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14화 (114/200)

# 114

14화

그의 음식은 그다지 먹을 만하지 못하다. 꽤나 오랫동안 여행을 다닌 사람이거늘 음식 솜씨는 최악이다. 그나마 여인이라 그런지 운하연의 음식 솜씨가 제일 좋았고, 그 다음이 진검백이다.

풍객은 준비된 재료들을 꺼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갈지혁의 옆에 운하연이 와서 앉았다. 그녀가 물었다.

“인면지주에 대해 알아낸 거라도 있나요?”

“거미줄에 지독한 마비독이 묻어 있다는 것 정도.”

“마비독이라…….”

운하연은 조용히 땅을 바라봤다. 지금도 종종 주변에 있는 수하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역병에 대한 이야기를 긁어모으는 중이다.

크게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분명 역병이 꿈틀거리고 있다. 아직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끽해야 한 달이다. 그때라면 무림에서도 중대한 사안이 될 일이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떠들어 봐야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상념에 잠겨 있는 운하연에게 갈지혁이 말했다.

“수고하는군.”

“제가요?”

“그래. 네가 아니라 약선이 해야 하는 일인데.”

“아뇨. 저도 의원입니다. 의원이 병을 나 몰라라 하면 그 병은 아무도 못 고쳐요.”

“그런가?”

운하연의 말에서는 확고한 의지가 묻어 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주관 하나는 뚜렷한 여인이다.

반면 운하연은 꽤나 놀랐다. 갈지혁이 이런 식의 말을 내뱉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항상 앞만 보고 사는 사내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주변의 모습도 살피는 모양이다.

운하연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그 미소를 갈지혁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 했다. 이런 미소를 짓는다면 갈지혁은 분명 다시금 이런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어릴 때에는 다른 여자 애들과 같았어요. 환자들의 피고름을 묻히는 것보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죠. 그러던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왜 고치지 못했나…… 그 생각이 지금의 절 만든 것 같아요.”

분명 여인인 이상 팔이 잘리고 피투성이가 된 환자들을 보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아니, 그건 여인이든 사내든 마찬가지일 게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여인이라기보다는 의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의원이라면 해야 할 일이다.

그러한 각오가 운하연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갈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풀어 버렸다. 그 또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넌 너무 집요해.”

“어머? 누가 할 소리를 하시는 거죠? 당신도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건방졌어요.”

숨기지 않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갈지혁은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때 진검백이 다가와 짓궂게 물었다.

“얼래? 웬일로 둘이 이리 다정스럽게 대화를 하시나?”

“대화는 무슨.”

갈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때마침 풍객이 그들을 불렀다.

“식사 다 됐습니다, 아가씨!”

진검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독한 냄새다. 먹지 않아도 맛을 알 만하다.

“이러다 나도 독인이 되겠어. 맨날 저런 것만 먹으니 원.”

진검백의 농담에 운하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점창이 무너졌다!

그 한 마디가 무림에서 가지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다른 곳도 아닌 구파일방의 하나인 점창파가 단 한 사람에게 무너졌다. 그것도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점창을 무너뜨린 자에게 준 대가로는 너무나 작았다. 자잘한 부상이 전부라고 한다. 반병신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몸 성히 두 발로 걸어나갔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무림은 점창을 비웃었다. 무림맹에서도 어떻게든 점창의 위신을 상하지 않게 하려 했지만 답이 없는 형편이다. 그들이 단 한 사내에게 무너진 것은 하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기에.

점창은 봉문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점창을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은 침묵했다.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갈지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시선이 확 바뀐 것은 당연하다.

무림에서도 그러했다.

갈지혁이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로 무림이 시끄럽다. 점창을 단신으로 무너뜨렸다는 행동 자체가 영웅심을 지닌 젊은이들을 부추겼다.

이대로는 유행이 될 게다. 문파를 부수겠다고 나서는 자들도 한둘이 아니게 될 것이다. 무너진 것이 점창인 이상 그 후폭풍도 상상 이상이다. 무림맹으로서는 어떻게든 그런 일을 막아야 했다.

머리 아픈 일이다.

소림의 방장을 대신해 무림맹의 맹주 직을 맡고 있는 청허검(靑許劍) 무진악(撫眞渥)은 짜증이 일었다.

연신 올라오는 보고에 빠지지 않는 이름 때문이다.

“갈지혁, 갈지혁…….”

자신이 갈지혁이라고 칭하는 자들의 행패도 늘었다. 그리고 독을 전문으로 하는 문파까지 만들자는 바람이 무림 전역에서 불고 있다.

“독문은 당가 하나로 충분해…….”

무진악은 이빨을 으드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처음 갈지혁의 등장에 가장 코웃음을 쳤던 것이 바로 그였다. 그깟 애송이 하나 신경 써서 뭐 하냐고 큰소리쳤다. 오히려 화산파 장문인의 조심스러운 행동을 비웃은 것이 그였다.

더 이상 갈지혁이 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명분이 없다. 그가 비록 점창을 무너뜨리긴 했지만 그것은 무인으로서 실력을 겨룬 것뿐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갈지혁은 묘하게 무림맹이 자신을 압박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없어. 명분이 없단 말이야.”

명분만 있다면 예전에 잡아들였을 게다. 잡아 두기만 한다면 그 후부터 갈지혁은 문젯거리가 안 된다. 무당파 깊은 곳에 가두어 버려도 그만이고 잘 회유해서 오히려 휘하에 둘 수도 있다.

갈지혁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너무 들어 귀가 아플 정도다.

짜증을 내면서 그는 다른 서찰을 들어 올렸다.

역병에 관한 내용이다. 남만 쪽에서부터 점점 이상한 병이 돌기 시작했는데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역병이라…… 귀찮군.”

골머리를 썩고 있는 무진악의 거처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문을 열고 젊은 사내가 하나 나타났다. 무진악에게 오는 서찰을 관리하는 자다. 중요한 서찰이 아니라면 무진악에게 올라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저 사내를 통해 올라왔다는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서찰일 게다.

“무엇인가?”

“점창 장문인께서 서찰을…….”

“흐음.”

무진악은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다지 관여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지금의 점창과 가까이 해 봤자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무슨 일에 힘을 빌려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거기 두고 가게.”

사내는 책상 위에 서찰 하나를 두더니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무진악은 말없이 서찰을 바라봤다. 그러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 서찰을 펼쳤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무진악의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변했다. 그 서찰 안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갈지혁이 점창의 두 장로를 죽였다?”

이거다. 이거라면 갈지혁을 죽일 수 있다.

잡아서 휘하에 둘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위험한 싹은 자르는 것이 좋은 법.”

안기에 갈지혁은 너무나 독성이 강하다. 품고 있다가는 독에 중독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애초에 독을 지니고 있는 것은 멀리하는 것이 낫다.

“장문인들을 소집해야겠군.”

어차피 지금 대부분의 장문인들은 무림맹에 있다. 나머지 장문인들에게도 서신을 보낼 것이다. 화산의 장문인을 제한다면 아마 모두가 그를 죽이는 데 동의할 게 분명하다.

“큭, 다시는 들을 수 없을 테니 지금 질리게 들어주지.”

무진악은 갈지혁이라는 이름이 적힌 서찰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는 잊었다. 방금 전까지 보던 역병에 관한 서찰을 옆으로 치웠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갈 거냐?”

“잠시 쉴까 한다.”

“쉰다고?”

갈지혁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에 진검백이 되물었다. 그러자 갈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알고 싶은 것도 있고.”

“아아, 인면지주의 독 말이군. 역시 너답다.”

그걸 쉰다고 말하는 갈지혁의 행동이 너무나 그답다.

갈지혁의 말대로라면 마을에서 머무는 것은 여의치 않다. 지독한 냄새가 날 것이다. 그러한 것을 마을에서 하는 건 손가락질 받을 짓이다.

“휴, 한동안 또 산에 틀어박혀야겠군.”

진검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깨어 있는 것은 갈지혁과 진검백뿐이다.

진검백은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운하연을 바라봤다. 깨어 있을 때 운하연은 약점이 없는 여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소녀와 비슷하니 뭔가 느낌이 다르다.

풍객은 아예 대놓고 자고 있는데 그 모습도 정감 있다.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진검백은 저 둘이 맘에 들었다. 자신을 화산파의 진검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 둘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다.

마차가 달린다. 꽤나 좋은 말인지 쉬지도 않고 달린다. 이 마차도 물론 운하연이 빌려 준 것이다. 갈지혁은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풍객이 발끈했을 뿐이다.

“도대체 너 같은 놈 쫓아다녀서 뭐 얻을 게 있다고…… 쯧쯧.”

진검백이 혀를 차면서 웃었다. 그가 보기에도 여인의 몸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고생은 할 만큼 하는데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림에 이름을 알리는 것도 아니요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판 남처럼 행동하는 갈지혁의 모습을 보면 떠나고도 싶으련만 웃으면서 잘 참아 낸다.

아마도 갈지혁에게 받아야 한다는 그것 때문이리라.

“가까운 마을에서 쉬고 가지.”

갈지혁은 졸고 있는 운하연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왜? 너답지 않게 저 여자가 걱정이라도 되는 거냐?”

“멍청한 소리 하긴. 말도 쉬어야지. 밤도 깊었고.”

“뭐 이거나 저거나 쉬는 건 마찬가지니.”

진검백은 뭐라 말하려는 갈지혁을 무시하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저씨, 근처 마을에서 오늘 쉬고 갈 겁니다.”

“아, 예. 그리하죠. 한 반 시진 정도 가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그리로 모십죠. 이랴!”

마부는 약간 옆으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말은 쉬지도 않고 마부의 손에 따라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부의 말대로 반 시진 정도 마차가 달렸다. 그동안 갈지혁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창밖을 살피던 진검백의 눈에 마을처럼 생긴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있지만 진검백이 그걸 못 볼 리가 없다.

“도착한 모양인데?”

“그런 것 같군.”

마찬가지로 창밖을 살피던 갈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을 쪽을 바라보던 갈지혁의 표정이 순간 이상하게 변했다.

“잠깐.”

“응?”

“마차를 멈춰.”

갈지혁의 말에 진검백이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갈지혁이 소리쳤다.

“마부! 말을 멈추라고!”

그 목소리가 너무나 컸기에 잠을 자고 있던 운하연과 풍객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리고 세차게 달리던 말도 하늘을 향해 다리를 들며 멈추어 섰다.

진검백이 갑자기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는 갈지혁에게 말했다.

“왜 그래?”

“……독이다.”

“뭐?”

진검백의 표정이 변했다.

이미 마차 밖으로 뛰어내린 갈지혁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의 눈은 마을로 향해 있었다. 진검백이 혹시나 하며 물었다.

“독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저 마을, 독기로 가득해. 근데 모르겠어.”

“모른다니, 갑자기 왜 그래?”

“이런 독은 처음이야. 이렇게 먼 거리까지 독기를 내뿜는 독은.”

오싹할 정도의 소름이 돋는다. 이 정도의 독이라면 그 살상력이 보통을 넘어선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기운이 마을에서부터 퍼지고 있다.

창문 밖으로 마을 쪽을 살피던 운하연의 표정도 덩달아 변했다.

갈지혁처럼 독기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보죠.”

운하연이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풍객도 덩달아 내렸다.

“잠깐.”

갈지혁이 손을 들어 나아가려는 운하연과 풍객을 저지했다. 갈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갔다가는 죽어.”

갈지혁이 보기에 이 독기는 오래 이 주변에 머물렀다. 아마 독이 퍼진 지 꽤 된 듯하다. 그런데도 이만한 독기라면 위험하다. 물론 처음보다는 독기가 사라지기는 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알아볼 게 있어요. 혹시나 해서 확인할 게 있거든요.”

“무리야. 이 정도 독기라면 위험해.”

“걱정 마세요.”

운하연은 단환 하나를 꺼내더니 쏙 삼켰다. 눈을 감고 잠시 내기를 다스리던 운하연이 눈을 떴다.

“한 시진, 한 시진은 버틸 수 있어요. 약선문의 비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

갈지혁은 운하연을 바라봤다. 어차피 갈지혁 또한 그 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가볼 생각이었다. 같이 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운하연이 독에 중독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약선문의 단환이라면 그녀의 말대로 독기에서 버텨낼 수 있을 게다. 그 위력은 모르지만 약선문의 비전이라고까지 불린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