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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52화 (152/200)

# 152

2화

어째서 신룡검 같은 인재가 이토록 서글픈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너무나 특출나서 오히려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 그. 숨겨진 뒷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때의 해남파 장문인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 당시 해남파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최선의 답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고 현문은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 있던 갈지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벽 한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에 숨어 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

그 한마디와 함께 갈지혁의 몸에서 독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독기는 순식간에 그의 손가락 한 점에 모여들었다.

그러한 갈지혁의 행동에 현문은 퍼뜩 정신을 차렸고, 잠에 빠져 있던 곽소정도 눈을 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벽에 붙어서 이 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

“혀, 형님이시오?”

“…….”

대답이 없다.

갈지혁이 손가락 끝을 슬쩍 움직이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죽는다.”

손가락이 미묘하게 옆으로 움직인다. 아마도 상대방이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현문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데 눈앞에 있는 이 갈지혁이라는 사내는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모르겠다.

“큭큭.”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귀에 익은 목소리, 현문은 신룡검 노후량이 나타났음을 확신했다.

“그 사람인가 봐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아가씨.”

현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갈지혁이 있는 방문을 열면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오십시오, 형님.”

휘릭!

갑작스럽게 현문의 앞에 누군가의 신형이 나타났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노후량이었다.

그가 나타난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여전히 그의 눈은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오셨네요.”

“장문인의 딸이로군.”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는 마주한 갈지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비는 됐나?”

“물론.”

너무나 쉽게 대답하는 갈지혁의 모습에 노후량의 몸이 슬쩍 떨렸다. 비록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그는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눈을 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탓이다.

사십 년이나 잃었던 빛이다.

그 빛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어찌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노후량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받아.”

갈지혁이 상 위에 올려 두었던 병을 던졌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그 밖에 감각은 극도로 예민한 노후량이다.

날아드는 자그마한 병을 그는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병을 만지작거리며 노후량이 물었다.

“이게 치료약?”

“독이다.”

“독?”

반문하는 것은 현문과 마찬가지다.

굳이 다시금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는지 갈지혁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이독제독. 독으로만 치료할 수 있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말고 그냥 놓고 가도 돼.”

“…….”

의중을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자신의 눈을 치료해 준다고 했던 것부터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치료약이라고 준 것은 약이 아닌 독이란다.

만약 갈지혁이 노후량을 속이고 있는 거라면 그는 지금 죽을 게다.

알면서도 노후량은 망설이지 않고 병을 막고 있던 마개를 뽑아냈다. 그는 안에 든 것이 액체라는 것을 소리를 듣고 판단했다.

사용하기 전에 노후량이 물었다.

“어떻게 사용하면 되지?”

“눈에 발라.”

“그게 다인가?”

“독이 네 눈을 뽑아내기 위한 것처럼 날뛸 거야. 그러면 눈 속에 잠들어 있던 안룡액도 덩달아 움직일 거고. 두 개를 상쇄시켜. 실패하면 네 눈이 터져 버릴 거다.”

담담하게 말하는 것치고는 꽤나 잔인한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곽소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 눈이 터져 버리는 광경 따윈 보고 싶지 않다. 아무리 담담하다고 해도 그녀 또한 여인이 아니던가.

끔찍한 말을 듣고도 노후량은 망설이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크크. 재미있군. 실패하면 두 눈이 아예 날아간다 이건가?”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

“그래, 그건 네놈 말이 맞아.”

노후량은 병을 반쯤 옆으로 뉘었다. 당장이라도 안에 들어 있는 액체가 그의 손에 쏟아질 것 같다.

병을 기울이던 노후량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려 갈지혁을 보면서 말했다.

“이 약으로 인해 눈을 뜨면 네놈은 진짜 남해제일검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만히 두겠느냐?”

“다시 말하지만, 넌 내 상대가 아니야. 네 두 눈이 멀쩡해져도 넌 날 못 이겨. 장담하지.”

“하하! 좋다, 마음에 들었어.”

한 치의 의심조차도 사라지게 해 버렸다.

이토록 자신있는 자가 비겁한 암수를 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포기했던 두 눈이다.

마지막이라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

도전도 하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형님!”

자신을 부르는 현문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이지는 않는다. 어릴 적 모습은 기억나지만 지금 어떻게 컸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사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이제는 많이 변했을 게다.

정말 운이 좋다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고 싶다, 어떻게 컸는지.

해남파를 버렸다고는 하지만 소중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버린 건 아니다. 그에게 현문은 해남파에 두고 온 소중한 인연이었다.

노후량은 손바닥으로 액체를 붓더니 망설이지 않고 두 눈에 가져다 댔다.

치이익!

“크으윽!”

엄청난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행스럽게 입술을 꽉 깨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해남파 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를 토했을지도 모른다.

노후량은 허리를 꺾은 채로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컥컥!”

두 눈이 빠질 듯이 아프다. 정말로 당장이라도 눈이 터져 나가 버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곽소정은 더는 보기 힘들었는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현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참다못한 현문이 소리쳤다.

“갈지혁! 어찌 되는 것인가!”

“이제부터는 내 능력이 아니오. 저자가 버텨야 할 일이지. 버티지 못한다면 그게 다요.”

버겁게 몸을 비틀던 노후량은 현문의 고함 소리와 갈지혁의 대답을 들으며 정신을 차렸다.

비록 고통은 점점 심해졌지만 그의 정신 또한 한곳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실패하면 영영 앞을 못 본다.’

노후량은 고통을 참으며 급히 가부좌를 틀었다.

갈지혁의 말대로 엄청난 독기가 눈을 자극하며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두 눈이 터져 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때 눈 안쪽에서 어떠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쾅쾅!

두 개의 독기가 눈에서 부딪친다.

고통은 더 심해져 이제는 입에 게거품까지 물어 버렸다. 당장이라도 혼절한 것 같았지만 노후량은 참아 냈다.

‘참는다. 참아야 해!’

두 개의 독기가 계속해서 부딪치는 걸 느낀 노후량은 급히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원양신공(元陽神功).

해남파의 내공심법을 아직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미칠 듯한 고통이 점점 느껴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가고, 하늘과 땅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온몸에 있는 혈도가 확 하니 열렸다.

아!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노후량의 두 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파악!

피다. 그렇지만 붉은색이 아닌 새카만 피다.

노후량은 그대로 땅바닥에 철퍽 하고 엎어져 버렸다.

그를 바라만 보던 현문으로서는 덜컥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광경은 끔찍한 것을 연상케 해 버렸다.

눈이 터져 나간 것 같다.

그가 참지 못하고 결국 노후량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형님!”

현문이 그를 부둥켜안고 급히 일으켜 세웠다.

그때 검붉은 피로 젖어 버린 눈자위에서 흰색의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건……!”

눈의 흰자위다. 눈이 날아간 줄 알고 기겁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터져 나간 것은 눈이 아니라 썩어서 고여 있던 핏덩어리들이었던 게 분명하다.

노후량의 눈 부위가 잔 경련을 일으키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사십 년이나 보이지 않던 눈이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보일 리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 자신의 눈이 주변의 사물을 천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눈을 찔끔 감았던 곽소정은 지금 상황이 어찌 되어가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보, 보이십니까?”

“…….”

노후량은 대답 없이 그저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이 낮이었다면 그는 상당히 괴로웠을 게다.

밤이고, 일부러 갈지혁이 방을 어둡게 해 둔 터라 눈에 급작스럽게 피로가 오지 않고 있었다.

그가 시선을 돌려 현문의 눈을 응시했다.

흰자위만 보이던 노후량의 눈에 점점 검은색의 눈동자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무려 반각이나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둘이다.

긴 침묵을 깨며 노후량이 입을 열었다.

“……아주 폭삭 늙었구나.”

“형…… 님.”

현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노후량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보이는 것이다.

노후량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시력을 되찾지 못했다면 불가능했다.

“보이십니까? 이제 모든 게 보이십니까?”

현문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흠뻑 배어 있었다. 아직도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노후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완전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시력을 되찾은 것 같군.”

애써 태연한 척 말하고 있지만 사십 년 만에 되찾은 빛에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현문은 시선을 돌려 갈지혁을 바라봤다.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그는 무표정하게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하지만 표정까지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태연하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모습이다.

신룡검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사십 년 동안 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단숨에 성공시켰다.

‘대단한 자다. 중원이 어째서 저 사내 하나를 휘어잡지 못했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중원에서 그 누구도 먼저 갈지혁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던 이유를 말이다.

구파일방조차도 모두가 힘을 합치기 전까지는 갈지혁과 싸우려 들지 않았다.

주변의 눈총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참아야 했던 이유는 분명 있었던 것이다.

갈지혁이 구파일방이라고 해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무당파도 갈지혁을 자신들이 나서서 제지하지 못하고 공적으로 만드는 번거로움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 사내가 마음먹고 독을 사용한다면 아무리 구파일방이라고 할지언정 좋게 끝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잠시 누워서 호흡을 고르던 노후량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곽소정도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버렸다. 지금 앞에 있는 신룡검 노후량이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노후량과 갈지혁을 바라봤다.

노후량의 시선이 갈지혁에게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은혜를 입었군.”

“약속이니까 지킨 것뿐이야. 은혜라고 할 것도 없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긴 한데 어쨌든 다시 빛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굳이 적인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줄 필요는 없었다는 걸 노후량이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이토록 행하는 갈지혁의 속내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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