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30화 (130/200)

# 130

5화

“단화초의 약효를 잘 아는 것도 아닐 텐데 그 역병의 약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게 이상해서 말이야. 분명 단화초가 약초가 되기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역병의 약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어찌 내린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모르겠어요. 저도 단화초를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저희 할아버지가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서 그리 판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결코 허튼 답을 내리시는 분은 아니니까요.”

갈지혁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운하연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에게 꼬치꼬치 물어봤자 답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단화초의 위치를 안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마음은 예전과 변한 게 없다.

“어쨌든 내 의사는 밝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단화초가 약이 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지금 그것을 줄 수는 없다.”

“여전하군요, 당신은.”

“사부님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

운하연은 갈지혁을 안다. 한번 마음을 정했다면 쉽사리 꺾을 위인이 아니다.

지금 사실을 말해 준 것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그녀 또한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단화초가 해남도에 있는 모양이네요. 당신이 가려는 걸 보니까.”

“그래.”

“죽어도 해남도에 함께 가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

“말했을 텐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더는 봐주지 않을 거야.”

갈지혁의 마음은 이미 확고해졌다.

진검백도 운하연도 따라오게 할 생각이 없다.

단화초가 있는 곳으로 가는 이상 그들은 갈지혁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화초를 찾아내는 순간 또 일은 벌어진다.

없애야 한다.

단화초를 세상에 나오게 해선 절대 안 된다.

일악천은 단화초를 모두 없애달라고 했다. 그것을 갈지혁은 지켜야 한다.

둘 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갈지혁은 그대로 누워 버렸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마음을 밝혔다. 쫓아오려고 해도 이제는 남남이다.

그리고 더는 봐주면서 쫓아오는 걸 놔둘 생각도 없다.

마차가 마을에 이르러서 멈추어 섰다.

운이 좋았다.

이렇게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는 것은 정말로 운이 좋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마차를 객잔에 있는 마구간에 넣은 풍객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이미 다른 일행은 모두 일어나서 객잔 안으로 들어간 상태다. 이상하게 내려앉은 분위기에 풍객은 덩달아 눈치를 봐야만 했다.

갈지혁은 떠나지 않았다. 아직 몸이 완벽하게 낫지 않아서다.

아마 해남도로 가는 배를 타기 전까지는 함께 여행을 할 생각인 모양이다.

대충 자리를 채우고 식사를 시키려고 할 때 갑자기 진검백이 일어났다.

“잠시 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운하연에게 가볍게 말하면서 그는 슬쩍 눈짓으로 갈지혁을 가리켰다.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를 부탁한다는 소리다. 운하연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진검백은 객잔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객잔에 표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꽤나 중요한 일인지 평소보다 더욱 많은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진검백은 능숙한 발걸음으로 마을의 외곽으로 빠졌다.

들어왔던 곳과는 반대편 쪽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나무가 무성한 곳이 나타났다.

진검백은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일 각 정도를 걷자 멀리서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사처럼 보이는 복장에 흰 수염을 적당히 길러 인자해 보이는 외양을 지닌 노인이다.

진검백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의외의 인물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진검백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오랜만이구나.”

“매화검선(梅花劍仙)께서 전령으로 나설 정도로 중한 일인가 봅니다.”

매화검선이라면 화산에서도 배분이 높은 축에 속하는 인물이다. 나이는 육십을 넘어 칠십에 가깝고, 그가 펼치는 매화검법은 화산의 일절이라고까지 불린다.

적어도 매화검선이란 인물은 전령이나 할 위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러한 것에 대해 불쾌해하거나 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화검선은 다급한 표정이었다.

“갈지혁이라는 자와 아직도 함께인가?”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건 왜……?”

“내가 알기로 갈지혁이라는 놈은 부상을 입었다던데, 사실이냐?”

“예. 거동은 가능하지만 무공을 펼치거나 할 정도는 아닌 듯싶습니다.”

“옳거니! 기회로구나!”

“기회라니요?”

진검백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갈지혁이 부상을 입었다는데 뭐가 화산에 기회라는 소리란 말인가? 매화검선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가 혹시나 있을까 확인한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에서 명이 내려왔다.”

“위라면?”

“장문인의 특명이다.”

“무엇입니까?”

매화검선은 진검백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갈지혁을 죽여라.”

“……갈지혁을 말입니까?”

진검백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다른 것도 아닌 갈지혁을 죽이라니? 그런 진검백의 마음도 모르고 매화검선은 신이 난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 마침 부상을 입은 상태라니 더할 나위 없는 절호의 기회구나.”

“정말로 장문인께서 내리신 명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검백이 재차 물었다.

갈지혁은 딱히 무림에 해를 끼칠 일을 하지 않았다.

물론 얼마 전에 점창을 무너뜨렸으니 그것을 가지고 무림맹에서 물고 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갈지혁은 정정당당했고, 점창은 봉문했다.

그러한 것을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면 오히려 정파의 위신만 상하게 될 일이거늘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진검백이 표정을 굳힌 채로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화산의 뜻이기 이전에 무림맹의 뜻이다. 이제 무림맹은 독을 쓰는 자들을 공적으로 몰기로 했다. 더군다나 갈지혁은 이미 승패가 갈린 후에 점창의 두 장로를 잔인하게 죽였다.”

“그게 무슨……?”

“점창의 두 장로를 암습으로 밤에 죽였다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진검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알기로 갈지혁은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떠나 갈지혁과 언제나 함께했던 진검백이다.

갈지혁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추었던 시간은 단 일 각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화검선은 진검백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그가 인자하게 웃었다.

“네가 그 아이에게 정을 준 모양인데 그놈은 악인이야. 힘들다면 내가 대신 그놈을 죽이마. 그렇게 하겠느냐?”

“분명 이건 모함입니다. 그놈과 저는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점창의 두 장로를 암습으로 죽이다니요. 엄중히 조사를 해서 진실을 밝혀야 할 겁니다.”

“무림맹의 뜻이야. 이미 조사도 끝났다고 하니 더 물고 늘어져 봤자 너만 피곤해져.”

“그놈은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옆에 있던 제가 보지 못했는데 언제 점창의 장로를 죽인단 말입니까?”

“쯧쯧.”

매화검선이 혀를 찼다.

안타깝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진검백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마치 다 안다는 듯 한 저런 눈이 진검백은 너무나 싫었다.

“더 이상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바뀌는 건 없다. 네가 죽이든, 그게 아니라면 우리 화산의 다른 자가 올 게야.”

“…….”

진검백은 침묵했다.

화가 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겠지만 무림맹은 갈지혁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점창파의 장문인이 손을 쓴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림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무당파가 뒤집혔지. 독을 쓰는 놈이었는데 무당파의 고수가 상당수 죽어 버렸어. 무진악이 화가 난 모양이더군.”

무진악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진검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특별히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무진악이 어떠한 인물인지는 안다.

한번 무엇인가를 노리고 물기 시작한다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는 자다.

최소한 적이라면 이만큼 귀찮은 자도 없을 게다.

왜 장문인이 이러한 명을 내렸는지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놈이 약해졌다고 해도 너 혼자서는 힘이 드는 모양이구나. 도움을 청하마. 일류고수 두어 명만 더 합류한다면 부상당한 놈 정도야…….”

“화산의 누가 온다고 해도 그놈은 못 이깁니다.”

“우리 화산이 그런 뿌리도 모르는 놈 하나를 못 이긴다고?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느냐? 네놈은 지금 스스로의 사문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매화검선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가뜩이나 독을 쓰는 자가 무림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던 그다.

그런데 화산의 문하라는 놈의 입에서 누가 와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화가 솟구친다.

매화검선이 노려보았지만 진검백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되려 마주 보던 진검백이 씹어뱉듯이 한 글자씩 내뱉었다.

“그놈은 죽여도 제가 죽입니다. 화산에서 그놈을 잡을 수 있는 자는 저뿐이니까요.”

매화검선은 굳은 표정으로 진검백은 바라봤다.

겨우 낙화검 주제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참아 냈다. 다름 아닌 장문인이 갈지혁의 옆에 둔 자다. 무엇인가 생각이 있었기에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게다.

낙화검 진검백은 믿지 못하지만 화산파의 장문인이라면 믿는다.

매화검선이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진검백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화산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네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러니 어서 해결하거라. 부상자라고 해서 망설일 건 없다. 그놈은 독인이니까.”

말을 마친 매화검선은 나무 사이로 몸을 감췄다.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지금 진검백의 머리가 너무나 복잡했기에.

지금 내려진 명령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갈지혁을 죽여라.

화산은 갈지혁을 모른다.

그의 무공도 모르고 사용하는 독에 대해서도 모른다. 사황이라는 존재와 인면지주도 알지 못한다.

갈지혁을 제대로 모르니 방심할 것이다. 그 누가 와도 이기지 못한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화산은 점창보다 강하다.

하지만 같은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만큼 갈지혁이 강하기도 했지만 독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너무 빠르다.

더군다나 지금 갈지혁을 죽이려 드는 명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마당에 그와 싸우고 싶지 않다.

진검백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 허리에 찬 검이 들어왔다.

언젠간 진심으로 한번 싸워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는 않다.

목숨은 건다.

그렇지만 적대심을 가지고 싸우는 것과 무인 대 무인으로 싸우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명령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화산파 장문인의 명령.

객잔으로 돌아가는 진검백의 발걸음이 무겁다.

* * *

해남도(海南島).

중원의 최남단. 무림의 손길도 조정의 손길도 거의 닿지 않는 자유로운 곳.

그곳이 바로 해남도다.

광동에서 배를 타고 열흘 이상이 걸리는 곳으로, 그곳은 날씨가 꽤나 무더운 곳이다.

중원에서 먼 탓에 무림인들의 발걸음도 뜸한 편이고,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력과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해남도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은 한 개의 문파와 한 개의 가문이다.

해남파(海南派), 또는 해남검파(海南劍派)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해남에서 가장 유명한 문파다.

더불어 해남파는 중원에서도 구파일방의 하나로 인정을 해 주는 문파이다.

그들이 중원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기에 해남파의 무인을 만난다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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