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64화 (164/200)

# 164

14화

일악천은 산중턱에 위치한 동굴을 찾았다.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혹여나 단리문이 찾아온다면 갈지혁을 치료하던 와중에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악천은 안아 들고 온 갈지혁을 땅바닥에 눕혔다.

“헉헉.”

상태는 심각했다.

많은 출혈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단화초의 독성이 파고든 것이 더욱 문제였다. 온몸이 땀투성이다. 데리고 올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살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오히려…… 살 확률보다 이대로 죽을 확률이 더욱 높았다.

“멍청한 녀석! 그 상황에 혈해라니!”

성을 내면서 일악천은 갈지혁의 몸속에 있는 독기를 제압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비록 화는 내고 있지만 그 또한 갈지혁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갈지혁은 단리문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나마 갈지혁이 단리문에 비해 나은 것이 바로 독이다.

무공으로는 절대 못 이기니 갈지혁은 자신의 장기인 독으로 싸우려고 했다.

독인으로서 최선의 판단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독에 당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나마 갈지혁의 피가 엄청난 타격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지는 못했다. 그에 반해 갈지혁은 이런 꼴이 되어 버렸고.

이쪽이 진 것이다.

막아야 할 혈도를 모두 막았다. 그러자 갈지혁의 몸이 폭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구 들썩인다.

“조금만 참아라!”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일악천의 손바닥이 갈지혁의 등에 닿았다.

일악천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일악천은 갈지혁의 몸 안에 있는 독기를 억지로 돌리고 있었다. 지금의 갈지혁은 스스로 독을 제어할 힘을 지니지 못했다. 여태까지 갈지혁은 셀 수도 없이 많은 독을 먹어댔다.

미친 짓이다.

스스로의 몸에 독기를 점점 쌓아간 것이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게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생사를 넘는 고비를 겪으면서 갈지혁의 육체는 이러한 일에 나름대로 익숙해져 갔다는 것이다.

일악천이 갑자기 등에서 손을 떼는 듯싶더니 그대로 등을 후려쳤다.

퍼억!

“컥!”

갈지혁의 입에서 또다시 피가 푹 하고 터져 나왔다.

일악천은 그대로 자신의 오른 팔목을 소도로 그었다. 피가 솟구쳐 나오자 그것을 갈지혁의 입에 떨어뜨렸다.

임시방편밖에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지금 일악천이 갈지혁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도 했다.

새카맣게 변했던 그의 얼굴에 점점 홍조가 돌기 시작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구나.’

그같이 생과 사를 수십 번은 뛰어넘었기에 이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게다.

일악천은 갈지혁을 보면서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옷 속에서 느껴지는 단화초의 독기는 과연 전설처럼 대단했다.

‘혈해를 쓰고 단화초의 독기에 빠지고도 살다니.’

운이 좋았다.

일악천은 갈지혁을 위해 사로를 걸어 나와 중원으로 갔다.

갈지혁에 대해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 고민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쉽게 알아 버렸다.

중원 그 어느 곳에 가든 갈지혁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갈지혁은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해 자신의 제자에 대해 칭찬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흉측한 외모 때문에 앞에 나서지 못하고 살던 자신과는 다르다.

해남도에 갔다는 말에 급히 쫓았고, 그렇다면 어디로 향할지 일악천이 모를 리가 없었다. 오지산 리족의 부락 근처에 도착한 그는 갈지혁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때맞추어 펼쳐진 혈해.

그 정도의 독기를 아무리 멀다 해도 일악천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리족의 부락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었기에 일악천은 단숨에 갈지혁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지금 갈지혁은 살아 있지 못했을 게다.

“스승님…….”

“일어났느냐?”

갈지혁의 목소리는 비록 힘이 없었지만 정신을 차린 게 분명했다. 일악천은 그에게 다가가 내려다봤다.

힘겹게 눈을 뜨고 있던 갈지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꿈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꿈이라면 지금 넌 죽고도 남았다. 모자란 놈! 아직도 그런 놈에게 휘둘리고 다니다니.”

“죄송합니다.”

면박을 주지만 일악천도 진심이 아니고, 갈지혁도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단리문이라면 일악천 자신도 이길 수 없을 듯했다. 한 번도 싸우지 않았지만 갈지혁을 이렇게 만든 자다.

사실 일악천은 지금의 갈지혁을 상대해서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몇 년이라는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갈지혁은 너무나 커버렸다.

갈지혁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품 안에 있던 사황이 기어나왔다.

그제야 일악천은 사황이 생각난 모양이다.

“오, 이놈도 여전하구나.”

오랜만에 만난 옛 주인인 일악천을 잠시 바라본 사황은 이내 갈지혁의 얼굴로 다가갔다.

이제 사황도 갈지혁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걸 일악천은 알아차렸다.

‘저놈, 나한테는 끝까지 반항을 하더니만.’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제자가 커버린 사실에 대한 대견함이 앞선다.

“어떻게 이곳에…….”

“단리문이라는 놈이 널 뒤쫓아 갔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래도 뭔가 걸려서 말이지.”

그저 감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감이 갈지혁을 살렸다.

누워 있던 갈지혁이 눈을 꼭 감았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무엇이?”

“저 때문에 그토록 견고했던 신념을 버리시지 않았습니까.”

사독문을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일악천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라면서 말이다. 한데 지금 일악천은 이곳에 있다.

못난 자신을 지켜 주기 위해 그토록 강하게 품었던 신념을 버린 것이다.

일악천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지혁아, 잘 들어라. 난 사독문을 나가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조했지. 맞아. 분명 그러했어. 하지만 그것보다 못난 제자 놈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더 보고 싶었단 말이야. 다 늙어 빠진 나의 신념보다는…… 이제 시작해야 할 너의 꿈이 보고 싶었다.”

갈지혁의 꿈.

독왕이 되겠다던 바로 그것이다.

참 어이없는 첫 만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은 죽은 놈이었다.

몸속에는 내공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생충 하나를 달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사독문 앞에 던져진 자였다.

죽게 내버려두려다가 파문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동해 거두었다.

물론 제자로 거둔 게 아니라 그저 목숨만 부지하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거둔 놈이 일악천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잃어버렸던, 아니, 포기해야만 했던 독인들의 꿈을 갈지혁의 입을 통해 다시금 들어 버렸다.

제자로 거두었고, 예상 밖으로 빠른 성취와 자질로 사로를 홀로 걸어 나갔다.

갈지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지금 일악천의 말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 독왕이 된 것 같으냐?”

“되지 못했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패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흑풍이라는 자와 싸우면서 고전도 했습니다.”

“그럼…… 아직도 독왕이 되고 싶으냐?”

자리에 누워 있던 갈지혁이 눈을 찌푸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는 일악천을 똑바로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악천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지혁이 거칠게 숨을 내뱉고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반드시 될 겁니다.”

“넌 처음 봤을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그 멍청함은 대체 언제 고쳐질는지. 쯧쯧.”

말은 그리하지만 일악천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갈지혁은 한결같이 독왕이 되겠다는 의지만을 지니고 달리고 있었다. 중원이라는 곳을 겪고도 그는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화초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흡수할 것입니다.”

“예상은 했다만…… 죽을지도 몰라. 아니, 솔직히 말해서 죽을 확률이 구 할 이상이다.”

“살 확률에 걸어 보겠습니다.”

애초에 물어보기 전부터 갈지혁이 할 대답은 알고 있었다. 죽는 것이 두려워 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 놈이 결코 아니었다.

일악천이 갈지혁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

“네놈이 멍청한 거야 이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쉬어. 시간이 없다. 단화초의 독성을 이 상태로 받을 생각이냐?”

땅에 다시금 등을 붙인 갈지혁은 눈을 감았다.

차라리 사독문에 있을 때가 더 마음은 편했다. 그곳을 나온 이후 갈지혁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갈지혁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여태까지 채우지 못한 잠을 모두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는 편하게 잠들어 버렸다.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악천 때문이다. 그가 옆에 있는 이상 갈지혁은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갈지혁에게 일악천은 그러한 존재였다.

잠든 갈지혁을 바라보는 일악천의 눈빛은 인자했다. 일수만독이라는 별호로 무림을 시끄럽게 하던 그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눈빛이었다.

갈지혁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일악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되도 몸을 회복한 단리문이 자신들을 찾으러 올지 모른다.

일악천은 근처에 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아무리 단리문이 강하다고 해도 이 안에만 있다면 결코 해를 끼치지 못할 게다.

하지만 그게 다다.

단리문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 진법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언제나 이 안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가는 중원은 단리문의 뜻대로 되어 버릴 게다.

그는 어떠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중원에 좋지 않은 일일 것임이 분명했다.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일악천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단리문을 막아야 하는 것은 갈지혁이다. 갈지혁만이 그를 막을 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싸움에서 갈지혁은 단리문에게 완패했다.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게다.

다음번에 싸울 때는 혈해도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한 번 당했던 것에 또 당할 단리문이 아니다. 더군다나 혈해는 동귀어진에 가까운 최후의 초식이다.

그러니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강해지지 않고서는 갈지혁은 결코 단리문을 이기지 못한다.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어 주는 듯싶구나.’

일악천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동굴 쪽을 바라봤다. 안에서 갈지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잠에 빠져 있을 게다.

그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스승인 일악천으로서는 제자에게 권하고 싶은 길이 결코 아니었다.

알지만 답이 없음을 일악천은 잘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갈지혁 본인이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이다.

무슨 놈의 고집이 소고집보다 더 지독해 가지고는 스승의 말이라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릴 것이다.

일악천은 단리문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자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현재 무림에서 그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일악천이 피할 정도라면 그건 그 누구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소리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

그저 웃음으로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자다. 대체 단리문이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일악천으로서는 알지 못했다.

만약 지금 일악천이 단리문의 생각을 알았다면 결코 이렇게 있진 못할 게다.

단리문은…… 일악천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보름이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갈지혁은 원래의 몸 상태를 거의 회복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일악천이 직접 약재를 준비해 준 덕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처럼 빨리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게다. 그 덕분에 갈지혁은 다른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단리문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아도 됐다. 식사 같은 것도 전부 일악천이 준비해 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악천은 그에게 약재를 가져다줬다.

회복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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