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20화 (120/200)

# 120

20화

그의 주장을 화산파 혼자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애초부터 무진악은 화산파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 그가 화산에게 쉽사리 양보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개방이 나선다면 달라진다.

개방의 힘은 무당파의 장문인이라고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화산, 개방, 아미가 옹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문파들은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인지라…… 아니라는 증거를 찾지 못하면 곧 명령이 떨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후.”

진검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갈지혁은 이제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무당파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갈지혁은 결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화산이 지켜줘야 한다. 화산이 아니라면 갈지혁을 살릴 수가 없다.

귀주성(貴州省).

북쪽은 사천성, 서쪽은 운남성, 남쪽은 광서성, 동쪽은 호남성과 각각 인접하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이 산악 지형이고 귀주성의 동쪽은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날씨가 좋은 날이 없다.

귀주성의 중앙에는 큰 도시가 하나 있다.

귀양(貴陽)이라는 곳이다. 귀주성의 성도로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은 날씨를 지녀 사람들이 살기 적합하다.

귀주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이니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많은 명물을 지닌 곳이지만 요즘 귀양 하면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한다.

갈지혁.

그가 이곳에 있다.

항상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며 무림을 시끄럽게 하던 갈지혁이 귀양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 집 한 채를 잡아 머물기 시작한 갈지혁에 대해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감추고 있다 해도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대놓고 집 앞에 독왕대로행이라는 깃발을 걸어 놨다.

처음엔 많은 사람이 그저 갈지혁을 칭하는 가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난동을 부리던 자들이 하나둘씩 꺾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그가 진짜 갈지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후로 그곳은 귀양의 명물이 되었다.

그곳에는 네 명의 인물이 살고 있다. 사내 셋과 여인 하나다. 주변에 있는 무인들이 귀양으로 몰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 무림에서 가장 시끄러운 이야깃거리인 갈지혁이 눈앞에 있다.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하고 드물긴 하지만 그를 꺾어 이름을 날려 보려는 무인들도 있다.

물론 그런 생각으로 왔던 자들은 모두 성히 돌아가지 못했다.

그 네 명의 정체에 대해 알려지면서 무림은 더 시끄러워졌다.

독으로 무림을 시끄럽게 하는 갈지혁, 화산파에서 낙화검이라 불리는 무인 진검백, 약선문의 소문주인 운하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셋이 함께 있다. 그것도 서로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동료 같아 보인다.

사람들은 많은 추측을 했다. 그들이 함께 있는 이유에 대해 이래저래 떠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답을 알 수는 없었다. 셋 모두 그에 관해서 떠들고 다니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그 집은 귀양에서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집 주변에 있는 자들을 창문을 통해 본 진검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뭔 구경거리라고 이렇게 모여서 난리야?”

“…….”

“…….”

진검백은 아무런 대꾸도 없자 시선을 돌렸다.

갈지혁과 운하연은 말이 없다. 아니, 무엇인가를 파고들 때는 그것에만 집중한다. 유일하게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풍객도 먹을 걸 사러 간다고 밖으로 나갔다.

지루하다.

진검백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집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간소하다. 안에 있는 거라고는 몇 개 안 되는 의자와 상이 전부다.

바닥에는 사황과 인면지주가 있다. 그렇지만 그 둘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진검백은 심심하다는 듯이 하품을 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도박을 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에 독왕대로행이라고 적힌 깃발을 앞에 걸어 놓는다는 말에 진검백과 운하연은 반대했다. 굳이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뭐가 있냐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확고했다.

시간이 없다며 이런 때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독을 연구하는 틈틈이 갈지혁은 자신에게 도전해 온 자들을 상대했다. 대부분이 근방에서 이름을 날린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지만 갈지혁의 상대가 될 리가 없다.

그들은 간신히 일류에 드는 자이거나 이름 한번 날려 보려는 낭인에 불과했다.

며칠 동안 운하연은 제대로 잠도 자지 않고 인면지주의 독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무엇인가 알아낼 법도 하련만 결국은 얻은 게 없다.

운하연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렀다.

아무리 무공을 익힌 그녀라고 해도 이만큼 눈을 붙이지 않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하다.

“인면지주의 독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해독 방법을 모르겠군.”

그건 갈지혁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그 독을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머리를 굴리던 갈지혁은 문득 운하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분명 운하연은 단화초의 독이라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단화초가 이 독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어떤 이유지?”

“저도 잘 몰라요. 단지 할아버님께서 단화초만이 이것을 해독할 수 있다고…… 해독? 설마!”

과거를 곱씹으며 대답을 하던 운하연의 표정이 변했다.

분명 약선은 해독이라고 말했다. 운하연에게 역병이라고 말했던 약선이었지만 해독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역병을 고치는 것을 치료라고 하지 해독이라고 할 리가 없다. 그것은 곧 약선은 알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할아버님은 알고 계셨군요. 이것이 역병이 아닌 독이라는 걸.”

“왜 거짓말을 한 거지?”

“모르겠어요. 저에게 그걸 숨길 이유가 없는데…….”

약선은 무엇인가를 숨겼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알면서도 독을 역병이라고 속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단화초가 왜 해독약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저 단화초만이 이 병의 해독약이라고 귀가 아플 정도로 들은 탓에 운하연 또한 뇌리에 각인된 것뿐이다.

최근 운하연은 갈지혁에게 단화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갈지혁은 분명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갈지혁 또한 쉽사리 말을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음을 안 것이다. 그는 생명을 쉽게 보는 자가 아니다.

중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그저 사리사욕을 위해서 단화초를 숨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안 후부터는 더 이상 갈지혁에게 단화초에 대해 조르지 않았다. 시간이 되고 다 해결된다면 갈지혁은 운하연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이, 이렇게 태평하게 있어도 되겠어?”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 쉬는 갈지혁을 보며 진검백이 말했다.

아직 이빨을 들이밀고 있지는 않지만 갈지혁은 지금 무림의 공적이 되기 직전이다. 조만간 답이 나올 것이고, 아마도 갈지혁은 정파의 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검백으로서는 답답했다. 그런 지금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 독에 대해 조사나 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기도 한다.

“뭘?”

“무림맹이 널 노린다고 했잖아. 차라리 네가 안 그랬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든지. 뭔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물론 갈지혁이 그런다 한들 무림맹에서 믿어 줄 리가 없다.

지금 진검백은 은연중에 갈지혁이 도망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다면 제아무리 갈지혁이라고 해도 죽는다.

도망치는 것이 답이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독왕이고 뭐고를 떠나 목숨부터가 위험하다.

“도망치고 싶지 않다.”

“멍청하긴.”

진검백은 칫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갈지혁이 죽는 모습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

이야기가 막 끝날 무렵 문이 열리며 풍객이 들어왔다. 그는 양손에 이것저것을 잔뜩 들고 있었다. 대부분이 먹거리일 게다.

안으로 들어선 풍객은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밖에 이상한 놈들이 있던데?”

“이상한 놈들이라뇨?”

진검백이 묻자 풍객은 귀찮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두 눈으로 보라고.”

진검백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데 무엇이…….

시선을 돌리던 진검백은 괴이한 인물들을 발견했다.

네 명의 인물이다. 괴이하게 생긴 네 인물이 갈지혁이 세워 놓은 깃발 근처로 다가가고 있다.

“어이, 이상한 놈들이 깃발에 다가가는데?”

그 말에 갈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창밖을 본 갈지혁의 표정도 변했다. 그 정도로 네 명의 모습은 기이했던 것이다.

“뭐야, 저놈들은?”

“모르겠군. 하지만 좋은 의도로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진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지혁의 말대로다. 각자 병기를 쥐고 있고 몸에서는 은연중에 살기가 풍긴다.

“손님인 것 같은데?”

“몰라. 내가 물어보지, 뭐.”

말을 마친 진검백이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심심했던 차에 잘됐다.

끼이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진검백은 네 괴인들의 모습을 살폈다.

무림에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는 자들에 대해서 많이 들었지만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듯싶다.

네 명은 모두 달랐다. 한 명은 드러나는 몸의 모든 부분을 붕대로 감고 있다. 화상을 입었는지 살짝 드러난 눈 부근이 보기 흉측하다. 그렇지만 단박에 진검백은 그가 무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검법을 익힌.

한 명은 거한이다. 근데 등이 곱사등이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는 어린아이만한 거대한 도끼가 한 자루 걸려 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할 정도로 도끼는 요사스러운 빛을 토해 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노인이다. 얼굴이 온통 쭈글쭈글하여 걸어다니기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나이가 든 것 같다.

그는 허리에 많은 비수를 꽂고 있다. 결코 겉치레가 아니라는 것을 알 정도로 비수는 잘 다듬어져 있다.

마지막 한 명은 더욱 눈에 확 들어온다.

검다. 이 말 외에 그를 표현할 말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팔, 얼굴, 목 등 드러나는 모든 피부가 너무나 새카맣다. 그렇다고 색목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기이한 무공을 익힌 흔적인가?’

답은 그것뿐이다.

진검백이 나오자 네 명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중에서 노인이 말했다.

“네가 진검백이냐?”

“얼래?”

놀란 건 그자가 자신을 알아서가 아니다. 얼굴은 노인인데 목소리는 젊은이의 그것이다. 억지로 목소리를 바꾸지 않는 이상 결코 노인에게서 나올 만한 목소리가 아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그건 알 것 없고.”

노인은 옆에 있는 자들을 바라봤다. 온몸이 검은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노인의 손이 빠르게 허리춤에 닿는 듯싶더니 어느새 화살처럼 비수가 날아들었다. 너무나 빨랐고 그 위력은 검기처럼 강력했다.

진검백은 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진검백이 뒤로 밀려났다.

예상치 못한 강한 위력에 진검백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처음엔 그저 갈지혁이라는 이름에 도전하는 자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지방에서 이름 조금 떨치는 이류 정도의 무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위력은 그 생각이 틀렸음을 말해 주고 있다.

‘강해. 일류…… 아니, 절정의 고수다.’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인데 엄청난 실력을 지닌 듯하다.

“막아?”

놀란 건 갈지혁뿐만이 아닌 듯하다. 노인인지 젊은이인지 판단이 안 가는 그도 진검백이 자신의 공격을 막았음에 놀란 듯하다.

“너희 같은 햇병아리를 잡는 데 왜 우리를 보냈는지 궁금했는데 한가락 있긴 한 모양이군.”

온몸에 붕대를 한 자의 입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든다.

그리고 진검백은 그 말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들을 죽이라고 이들을 보냈음을 파악했다.

문제는 누구냐는 거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무림맹이다. 물론 무림맹에서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안에서 뜻이 맞는 몇 명이 이런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무림맹에서 보낸 자라면 적어도 자신을 죽이려고 이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비록 진검백이 낙화검이라는 별호와 함께 비웃음을 받는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화산의 제자다. 그런 진검백을 죽인다면 화산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일에 대해 파고들 것이다.

만약 덜미라도 잡히면 귀찮은 일이다. 그걸 무림맹에서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무림맹이 아니라면 딱히 떠오르는 자들이 없다. 그건 갈지혁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이 허다하기에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진검백은 아까까지의 방심을 버렸다.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다.

“누구십니까?”

“죽을 놈에게 그걸 가르쳐 줘서 무엇 하나?”

노인으로 보이는 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검백은 지금 사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머지 세 명도 이 노인과 비슷하면 비슷했지 못한 실력을 지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저 흑색의 피부를 지닌 자가 이 무리의 실질적인 수장인 듯했다.

한두 명이면 몰라도 넷 모두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때 거구의 괴인이 땅에 꽂혀 있는 깃발을 뽑았다. 그의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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