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화
‘아차! 실수다!’
진검백은 그대로 발을 밟고 재차 도약하려고 했지만 바로 다음 공격이 그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빠악!
진검백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서 비틀린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진검백이 방비를 했기에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에 머리로 다음 공격이 이어졌을 게다.
후속타는 피해 냈지만 허벅지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진검백이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자 허영천이 성큼 다가왔다.
그의 검이 진검백을 노리고 움직였다.
일 검은 가슴을 노렸다.
이 검은 머리를 노렸다.
삼 검은 하반신을 노렸다.
세 번에 걸쳐 이어지는 공격을 진검백은 단 한 번에 막아 냈다.
너무나 무난한 공격이었지만 오히려 진검백은 더욱 긴장했다. 결코 이런 단순한 검을 휘두를 만한 인물이 아닐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삼 검까지 마치는 순간 그의 검에서 강한 내력이 터져 나왔다.
“큭!”
검을 급히 세우며 내공을 쏟아 냈지만 진검백은 뒤로 마구 밀려났다.
세 번의 휘두름 끝에 쏟아진 공격은 위력적이었다. 강기의 줄기들이 마구 쏟아지면서 진검백의 몸을 노렸다.
막아는 냈지만 옷이 넝마가 됐다. 몸에 입은 자잘한 상처들이 수십 개가 넘어선다.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허영천이 검을 거두며 빙글 등 뒤로 돌렸다. 진검백도 상처를 살피지도 않고 눈을 부릅떴다.
“좋은 검법이군요.”
세 번의 가벼운 휘두름은 그 후에 이어질 단 한 번의 강기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허영천이 씨익 웃었다.
“고맙소. 이름도 없는 검법을 그리 말해 주니.”
진검백은 베여서 피가 흐르는 오른손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는 검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당신은 참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오?”
갈지혁은 그냥 검을 들었다. 대답 따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을 허영천 또한 알아차렸다.
피식 웃었다.
허영천이 움직이기 전에 진검백이 먼저 움직였다.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이다.
매화가 꿈틀거리면서 허영천의 움직임을 봉쇄하려 들었다. 그렇지만 그 또한 이미 예견한 듯이 가볍게 검을 움직였다.
검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쏟아지면서 그려지던 매화를 반으로 갈라냈다.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슬쩍 걸렸다. 칠절매화검은 분명 강한 검법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칠절매화검의 마지막 초식이다.
암향부동화(暗香不凍花)!
칠절매화검은 일곱 개의 초식으로 나누어진다.
신산지화(辛酸之花), 향류천리(香流千里), 향만천지(香滿天地), 매영난세(梅影亂世), 낙매여우(落梅如雨), 만화성막(萬花成幕)의 육 초, 그리고 마지막 칠절매화검의 절초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암향부동화다.
현 무림에서 칠절매화검을 완벽하게 펼쳐내는 자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육 초까지는 완벽하게 재현하는 자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마지막 칠 초인 암향부동화는 현재 화산파에서 그 누구도 펼치지 못하는 절초다.
마지막으로 암향부동화가 꽃핀 것은 무려 백오십 년 전이다.
완벽하지 않은 검법이다. 그랬기에 화산파에서도 점점 칠절매화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줄어들어 지금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라리 제대로 파고들면 확실하게 익힐 수 있는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이나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에 눈이 가는 건 당연하다.
익혀도 최고가 될 수 없는 칠절매화검보다는 그것이 훨씬 매력적이었던 탓이다.
그건 허영천 또한 아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칠절매화검을 펼치는 진검백을 보면서 나름대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 허영천은 멀쩡하다. 그에 비해 진검백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뼈에 심한 타격을 입어 부어오르는 허벅지, 강기로 인해 찢어진 몸뚱이.
우직하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허영천은 서둘러 끝내려고 마음먹었다.
진검백은 강한 자다. 시간을 준다면 오히려 이쪽이 위험해진다.
퍼엉!
뻗은 검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진검백의 몸이 다시금 뒤로 밀려났다.
허영천의 검법은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무림에 알려진 것들과는 뭔가 다르다. 초식보다는 내력을 폭발시키는 형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 그의 검법이다.
그것은 무림사괴의 일 인인 운곽의 특징이기도 했다.
입으로 피를 한 움큼 토해 낸 진검백이 중얼거렸다.
“어두운 향기를 뿜어내는 꽃은 얼지 않는다. 암향부동화(暗香不凍花).”
미칠 듯한 내력이 진검백의 몸에서 쏟아졌다.
사라졌던 화산의 절기가 다시금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암향부동화라는 중얼거림을 허영천이 놓칠 리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칠절매화검의 마지막 초식이라는 것을 허영천은 알고 있다.
바로 몇백 년 전 무림에서 사라졌다는 절기라는 것도.
‘설마?’
화산파에서 익힌 자가 아무도 없다고 알려진 초식이다. 그런 것을 진검백이 펼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이 알 수 없이 흘러나오는 내력은 허영천을 긴장케 했다.
허영천은 자신의 걱정을 없애려는 듯이 검을 내질렀다.
칠척폭문검(七刺爆紊劍)이라는 검법이다.
일곱 곳을 노리고, 폭발한다. 당한다면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는 허영천의 무공인 것이다. 다만 그 위력이 커 조절한다고 해도 잘못하면 상대가 불구가 되기에 비무에서는 자제하는 무공이다.
그렇지만 지금 왠지 모를 불안감은 허영천에게 칠척폭문검을 펼치게 했다.
진검백의 검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런데 빠르다.
무거우면서도 빠르고 가벼우면서도 느리다.
알 수가 없다. 눈으로 쫓고는 있는데 어떠한 검이라고 딱히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번에도 허공에 매화가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아까도 베었다. 이번에도 벨 수 있다.
칠척폭문검의 일격이 매화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연달아 이 검, 삼 검이 펼쳐졌다.
그런데 검을 틀어박은 허영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매화를 베기는커녕 오히려 반탄력에 피를 쏟아 낼 뻔했다.
매화의 크기가 순식간에 커지다가 순간 진검백의 검이 터져 버렸다.
주변이 매화 향으로 가득하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검이 사방에서 날아든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다.
전부가 진짜일지도 모른다.
지독한 향기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검을 휘둘렀다. 어떻게든 베어 내려고 한 것이다. 비록 상황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허영천은 최대한 침착하고자 했다.
휘두른 검에서 폭발이 일면서 날아드는 검의 잔상을 없앴다.
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검을 밀어내지 못했다.
‘방법이 없다…….’
허영천은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고 가슴 가까이 검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모든 내력을 검에 끌어 모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의 앞에 흰색의 막이 생겨났다.
검막이다.
모든 내력을 검막에 쏟아 부은 것이다. 그 탓인지 검막은 꽤나 튼튼해 보였다. 짧은 순간에 펼쳐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그렇지만 검막 안에 몸을 감춘 허영천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완전하게 막는 건 불가능해. 막아 내자마자 베지 못하면 내가 져.’
상황은 최악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절기를 숨겨두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누군가와 싸우면서 이렇게 막막한 감정을 느낀 것은 생전 처음이다.
쾅!
검막이 흔들렸다. 암향부동화의 초식이 검막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영천은 검막의 흔들림을 몸으로 느꼈다. 그는 내공을 더욱 쥐어짰다.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몰아닥칠 게다.
두 번째 충돌이 느껴졌을 때 허영천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느꼈다.
‘끝났어.’
쩌억!
검막이 깨졌다. 그리고 진한 향기와 함께 검이 날아들었다.
검이 멈추며 목젖에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사방에 흩날리던 매화 잎이 갑작스럽게 주변으로 화악하면서 사라졌다. 절경이다. 누가 본다 해도 반하고 말 정도의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리라.
심지어 진검백에게 당한 허영천 또한 넋을 놓았을 정도이니까.
폭우를 만난 파도처럼 몰아치던 기세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진검백이 천천히 검을 거뒀다.
“잘 배웠습니다.”
“……나야말로.”
허영천은 검을 넣으면서 포권을 취했다.
져 버렸다. 완전히 우위를 잡았다고 생각했거늘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그렇지만 불평할 생각은 없다.
그 무공을 막을 힘이 없는 이상 허영천은 진검백을 이길 수 없다.
운곽은 말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설마 이곳에서 화산의 암향부동화를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 또한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본 것은 처음이다.
실제로 운곽 또한 암향부동화를 펼치는 자가 무림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사라진 무공이었고, 화산에서 그 누구도 칠절매화검의 칠초를 익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눈으로 직접 봤다.
칠절매화검의 마지막 초식인 암향부동화는 무섭다. 설령 자신이라고 해도 막아 낼 자신이 없을 정도로.
과연 화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문제는 다른 자도 아닌 낙화검이라고 불리는 진검백의 손에서 화산의 사라진 절기가 펼쳐져 나왔다는 거다.
놀기만 한 자가 그럴 리는 만무하다.
숨겼다는 소리다. 자신의 실력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검백은 결코 낙화검이 아니다.
운곽은 패하고 돌아온 자신의 제자를 바라봤다.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오히려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속내를 모를 운곽이 아니다.
겉모습은 그렇지만 속은 뜨겁게 타고 있을 게다.
‘좋은 교훈이야. 지는 법도 알아야지.’
이기기만 해서는 강해질 수 없다. 패배를 알아야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거다.
운곽은 흥미로운 눈으로 진검백을 바라봤다.
진검백은 갈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검백의 눈빛을 받은 갈지혁이 피식 웃었다. 그의 표정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알 듯도 해서다.
진검백은 분명 허영천보다 강하다. 칠절매화검을 빼고 이야기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암향부동화라는 초식까지 보인 것은 이유가 있다.
갈지혁 때문이다.
그에게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은 지지 않는다고.
진검백이 암향부동화의 초식을 펼쳤던 것은 허영천에게였지만 실제로는 갈지혁에게 보라고 한 것이다.
그가 말하고 있다.
너는 이 검을 피할 수 있냐고.
* * *
자리에 누워 있던 소절상이 눈을 떴다.
주변에서 장문인이라 외치며 문인들이 에워쌌지만 아직도 정신이 멍하다. 소절상은 그 상태로 멍하니 누워 있었다.
주변이 꽤나 시끄럽다. 누군가가 팔목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한다. 머리도 만지고 눈자위를 확인한다.
‘의원…….’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게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면서 자신을 살피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낯이 익다. 점창파 주변에 있는 의원 중 제일 유명한 자다.
“흐…….”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숨이 턱하니 막힌다. 머리가 핑글핑글 돈다. 자리에 누워 있는데도 다시금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소절상은 그렇게 잠시 더 누워 있었다. 점점 흔들리던 머리가 진정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우선은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이다.
‘졌…… 군.’
이제야 하나씩 생각이 난다. 검강을 일으킨 검으로 사일검법을 펼쳤다.
결코 부족함은 없었다. 실제로 여태까지 펼쳤던 때보다 마음에 들었고 가장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상태였다.
그런데 겨우 독에 당했다. 땅에서 올라온 독기에 몸이 무너졌다.
그리고 다가왔던 갈지혁의 얼굴이 떠오른다. 천천히 와 닿았던 갈지혁의 손이 전했던 감촉은 아직도 생생하다.
소름이 오싹 돋는다.
그 후에 정신을 잃었다. 아마 그 일격 때문이리라.
소절상은 눈을 감았다. 분하다. 겨우 그런 놈 하나에게 당했다. 점창파는 오랫동안 봉문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이를 악물었다. 그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눈을 감은 소절상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 듯이 눈을 부릅떴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따위는 모두 무시한 채 소절상은 목소리를 쥐어짰다.
“과, 곽과(藿果)…… 곽과를…….”
“곽과, 여기 있습니다, 장문인.”
소절상의 침상 옆에 노인 하나가 다가오면서 대답했다.
그는 눈을 돌려 곽과라 불리는 노인을 바라봤다.
“모두…… 물러나라. 곽과만 남고.”
“하지만 장문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어서!”
의원이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자 소절상은 바로 고함을 내질렀다. 의원은 찔끔하면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