표정으로 한 인물을 가리켰다. 자리에 쓰러져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풍객이다.

“에휴, 이 아저씨는…….”

갈지혁의 무리 중 유일하게 이 사내는 버텨 내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풍객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간신히 일류가 되는 수준이다. 점창의 무인 중에서도 서 있는 것은 열 명도 되지 않는다.

구경꾼의 수가 오십이 넘었는데 서 있는 건 일곱, 여덟뿐이다.

진검백은 쓰러진 풍객을 들쳐 업고 걷기 시작했다. 갈지혁의 등을 바라보던 진검백은 혀를 찼다.

‘미친 녀석…… 정말로 점창을 무너뜨릴 줄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으로 봤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점창파를 단 한 명의 사내가 무너뜨린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갈지혁을 막아야 할지도 모르는 진검백의 입장에서는 분명 난처한 일이다.

그런데…….

진검백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땀이 흥건하다. 긴장한 탓에 그러는 것이다. 그렇지만 싫지만은 않다.

갈지혁이 그만큼 강하다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오히려 흥분이 된다. 그건 진검백이 무인인 탓이다. 그것도 강한 자만 보면 싸워 보고 싶어하는 진정한 무골이기 때문이다.

운하연은 묵묵히 갈지혁의 뒤를 걸었다.

너무나 큰 사내다.

독왕이 되겠다는 걸 우습게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냥 우습게 들리지만도 않는다.

그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갈지혁이라면.

운하연은 그에게서 꼭 받아야 할 것이 있다. 단화초를 구하기 위해 그의 곁에 있는 것이다.

갈지혁은 사황을 팔에 걸어 두고는 터벅터벅 걸었다. 점창을 무너뜨린 그의 발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걸어가던 갈지혁이 걸음을 멈췄다.

앞쪽 나무 아래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노인과 젊은 사내다. 그 둘은 갈지혁을 한 번 힐끔 보고는 이내 자신들만의 이야기꽃을 피웠다.

멈칫했던 갈지혁은 말없이 그 둘을 지나쳐 걸었다. 하지만 진검백은 그 둘은 기억해 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점창파에 있던 자들이다. 구경꾼들 중 갈지혁의 독에 당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어느새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갈지혁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진검백은 직감적으로 검 손잡이를 향해 한쪽 손을 내렸다.

등에 풍객을 업고 있어 제대로 반응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둘이 좋은 목적으로 다가온 것 같지는 않은 탓이다.

진검백은 힐끔 자신을 쳐다보는 젊은 사내를 봤다. 그리고 마치 망치에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다.

‘강하다.’

다른 건 모른다. 그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진검백이 풍객을 천천히 내려놓으면서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운하연은 진검백이 멈추어 선 이유를 안다. 누군지 전혀 모르는 두 명의 인물이 눈앞에 있다. 노인이야 나이가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젊은 사내는 조금 다르다.

이 정도 나이에 지닐 눈의 깊이가 아니다. 운하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리 많아?’

무림에 젊은 인재들이야 언제나 즐비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확연하게 두각을 드러낸 적은 없다.

갈지혁, 진검백 그 둘만으로도 여태까지 무림에 알려진 다른 인재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또 등장한 이자는…….

운곽과 그의 제자는 그들이 멈춰 서자 말을 멈췄다. 그들의 시선이 갈지혁에게로 쏠렸다.

“누구십니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진검백이었다.

말투는 부드럽고 공손하다. 그렇지만 그의 손은 검 손잡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흠, 네가 진검백?”

“점창파에서부터 저희를 쫓아오신 이유는……?”

진검백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상대는 자신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 그에 반해 이쪽은 이 두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른다.

“우릴 본 모양이군.”

“구경꾼 중에서 쓰러지지 않은 이는 몇 없었으니까요.”

“그런가? 이 녀석! 그러기에 내가 쓰러져서 보자고 하지 않았더냐!”

운곽은 옆에 있는 자신의 제자의 머리를 세차게 주먹으로 후려쳤다. 쾅 하는 소리가 났지만 고개를 든 사내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시잖습니까. 지저분한 거 질색하는 거.”

“쯧쯧, 하여튼 입 하나는 무림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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