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50화 (150/200)

# 150

25화

받아야 할 약재가 산더미다.

노후량의 눈을 치료할 약재는 구하기 어렵지 않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정작 갈지혁이 이곳 해남파에서 받으려고 했던 것들은 꽤나 구하기 어렵다.

다른 건 어떻게 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두 가지의 것은 과연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의 것이다.

마왕충(魔王蟲).

지독한 독기를 지닌 독거미다.

이것은 해남도에서 살고 있지만 실제로 마왕충을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알려졌다.

단번에 소도 즉사시킬 정도의 맹독을 지닌 거미다.

오룡초(五龍草).

풀이다.

그것은 독기를 완벽하게 빨아들이는 특이한 습성을 지녔다. 그렇지만 그 탓에 오룡초는 독초들이 가득한 곳에만 피고, 또한 빨아들인 독 때문에 가까이 갔다가는 독에 중독될지도 모르는 풀이다.

예상대로 곽소정과 함께 온 자에게 필요한 약재를 말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요? 구하기 어려운 것들인가요?”

“다른 건 다 어떻게 되겠는데 마왕충과 오룡초는…….”

곽소정의 질문에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그때 갈지혁이 말했다.

“있나, 없나? 그것만 말해.”

“오룡초는 있긴 한데 그게 얼마 없어서…… 줘도 괜찮겠습니까?”

“주도록 해요. 약속이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왕충이라는 건 구할 수 없는 건가요?”

사내가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렸다. 무엇인가 생각하는 모양이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마왕충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것을 찾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마왕충을 꼬셔서 눈이 보이는 곳으로 나오게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마왕충이 산다는 곳이 있습니다. 문제는 마왕충은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요?”

“지독한 독성을 지닌 다른 거미가 나타나면 마왕충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구역을 지키기 위해서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쓸 만한 거미가 있나요?”

“뭐, 몇 개 있기는 한데 그 정도로 마왕충이 과연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겠습니다. 마왕충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미들인지라…….”

마왕충은 자신의 지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강한 거미다.

그들은 자신의 영토에 이방인이 들어서면 당장에 물어뜯어 죽이려고 한다.

물론 그건 거미에 한해서다.

그렇지만 마왕충은 위협이 되지 않는 건 건드리지 않는다.

거미도 마찬가지다.

같은 거미라고 해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판단하면 마왕충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랬기에 그는 마왕충이 과연 나올지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에 이야기해 준 것이다.

그때 갈지혁이 말없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커, 컥!”

갑작스러운 갈지혁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내가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걷은 소매 속으로 어떠한 게 기어나왔다.

인간의 얼굴을 한 거미.

이러한 거미는 단 하나뿐이다.

“이, 인면지주!”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무, 물론입니다. 인면지주라면 마왕충이 기겁을 하면서 달려들 겁니다.”

인면지주라면 마왕충보다도 더욱 강한 독성을 지닌 거미다. 그리고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이렇게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한 영물에 가까운 존재다.

곽소정은 징그럽다는 눈으로 갈지혁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인면지주를 바라봤다.

인간의 얼굴을 한 거미가 귀엽게 보일 턱이 없다.

인면지주가 갈지혁의 소매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캬아!

녹색의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황이다.

사황이 붉은 눈을 빛내며 인면지주를 노려보자 다시금 소매 속으로 몸을 쑥 감췄다. 이 모습을 본 사내는 놀란 듯이 사황을 내려다봤다.

이 뱀의 기에 인면지주가 눌렸다는 걸 아는 탓이다.

인면지주가 어떠한 거미인지 아는 사내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아, 이 뱀, 꽤나 귀엽게 생겼네요.”

곽소정은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리면 바로 죽소.”

막 손을 내밀던 곽소정이 멈칫했다.

갈지혁의 얼굴을 보아하니 농담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인면지주도 이놈 앞에서는 쩔쩔매지. 이놈의 독은 나라고 해도 쉽게 해독하지 못해.”

“위험하지 않나요, 이런 뱀을 옷 속에 넣고 다니면?”

“위험할 건 없소. 내 친구니까.”

갈지혁이 손가락을 내밀자 사황이 장난스럽게 그의 팔로 올라선다.

친구라는 말에 곽소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난스럽게 내뱉은 말이 아니다. 갈지혁은 정말로 이 뱀을 친구처럼 생각한다는 소리다.

사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 대체 그 뱀은 뭡니까? 인면지주가 겁을 먹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내 친구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뱀이 어떠한 종류인지…….”

갈지혁이 자신을 노려보자 사내는 말을 멈췄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름은 사황. 뱀들의 황제다.”

갈지혁은 산을 오르고 있다.

마왕충은 해남파가 있는 여모봉에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해남파보다 더욱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또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발견하기 힘들다.

혼자 가서 구해 오려고 했지만 끝끝내 따라오겠다는 바람에 갈지혁은 세 명의 인물을 더 데리고 산에 올라야 했다.

방금 전 마왕충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던 사내와 무공을 익힌 듯한 인물, 그리고 곽소정이다.

곽소정은 무엇이 그리도 궁금한지 갈지혁을 따라나섰다.

이곳 말고도 마왕충을 보았다는 곳이 몇 곳 있기는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가장 먼저 여모봉의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이다.

“대체 어디 있다는 거요?”

짜증을 내는 사내는 해남파의 무인으로 곡생(曲生)이라는 자다.

그리고 그가 짜증을 내는 대상은 바로 해남파의 독초와 약초를 관리하는 약전의 주자유(朱子柳)라는 사내다.

“마왕충이 괜히 찾기 힘든 거미인 줄 알아! 나도 태어나서 단 한 번밖에 못 봤다고! 그렇게 구시렁댈 거면 당장 꺼져!”

주자유는 곡생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왕충은 예민한 거미다.

사람들의 인기척만 들려도 당장 모습을 감춘다. 그걸 떠나 마왕충이라는 거미 자체가 너무 극소수라 평생을 이런 쪽의 것만 만져 오던 주자유 또한 단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그게 바로 십 년 전이다.

그는 약초를 찾기 위해 여모봉을 헤매다가 우연히 마왕충을 본 적이 있다.

엄청난 빠르기로 숨은 탓에 주자유는 채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마왕충을 놓쳤다.

그런 기이한 독충을 만져 보지도 못한 것이 그는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시 산에 오르고 있다.

마왕충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슬쩍 갈지혁을 쳐다봤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소매를 봤다고 해야 옳다.

갈지혁의 소매 속에는 신기한 것들이 산다.

말로만 전해 듣던 인면지주도 그렇고, 그런 인면지주를 제압하는 녹색 뱀도 있다.

두 가지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조사해 보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주자유는 갈지혁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는 사황이라고 부르는 뱀을 친구로 생각하는 듯했다.

‘쩝, 아쉽구먼.’

일생에 다시 못 볼 영물들을 이렇게 놓칠 생각을 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상대가 상대다.

잘못했다간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러한 것에 욕심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부근이었는데…….”

주자유가 중얼거린다.

그의 눈은 사방을 훑었다. 십 년 전의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 이 근방이 분명하다.

갈지혁이 소매를 툭툭 흔들자 안에서 인면지주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갑작스럽게 몸을 드러낸 인면지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도망갈 곳을 찾는 토끼와도 같은 모습이다.

“이, 이게 뭐야?”

곡생은 생전 처음 보는 인면지주의 모습에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대체 인간의 얼굴을 한 거미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크크! 이게 인면지주라고 하는 거다, 이놈아.”

주자유가 웃었다.

땅에 내려선 인면지주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원래의 인면지주라면 사방으로 날뛰고 다녀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이미 사황에게 완전하게 제압당한 인면지주는 원래의 성격을 죽인 채로 살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약간 거리를 벌리죠.”

곽소정은 뒤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그녀를 따라 뒤로 움직였다. 그렇지만 시선은 인면지주에게 틀어박혀 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그리고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뿐이다.

과연 인면지주에 반응해 마왕충은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어쩌면 이제 이곳에는 마왕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저 운에 따를 뿐이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곡생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주자유가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쉿.”

입도 벌리지 말라는 소리다. 조그마한 반응에도 마왕충은 모습을 감춘다.

반 시진가량이 지났다.

슬슬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주자유가 갑자기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수풀 사이에서 무엇이 슬쩍 다리를 꺼낸 것이다.

털이 있고 길게 늘어진 것이 분명 거미의 다리다. 마왕충은 인면지주에 못지않게 거대한 거미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정체불명의 거미가 몸을 반쯤 내밀었다.

‘마, 마왕충이다!’

저것은 마왕충이다.

주자유는 흥분이 가득한 눈으로 나타난 마왕충을 바라봤다. 인면지주 또한 시선을 돌려 마왕충과 마주했다.

마왕충은 인면지주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비록 마왕충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거미이기는 하나 인면지주에 비하면 한참이나 떨어지는 독성을 지녔다.

그렇지만 마왕충은 자신의 구역에 침범한 인면지주를 그냥 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떻게든 물어 죽일 듯이 마왕충은 기회를 엿봤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왕충의 움직임이라면 분명 자신이 덮친다고 해도 도망칠 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마왕충의 독성은 보통이 아니다. 그냥 잡았다가는 당장에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왕충에 대해서 알려진 건 거의 없다.

독이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섣불리 만질 수가 없다는 소리다.

그때 갈지혁이 가만히 허리를 숙였다. 소매에서 모습을 감췄던 뱀 하나가 기어나왔다.

“물어와.”

마치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모습.

주자유는 갈지혁의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저런 뱀이 기어간다면 마왕충은 당장 몸을 감출 것이다.

하지만 소리를 내면 안 되기에 갈지혁을 말릴 틈도 없었다.

사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실패다!’

주자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슬쩍 눈을 떴다. 사황이 마왕충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어?’

이상하다.

분명 사황이 기어가는 걸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마왕충이 가만히 있다.

아니, 오히려 뻣뻣하게 굳은 채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마왕충의 바로 뒤까지 다가간 사황이 입을 쩍 벌렸다.

턱.

사황이 마왕충을 물고는 이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반항도 하지 않는다. 마왕충은 그냥 그렇게 이쪽으로 끌려오고 있다.

“마, 맙소사!”

인면지주를 보고도 덤벼들려던 마왕충이 이 뱀의 기에 눌려 꿈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랬기에 이 같은 일이 가능했다.

“수고했다.”

갈지혁은 사황의 입에 물린 마왕충을 받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황은 그런 갈지혁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갈지혁이 마왕충을 들어 올리자 기겁한 주자유가 소리쳤다.

“자, 잘못하면 죽습니다! 그놈의 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을 하던 주자유는 갈지혁의 소매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사황과 인면지주를 보며 입을 닫고야 말았다.

저런 괴물들도 그냥 몸속에 지니고 다니는 자다.

마왕충이라면 그에게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쉽게 마왕충을 잡게 되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다! 그렇지 않다면…….’

죽었어도 예전에 죽었을 게다.

갈지혁이라는 사내에 대한 경외감이 치밀어 오른다. 더불어 그 알 수 없는 뱀인 사황의 정체에 대해서도.

“슬슬…… 준비가 끝났군.”

갈지혁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해남도에 온 목적을 이룰 때다.

단화초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