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6화
고수다.
그것도 절정의 수준에 다다른 고수.
“이곳에 있는 놈들은 모두 죽을 거다!”
중년사내의 선고와도 같은 한마디. 해남파의 무인들은 검을 든 채로 이 셋을 바라봤다.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막문환이 침착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 이걸 보면 알려나?”
뚱뚱한 청색의 무복을 입은 사내가 등 뒤에서 무엇인가를 들어 올렸다.
콰앙!
거대한 철퇴가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손을 놓자 철퇴는 굉음과 함께 땅에 처박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 철퇴로 향했다. 저런 철퇴에 맞는다면 머리통 정도 으깨지는 건 일도 아니다.
그때 곽소정의 옆에 서 있던 현문이 입을 열었다.
“악면삼귀(惡面三鬼).”
“맙소사!”
운 참 더럽게 없는 날이다. 하필이면 눈앞에 있는 자들이 그 악면삼귀일 줄이야.
“네가 현문이구나. 눈치가 좋아.”
젊은 사내가 말했다.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해남파의 무인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악면삼귀는 셋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셋이 바로 삼대(三代)라는 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이 셋이 바로 해남도에서 최고의 악인으로 꼽히는 악면삼귀인 것이다.
한때 해남파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많은 무인을 투입했다. 그렇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싸늘한 주검뿐이었다.
사람들은 노인을 가리켜 일귀라 불렀고, 뚱뚱한 중년의 사내를 이귀, 빼어난 외모를 지닌 청년을 삼귀라 불렀다.
“너희는 참 운이 없어.”
삼귀가 입을 연다.
그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해남파의 무인들 하나하나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그의 눈이 갈지혁에게 닿자 멈추어 섰다.
“모두 죽어 줘야겠어.”
삼귀의 손가락이 앞으로 향했다.
순간,
“크악!”
해남파의 무인 중 일부의 머리가 날아갔다.
“줄이다!”
현문이 소리쳤다.
삼귀의 손가락에는 이상한 줄이 달려 있다.
그 줄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워 사람의 목 정도는 우습게 베어 버린다.
문제는 너무나 얇아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단번에 다섯 무인의 목이 날아갔다.
그저 손가락을 뻗은 것뿐인데 피해는 만만치 않다.
방심하고 있던 탓이다. 설마 줄이라는 암기를 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알았다면 단 한 번의 공격에 몇 명의 목이 날아가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게다.
다시금 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보이지 않은 줄이 다시금 먹이를 노렸다.
그렇지만 해남파의 무인들 또한 녹록치는 않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들은 능숙하게 몸을 움직였다.
덕분에 이번엔 목이 날아간 자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는 부상을 입으며 피를 흘렸다. 피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상대는 그저 손가락이나 꿈틀대는 정도다.
그런데 이쪽은 그러한 움직임 하나에 피를 쏟아 낸다. 아무리 봐도 이쪽이 손해를 보는 일이다.
거기다가 저쪽에는 아직 두 명이 더 있다.
이귀는 무시무시한 철퇴의 달인이다. 검도 단숨에 뭉그러뜨리는 힘으로 휘두르는 그의 철퇴는 맞는 즉시 온몸의 오장육부가 터져 나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살인 병기다.
그리고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일귀도 문제다.
그의 검은 앞의 둘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매서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다.
현문은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싸운다면 필패다.
상대가 악면삼귀라면 해남파의 정예들이 출동해야 상대할 수 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로는 어림도 없다.
솔직히 말해 현문 본인 또한 이귀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싸우면 모두 죽어. 하지만 도망을 칠 수도 없다.’
말이 모두 죽었다.
단 한 마리라도 살아 있다면 곽소정을 태우고 도망이라도 치련만 그게 안 된다.
더군다나 저 삼귀가 어디에 그 날카로운 줄을 쳐놨는지도 신경 써야 한다.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해도 확실하게 도망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흐흐흐!”
갑자기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이귀도 전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귀의 공격을 피하기에 바빴던 자들을 향해 그의 철퇴가 떨어졌다.
콰앙!
단 일 격에 줄을 피하던 해남파 무인 셋이 피 떡이 되어 버렸다. 완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일그러졌다.
이귀까지 끼어들게 되자 피할 곳이 줄어들었다. 삼귀의 줄을 피한다 싶으면 이귀의 철퇴가 위에서 떨어져 내린다.
단숨에 열 명에 가까운 인원이 확하니 줄어 버렸다.
애초에 마부들과 마부석에 앉아 있던 인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했기에 싸움에 끼어들었던 자는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열 명이 죽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막문환은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하기에만 급급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쇠줄이 다시금 휘리릭 하고 날았다.
그때였다.
수투를 낀 갈지혁이 몸을 움츠린 해남파 무인 앞에 서면서 줄을 잡아챘다.
동시에 떨어져 내리는 철퇴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여태까지 해남파의 무인들을 일그러뜨려 버린 철퇴가 하늘을 향해 튕겨 나갔다.
“호오.”
삼귀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철퇴가 튕겨 나가자 이귀는 다소 놀란 모양이다.
뒤로 물러선 채로 그는 갈지혁을 노려봤다. 삼귀가 키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겁먹은 모습이 웃기네요.”
“시끄럽다!”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귀는 자신의 팔목을 어루만졌다.
사실 철퇴를 내려치면서 승리를 장담했다. 더군다나 갈지혁이 피하지 않고 손을 휘둘러 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히려 튕겨 나간 것은 갈지혁이 아닌 그였다.
손목이 얼얼하다.
독을 쓰는 자라고만 들었는데 무공도 빼어난 모양이다. 이렇게 자신이 밀려 버린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수투로군.”
삼귀가 말했다.
갈지혁은 대답 대신 수투를 낀 손에 더욱 힘을 줬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따위 수투로 내 살금(殺琴)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삼귀는 그대로 손에 힘을 주면서 줄을 잡아당겼다.
철도 잘라 낸다는 그의 살금이다.
수투가 아무리 질기다고 해도 베어 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티잉!
줄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졌다.
이 상태가 되기 전에 손바닥이 그대로 잘려 나갔어야 정상인데 줄은 팽팽해진 채로 미동도 않는다.
그때 갈지혁이 손에 힘을 줬다.
삼귀의 몸이 앞으로 끌려왔다.
동시에 갈지혁의 발이 움직였다.
삼귀는 급히 허리를 굽혔다. 발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급히 줄을 풀고는 뒤로 물러났다.
줄이 느슨하게 풀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갈지혁은 손바닥에 감겨져 있는 살금을 풀어서 던져 버렸다.
삼귀의 얼굴은 방금 전과는 확연하게 변해 있었다. 여유를 가지며 웃음을 흘리던 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해남파의 무인들은 침묵했다.
자신들 전원을 가지고 놀던 자가 지금 갈지혁이라는 사내 한 명 앞에서 저토록 화를 삼키고 있다.
“난 급해. 내 길을 막는다면 상대해 줄 수밖에.”
“건방진 놈…….”
“내가 이놈들을 잡아줄 테니 해남파에 가면 몇 가지 독초 좀 부탁해도 되겠소?”
“물론이네!”
갈지혁의 말에 현문은 급히 대답했다.
애초에 이들과 자신들이 상대가 될 수 없음을 느꼈을 때 그는 갈지혁을 생각했다.
그가 움직여만 준다면 그나마 희망이 있다.
갈지혁이 일귀만 어떻게 막아준다면 자신이 이귀를, 막문환을 비롯한 나머지가 삼귀를 제압할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현문은 급히 소리쳤다.
“막문환 자네를 비롯해 나머지는 삼귀를 막게! 내가 이귀를 맡고 서로 상대를 제압하면 갈 소협을 도와서……!”
“필요 없소.”
막 말하는 현문의 말을 갈지혁이 잘랐다.
그는 수투를 꽉 끼면서 다시금 말했다.
“나 혼자면 충분하니까.”
“으, 으하하!”
이귀가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는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단신으로 자신 셋을 잡겠다고 나서니 우습기도 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갈지혁의 표정은 진지했다. 결코 농담이나 내뱉은 게 아니라는 소리다.
“진담인가 보군.”
“난 농담 같은 거 좋아하지 않으니까.”
갈지혁은 삼귀를 보면서 말했다.
삼귀는 손가락을 꿈틀대기 시작했다. 옷 속에서 무엇인가가 삼귀의 손가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오른손과 왼손에 모두 살금을 낀 것이다.
엄지와 새끼손가락.
그것이 양손이니 무려 네 개의 살금이다.
이귀는 철퇴를 들어 올렸다.
둘이 갈지혁을 향해 다가갔다.
휘리링.
살금이 먼저 날아들었다. 갈지혁의 몸이 움츠러들었다가 일순 앞으로 튕겨 나갔다.
네 개의 살금이 사방에서 갈지혁을 노렸다. 그렇지만 그의 몸은 이귀를 향했다.
살금이 날아오지 않을 방향을 갈지혁은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이귀가 있는 바로 그곳이다.
이귀를 등지면 살금은 날아들 수가 없다.
그의 몸을 관통하지 않고는 단번에 갈지혁에게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급히 손가락을 틀어 살금을 안으로 휘게 만들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면 이귀를 베어 버린다.
그러한 살금의 약점을 갈지혁은 단숨에 알아차린 것이다.
삼귀가 엄청난 내공으로 수족처럼 살금이라는 얇은 줄을 움직일 경지면 모르지만 아직 그는 그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이귀의 우악스러운 발이 갈지혁을 걷어차려고 했다.
그가 몸을 비틀면서 공격을 옆으로 흘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삼귀는 살금을 날렸다. 정확하게 미간을 노린 살금을 갈지혁은 철판교의 수법으로 피해 냈다.
몸을 수평으로 지면과 세운 그의 상반신이 위로 튀어 오르듯이 솟구쳤다.
철퇴는 갈지혁이 서 있던 땅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쳤다. 공중으로 솟구친 갈지혁은 그대로 이귀의 안면을 걷어찼다.
이귀의 거대한 몸이 땅에 주저앉았다.
갈지혁은 뒤로 물러서면서 동시에 소매 속에 있는 독탄을 터뜨리면서 휘둘렀다.
하얀 가루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땅에 주저앉았던 이귀는 급히 내공을 모아 독에 대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독기가 몸 안에 파고들었다.
뒤에 서 있던 삼귀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이노옴!”
그의 손가락에서 살금이 터져 나왔다.
등을 돌리고 있다.
숨을 곳도 없다.
목숨을 취하는 것까지는 무리라고 해도 적어도 부상 정도는 가능하리라.
그때였다.
가만히 앉아 있던 이귀가 벌떡 일어나더니 날아드는 살금을 몸으로 막았다.
피가 퍽 하고 터져 나왔다. 급히 살금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귀는 부상을 입어 버렸다.
“아버지!”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이귀를 보면서 삼귀는 악을 썼다.
그로서는 실로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째서 이귀가 갈지혁을 보호한다는 말인가.
갈지혁이 몸을 빙글 돌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왜 우리 아버지가 네놈을 지켜준단 말이냐!”
“꼭두각시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