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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55화 (155/200)

# 155

5화

‘아, 어제 저놈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었지.’

빠르게 어젯밤의 일들이 머릿속을 채워간다.

순간적으로 낯선 자가 기척도 없이 가까이 있어 놀라기는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급히 놀랐던 마음을 추스르기는 했지만 실로 놀랍다. 어떻게 이토록 가까이 누군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상대의 정체가 더 더욱 궁금해져 버렸다.

야환이 화들짝 놀랐다가 제정신을 찾기가 무섭게 갈지혁이 눈을 떴다.

“…….”

“뭐냐?”

갈지혁은 야환이 창에 손을 올린 채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물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갈지혁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내가 이 창을 휘두르면?’

여러 가지 계산을 해 봤다.

지금 상대는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고 이 정도 거리라면 창의 간격으로 충분하다.

빠른 일격이라면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가만히 있던 갈지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념에 빠져 있던 야환이 정신을 차렸다.

“이만 나가 보지.”

“어딜 가는 거냐?”

“너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을 텐데.”

“우리 부락의 안전을 위해서다.”

눈앞에 있는 자는 위험하다. 야환의 동물과도 같은 직감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오지산에는 리족 말고도 다른 원주민 부락이 하나 더 있다. 온화한 리족과는 전혀 다른 웅족이다. 그들은 곰을 숭배하고 또한 싸움을 즐기는 자들이다.

웅족의 자들은 리족과는 다르게 선천적으로 뛰어난 신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나마 같은 오지산이라고 해도 적당한 거리가 있는 탓에 그동안 웅족과 리족은 거의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한데 일 년 전에 우콴이라는 자가 웅족의 수장이 되면서부터 그들은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우콴은 야심이 큰 자였다. 그는 리족을 제외한 다른 소수의 부락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 탓에 지금 이 오지산에는 웅족과 리족 단 두 개의 부락만이 남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무력에서 밀리는 리족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리족이 경계심을 가지고 타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모두 웅족과의 일 때문이었다.

원래 리족은 사람들을 환영하는 부족이다.

외지에서 오는 이방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그들의 관례였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갈지혁이라는 존재에게도 경계심이 생기는 듯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무공을 익힌 자였다.

야환이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가서 무엇을 한다는 거냐.”

“리족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말을 마친 갈지혁은 몸을 돌렸다. 굳이 야환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지혁은 그대로 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봤다.

막 해가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이른 시간인 탓인지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몇 걸음 걷기가 무섭게 방에서 야환이 뛰쳐나왔다. 그의 손에는 창이 들려져 있다.

하지만 야환은 갈지혁에게 덤비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갈지혁의 뒤를 쫓기만 했다.

‘귀찮군.’

쓰러뜨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세를 졌다. 또 괜히 리족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야환이라는 자를 건드리면 귀찮아질 수도 있다.

갈지혁은 그를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야환은 갈지혁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리족의 부락은 평평한 곳에 위치한 반면 조금 걸어나가자 사방에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안개가 껴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오지산은 희뿌연 상태였다.

부스럭.

갈지혁은 나뭇가지들을 꺾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눈보다는 감각이 먼저 앞서야 한다.

오문진은 결코 눈으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주 미세하지만 대자연의 기운을 역행하는 오문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다섯 개의 돌. 독의 기운.

반나절 이상 산을 뒤집고 다녔지만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다. 오문진의 기운도, 가벼운 독기도.

해는 이미 중천에 떴지만 아직도 야환은 지치지 않고 갈지혁의 뒤를 좇는다.

배가 고파왔는지 털썩 하고 자리에 앉은 갈지혁이 준비해 온 육포를 씹기 시작했다. 멀리서 선 채로 야환은 그런 그의 동태를 하나하나 살피고만 있었다.

적당한 거리는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노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실제로 야환은 사냥에 능한 자이기도 했다.

육포를 먹기가 무섭게 갈지혁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단화초를 찾기 위해 또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계속해서 뒤를 좇고 있는 야환으로서는 대체 갈지혁이 무엇을 하는지 도통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뭘 찾는 것은 같은데…….’

오지산에서 찾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상대는 찾는 것이 정확하게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른 방향으로 틀고 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러한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을 게다.

야환은 갈지혁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나뭇가지를 꺾기도 하고, 풀을 뽑아 냄새도 맡는다. 별의별 추측을 해 봐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참다못한 그가 말을 걸었다.

“대체 뭐 하는지 모르겠군.”

“…….”

대답하지 않는다.

갈지혁의 모든 정신은 이미 단화초를 찾는 데 쏠려 있었다. 그 외의 것들은 더 이상 갈지혁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야환은 답답했는지 갈지혁에게 더욱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로 무엇인가를 살피는 갈지혁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뭐 하는 거냐고 물었…….”

샤아악!

소매에서 튀어나온 무엇인가가 목젖에 닿았다. 야환은 굳은 채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잡고 있었다.

갈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함부로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죽는다.”

말을 마친 갈지혁은 그대로 몸을 돌리며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것을 집어넣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야환은 그것의 정체를 놓치지 않았다.

처음은 녹색의 암기라고 생각했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그리 크지 않은 뱀이었다.

녹색의 뱀이 혓바닥으로 목젖을 툭 치고 지나갈 때는 소름이 오싹 돋아 버렸다.

오지산에는 많은 독사들이 서식하지만 저런 뱀은 생전 처음 본다.

너무나 빨랐기에 피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야환은 놀란 눈으로 다시금 땅을 살피는 갈지혁의 등을 바라봤다.

무엇을 하는 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그 뱀이 목젖을 물었다면 야환은 죽었다.

독을 지닌 독사인지 그냥 뱀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야환은 가만히 굳은 채로 멀어지는 갈지혁을 바라만 봤다.

그렇게 점점 그와 거리가 벌어질 무렵이었다. 어떠한 기척에 멍하니 서 있던 야환은 정신을 차렸다.

그의 시선이 급히 오른쪽으로 향했다.

거리는 삼 장 정도.

‘숫자는 다섯 명!’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야환은 급히 갈지혁에게 다가가 그의 소매를 잡아채려고 했다. 하지만 손을 뻗던 와중에 아까 전 일이 생각났는지 급히 움직이던 손을 거뒀다.

대신 그는 자그마한 목소리고 급히 말했다.

“누군가가 오고 있어. 몸을 감춰야 한다.”

갈지혁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야환을 슬쩍 바라본다. 그러고는 차가운 어투로 대꾸했다.

“아까부터 알았다.”

“분명 웅족 놈들일 거다. 놈들과 만나면 싸우게 된다. 더군다나 무공을 익힌 자들이야.”

다섯 명이라면 야환은 자신이 없다.

야환은 무공을 익혔다. 어릴 적부터 무공에 관심이 많아 부락을 떠나 꽤나 강한 무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을 때 부락은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막 야망을 드러낸 웅족이 리족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것이다.

리족의 인물 중에서 싸움을 하는 자는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무공을 익힌 자는 채 다섯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개중에서 그나마 무공을 익혔다고 할 만한 이는 야환이 유일했다.

반면 웅족은 달랐다.

그들은 무공을 익힌 자의 수만 해도 삼십 명에 가까웠고, 적당한 수준 이상의 무인은 열 명 정도였다.

어떻게 웅족이 그런 힘을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따질 계제는 아니다.

리족으로서는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일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땅을 지키려 했다.

다행히도 야환의 존재는 리족에게는 천운과도 같았다.

때맞추어 나타난 야환이 없었다면 리족은 웅족에게 일 년 전에 먹혀 버렸을 게다.

웅족에 있는 자들 중에서도 야환과 일 대 일로 붙으려고 하는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웅족의 우두머리인 우콴과 그의 오른팔이라는 모구령만이 야환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 전면전은 펼쳐지지 않았지만 이 상태로 가다가는 결국 리족은 웅족에게 먹혀 버릴 것이다.

“피하자고.”

“…….”

야환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여전히 땅만 바라보는 갈지혁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웅족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모르겠다. 죽든 말든 네놈 운명이지.’

야환은 결코 죽어서는 안 된다.

그가 죽는다는 것은 곧 리족이 웅족에게 굴복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생전 처음 보는 정체불명의 놈 때문에 목숨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그대로 나무 뒤로 몸을 감췄다.

터벅, 터벅.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온다.

귀에 들리는데도 불구하고 갈지혁은 피하지 않고 단화초를 찾는 것에만 몰두했다.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망했군.’

나무 뒤에 숨은 야환으로서는 지금 상황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갈지혁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서 있고 그 뒤로 다섯 명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허리춤에 찬 도.

웅족이다.

“뭐 하는 놈이냐?”

거친 어투에도 불구하고 갈지혁은 그들을 무시했다.

웅족의 사내들은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하다.

애초부터 가만둘 생각도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노골적으로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자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웅족 사내들이 그대로 도를 들어 올렸다.

야환의 눈이 커졌다.

‘멍청한 놈 하나 죽게 생겼군. 이걸 어쩐다.’

비록 모르는 자이기는 하지만 웅족의 손에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야환은 호방한 기질을 지닌 무인이었다.

눈앞에 불의를 보고 넘어가지 못하는 그런 사내였던 것이다.

나서면 죽는다.

다섯의 무인이라면 아무리 야환이라도 상대하기 버겁다. 더군다나 지금 나타난 다섯 명 중 하나는 야환조차도 섣불리 상대하지 않으려 드는 자였다.

알지만……

“멈춰랏!”

파라락!

야환의 창이 매서운 속도로 회전하면서 다섯 명에게 동시에 쏟아져 내렸다.

비연십팔련(飛燕十八連)!

제비가 나는 듯이 이어지는 열여덟 번의 찌르기다.

갈지혁을 향해 다가서던 다섯 명의 웅족 무인이 뒤로 성큼 물러섰다. 상대를 제압하기보다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한 행동이었기에 다섯 명 모두 어렵지 않게 야환의 창을 피해 냈다.

그들은 일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이거야 원,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놈을 만났군.”

“물러서지 않으면 죽는다.”

“죽여? 너 혼자서 우리 다섯을?”

우습다는 듯한 어조로 다섯 사내 중 하나가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그제야 갈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야환이 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도망쳐! 나도 네가 도망치면 도망칠 터이니 먼저…….”

“시끄러워.”

말을 마친 갈지혁이 그대로 야환의 바로 옆을 밟으며 손바닥을 휘둘렀다.

그의 손바닥은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싶었지만 그 안에선 파도와도 같은 힘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이 일순 녹색으로 일렁인다 싶더니 다섯 명의 웅족 무인이 그대로 쓸려 버렸다.

콰콰쾅!

그 장력은 그들을 날려 버리고도 근방에 있던 아름드리나무들을 잔뜩 박살 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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