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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24화 (124/200)

# 124

24화

흑풍이 손바닥을 쫙 편 채로 앞으로 천천히 밀었다.

“천뢰(天雷).”

펑!

이상한 느낌에 갈지혁은 사황과 함께 급히 옆으로 움직였고, 순간 그가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갔다. 그 위력이 너무나 강했기에 땅이 쫙 갈라졌다.

뒤에 서 있던 집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꽤나 거리가 있었건만 그곳까지 충격이 전해진 모양이다.

괴물이다. 이런 괴물이 무림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악이다.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흑풍이 어느새 갈지혁에게 날아왔다. 발이 그대로 갈지혁의 백회혈을 노렸다.

갈지혁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사황이 튀어 올랐다. 사황은 흑풍의 발꿈치를 물려고 했고, 그는 급히 발을 회수하면서 손을 내뻗었다. 주먹에서 어마어마한 내력이 쏟아졌다. 사황에게 날아드는 그 권력을 갈지혁이 받아 냈다.

주르륵.

뒤로 밀려났지만 갈지혁은 사황을 다른 한 손으로 받아 냈다.

“어린 나이에 내공이 대단하군.”

흑풍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지금 갈지혁은 자신의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그만한 내공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황을 어깨 위로 올려놓은 갈지혁은 자세를 취했다.

팍 하고 앞으로 뻗어진 손가락에서 열 개의 지공이 터져 나왔다.

십선유루지다. 아까 귀면수라에게는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 냈던 무공이었지만 이번엔 상대가 달랐다.

흑풍은 지력이 다가오자 발을 강하게 굴렀다. 땅에서 강한 힘이 쏟아지면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은 십선유루지를 잡아 삼켰을 뿐만 아니라 갈지혁에게 다가왔다.

“지뢰(地雷).”

갈지혁은 꽉 쥔 주먹을 그대로 다가오는 내력의 폭풍 속으로 내질렀다.

미칠 듯이 휘둘리던 내력이 쥐 죽은 듯 사라졌다.

“호오.”

쉽게 끝날 싸움은 아닐 듯싶다. 흑마진천무뢰공의 하나인 지뢰를 그대로 손으로 막아 냈다. 단숨에 지뢰의 핵심을 공격해 그것을 파괴해 낸 것이다.

흑풍이 갈지혁만 한 나이 때는 저만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건 할 필요조차 없는 비교에 불과하다.

‘강해. 하지만 내 상대는 아니지.’

흑풍의 몸이 갈지혁의 뒤에서 나타났다.

흑풍과 갈지혁이 일전을 벌이는 동안 진검백과 운하연은 어떻게든 싸움을 끝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철부마왕은 곤란스러운 처지였다.

믿었던 도끼질도 운하연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강인했던 두 주먹이 여인의 고사리 같은 주먹에 밀리고 있다.

“합!”

주먹이 정확하게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또다. 운하연의 손바닥에 부드럽게 뒤로 밀리면서 그 위력이 완전히 죽어 버렸다.

그 순간 운하연의 몸이 하늘거렸다.

비루십이권(悲淚十二拳)의 칠초 유성격(流星擊).

공중으로 몸을 날린 운하연의 주먹이 잔상을 보일 정도로 나뉘어졌다.

철부마왕은 급히 자신의 도끼를 들어 올렸다. 도끼를 흔들리게 하는 묵직한 충격에 그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다른 것도 아닌 주먹에 밀리고 있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약선문의 소문주인 운하연에게 말이다.

그때 그의 귀에 실로 믿어지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쩌적!

“이런, 썅…….”

도끼가 부서졌다. 그토록 거대한 쇠도끼가 여인의 주먹에 부서져 버린 것이다. 채 움직이기도 전에 칠초 유성격이 그대로 철부마왕의 머리를 두드렸다. 급히 어깨로 막아 내려고 몸을 비튼 철부마왕이지만 그의 어깨는 비명을 토해 냈다.

철부마왕은 그대로 땅을 뒹굴었다.

머리가 울린다. 두어 대 맞은 주먹이 그의 생각이란 생각은 모두 없어지게 만들었다.

그저 고통스럽다는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도, 도망 쳐야 돼. 도, 도망…….’

철부마왕이 땅을 기기 시작했다.

그토록 자존심이 세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그가 미친 듯이 땅을 기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두 개의 신발이 보였다.

곱디고운 것이 여인의 신발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순간 철부마왕은 지옥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으, 으아악!”

철부마왕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앞에 있는 운하연을 향해 그는 무작정 주먹질을 해댔다. 그렇지만 채 일 권이 펼쳐지기도 전에 철부마왕의 복부에 운하연의 주먹이 먼저 닿아 버렸다.

“꾸루룩.”

이상한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서던 철부마왕의 그대로 쓰러졌다.

광살마존의 팔이 후들거렸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산이 틀어졌다. 진검백이라는 놈을 너무 얕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처음엔 가볍게 암기를 던져 냈다. 그리고 그것을 진검백은 어렵지 않게 쳐냈다.

독기가 일었다. 화가 나 마구 암기를 쏟아 냈고, 문제는 그 암기 중 제대로 진검백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없다는 거다. 몇 개 스친 것이 전부라는 걸 깨닫고 멈추었을 때는 광살마존의 암기 중 대부분이 사라진 후였다.

‘클클, 멍청한 짓을 해 버렸군.’

흥분을 해서 스스로의 힘을 약하게 만들어 버렸다.

앞에 자세를 잡고 있는 진검백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또다시 사방에서 매화 향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광살마존은 직감적으로 진검백이 다시금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까의 상황이 생각난 광살마존은 손가락을 모두 쫙 폈다. 손가락 끝에 반지처럼 걸려 있는 장식품에서 날카로운 독침이 쏘아졌다.

스르릉.

검이 허공을 가볍게 베었다.

그 순간 우수수 독침들이 떨어져 내렸다.

광살마존은 뒤로 물러서면서 몸에 있는 내공을 집중시켰다.

광살마존의 암기는 몸에 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단순히 암기술로만 싸워왔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게다.

그는 특이한 무공을 익혔다.

구두강화공(九頭强化功)이라는 무공이 바로 그거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언제나 이 무공으로 목숨을 건져 왔다.

머리카락 아홉 가닥이 암기로 변해 상대에게 날아드는 무공이다. 너무나 빠르고 작아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죽기 부지기수다.

광살마존은 구두강화공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 이토록 매서울 줄은 몰랐다. 지금 진검백의 모습을 보아하니 절초를 펼칠 듯하다. 매화만리향까지 펼칠 정도의 인물일 줄도 몰랐고 그것이 얼마만 한 위력을 지닌 것인지도 짐작하기가 힘들다.

차라리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공이 온몸을 돌아 단숨에 백회혈로 모여들었다. 이제 기회를 잡아 내공을 움직이는 순간, 머리카락이 터져 나갈 것이다.

앞으로 내뻗은 검에서 매화 향이 점점 짙어졌다.

싸움을 끝내겠다고 생각하던 광살마존은 쿵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철부마왕이 쓰러졌다. 그것도 제대로 무공을 익히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했던 운하연이라는 약선문의 소문주에게 말이다.

귀면수라는 뱀에 물려 죽었다. 철부마왕은 여인에게 패했다. 문득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혹시나 자신도 저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 둘과 다르다. 그 둘은 상대를 얕보거나 경시했을 게다. 그렇지만 그는 아니다. 이미 절초를 펼칠 준비까지 모두 마쳤다.

진검백의 검이 슬쩍 움직였다.

‘지금!’

구두강화공이 터져 나갔다.

몸을 빙글빙글 돌면서 암기를 쏟아 내는 와중에 그의 머리카락이 진검백을 향해 쏘아졌다. 암기들 속에 묻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미미한 움직임이다.

수백 번의 실전, 그리고 그 와중에 죽을 경험을 한 것이 열댓 번 이상이다. 그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구두강화공을 그는 믿었다.

경험이 많다고 자부하는 무림의 고수들도 이 한 수에 죽었다. 진검백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데,

쉬이이!

날아드는 암기가 매화 꽃잎에 휩싸였다. 그러고는 그것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마치 녹아 버리기라도 한 듯이.

매화의 향기가 지독하게 코끝을 파고들었다.

‘위험…….’

갑자기 몸이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머리가 핑 돌았다. 위험함을 느끼고 급히 정신을 추스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검이 정확하게 그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크윽.”

그 와중에서도 광살마존은 손바닥을 들어 진검백을 후려쳤다.

손에 은은하게 뭔가 느낌이 와 닿았다. 그렇지만 찢어질 듯한 고통 탓에 제대로 위력이 나지 않았다. 검은 그대로 복부를 뚫고 지나갔다.

진검백은 검을 뽑아내고 어깨를 슬쩍 어루만졌다.

광살마존이 천천히 무너지는 걸 확인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어깨에 암기가 박혔지만 그다지 심한 부상은 아니다. 그의 하얀 옷이 피 때문에 붉게 젖어 갔다.

그렇지만 그는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흑풍이라는 인물을 향해서, 그리고 그런 진검백과 마찬가지로 운하연 또한 흑풍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으하하!”

흑풍이 웃었다. 자신과 함께 왔던 셋이 이토록 쉽게 쓰러질 줄은 몰랐다. 이 셋이라면 능히 이들을 제압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까지 나서야 했고, 나머지 셋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이 반대가 되어 버렸다.

이제 자신이 셋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재미있는 놈들이군. 셋 모두 재밌어.”

믿어지지 않는 자들이다.

겨우 이 정도 나이의 인물들이 단리문이 만든 사살(四殺)이라 불리는 자신들을 꺾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사살의 셋이 죽었지만 아직 사살은 멀쩡하다. 그건 흑풍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사살이 흑풍이요 흑풍이 사살이다.

“우리 사살이 너희 같은 약관의 인물들에게 이 같은 일을 당할 줄은 몰랐다.”

“사살?”

“우리를 그분은 그리 부르지.”

흑풍은 멀쩡했다. 그에 반해 갈지혁의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에 부상을 당했는지 턱 선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거 내가 모두 정리하도록 하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걸요.”

“소저의 손이 매서운 건 인정하지. 그렇지만…….”

흑풍이 피식 웃었다. 비웃는 거다. 겨우 철부마왕을 이긴 걸로 자신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겨우 철부마왕 이긴 걸로 기고만장해서는 안 되지. 그런 놈이 몇이 와도 내 상대는 아니니까.”

분명 흑풍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진검백과 운하연 또한 알고 있다.

피를 흘리면서 버티고 서 있는 갈지혁을 바라보던 진검백이 말했다.

“갈지혁, 나랑 교대하지.”

“……내가 끝낸다.”

“부상을 입었어. 잠깐 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서지 마라.”

갈지혁을 잘 알기에 진검백은 쉽게 설득할 수 없는 거라는 걸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갈지혁은 예상보다 훨씬 완고했다.

“이봐, 갈지혁…….”

“진검백.”

“……?”

“내 이름이 뭐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런 싸움터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는 갈지혁을 보면서 진검백이 물었다. 분명히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갈지혁이라는 인물은 결코 그렇게 괜한 말이나 지껄이는 자가 아니니까.

“내 이름이 뭐냐고?”

“갈지혁이다. 됐냐?”

“됐다. 그거면.”

갈지혁이 버럭 화를 내자 자신도 모르게 대답한 진검백은 멍한 표정이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다시금 주먹을 쥐어 올리는 갈지혁을 본 탓이다.

“저놈…….”

진검백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운하연이 다가와 섰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알지만…….”

“지지 않을걸요. 알잖아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 텐데요? 저 남자가 누군지 말이에요.”

“아아.”

진검백은 운하연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비록 상대가 상상 이상으로 강한 자라고는 하지만 그와 마주한 인물이 누구인지 잠깐 잊었다.

갈지혁 또한 그것이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갈지혁이라는 사내는 흑풍이라는 자보다 훨씬 더한 괴물이라는 걸.

흑풍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물러서. 넌 죽이지 말라고 했거든. 가만히 있는다면 몸 성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갈지혁은 대답 대신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 냈다. 갑작스럽게 뒤에서 나타난 흑풍의 일권에 몸을 비틀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쏟아지는 권풍에 그만 머리에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흑풍은 후속타를 날렸지만 갈지혁은 그 와중에도 용케 피해 냈다. 아마 그 공격까지 그대로 받았다면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것도 고통이었을 게다.

“대가는 받아주지.”

“멍청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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