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2화
사천이 뚫리면 정파가 끝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러한 생각이 박혀 버렸다.
지금 사천에는 구파일방의 힘의 대부분이 결집해 있다.
하남의 소림사와 호북의 무당파가 다소 늦기는 했지만 길을 떠났다고 한다.
아마 보름이면 사천에 들어설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야말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될 것이다.
마차에 앉은 채로 갈지혁은 운하연이 해 주는 말을 들었다.
현재 무림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듯이 다가왔다. 대충 현재 상황은 알았다.
단 하나의 문파와 무림 전체가 싸운다는 것이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독황독립문이기에 가능하다. 그들이 무인이었다면 이미 싸움은 끝났다.
아니, 애초에 싸움을 시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게다.
독인이기에 가능한 싸움인 것이다.
“사천에는 정파 무인들이 집결해 있어요. 솔직히 사천에 간다는 건 목숨을 거는 짓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갈지혁은 무림공적으로 지목된 상태다. 더군다나 독황독립문과의 싸움으로 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더더욱 나빠졌다. 또다른 문제는 갈지혁이 독황독립문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 사실까지 밝혀진다면 상황은 최악이 되어 버릴 게다.
“그들은 날 죽이지 못할 거다.”
“사천당문에 가서 누구를 만날 생각이죠?”
“당려환.”
당려환, 사천당문의 가주다.
그리고 갈지혁과 꽤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내.
그는 자신의 입으로 갈지혁을 독왕으로 만드는 것에 일조하겠다고 말했었다.
“사천당문의 가주를 만나겠다는 소리군요. 그가 만나줄까요?”
“그와 난 일면식이 있지.”
진검백은 기억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운하연은 없었지만 진검백은 갈지혁의 옆에서 같이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날 독왕으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사천당문의 가주가요?”
“그래. 그 또한 독왕이 태어나기를 꿈꾸던 사람이니까.”
“…….”
운하연은 놀란 얼굴이다.
사천당문과 갈지혁이 그러한 거래를 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독인들의 독왕에 대한 꿈이 얼마나 큰지 운하연은 이제야 알았다.
갈지혁을 도왔다가 사천당문은 멸문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독왕이라는 존재의 탄생을 바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때 갈지혁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난 무림맹의 수뇌부들과도 만날 생각이다.”
“그건 정말 위험해요. 당신이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죽이려 들걸요. 오히려 사천당문 가주가 곤란할지도 몰라요.”
“방법은 생각해 놨어. 그리고 무림맹의 수뇌부들을 만나지 않으면 독황독립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해. 시간을 주면 단리문이 어떠한 짓을 할지 몰라.”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사내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적어도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사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빠르게 달리던 마차가 멈추었다.
마부가 마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열면서 말했다.
“말씀하신 곳까지 왔습니다.”
“고마워요.”
네 명은 마차에서 나와 준비된 말에 올라탔다. 이곳부터는 길이 험해 마차로 이동하기가 버겁다.
최단시간 안에 사천까지 달려야 한다.
현재 위치는 귀주성이다.
귀주성과 사천은 바로 옆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이랴!”
진검백이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이 다리를 하늘로 치켜든다.
히이잉!
네 필의 말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길은 험했지만 쉬면서 달릴 여력이 없다. 지금은 한시가 아까운 때다.
달리던 말도 지칠 무렵 해가 떨어졌다.
쉬지 않고 달리던 말들을 멈추고 일행은 잠을 청할 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쉬지 않고 달린다면 말이 버텨 내지 못한다. 근방에 마을이 없기에 이 말을 가지고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거기다가 사람 또한 오랜 시간 달리면서 지친 상태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식사는 준비해 온 것으로 대충 때운 후 일행은 잠을 청했다.
귀주의 밤은 조용했다.
시끄럽게 울던 벌레들의 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잠을 자고 있던 갈지혁이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이 채 움직이기도 전에 진검백과 운하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하연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풍객을 툭툭 쳤다. 그제야 그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풀벌레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갈지혁의 코끝으로 익숙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독 냄새.”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다른 셋 모두 바짝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그 말을 들었다.
지금 이곳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독을 하독한 것이 아니라 냄새가 몸에 밴 자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다.
독을 사용하는 자들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귀주라면 사천뿐만이 아니라 운남과도 붙어 있는 지점이다.
독황독립문 무리들일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몸을 낮추고 있던 갈지혁의 귀에 멀리서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역시 중원은 날씨가 좋단 말이야.”
“흐흐, 그뿐인가. 토지도 기름지고 먹을 것도 많지.”
다른 세 명이 갈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려온 것은 낯선 언어다. 그랬기에 확인을 하기 위해 그를 바라본 것이다.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황독립문 무리들이라는 소리다.
그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진검백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검에 손을 가져간 그는 언제라도 발검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지만 갈지혁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일부러 소리를 내었기에 독황독립문 무리들도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누구냐!”
낯선 언어가 진검백의 귀에 들렸다. 그렇지만 갈지혁에게 그것은 결코 생소하지 않았다.
빠르게 흔들리는 옷소매를 보며 갈지혁이 입을 열었다.
“독황독립문이로군.”
익숙한 남만어에 독을 뿌리려던 두 사내가 멈칫했다. 갈지혁의 눈에 둘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둘은 갈지혁의 모습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내공의 차이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무나 유창한 남만어다. 겉핥기식으로 배운 말이 아니다. 남만인만의 억양까지 살아 있다.
“누, 누구십니까?”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었다.
비록 거리는 멀지만 몸에서 풍기는 기도가 자신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혹여 독황독립문의 높은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손하게 나온 것이다.
갈지혁은 확신을 가졌다.
외양을 보는 순간 이미 답은 내려졌지만 독황독립문이냐는 말에 반박을 하지 않는 것에서 확신을 가졌다.
갈지혁이 손가락 끝을 꼼지락거리는 것과 둘의 몸이 무너진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독황독립문 무리들을 단숨에 제압한 갈지혁은 그들이 쓰러진 곳을 향해 다가갔다.
몸을 감추고 있던 일행도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갈지혁은 그들의 몸을 뒤적거렸다.
“독황독립문인가요?”
“그래.”
짤막하게 대답하면서 둘의 몸을 뒤지던 갈지혁은 이내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발견해 냈다.
천에 겹겹이 싸여져 있는 조그만 병이다. 그 안에는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겨져 있다.
“이건…….”
“독이다.”
독황독립문의 인물이 독을 들고 다니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독을 가지고 가던 상태에 있다. 천으로 돌돌 만 채로 독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이것은 바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져가려고 했던 모양인데…….”
독에 중독되어 쓰러진 두 명을 보며 갈지혁이 중얼거렸다. 뭔가 뒤가 구린 느낌이다.
“진검백, 운하연, 한 명씩 부탁하지. 내가 놈들을 깨울 테니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 독을 익힌 놈들이야. 자살하기 쉬우니 주의하도록.”
“그러죠.”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을 한 둘은 각기 한 명씩의 뒤로 다가갔다.
갈지혁은 한 명씩의 입을 벌리더니 손가락으로 혀 밑에 숨겨져 있는 무엇인가를 꺼냈다.
독단이다.
자살용으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독단이 있었던 것이다.
독황독립문에 몸담고 있었던 갈지혁이기에 그러한 부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혹여 다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할지도 모르기에 진검백과 운하연에게 부탁한 것이다.
독단을 제거한 갈지혁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움직였다.
순간 둘의 몸이 벌떡 하고 일어나면서 헛바람을 토해 냈다. 단숨에 상황을 알아차렸다.
“헉!”
“이런…….”
둘은 혀를 굴렸다.
혓바닥 아래에 있던 독단을 씹으려던 그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없다.
언제나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독단이 사라진 것이다.
“독단은 없다.”
“……어떻게.”
“글쎄.”
유창한 남만어를 구사하는 갈지혁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사내 둘 중 하나의 눈이 갑작스럽게 커졌다.
“가, 갈지혁!”
“뭣!”
옆에 있던 다른 자는 갈지혁의 이름을 부른 사내를 보며 놀란 토끼 눈을 해 보였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갈지혁은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날 아는군.”
“물론…… 네놈이 파문당하는 모습을 봤었지.”
“그런가. 꽤 오래전 이야기군.”
“어떻게 네놈이 이곳에…….”
“그거야 네가 알 바는 아니지.”
갈지혁은 말을 자르며 둘을 살폈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제법 실력들이 있어 보인다.
두 명의 사내를 살피던 갈지혁은 갑작스럽게 병을 그들 앞에 내밀었다.
그들의 품속에서 빼냈던 그 물건이다.
둘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진 표정의 변화를 갈지혁은 놓치지 않았다.
애초에 수상하게 여겼던 물건이다. 갈지혁은 그것을 두 사내의 눈앞에 들이민 채로 말했다.
“이게 뭐지?”
“뭐가 말이냐? 네놈도 독을 익힌 놈이라면 알지 않느냐. 독이다.”
“그래. 난 독인이지. 그래서 아는 거다. 독을 아는 자가 이렇게 천으로 독을 감고 다닌다는 걸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독을 모르는 자라면 몰라도 상대는 갈지혁이다. 독인이라면 그러한 것 정도는 기본 상식 중의 하나다.
속일 수가 없다.
차라리 입 안에 독단이라도 있다면 확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둘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의당 당연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고문을 해서라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캐내려고 들 것이 분명하다.
입을 굳게 닫고 있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일에 대해서는 떠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그들의 상상을 넘어섰다.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던 갈지혁이 무엇인가를 꺼내든 것이다. 노란색의 액체를 보자 둘은 동시에 같은 것을 생각해 냈다.
“환시독(幻示毒)이라는 거다. 이름은 처음 들어 봤겠지만 뭔지는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