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8화
그런 진검백을 갈지혁은 곁눈질로 살피고는 마차에 걸터앉았다. 사황이 답답한지 품속에서 빠져나오려고 마구 발버둥쳤다.
답답한 것을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녀석이다. 그런 놈이 용케도 누군가와 싸우고 있을 때는 품속에서 꿈쩍을 안 한다. 만약의 사태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뱀인데도 생각하는 걸 보면 종종 인간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오른쪽 소매에서 사황이 기어나오자 왼쪽 소매 속에 있는 인면지주도 꿈틀거렸다.
사황도 그렇지만 인면지주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소 취향이 독특한 사람이라면 뱀인 사황을 귀엽게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면지주는 그 누가 본다 해도 끔찍하다고 생각할 게다.
사람의 얼굴을 한 거미가 소매에서 뚝 떨어지더니 땅을 스르르 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갈지혁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똬리를 틀었던 사황 또한 땅으로 내려섰다.
사황은 천천히 인면지주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인면지주는 그것이 몹시 신경이 쓰이는지 연신 고개를 뒤로 움직이면서 사황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갈지혁은 왼손에 들린 병을 바라봤다.
순간.
“……!”
갈지혁이 벌떡 일어났다.
마차에 걸터앉아 있던 갈지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평소 행동이 그리 급하지 않은 그다. 그랬기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는지 모르겠다.
“이 독은…….”
알아냈다. 이 독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다.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간다. 갈지혁 또한 이 독을 접해 보기는 했지만 아직 아무런 것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니까.
운하연이 갈지혁의 옆으로 왔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무엇인가 알아차린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래요?”
“이 독이 뭔지 알아냈어.”
“혹시 저 마을을 저렇게 만든 독 말인가요?”
“그래.”
전혀 예상치 못하게 가까이 그 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독이라면 능히 이만한 위력을 내는 것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인면지주의 독[人面蜘蛛之毒].”
“뭐라구요?”
“바로 요놈.”
갈지혁이 재빠르게 인면지주를 낚아챘다. 그의 거미줄에서 나오는 독과는 전혀 상관없다. 먹이를 바로 즉사시키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바로 그 독.
갈지혁은 인면지주의 입가를 살피더니 슬쩍 웃었다.
확신이 섰다.
“분명해. 이 독은 인면지주의 독이야.”
무진악은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각파의 장문인들이 모인 장소. 구파일방 중 세 명의 장문인을 제하고는 모두 이곳에 자리했다.
자리를 비운 세 명의 장문인은 소림과 종남, 그리고 점창파였다.
무진악이 이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은 것은 몇 가지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바로 갈지혁이다.
이곳에서 무진악이 내건 것은 갈지혁을 무림 공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무진악은 그러면서 갈지혁이 점창의 두 장로를 야간에 기습으로 죽인 것에 대해 말했다. 비록 겉으로는 살수를 펼치고 있지 않지만 뒤에서는 수많은 자들을 죽일 위험 인물임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문파는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그들 또한 갈지혁이라는 이름이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그자가 이번엔 어디에 모습을 드러내 자신들의 위명을 깎아먹을지 모른다.
점창이 당했다. 그렇다면 자신들 또한 당할 수 있는 것이다.
화산파의 장문인만이 고개를 저으며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하지만 무진악은 애초에 그가 그리 나올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어차피 화산파 하나라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비록 화산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는 않지만 겨우 한 명일 뿐이다.
자신의 계획대로 갈지혁이 공적으로 몰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걸왕이 입을 열었다.
“난 반대요.”
“뭣이?”
“그자를 만나 본 적이 있소. 그에게 은혜까지 입었지.”
“걸왕…….”
무진악은 씹어 먹을 듯이 그의 별호를 중얼거렸다.
화산파는 그렇다 쳐도 개방이 이리 나오면 곤란하다. 비록 개개인의 힘은 약할지 모르지만 무림 최고의 수를 자랑하는 방파가 바로 개방이 아니던가.
“그는 정면으로 승부를 한다면 할까 뒤로 암습을 할 자가 아니오.”
“지금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거요?”
“제대로 조사를 했냐고 묻는 거요. 이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소. 그동안 완벽하게 사전 조사를 했다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무진악.”
가장 귀찮은 자가 반문을 제기했다.
분명 개방의 방주라면 자신만의 세력으로 이 일에 대해 조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무진악인지라 개방의 간섭은 귀찮은 일이다.
그는 언제 걸왕이 갈지혁과 만났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갈지혁을 두둔하지 마시오. 그는 분명 악한이오.”
“그건 조사해 보면 알겠지.”
걸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재차 확인하듯이 말했다.
“아직은 답이 내려지지 않은 듯하오. 갈지혁이라는 자가 비록 독을 쓰기는 하지만…… 그 품성까지 악한은 아니었소.”
“저도 좀 시간을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다.
여인의 목소리.
이 중에 여인은 단 하나뿐이다. 아미파의 장문인이다. 아미파는 일전에 갈지혁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조금의 시간을 달라는 것뿐이니까요. 조사해 보고 그가 악한이라면 베어야겠지만…….”
무진악의 표정이 변했다.
쉽게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걸왕의 개입으로 일이 귀찮아졌다. 걸왕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른 것이면 몰라도 무엇인가에 대한 조사만큼은 개방을 따라갈 곳이 없다.
더구나 방주인 걸왕의 말이다.
섣불리 말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화산파 장문인의 표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무진악은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지새끼 주제에…….’
몸에서 나는 악취에 이 자리에 들이고도 싶지 않은 자다. 그렇지만 개방의 방주인지라 싫은 내색도 하지 못한다.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개방의 방주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무진악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어쩔 수 없지만 물러서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이 일은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개방의 방주뿐만이 아니라 저 또한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하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상관없소.”
“그럼 이만.”
무진악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던 중 그는 나무를 주먹으로 쳤다.
쿵!
나무가 으적 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그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귀찮은 늙은이들…….”
언젠가 무림의 제일이 되는 날…….
“두고 보자.”
* * *
객잔 안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마을이 큰 탓인지 객잔에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갈지혁은 운하연, 풍객과 마주했다. 평소 함께했던 진검백은 무엇인가를 산다며 밖으로 나간 상태다.
마을로 들어선 것은 유시(酉時)에 막 접어서면서부터다.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 때에 이들은 객잔으로 들어섰다.
진검백과 풍객은 오랜만에 객잔에서 쉴 수 있다며 좋아했다.
진검백은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무엇인가 살 것이 있다며 밖으로 나갔다.
풍객은 차를 마시고 있었고 갈지혁과 운하연은 이야기를 나눴다.
“뭔가 알아낸 게 있어요?”
“없어. 이 독…… 지독해. 인면지주의 독 자체가 문젠데 거기다가 손까지 대서 그 위력을 가중시켰어.”
“얼마나 시간이 있을까요?”
“이 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문제지. 그리고 아무나 쉽게 하독할 수 있는 독은 분명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독 자체는 지독한 전염성을 지녔지. 큰 곳을 위주로 뿌리면서 점차 퍼지게 한다면…… 길어야 반년. 그 안에 해독제를 만들지 못하면 전부 죽어.”
상처를 통해서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다.
호흡만으로도 이 독은 전염된다. 숨을 참는다 해서 능사도 아니다. 독기가 연신 몸을 두드린다. 웬만한 자가 아니면 견뎌 내지 못한다. 피부를 통해서도 흡수가 되니 막으려고 해도 무리다.
무림에 이 독이 퍼지게 된다면 살아남는 자의 수는 극소수일 게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독을 만든 자의 수하들이 움직일 것이다.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 없어?”
“전혀요.”
이만한 독을 만들 자지만 알 수 있는 방도가 전혀 없다.
애초에 독이라는 것이 은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림에서 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자는 갈지혁과 사천당문의 몇몇 무인뿐이다. 그렇지만 사천당문의 것으로 보기에 뭐한 것이 이 독의 제조 방법은 사천당문의 것과는 완벽하게 달랐다.
“독의 치료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후를 밝혀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점점 더 커질 테니까.”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림은 언제나 위험한 칼날을 품 안에 안고 살아야 한다.
이만한 독을 만들어 낸 자라면 다음에도 같은 수준의 것을 만들지 못할 리가 없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
“인면지주의 독을 저도 볼 수 있게 해 줘요. 해독약을 만들려면 역시 인면지주의 독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어려운 일은 아니군.”
운하연의 부탁을 갈지혁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독에 대해서는 갈지혁이 더 잘 알지만 그에 따른 치료약을 만드는 것은 운하연이 한참 위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조금은 진득하게 앉아 이 독에 대해 조사할 시간이 말이다. 그리고 운하연 또한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둘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끝나자 운하연이 말했다.
“그나저나 진 소협이 늦네요. 이 늦은 시간에 뭘 사려는 건지…….”
그때 막 객잔 문을 열고 진검백이 들어왔다. 굳어진 표정으로 들어선 그는 운하연이 반기자 평소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딱 그 말이 맞는 모양이네요.”
“하하! 제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진검백이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 운하연이 그의 손에 들린 것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걸 사러 가신 것 같은데, 뭐죠?”
“아아! 당과입니다, 당과(糖菓:과자, 사탕).”
“에? 중요한 거 사러 가신다더니…….”
“오랜만에 당겨서 말입니다. 핫핫!”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진검백이 웃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진검백을 유심히 살폈다.
웃고는 있지만 조금은 다르다.
‘일이 생겼군.’
갈지혁은 단박에 진검백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우습게 볼 수 있지만 일 년이 넘게 그 둘은 함께했다.
그 시간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객잔에 도착한 진검백의 표정이 변했다. 객잔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눈에 붉고 푸른색의 청실로 꼬아 만든 노리개가 들어왔다.
저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진검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중요하게 살 것이 있어서 나갔다가 오지. 금방 올 거니까 먼저 밥 먹지 말라고.”
“알겠다. 나도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대화나 좀 하고 있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진검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가 먼저 객잔에 흔적을 남기고 간 것이다. 저 노리개가 벽에 걸려 있으면 그건 화산에서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 거다.
여태까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연락을 취한 적이 없기에 진검백은 무슨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장난감을 파는 노점상에 들어선 그는 안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건물은 상당히 허름했다. 안에도 물건이 몇 없어서 과연 손님이 오기나 할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장사 잘되십니까?”
“파리만 날리고 있지 뭐.”
“왕 노야는 잘 계십니까?”
“물론이지.”
말을 마친 진검백이 옆에 있는 장난감 중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거 얼마입니까?”
“알아서 줘. 어차피 다 망가진 거니까.”
진검백은 그 장난감을 챙겨 든 후 고개를 꾸벅이고는 건물을 나섰다. 겉은 허름했지만 이곳은 화산파에서 만들어 놓은 연락망이다.
진검백은 주변을 살피다가 인형의 목을 비틀었다. 안에는 서찰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서찰을 조심스럽게 편 진검백의 표정이 변했다.
갈지혁에 대해서다. 그를 감시하고 있는 진검백에게 최악에 가까운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진검백은 서찰을 찢었다.
그는 벽에 몸을 기댔다. 해가 슬쩍 지면서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그리고 덩달아 진검백의 마음도 그렇게 되기 시작했다.
“……베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