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78화 (178/200)

# 178

3화

“크악! 차라리 죽여라!”

한 명이 발작적으로 나섰다.

그를 잡고 있던 운하연의 손에 조금 더 큰 힘이 들어갔다. 사내는 반항을 하기가 어려웠다.

여인이기는 하지만 운하연은 철부마왕을 주먹으로 때려죽인 인물이다.

갈지혁은 태연하게 환시독을 그들의 코에 가져다 댔다.

잠시 맡지 않겠다는 듯이 반항을 하던 그들의 몸이 이내 추욱 늘어졌다.

반 각 정도 가만히 서서 그 둘을 내려다보던 갈지혁이 입을 열었다.

“눈을 떠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두 사내가 눈을 뜬다. 그런데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마치 무엇인가 헛것을 보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로 보인다. 그런 둘에게 갈지혁이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양획입니다.”

“전 우루쿤입니다.”

“소속은.”

“독황독립문 살조대(殺助隊) 조장들입니다.”

갈지혁은 살조대라는 말에 무엇인가 예상을 해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물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뭐냐.”

“…….”

환시독에 취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그만큼 의지가 강했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갈지혁과 이 둘의 실력은 차이가 나도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우루쿤이 입을 열었다.

“목적이 뭐냐.”

“……귀주를 돌아 사천에 잠입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무림맹의 식량이 운반되고 있습니다. 섬서성과 강서성, 하북성에서 힘을 모은 것이지요. 그것에 독을 풀기 위해…….”

갈지혁은 그들에게서 빼앗았던 병에 든 독을 힐끔 바라봤다. 이것을 식량에 풀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병을 열어 살짝 냄새를 맡았다.

만약 다른 이가 이런 짓을 했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게다. 코로 독의 냄새를 맡다니 그건 자살을 하려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이도 아닌 갈지혁이다. 아무도 그러한 행동에 뭐라고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무취(無臭).’

냄새가 없다.

색깔은 투명하다.

‘무색(無色).’

그렇다면 뻔하다.

갈지혁은 병 속에 있는 액체를 살짝 손가락에 묻히더니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댔다.

웬만큼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자라고 해도 결코 하지 않을 짓을 갈지혁은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절대 중독당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역시.”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바로 당장에 무엇인가 독성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이 반응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 독은 꽤 지독한 것일 게다.

“이 일을 행하는 건 너희가 다가 아닐 텐데.”

“그렇습니다. 저희 말고도 다섯 개 정도의 조가 더 있습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너무나 커다란 일인데도 불구하고 단 두 명에게만 임무를 내렸을 리가 없다. 당장 오늘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바로 무림이 아니던가.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몇 명씩 나누어 행동하게 했을 게다.

“그들의 위치는?”

“그건 모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갈지혁은 알고 있다.

놈들의 정신은 갈지혁이 꽉 붙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큰일이군.”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진검백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운하연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잘못하면 단번에 몰살당하겠는걸요.”

“그러게 말입니다. 갈지혁, 이 독은 얼마나 지독한 거지? 그리고 사천당문이 있으니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알아낼 확률은 일, 알아차리지 못할 확률이 구.”

“젠장!”

진검백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은 말없이 병을 슬쩍 흔들었다.

무색, 무취, 무미라는 독의 삼무(三無)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아무리 사천당문이라고 해도 쉽사리 알아차리기 어려울 게다.

더군다나…….

‘꽤 대단해. 이런 물건은 쉽사리 만들기 어려울 텐데 한두 명도 아니고 십여 명에 가까운 자들에게 이만큼의 양을 주다니. 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나의 무기가 될 거다. 덕분에 무림맹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되겠군.’

독황독립문의 야심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아마 이 독을 몇십 년 동안 준비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에 반해 중원의 방비는 너무나 미약했다.

“전서라도 날리는 게 어때?”

“당려환에게 바로 전서를 날릴 방법이 없다. 그리고 식량이 우리보다 빨리 도착하지는 않을 거다. 어쨌든 사천당문으로 서둘러 가야 할 이유가 더 생겼어.”

“잠은 다 잤군.”

“이놈들은 어떻게 하죠?”

갈지혁이 소매를 흔들자 가루가 둘을 덮었다.

알 수 없는 행동을 한 후 갈지혁은 그대로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덩달아 다른 일행 또한 말에 올라야만 했다.

“저자들은 그냥 놔둘 거야?”

“놈들은 우릴 기억하지 못할 거다. 이랴!!”

갈지혁은 말의 배를 걷어찼다.

말이 화살처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사라지자 세 명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다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방도를 취했으리라.

세 필의 말도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네 명이 사라지고 이 각가량이 흘렀을 때다. 축 처져 있던 두 사내 중 하나가 눈을 떴다.

“응?”

그는 자신의 몸을 살피더니 이내 옆에 있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봤다. 우루쿤은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양획을 흔들었다.

“야야!”

“음?”

양획이 눈을 떴다. 우루쿤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젠장, 우리가 언제 잠들었지? 서두르자고!”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 * *

당려환은 참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독황독립문의 소식들은 그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사천당문의 가주로서 현재는 무림맹의 중심에 선 그다.

독황독립문과의 싸움은 소외되어 있던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문의 위상을 하늘로 치솟게 해 주었다.

사천당문이 없었다면 이 싸움은 일방적으로 끌려만 다녔을 게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서자 당려환은 더더욱 바빠졌다.

독황독립문의 독을 분석하고, 또 그에 맞는 해독약도 만들어 내야 한다.

오늘도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며 당려환은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었다.

“이건 해도 해도 끝이 없군.”

투덜대면서도 당려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때에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신이 왔습니다.”

“종류는?”

“녹(綠)입니다.”

“됐어, 놔두고 가.”

하루에 날아드는 서신만 해도 수백 통이다.

바로바로 확인하기 힘들었기에 그것들의 중요도를 색깔로 분리해서 나누었다.

가장 아래가 녹. 그 위에가 흑(黑), 그 위에가 백(白), 적(赤)은 가장 급한 일에나 사용하는 색이다.

그렇게 서찰을 가볍게 흘리려던 당려환의 귀에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인적인 서찰이라고 해서 녹으로 분류가 되기는 했지만 약선문의 소문주가 보내왔습니다.”

“약선문의 소문주가?”

약선문의 소문주 운하연의 서찰이라는 말에 당려환은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특별히 인연이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약선문이 잠잠하던 터다.

그들이 도움을 준다고 나선다면 사천당문으로서는 한층 어깨에 진 짐을 덜 수도 있는 것이다.

당려환은 녹으로 분류된 서신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서신을 펼쳤다.

막 차를 한 모금 입에 담는 순간이었다.

“콜록!”

서신의 내용을 읽던 그가 기침을 토했다.

당려환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나를 확인하려는 듯이 서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잘못되지 않았다.

흰 종이에 적혀 있는 단 세 글자.

갈지혁.

당려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시비에게 소리쳤다.

“이 서신을 어디서 받았느냐!”

“남문 쪽입니다.”

“잠시 나갔다 올 터이니 누가 찾아오면 외출 중이라고 말하도록 해라!”

그는 황급히 겉옷을 챙겨 입고 빠른 걸음으로 남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당려환이 나타나자 남문을 지키던 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그는 설렁설렁 대충 손을 흔들고는 급히 남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 있는 사내가 당려환을 바라봤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당려환도 급히 인사를 하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혹 소저가…….”

“약선문의 소문주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 있는가?”

“따라오시지요.”

운하연은 몸을 돌려 남문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려환은 급히 주변을 살피고는 아무런 감시자가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남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한적한 곳, 커다란 나무 아래에 두 명의 사내가 보인다.

둘 중 하나는 화산파의 진검백이 확실한데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사내는…….

나무 아래까지 다가온 당려환이 머리를 묶은 사내를 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갈지혁?”

“오랜만입니다.”

“이거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군.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어.”

“그 덕분인지 사천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절 못 알아보더군요.”

“허허.”

당려환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갈지혁은 그의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내심 안심했다. 사천당문이 급부상하면서 혹여 당려환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을까 은근히 걱정을 했던 터다.

“변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뭐가 말인가?”

“사천당문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도와준다는 것은 더더욱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되겠지요.”

“그 이야기였군.”

당려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갈지혁의 말대로 당려환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분명 사천당문의 위상은 높아졌고, 어떠한 세력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갈까.

언젠가 싸움은 끝날 것이다.

한동안이야 사천당문의 업적이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그건 정말 한때다.

그때가 지난다면?

과거와 똑같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 될 것은 뻔하다.

사천당문은 잠시 동안 인정받겠지만 예전부터 받았던 것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될 건 당연지사다.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다리는 건 당려환에게 맞지 않는다.

안 된다면 자신의 손으로 바꾸고 말 것이다.

무림에서 독인이라는 이름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도록 그렇게 만들고야 말 게다.

당려환은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

“난 단 한 번도 그 마음을 바꾼 적이 없지. 널 독왕으로 만들어주겠다던 내 약조를 잊어 본 적도 없고.”

“변하지 않았기를 믿고 왔습니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당려환은 단숨에 핵심을 짚고 나섰다.

갈지혁 또한 숨길 생각이 없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무림맹에 들어가서 싸우려고 합니다.”

“무림맹에서 싸운다고? 무림맹하고 싸운다고 말해 주게 차라리.”

“그리 말해도 전자입니다.”

“이것 참…….”

당황스럽다는 듯 당려환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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