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독왕전설 7권
1화
마왕충을 구한 갈지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후량의 눈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비록 오랜 시간 동안 눈의 신경이 제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아마 보름 안에 다시금 빛을 볼 수 있게 될 게다.
그가 찾아오기로 한 날짜는 지금부터 열흘이나 남았다.
그 안에 갈지혁은 할 일이 있다.
마왕충과 오룡초를 비롯한 여러 가지 독물들을 가지고 만들어야 할 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단화초를 구하러 가는 게 불가능하다.
갈지혁 또한 이론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마왕충과 오룡초를 가지고 이것을 만들어 보기는 생전 처음이다.
혈환액(血渙液).
마왕충, 오룡초, 독깔대기버섯, 화어…….
수많은 독초와 약초들을 뒤섞어 만들어 내는 액체로 그것을 몸에 바르면 독충들이 접근하지 않는다. 또한 혈환액은 다른 힘도 지니고 있는데…….
갈지혁의 앞에 있는 솥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연신 주변을 데웠다. 붉은색을 띠는 액체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가두어 두었던 마왕충을 꺼냈다.
다른 것과는 달리 생명을 지닌 것이었기에 마왕충은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 곧 있을 일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갈지혁은 마왕충을 그 뜨거운 액체 안에 휙 하니 집어던졌다.
“꾸에엑!”
마왕충은 마치 짐승을 연상케 하는 비명 소리를 토해 냈다. 어떻게든 벗어나오려고 했지만 채 솥의 끝에 다가오기도 전에 마왕충의 몸이 액체 속으로 잠겨들었다.
죽은 것이다.
갈지혁은 태연하게 솥을 바라봤다.
이 안에 담긴 액체가 갈지혁과 단화초를 연결시켜 줄게다. 인면지주는 무엇이 그리도 끔찍한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미 갈지혁의 발치에 나온 사황은 연신 주변을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녀석. 어지러우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
갈지혁의 말에도 사황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노후량이 오기로 한 날 갈지혁의 거처에 두 명이 찾아왔다. 이 일의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 곽소정과 현문이다.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던 갈지혁은 누군가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기운만으로도 나타난 자들이 해남파 장문인의 딸인 곽소정과 노후량과 관계가 깊던 현문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해남파의 무인들과 얽히고 싶지 않아서다.
갈지혁은 그들에게 받을 것을 모두 받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줄 것이 바로 이 치료제다. 노후량의 눈을 뜨게 해 줄 그 치료제 말이다.
그것으로 갈지혁과 해남파의 인연은 끝이다. 더 깊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이 치료제를 주고 갈지혁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해남파를 떠날 생각이었다.
곽소정과 현문은 갈지혁이 눈을 감고 있자 옆으로 물러선 채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적당히 시간을 끌면 물러갈 거라고 생각했거늘 그 둘은 떠날 줄을 몰랐다.
결국 갈지혁은 눈을 떴다.
“무슨 일이오?”
“아, 방해해서 미안하네.”
현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로서는 당연히 초조할 수밖에 없다. 바로 내일이 그가 그토록 따랐던 신룡검 노후량이 찾아온다고 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을 뜨게 해 주겠다던 갈지혁의 약속이 결코 허튼 것이 아니길 현문은 바라고 있다.
“내일 형님께 드릴 약이 준비되었나 해서 찾아왔네.”
“약이 아니라 독이오.”
현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갈지혁이 대답했다. 너무나 담담하게 내뱉은 말이지만 듣는 당사자로서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
독이라니…….
갈지혁의 독을 직접 경험한 현문이다. 그가 마음먹고 제조한 독이라면 제아무리 신룡검 노후량이라고 해도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설마…… 형님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독제독(以毒制毒)이오.”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
병에 일반적인 약재를 쓰다가, 그래도 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독을 쓰는 극약처방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큰 위험을 안고 있기에 쉽사리 할 수 있는 처방은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시간이 오래 흘렀다.
더군다나 노후량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독에 중독된 것이다. 그의 눈을 멀게 한 독은 독이 아니면 제압할 수가 없다.
괜히 헛짚어서 오해를 했던 현문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갈지혁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던 것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흠흠, 미안하네.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구먼. 혹시나 해서 말일세.”
“어차피 죽이려고 했다면 그때도 죽일 수 있었소.”
전에 만났을 때 마음만 먹었다면 노후량을 죽일 수 있었다는 소리다.
굳이 죽일 수 있었던 상대에게 시간을 주고 독으로 죽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래서, 준비는 되었는가?”
“예전에 끝났소.”
현문은 감탄한 눈으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분명 신룡검 노후량도 눈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을 게다. 그런데도 몇 십 년을 고치지 못하고 반쯤 포기했을 일을 갈지혁이라는 자는 나타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해 버린 것이다.
물론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잠시간의 희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다름 아닌 갈지혁이 그 같은 말을 내뱉어서일 게다.
독이라면 갈지혁이다.
은연중에 이 같은 생각이 머리에 박혀 버렸다. 그만큼 갈지혁이 무림에 나타나 벌인 일들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것들이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그를 독왕이라고까지 칭한다.
독왕이라는 별호가 무림에서 지니는 무게를 봤을 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대외적으로 그리 인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불리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갈지혁이라는 존재를 여태까지 무림에 나타났던 그 어떠한 독인보다 높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잘되어야 할 터인데…….”
현문은 진심이다.
비록 지금은 노후량이 해남파와 등을 지고는 있다 하지만 한때 그는 해남도의 전설이었다.
해남파가 배출한 최고의 기재.
구파일방 중에서 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소 우습게 여겨지는 해남파를 세상에 알릴 불세출의 무인이라고 말이다.
비록 오래전의 그 일로 틀어져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현문에게 노후량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었다.
노후량이 언제 이곳을 찾아올지는 모른다.
해남파에 몰래 잠입하는 것은 분명 까다롭다.
그렇지만 해남파를 잘 아는 노후량이라면 어떻게든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게다.
아직은 초저녁.
그가 찾아오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이다.
갈지혁이 곁눈질로 두 명의 행동을 살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노후량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만날 생각이오?”
“물론이네.”
그 말은 노후량이 나타날 때까지 이들이 갈지혁의 방에 있을 거라는 소리다.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로서는 상당히 귀찮을 수밖에 없다.
갈지혁은 이들에게 물러나라고 해도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곽소정은 의자에 앉은 채로 갈지혁을 바라보고 있다.
너무 대놓고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니 갈지혁으로서도 모르는 척하기 힘들었다.
참다못한 그가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오?”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요.”
“…….”
알 수 없는 여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갈지혁에게 먼저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독을 쓴다는 이유 때문이다.
경계심을 가지는 데 별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건 독을 모르고, 잘못된 인식을 가진 때문이다.
그런데 곽소정은 처음부터 갈지혁에게 아무런 부담감 없이 다가온다.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무서운 걸 모르는 철부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섣부르게 행동하는 철부지라고 보기에는 너무 생각이 깊다.
“해남도에서 찾을 게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갈지혁은 다름 아닌 독인이다.
그런 그가 해남도까지 발걸음을 돌린 것은 분명 독에 관련된 일 때문일 것이다. 해남파와 싸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뿐이 더 있겠는가.
“얼마 전에 구한 마왕충과 오룡초가 다는 아니죠?”
갈지혁은 곽소정을 힐끔 바라봤다. 마치 그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만 할게요. 됐죠?”
갈지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만들어 놓은 약재를 서랍에서 꺼냈다. 조그만 병에 들어가 있는 액체는 시커멓고 진득했다.
이것이 바로 노후량의 눈을 치료하겠다고 만들어 낸 약재다.
이걸 노후량에게 전해 주는 것으로 갈지혁이 해야 할 일은 끝이다. 혈환액도 만들었겠다, 이제는 더 이상 해남파에서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
갈지혁은 책상에 앉은 채로 침묵했다.
그가 입을 닫고 있으니 방에 와 있는 나머지 두 명 또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점점 시간이 흐르며 창밖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곽소정은 침상에 앉은 채로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현문은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창밖을 계속해서 살핀다.
노후량이 언제 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게다.
“꽤나 늦는군.”
“환영받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허허. 해남파의 장문인 후보이기도 했던 신룡검이 밤손님이나 될 줄이야.”
웃으면서 내뱉는 말이지만 어투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 정도로 현문의 노후량에 대한 애정은 너무나 깊었다.
사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예전 마음은 여전한 모양이다.
“당신은 뭘 원하는 거요.”
“뭘 원하다니?”
“눈이 떠진다고 해도 그자는 해남파로 돌아오지 않을 거요.”
“어찌 장담하는가.”
“버림받은 자이니까.”
갈지혁은 그 한마디를 쉽게 내뱉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고통과 괴로웠던 과거들이 있었다.
바로 노후량과 마찬가지의 일을 갈지혁 또한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갈지혁이 노후량의 눈을 뜨게 해 주겠다고 나선 것은 그와 싸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약재를 만들어서 눈을 치료해 주는 것보다 싸워서 제압하는 것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귀찮은 일을 맡아서 해 주는 것은 바로 노후량의 과거가 자신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독황독립문.
독황독립문 최고의 기재였던 갈지혁은 수뇌부들의 계략에 의해 결국 파문당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모든 무공을 전폐당하고 버려지듯 사독문에 던져졌다.
일악천을 만나지 못했다면 죽었다.
노후량 또한 갈지혁과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한 길을 걸었다.
해남파에 배신당했고 버려졌지만, 운이 좋아 벙어리 여인에 의해 살아났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고통을 알 것 같았다.
그랬기에 감겨진 두 눈을 뜨게 해 주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것이 지나간 사십 년이라는 시간을 모두 보상해 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할 수 있는 일이니 해 주고 싶었다.
무뚝뚝하게 갈지혁이 말했다.
“해남파가 그를 버렸으니 다시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만…….”
현문은 슬쩍 갈지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 또한 갈지혁의 어투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모양이다. 무림에서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갈지혁에 대해 알려진 대부분은 그가 무림에 나타나 행동한 것들이지 과거 같은 것은 장막에 싸이다시피 한 자로 알고 있다.
사문이 어디인지, 스승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중원에 나타났는지도 말이다.
그랬기에 무림에서 더욱 갈지혁이라는 존재를 배척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능력이 없었다면 죽거나 감금당했을 것은 불 보듯 뻔했을 게다.
현문은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닫았다.
지금의 상황이 누구보다 안타까운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