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27화 (127/200)

# 127

2화

떨리는 목소리로 무화가 말했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당연한 것 아닌가? 무림에서 힘의 삼 할을 숨기는 건 기본.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보인 건 내 일 할도 되지 않아.”

마구잡이로 달려들어서는 안 될 거라는 판단을 내린 무화는 가볍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무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무화가 소리쳤다.

“오행검진(五行劍陣)을 펼친다!”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나눠진다.

그것을 방위로 보고 그 안에서 자연의 힘을 이용해 펼치는 검진이 바로 오행검진이다.

사방에서 기이한 기운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도 단리문은 태연하게 서 있다.

마치 오행검진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듯하다.

막 오행검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침묵하고 있던 단리문이 고개를 들었다.

“시작인가?”

단리문은 검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검을 눈가까지 들어 올린 그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이 지면을 쓸었다.

검 날이 얼굴을 가리고 눈 바로 아래에 닿아 있다. 콧잔등을 타고 검의 차가움과 예기가 느껴진다.

오행검진의 힘이 일순 강해지면서 그것들이 단리문에게 쏟아지는 순간 그의 검이 숨기고 있던 힘을 터뜨렸다.

“암흑단풍삭(暗黑丹楓削)!”

검 날이 갑작스럽게 검은 빛을 띠더니 이내 사방으로 요사스러운 기운을 쏟아 냈다.

퍼퍼펑!

마구 달려들던 무당파의 무인들이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단리문은 멈추지 않았다.

땅을 구르다가 재빠르게 일어나려던 무인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단리문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대로 위로 올라탄 단리문의 검이 가슴을 꿰뚫었다.

“컥!”

피가 단리문의 얼굴로 쏟아지듯이 튀어 올랐다.

빠르게 검을 뽑아낸 단리문은 그대로 검을 든 채 앞으로 내달렸다.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허억!”

검이 바로 무인 하나의 목을 쳐 날렸다. 막으려고 급히 검을 들어 올렸지만 손목과 함께 목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검은 그대로 나선을 그렸다.

빙글 돈 검에서 쏟아져 나온 검기는 이번에 뒤에 있던 무인들을 덮쳤다.

말만 검기지 위력만 본다면 결코 일반 무인들이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막으려고 했던 무인들도 썰려 나갔다.

피바다다.

그 많은 무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드러날 정도로 확연하게 줄기 시작한 것이다.

무화가 급히 소리쳤다.

“진을 짜라! 당황하지 말고 다시……!”

막 소리치던 무화의 눈앞에 갑작스럽게 단리문이 나타났다. 그의 검이 날아왔고, 무화는 아슬아슬하게 검을 막아 냈다.

손이 얼얼하다.

이 정도의 묵직한 느낌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어지는 단리문의 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무화는 막아 냈다.

막아냄과 동시에 양의검법(兩儀劍法)을 펼쳤다.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단리문은 어렵지 않게 피했다. 그와 동시에 단리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나 싶더니 아래를 향해 엄청난 내력을 쏟아 냈다.

“십단금(十段錦)이다!”

무당파의 비전 장법인 십단금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저, 저놈이 어떻게 십단금을!’

무화는 놀라면서도 급히 쏟아져 나오는 장법을 막아 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이 안에 있는 자 중에서 단리문의 일격을 받아 낼만 한 자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십단금은 부드럽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무림제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금 이곳에서 십단금을 막아 낼만 한 자는 없다. 그리고 어떻게 되어먹은 놈인지 십단금을 단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나 펼쳐낸 것이다.

무화는 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 이 공격을 막아 낼만 한 방법이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태극혜검이다.

무당파 검의 극의로 그것을 모두 깨우친 자는 천하제일인이 되었다. 비록 많이 모자라지만 지금 단리문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태극혜검(太極慧劍)!”

검에서 쏟아져 나온 힘이 하늘에서 흘러 내려오는 십단금을 감쌌다. 두 개의 힘은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이 서로 밀고 당기기를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무화의 몸에서 식은땀이 쫙 흘러나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젠장.’

십단금의 힘이 태극혜검을 펼치면서 버티려 했던 무화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빛이 사라졌을 때는 반쯤 뭉개져 버린 시신 하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단리문은 천천히 검을 어깨에 걸치면서 무인들에게 다가갔다. 무당파 무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그 무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이곳에 없다.

십단금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펼치는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단리문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이대로 시간을 더 끌면 무당파의 고수들이 모두 나오게 될 것이다.

두렵지는 않지만 상대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목적은 완수한 지금이니까.

칼을 아래로 내려뜨린 단리문의 몸은 온통 빈틈투성이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무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도망가고 싶은 것이 지금의 심정일 게다.

“천하제일 무당…….”

단리문이 중얼거렸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다. 이제 무당은 단리문의 발아래에 있다.

단리문이 웃으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이제는 모든 것이 변했다.

“이젠 내가 천하(天下)다.”

* * *

지대익의 거처에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찾아왔다.

막 자리에서 일어난 지대익은 손님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죽은 후에 독황독립문을 이끌 손주가 온 것이다.

“오, 무슨 일이더냐?”

한동안 폐관 수련을 한답시고 모습을 보이지 않던 지운경이다. 그가 폐관을 끝내고 지대익의 거처에 온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지대익의 앞에 선 지운경이 진지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할아버님, 아직도 갈지혁이 무림을 나돈다고 들었습니다.”

“음.”

“점창파를 무너뜨렸다고 하더군요.”

“…….”

“왜 그를 계속 놔두시는 겁니까? 그놈을 보고 있자면 제 속이 타오릅니다.”

지대익은 화가 나는지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내는 자신의 손주를 바라봤다.

지운경은 잘 모른다.

단화초라는 꽃의 의미를.

지금 그에게는 오로지 갈지혁이라는 자만 보이는 것이다. 몇 번이나 단화초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지운경은 언제나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는 듯했다.

“갈지혁에게 얻을 게 있기 때문이지.”

“그까짓 것이 없어도 중원은…….”

“우리 독황독립문이 중원을 지배하기 위해 손을 뻗친 것이 몇 번인 지 아느냐?”

“대여섯 번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혔어. 매번 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중원에 나섰겠지. 하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그런 과오를 다시금 걷고 싶지 않다.”

지대익은 연륜이 있다.

그 탓인지 그는 언제나 상황을 냉정하게 보는 편이다. 그에 반해 지운경은 다소 급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렇다면 일악천이라는 자를 고문해서 단화초의 위치를 알아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지대익이 웃었다. 손주의 철없는 소리에 절로 웃음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살았던 시대가 달랐고, 봐온 인물들이 다르다.

그러했기에 지운경은 모르는 것이 있다.

일악천은 독황독립문이 만들어 낸 괴물이다. 그는 단신으로도 중원과 싸울 힘이 있는 자다.

그깟 고문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거였다면 예전에 단화초를 손에 넣었을 게다.

침착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시작했다.

“초조해하지 마라. 어차피 그놈의 어미도 우리 손에 있고…… 그놈은 곧 날개 잃은 새가 될 것이다. 그때는 네 맘대로 해도 좋다. 얼마 남지 않았어. 그건 장담하지.”

“…….”

지운경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지대익은 그의 할아버지다. 지운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때를 기다리도록 하지요.”

“오냐. 그래야 내 손자지.”

지대익은 그런 지운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흑풍과의 대결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갈지혁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하연 덕분에 들끓던 내상이 금방 가라앉았다.

그녀가 제조한 약은 과연 약선문의 소문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끔 했다.

갈지혁은 침상에 걸터앉은 채로 나머지 셋과 마주했다. 그토록 말이 많은 풍객조차도 침묵하고 있다.

호흡을 고르던 갈지혁이 말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너희 둘을 죽이려는 자가 있다.”

“그리고 그자는 넌 죽이려 하지 않지.”

진검백이 말을 받았다.

갈지혁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차례나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흔적과 발자취를 느꼈다. 처음엔 독황독립문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다.

독황독립문에서 보낸 자들 치고 그 네 명은 너무나 강했다. 그 정도의 인물을 좌지우지할 힘이 문주인 지대익에게는 없다.

“네 편이거나 너에게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 있다는 소리지.”

“후자로군.”

“그렇다면 너에게서 얻을 것이 뭐가 있느냐는 건데…….”

아직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게 될 일이기도 하다. 갈지혁이 그 정체불명의 인물이 원하는 것을 지니게 된 순간 나타날 테니까 말이다.

“상대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지닌 자일 것 같아요. 흑풍까지 수족으로 거느릴 정도라면…… 분명 그는 지금 무당파의 뇌옥에 갇혀 있어야 하기도 하니까요. 지금 그자가 비밀리에 흑풍을 꺼내준 걸로밖에는…….”

무당파에 들어가 가장 깊숙한 곳이라는 뇌옥에서 누군가를 꺼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만큼 흑풍의 배후의 인물이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자라는 말이 된다.

갈지혁이 침상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왜?”

“서둘러서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

“몸은 좀 낫고 나서 가는 게…….”

“아니,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갈지혁의 모습을 본 진검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마음먹었다면 말린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려고?”

“해남. 해남도로 간다.”

“해남도?”

해남도라면 중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섬 중 하나다.

그리고 그곳에는 구파일방의 하나인 해남파가 있다.

귀주성과 해남도가 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꽤나 먼 거리다. 그리고 그곳에 가는 이유가 해남파를 부수기 위한 거라고 한다면 다소 말리고 싶다.

분명 해남파가 구파일방의 하나지만 너무 멀고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다지 중원에서 크게 비중을 지니고 있지 않다.

점창파를 무너뜨렸다.

그것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굳이 문파 하나를 더 무너뜨리려고 해남도 까지 갈 필요는 없다.

“해남파 때문인가?”

“아니. 내가 중원에 나온 이유 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런가?”

갈지혁의 의지를 본 운하연이 풍객에게 말했다.

“아저씨, 마차를 준비해 줘요. 좋은 말로요. 서둘러야 될 것 같으니까요.”

“그러지요, 아가씨.”

풍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운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갈지혁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좀 쉬시죠. 마차가 와야지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생각이 짧았군.”

멋쩍은 듯이 갈지혁은 침상에 다시 걸터앉았다.

급하다는 생각 탓에 무턱대고 떠나려고만 했던 것이다. 지금의 몸 상태라면 움직인다 해도 보통 사람의 반도 걷지 못한다.

“이래서 여자 말을 듣는 게 좋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옆에서 진검백이 놀리듯이 말했다.

풍객은 운하연의 말대로 이 마을에 있는 말 중에서 최고로 좋은 놈들이 이끄는 마차를 빌려왔다.

갈지혁을 먼저 눕히고 반대편에는 운하연과 진검백이 앉았다. 자리가 좁은 관계로 풍객은 마부 옆자리에 앉게 됐다.

그가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형편이다. 환자가 가장 우선이라는 운하연의 말에 풍객은 어쩔 수 없이 마부의 옆자리로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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