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15화 (115/200)

# 115

15화

“그럼 따라와. 대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가.”

“저도 목숨 귀한 건 안답니다.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나도 따라가도 되나?”

진검백이 은근슬쩍 물어보자 갈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큭, 이 친구, 날 너무 얕보는데?”

“아니. 네 내공이라면 분명히 버텨낼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 따라올 이유가 없잖아? 위험을 무릅쓰고 올 필요는 없어.”

“난 네 감시자야. 쫓아가고 않고는 내가 정해. 그러니 난 따라간다.”

진검백까지 따라온다고 말하자 갈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둘 모두 저 독기 안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갈지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풍객이 조심스레 말했다.

“나도…….”

“당신은 절대 안 돼.”

갈지혁이 딱 잘라 말했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눈은 주변을 살폈다. 마을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확연하게 공기가 다르다. 그리고 주변에 음울하게까지 느껴지는 기운이 퍼져 있다.

생명의 기운이 없다.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고 푸른 나무도 없다. 생명을 가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지독하군.”

진검백은 코를 막았다.

무엇인가 역한 냄새가 난다. 죽음의 냄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자신만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또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다른 냄새를 내뱉는다. 불에 타 죽을 때, 물리적인 힘에 의해 짓이겨져 죽을 때 다 다르다. 분명 미묘하지만 다른 냄새를 내뱉는 것이 바로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거다.

너무 역겹다. 분명 죽고 싶지 않았을 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한 것일 게다.

운하연은 눈을 감았다. 혹시나 하고 있지만 너무나 비슷하다. 이것은 분명 지금 돌기 시작한 역병의 흔적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전에 몇 군데 가본 적이 있다. 그곳도 주변의 풍경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인간이나 동물뿐만이 아니라 식물까지 죽는다. 이렇게 지독한 역병은 처음이다.

마을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세 명 모두 확신했다. 이 마을에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걸 말이다.

건물은 멀쩡했다. 다소 색이 바랜 듯도 하지만 부서지거나 한 것은 없다. 다만 너무 고요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인 것 같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죽어 버린 사람들이.

운하연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그녀는 빠르게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자의 얼굴은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다. 죽은 지 대략 오 일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부패되지 않았다.

벌레도 없는 탓이다. 시체를 뜯어먹을 벌레가 없었기에 이나마 상태가 보존된 것이다.

붉은 반점을 보면서 운하연은 확신했다.

‘역병…….’

막 시신을 만지는 운하연을 향해 갈지혁이 소리쳤다.

“함부로 만지지 마! 지독한 독이다! 잘못하면 중독돼!”

“아니요. 이건 독이 아니에요.”

“……?”

“역병이죠.”

운하연은 시신에 있는 붉은 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점의 주변이 미약하게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역병의 흔적이에요. 이 붉은 반점과 녹색의 피부색은 최근 중원에 돌기 시작한…….”

“독이야.”

“아뇨. 이건 역병…….”

“독이다.”

“독과 역병이 일치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병이 독이 되는 건…….”

“아니, 그런 말이 아냐. 이건 역병 따위가 아닌 진짜 독이다.”

운하연은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녀가 아는 건 분명 이러한 반응은 역병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상태 또한 역병에 중독된 자들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갈지혁의 말이다. 그가 독이라고 말한다. 그녀로서는 선뜻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운하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독이라뇨? 이 붉은 반점만 봐도 분명 역병의 흔적이죠. 그리고 제가 이 반응에 대해 연구도 해 봤는데 분명 역병이었어요. 이래 봬도 약선문의 소문주예요. 수많은 병에 대해서 알죠. 분명 역병일 거예요.”

“네 연구가 틀렸다고는 말 안 하지. 하지만 말이야, 그거 아나? 분명 치료약을 만드는 건 네가 나보다 훨씬 나을 거야. 하지만…… 독은 너보다 내가 잘 알아.”

갈지혁은 말없이 품에서 나뭇잎 하나를 꺼내더니 그것을 진검백의 손에 문질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진검백은 당황했지만 이내 그는 손을 움켜쥐었다.

통증이 인다.

“뭐, 뭐야?”

“가만 있어 봐. 금방 괜찮아질 거다.”

진검백의 손에 우둘투둘하게 붉은 반점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독이야. 붉은 반점을 만드는 건 독으로도 가능해. 이건 그나마 역병의 반점과는 달라 보이지만 찾다 보면 분명 이렇게 역병과 모든 상태가 흡사한 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무엇보다 이 주변에 흐르는 건 독기야. 너는 모르지. 분명 무인들은 모를 거야. 독을 익히는 자들도 모르는 자가 대부분이야. 하지만 난 알아.”

수라독공은 그런 무공이다. 주변의 모든 독기를 읽어 낸다.

수라독공을 익혔다. 주변에 흐르는 것이 독기라는 걸 확신한다.

“그럼 이게 모두 독에 의한 거라는 건가요? 지금 중원에서 천천히 퍼지기 시작하는 이게……?”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있지. 이건 독이야.”

“그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요? 지금 이 일을 벌이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 자가 지금 무림에 있다는 거예요?”

“나한테 묻지 마. 분명한 건 만약 이 독이 중원 전체로 퍼진다면 막기 힘들 거야. 내가 보기에 이 독은 정말 지독하거든. 제대로 된 상태로 하독한다면 나라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니까.”

놀랍다. 이만한 독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갈지혁은 시신을 내려다봤다.

자신조차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언할 수가 없다. 독인의 경지에 들어선 그가 그렇다면 일반 무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이 독을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이 독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마음먹는 방향에 따라 무림은 피바다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게 독…….”

운하연은 중얼거렸다.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저 역병일 거라 생각했다.

환자들의 상태는 모두가 역병의 것과 같았고, 모든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독이란다.

역병의 반응과 모든 것이 일치하는 독이 있다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도 있다. 다른 방향으로 시각을 넓혀야 할 것 같다.

‘그의 말대로야. 역병일 수도 있지만…… 독일지도 몰라.’

해결해야 한다.

역병이 아니라 독이라면 이야기는 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이러한 일을 벌이는 것이라면 온 무림에 비상이 걸릴 일이다.

적어도 지금 역병이든 독이든 이것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은 없으니까.

운하연의 얼굴에 수심이 짙어졌다.

단순한 역병이라고 해도 문제다.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사상자를 줄일 수 없다. 대신 역병이라면 그 움직임을 느리게 할 수는 있었다.

그 주변을 막고 최대한 역병에 걸린 자들을 격리시키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역병은 빠르게 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하독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소림사 한가운데로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진검백의 표정도 좋지 않다. 참혹한 주변의 광경을 본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죽은 자들을 많이 봐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린아이, 노인, 여자가 떼거리로 죽어서 나뒹구는 것은 처음이다.

역겹다. 화가 나서 머리가 아플 정도다. 갈지혁의 말대로라면 분명 독을 쓰는 자가 범인일 것이다.

무엇을 안다고 이들을 죽인단 말인가.

“더러운 새끼들…….”

진검백이 중얼거렸다. 무림에서 독을 그토록 무시하면서도 경계하는 것은 이러한 위력 탓이다. 이렇게 독은 죽여야 할 자와 그렇지 않아야 할 자를 가리지 못한다. 애초부터 수많은 사람을 단번에 죽이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독이다.

“대체 무슨 독일까?”

“모르겠다. 나도 이런 독은 처음이야.”

운하연에게는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지만 갈지혁은 달랐다. 운하연은 독에 중독될 수도 있지만 갈지혁은 그런 걱정 없이 시신에 손을 댔다.

지독한 독기가 손을 통해 느껴졌다.

‘식물? 동물?’

어떠한 성분을 지닌 독인지 알려고 하는 것이다.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신들이다. 피가 모두 굳어 버렸을 게다. 그랬기에 갈지혁은 시신의 상처에서 응고된 피딱지를 떼어 냈다.

너무나 지독한 독기 탓에 주변에는 생물체가 다가오지 못한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이러한 흔적도 찾기 힘들었을 게다.

이미 응고되어 굳은 피지만 갈지혁에게는 이 정도로도 큰 단서를 얻은 것이다.

갈지혁은 그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진검백을 봤다. 그는 쓰러져 죽어 있는 어린 여자 아이 앞에 서서 멍하니 내려다봤다.

“죽여 버린다.”

이를 으드득 갈면서 진검백이 말을 내뱉었다. 그가 허리를 굽혀 그 어린아이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갈지혁이 급히 말했다.

“손대면 안 돼.”

“…….”

진검백은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아이를 안아 올렸다. 갈지혁은 말리려 했지만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미치도록 슬픈 눈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슬픔, 외로움, 분노.

“왜…… 이런 어린아이까지…….”

아직 채 반도 살지 못한 아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아이다. 잘은 모른다. 어떠한 집에서 살았는지, 위에 오빠나 언니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됐다. 그런 거 다 집어치워라 이거다. 이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이렇게 외로운 모습으로 죽어야 할 아이는 아니라는 거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일 게다.

막 이를 가는 진검백을 바라보던 갈지혁의 눈이 어딘가로 향했다. 날카롭게 변한 눈빛. 빠르게 손이 움직였다.

소매 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져 나갔다.

퍼퍼퍽!

날아간 것은 동그란 독단이었고, 그것들이 공중을 날다가 떨어져 버렸다. 갈지혁이 독단을 던진 쪽에서도 무엇인가가 날아온 탓이다.

그제야 진검백은 그쪽에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원래대로라면 능히 알아차렸을 그다. 그렇지만 너무 흥분하기도 했고 사방이 독기로 가득한 곳이라 그것을 막아 내는 데 집중한 탓이다.

건물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이다. 젊어 보이는 사내였지만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누구냐?”

“그러는 너희야말로 누구냐?”

갈지혁의 물음에 사내가 되물었다. 수상해 보이는 자다. 갈지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진검백이 나섰다.

“한 가지만 묻겠소. 이 마을을 이렇게 만든 것이…….”

“나다. 그리고 이 마을에 누군가가 접근하기에 혹시나 해서 쫓아온 것이고.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 새끼가! 죽여 버린다!”

사내는 서른이 채 못 되거나 갓 서른을 넘긴 듯했다. 그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날 죽이겠다고? 크크, 마침 잘됐군. 내가 너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걸 보면 모르겠어? 너희를 죽이겠다는 소리야. 나 또한 너희를 죽여야 하니 이제 살게 되는 건 이쪽이나 그쪽 중 하나인가?”

진검백이 비록 흥분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인이다. 결투를 하기 전에 상대를 보는 정도의 눈은 잃지 않았다.

상대는 강하다. 이런 독기가 가득한 곳에서 저토록 여유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독에 대한 내성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 이 마을에 하독한 독을 만들 정도의 자라면 그에 버금갈 만한 독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어려운 상대다. 그렇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다.

그의 말대로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상 저자 또한 지금 이 세 사람을 죽이려고 할 게다. 어차피 싸우지 않고 순순히 끝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을 죽여도 가려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지? 어차피 모르는 놈들이야. 실험 대상일 뿐인 놈들에게 내가 왜 그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실험…… 대상?”

“그래. 독을 실험하기 위한 실험 대상. 그뿐인 놈들이야. 죽어도 세상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는.”

“뚫린 게 입이라고…… 내뱉는 것이 모두 말이 아니다.”

사내가 싱긋 웃으면서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를 뒤로 쓸어 올렸다. 한쪽 눈이 녹색이다. 마치 눈이 멀어 버린 장님의 눈처럼 초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저런 자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다. 전혀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자인 게 분명하다.

진검백이 갈지혁을 보며 말했다.

“내가 상대하지.”

“저놈은 독인이야.”

“그래서?”

“……조심하라고.”

“걱정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