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56화 (156/200)

# 156

6화

“이건……!”

야환은 변해 버린 주변 정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일장을 떨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커, 커흑!”

다섯 명 중 하나가 피를 토하며 기다시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눈동자까지 붉게 물든 채로 분노에 찬 음성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너, 너는 누구냐?”

“시끄럽다고 했다.”

갈지혁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금 단화초를 찾으려고 했다. 그때 기어오던 자가 문득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가, 갈지혁? 그래, 네놈은 갈지혁이야!”

웅족의 평범한 부락민이었다면 갈지혁을 모를 게다. 하지만 지금 이자는 산 바깥에서 무공을 익히던 자로, 갈지혁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은 자였다.

더군다나 해남도에 갈지혁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미 며칠 전에 이 섬 전역에 퍼져 있었다.

이토록 위력적인 독장을 휘두를 만한 자는 갈지혁뿐이었다.

놀란 건 옆에 있던 야환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갈지혁에 대한 이야기라면 적지 않게 들은 자 중 하나인 탓이다.

조금만 무림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갈지혁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그 갈지혁이라는 자가 바로 옆에 있는 이 사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자를 베려고 했다니!’

아침에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야환은 생각했다.

만약 그의 비위를 거스르기라도 했다가는 마을 하나 날아가는 것 정도는 우스울 거라고 생각한 탓이다.

물론 갈지혁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가 아니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하는 판단이었지만.

“그래, 내가 갈지혁이다. 그런데?”

“왜, 왜 당신이 리족을 돕는 거요?”

말투가 공손해졌다. 갈지혁은 손을 휘휘 저으면서 대꾸했다.

“자꾸 뒤에서 앵앵거려서 쓰러뜨린 것뿐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니 서둘러 가서 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의 말에 야환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 이 같은 위력이었다면 대체 진정한 갈지혁의 힘은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쉽사리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야환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다섯 명을 단 일장에 눕혀 버린 갈지혁은 다시금 오문진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무서운 놈이다.’

이자는 위험하다. 손을 겨루어 본 것도 아니지만 야환의 감각이 계속해서 삐죽거리며 고개를 치켜든다.

갈지혁의 등은 무방비다. 거리도 적당해 창을 뻗자마자 꼬치를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 뒀다가는 해가 될지도 몰라.’

갈지혁이라는 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리족 하나 사라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순간 고민했지만 야환은 끝내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 보았던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몸으로 느낀 탓이었다.

뒤를 보고 있다고 해서, 거리가 적당하다고 해서 야환이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야환은 일류고수지만 상대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다. 그것도 절정고수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무인.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모험을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나 강했다.

그는 사심을 거뒀다.

갈지혁을 죽이려고 달려들어 봤자 승리할 확률이 너무 적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 등을 돌리고 있던 갈지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판단이야.”

‘이, 이놈!’

알고 있었던 게다. 등 뒤에서 자신에게 살수를 펼치려고 했던 사실을 말이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만약 야환이 섣부른 판단을 했었더라면…….

* * *

삼 일이다.

무려 삼 일이나 갈지혁은 야환의 집에 머물렀다. 물론 그와 우애가 깊어졌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처음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서 이곳에 남아 있는 거다.

갈지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야환의 거처에서 잠을 잤고, 야환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갈지혁을 경계하던 부락 주민들의 눈빛도 이제는 꽤나 고와졌다.

딱히 말 한마디 나눈 것도 아니고, 그저 얼굴 몇 번 본 것만으로 말이다.

천성이다.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고 싸움을 즐기지 않는다는 리족의 천성.

며칠 전에 갈지혁이 제압했던 자들도 야환은 죽이지 않고 리족의 비밀 공간에 가둬뒀다.

그 또한 함부로 생명을 취하지 않는 탓이다.

갈지혁은 야환의 방에 누운 채로 상념에 잠겼다.

하루 종일 산을 뒤졌건만 건진 게 없다.

이곳을 기점으로 하면 찾기 쉽다고 들었는데 도통 답이 보이지 않는다.

‘연신 허탕이야.’

갈지혁은 짜증이 치미는지 혀를 찼다.

삼 일째 허탕이라니, 한시가 급한 지금으로서는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렇게 자리에 누워 있던 갈지혁은 누군가가 야환의 거처로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지만 살기는 없다. 더군다나 보폭을 보아하니 여인이고, 무공을 익힌 듯하지도 않다.

갈지혁은 문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아마 야환에게 용무가 있어서 찾아오는 자인 듯하다. 그 또한 혼기를 지난 총각이다. 사랑하는 여인 하나 있다 해서 이상할 것 없다.

툭툭.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야환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

“안에 있는가.”

목소리는 젊지 않았다.

야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면서 고개를 숙였다. 문밖에 나타난 사람은 육십에 다다른 노파였다.

“웬일로 이 늦은 밤에…….”

“이것 좀 주려고 말이야.”

자리에 누워 있던 갈지혁의 코에 음식의 냄새가 확 하고 풍겨 온다. 야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것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자네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는데 무슨 말인가. 자, 어여 받게.”

야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것들을 받았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파는 슬쩍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갈지혁을 보면서 말했다.

“거기 외지인 손님도 들게나. 일부러 넉넉하게 싸왔거든.”

푸근하고 인자한 목소리.

왜 오지산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 리족이 친절하다고 한결같이 말하는지 알 듯했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이렇게 한 부락을 짓고 몇 백 년을 살아온 자들은 더 더욱 그러하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모르는 것은 배척한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살아온 관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리족은 달랐다.

갈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밤이 늦었으니 이만 가봄세.”

노파는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야환은 건네받은 바구니를 들고 갈지혁의 앞에 내려놓더니 자신도 건너편에 자리했다.

바구니를 덮고 있는 덮개를 치우자 낮선 음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객잔 같은 곳에서 파는 그러한 요리가 아니라 이 부락 특유의 음식들인 모양이다.

야환이 음식을 집으면서 말했다.

“생소할지 모르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다.”

갈지혁은 대꾸 없이 음식들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야환은 솔직히 눈앞에 있는 자가 갈지혁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술 좋아하나?”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다.

야환은 말을 하고 나서 당황해 버렸다.

왜 이런 이방인과 술잔을 기울이려고 하는지. 고개를 든 갈지혁이 그를 바라본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살아서 꿈틀대는 눈만은 뚜렷하게 보인다.

갈지혁의 눈이 야환을 응시했다.

잠시 갈지혁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마시는 편이지.”

“그래?”

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에 있는 선반에서 항아리 하나를 내렸다. 방 안에 있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인데 그것이 술병이었던 모양이다.

뚜껑을 열자 안에서 알싸하니 술 냄새가 확 하고 쏟아져 나온다.

옆에 있는 접시 두 개 중 하나를 갈지혁에게 건넨 야환은 그대로 자신의 것과 그의 것에 술을 따랐다.

물처럼 투명한 술을 갈지혁은 단숨에 마셔 버렸다.

술은 꽤나 독했다.

“이건…….”

“내가 직접 담근 술이다.”

“그런가.”

갈지혁은 술맛이 맘에 들었는지 접시에 다시금 술을 따랐다.

갈지혁은 야환이 맘에 들었다.

야환은 약하다.

리족 부락에서는 최고의 무인이고, 오지산에서도 적수가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건 이곳에 한해서다.

무림에서 갈지혁이 만나왔던 인물들에 비하면 야환은 턱없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는 사내다.

일전에 다섯 명의 웅족 무인들이 나타났을 때도 위험함을 알면서도 달려나왔다.

맘에 든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술도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지혁은 맘에 들지 않는 자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둘 모두 별말도 하지 않았고, 특별히 이러한 분위기가 어색하지도 않았다. 술을 마시고, 노파가 가져다준 음식들을 먹고, 점점 밤은 깊어져만 갔다.

술을 마시던 중 야환은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뭘 찾는 거냐? 아, 대답하기 뭐하면 하지 않아도 좋아. 단지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나니까 네가 찾는 것을 알지도 몰라서 묻는 거니까.”

갈지혁은 접시에 남아 있는 술을 마저 마셔 버렸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야환이 그곳을 찾았다면 그는 살아 있지 못했을 게다.

그 독기는 보통 사람이 절대 견뎌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갈지혁이 말했다.

“다섯 개의 돌.”

“돌? 널리고 널린 게 돌인데 다섯 개의 돌이라니?”

물론 갈지혁이 찾는 돌이라는 것이 바깥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은 아닐 게다.

그러한 것이라면 굳이 이렇게 찾는다고 산을 뒤질 이유도 없고 말이다.

“똑같은 모양의 다섯 개의 돌이다. 이 산에 있다더군.”

“같은 모양의 돌?”

야환이 반문했다. 갈지혁은 그의 어투가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는지 야환을 바라봤다.

그가 갈지혁의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산에 신령석(神靈石)이라는 돌이 있긴 한데…….”

“신령석?”

갈지혁이 반문했다. 뭔가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오문진의 단서를 찾아낸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개의 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산에는 신령석이라는 돌이 있다.”

“어디에 있는 거지?”

“이곳에서 일각 밖에 걸리지 않아.”

“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지 못했는데.”

신령석이라고 불리는 돌이라면 갈지혁이 놓쳤을 리가 없다.

야환이 대답했다.

“그 돌은 신묘한 돌이다. 하루에 단 반 각만 모습을 드러내지.”

“반 각만 모습을 드러내?”

갈지혁의 아미가 꿈틀했다.

뭔가 느낌이 온다.

일악천이 왜 리족의 마을을 기점으로 해서 찾으라고 했는지도 알 것 같다. 만약 그 신령석이라는 것이 오문진을 형성하는 그 돌이 맞다면 말이다.

‘오문진이 더 더욱 찾기 힘든 진인 이유가 그것인가?’

오문진에 대해서는 알지만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지는지는 모른다.

더불어 그 오문진을 형성하는 돌들이 모습을 감춘다는 것도 몰랐다. 아닐 수도 있지만 확신에 가까운 판단이 내려졌다.

“언제지? 그 신령석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술시 초(戌時初).”

저녁 식사를 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무렵이라는 소리다. 해가 지고 나서 그 신령석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거다.

“안내해 줬으면 하는데.”

“어렵지는 않은데 그 돌은 조금 위험하다.”

“……?”

“그 돌에 손을 댄 자들 치고 다시 살아온 자가 없으니까.”

신령의 돌이라고는 부르지만 리족 부락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 돌에 손을 댄 자는 형체가 갑자기 사라지고, 다시는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죽었을 게다.

그랬기에 신령석이 있는 쪽으로 부락 사람들은 다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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